소설리스트

작곡천재 리얼돌 프로듀서-233화 (23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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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 엔터테인먼트

마침내 경연 준비 영상이 끝나고 어두운 무대 위로 핑크엔진이 걸어 나왔다.

또각, 또각…….

검은색 하이힐을 신은 핑크엔진의 키는 평균 170cm가 훌쩍 넘어 보였다. 카메라가 당당하고 무표정한 그녀들의 표정을 차례로 훑기 시작했다.

‘크으… 완벽해.’

강전기가 자랑스러운 듯 주위를 살피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방송만 아니었다면 자기 새끼라고 동네방네 떠들었을 그런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헛기침을 하며 무대 위의 멤버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천상계 미소녀 레이카의 얼굴은 마치 물광을 낸 듯 빛이 났다. 귀에 걸린 고급스러운 귀걸이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고 고운 흑발이 그림처럼 그녀의 어깨를 덮고 있었다.

네 명은 모두 동일한 복장이었다. 몸에 붙는 하얀색 긴소매 초커에 가슴이 살짝 도드라져 보이는 룩. 많이 노출되는 의상은 아니었지만 이다미가 있어서 그런지 왠지 자꾸 가슴으로 눈길이 갔다.

핑크엔진은 브이자(V) 대형으로 서로의 어깨를 한 손으로 붙잡으며 맨어깨를 당당하게 드러냈다.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화이트 스커트였지만 워낙 비율이 좋아서 그런지 각선미가 도드라졌다.

‘지린다. 인하는 완전 패션모델이네.’

핑크엔진은 정말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이었다. 기럭지, 천상계 미소녀, 섹시퀸, 롤리타스러운 큐트함이 공존했다.

지이잉…….

편곡으로 새롭게 재탄생한 「스르륵」이 대형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신 EDM 사운드에 재즈가 절묘하게 섞인 거의 새로운 느낌의 곡이었다.

[아픔이 몰려와. 갑자기 네 생각이.]

사람들은 곡이 나오자 환호성을 지르며 끈적거리는 사운드에 맞춰 자동으로 몸을 꿀렁였다.

“우와아!”

[미쳤어 왜 이래. 어쩌다 또 나타나.]

인하가 다리를 섹시하게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하자 다른 멤버들도 도미노처럼 같은 동작을 따라 했다.

싼 티가 나지 않는 우아함!

‘크… 고급지다…….’

핑크엔진은 완벽한 표정 연기로 강전기와 관객들을 동시에 홀리고 있었다.

[스르륵 네가 와. 또르륵 눈물 흘러.]

레이카의 촉촉한 눈이 클로즈업되며 얼굴 천재의 모습이 가감 없이 방송되었다.

‘이거지!’

[무너진 내 가슴 나 이제 어떡해.]

이다미가 앞으로 나오며 상체 웨이브를 보여줬다.

카메라가 그 순간을 딱 잡았는데 왠지 움짤로 캡처되어 인터넷을 떠돌아다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가사와 화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이 변태 같은 카메라 감독 같으니라고…….’

강전기의 얼굴에 짜증이 살짝 배어 나왔다.

리허설을 하고 얼마나 영상을 분석했는지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마치 장인(匠人)의 그것처럼 말이다. 어찌 됐건 높은 시청률과 최고의 영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니 이 정도는 눈감아줄 필요가 있었다.

관객들은 이전에 들었던 노래가 훨씬 멋지게 편곡되어 나오자 열광하며 즐거워했다. 거기에 완벽한 퍼포먼스에 가창력까지 더해지자 공연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모두를 열광시킨 공연이 끝났다.

멤버들의 얼굴은 처음과 변함없이 도도하고 섹시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해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공연은 끝났지만, 관객들의 환호성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나인테일의 「스르륵」으로 이 정도 무대가 펼쳐질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탓이었다. 마지막 곡을 잘못 뽑아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많은 이들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잘했다, 내 새끼들…….’

강전기는 무대가 끝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와! 대단합니다. 이 함성 들리십니까? 정말 뜨거운 무대였습니다.”

MC들이 핑크엔진을 인터뷰하는 사이 김찬기 프로듀서가 강전기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강 피디, 너무한 거 아닌가? 한수호 프로듀서 민망하겠네. 가사만 똑같지 완전 다른 곡이잖아?”

“…상관없지 않습니까? 관련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좀 그렇네. 반응이 이렇게 좋은데 강 피디 곡으로 다시 녹음이라도 하자면 어떻게 할 거야?”

“다시 녹음하면 차트에 다시 진입하겠는데요?”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브라이언 정이 부러운 눈으로 강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줘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허… 저런 곡은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그런 건 아닙니다. 어쨌건 원곡자는 따로 있으니까요.”

이쯤 되니 자존심이 강한 프로듀서들도 강전기를 인정하는 눈치였다. 운이 좋은 아이돌 출신 작곡가가 아니라 진짜 실력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심지어 SSJ의 간지 프로듀서조차 조금은 다른 눈으로 그를 보게 되었으니까.

* * *

인터뷰와 광고가 나간 후 최종 순위가 공개됐다.

“자! 대망의 1위는!!”

[1위 핑크엔진!]

이변은 없었다. 강전기가 프로듀싱한 그룹이 나란히 1위에서 3위까지 포진했다. 막판에 레몬캔디가 클로버즈를 바짝 추격했으나 경연 초반 클로버즈가 보여준 미친 영상 때문에 근소한 차이로 3위를 차지하고 말았다.

레몬캔디의 일부 멤버들은 아쉬움에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레몬이들도 잘했어. 클로버즈와 백중지세였다.’

솔직히 초반 클로버즈의 충격적인 영상이 아니었다면 2위는 레몬캔디였으리라…….

생방송 시간이 오버 돼서 MC 정상균이 급히 종료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핑크엔진이 최종 1위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드리며 지금까지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다음 시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길었던 경연 방송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강전기는 무대 위에서 즐거워하는 멤버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 피디, 어디 가? 좀 이따 회식한다던데…….”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일찍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그래……. 사정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간 감사했습니다, 선배님.”

강전기는 김찬기와 간지 프로듀서를 보고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 그래. 축하해.”

고개를 숙인 강전기에게서 마치 귀족과 같은 고고함이 느껴졌다. 정중하되 품위를 잃지 않는 인사였다.

“나중에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브라이언 피디님도 고마웠습니다.”

“뭘요. 제가 고맙습니다. 축하드리고요.”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출구로 나갔다. 그는 나가면서 만나는 스태프에게 수고했다는 덕담을 들려줬다. 마지막으로 제작 책임 피디와 인사를 나누고 홀로 지하로 내려갔다.

삐빅…….

강전기는 차에 올라타고 휴대 전화를 꺼냈다. 그의 화면에는 네 명의 여자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강전기의 어머니와 세 명의 누나들이었다.

[우리 전기 축하한다. 마포에서 엄마랑 생방송 보는 중!]

네 명이 함께 TV를 보며 기뻐하는 사진을 강소라가 톡으로 전송한 것이다.

“…그래,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하고 보내야겠어. 여자가 아니라…….”

그는 화면을 보고 피식 웃은 뒤 휴대 전화를 충전 거치대에 올려놓았다.

‘아, 참……. 애들한테 간다고 말해야겠군.’

띠링―

―야! 강전기! 너 어딘데?

성기호가 시끄러운 곳에서 전화를 받았는지 상당히 높은 톤으로 말했다.

“기호야, 나 지금 집에 가고 있다. 몸이 안 좋아서 일찍 들어가려고…….”

―엥? 여기 애들이 너 기다리고 있는데? 다들 너 찾고 난리야.

“네가 애들한테 잘 이야기 좀 해줘.”

―정말 어디 아픈 거야? 혹시 여자 만나러…….

“여자는 개뿔……. 나 오늘 본가에 갈 거니까 그리 알아.”

―그래, 알았어. 아프면 내가 너희 집에 가려고 했는데 본가라면 안 되겠네. 진짜 별일 없는 거지?

“그래. 괜찮아. 네가 애들 좀 잘 챙기고…….”

―오케이. 내일 이야기하자. 우리 할 얘기가 많잖아. 클로버즈 관련 공개 문제도 그렇고……. 네가 강 박사인 거 밝혀야지.

“…내일 하자. 어차피 새 회사 관련한 이야기도 알려줘야 하고.”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 그래, 알았다. 이만 끊자. 오늘 편히 쉬고……. 내가 애들은 알아서 할게.

강전기는 전화를 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리얼돌인 강전기가 피로를 느낄 리는 만무했다. 긴장감이 사라지니 정신적인 피로감이 몰려온 것이다.

그사이 축하 메시지가 계속 쏟아졌지만 일일이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시동을 걸고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포 본가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네 명의 여자가 현관으로 마중을 나와있었다.

“우리 막내 왔니?”

“일렉케이 프로듀서! 축하해.”

“강 피디님, 멋있어요. 나중에 방송에 같이 출연…….”

“강소라! 시끄러워!”

강소라의 방송 출연 부탁에 단호하게 반응하는 강전기였다.

“이게 유명해졌다고 누나한테 까불어?”

“까부는 게 아니라… 누나랑 방송 안 한다고…….”

“야! 강소라, 너 가족 좀 그만 우려먹어. 질리지도 않냐?”

“내가 요즘 최고 핫한 녀석의 친누나인데 그걸 안 써먹는 게 이상하지. 강소영! 너는 하늘을 난다고 현실 감각이 싹 다 없어졌구나?”

수다쟁이인 방송인 강소라와 파일럿 강소영의 말싸움이 또 시작되고 있었다.

“야! 너희들 이제 그만해. 오랜만에 막내 왔는데 오자마자 그럴 거야?”

첫째 강소희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둘째와 셋째를 노려보았다.

“…아, 알았어.”

역시 집안의 서열 1위다운 카리스마였다.

“우리 아들 대단해요. 이렇게 잘 커줘서 엄마가 너무 고마워.”

윤정희 여사가 팔을 벌려 강전기를 안아주었다.

“고맙긴…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강전기는 머쓱해진 나머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간 고생 많았지? 경연 준비 때문에 엄청 바쁜 것 같던데…….”

“아냐, 엄마. 그냥 할 만했어. 오늘은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 온다고 한 거야.”

“그래, 잘 왔어. 우리 아들. 자… 거실로 가자.”

엄마와 자매들은 이미 술 파티를 벌이는 중이었다. 강전기는 중앙에 앉아 맥주잔을 집어 들었다.

“크…….”

“전기야, 너 오늘 생방송에 네 얼굴 얼마나 나왔는지 모르지?”

“응? 뜬금없이 무슨?”

“진짜 계속 나오더라. 나는 무슨 일렉케이 프로듀서 관찰 예능인 줄 알았잖아.”

“에이… 그건 너무 나갔다. 안 그래도 좀 과하게 찍긴 하던데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심하지.”

“아무튼, 우승 축하하고. 자, 건배 한번 하자!”

“우리 막내의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비록 진짜 가족은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이들과 같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 * *

다음 날.

강전기는 강남에 있는 리부트 엔터 사무실로 출근했다. 어제 늦게까지 고생했는지 직원 몇몇과 성기호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이정수 대표만 오전 방송 때문에 일찍 출근한 상태였다.

“전기야,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니?”

“어? 형! 아침부터 일찍 웬일이세요.”

“좀 이따가 방송 가야지. 어제 전화 안 받더라? 컨디션이 별로였다며?”

“네, 그래서 본가에 좀 다녀왔어요.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요.”

“그래, 다행이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이정수 대표는 강전기를 미소 띤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전기야, 우리 이야기 좀 할까?”

“네, 그러시죠.”

이정수는 강전기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한 뒤 KM 미디어가 리부트 엔터를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너도 대주주라 의견을 묻는 거야.”

“…형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데요?”

“음… KM에서 내민 조건이 상당히 좋아. 주식을 좋은 가격으로 완전히 인수하겠대. 모든 고용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걔들이 계열사가 좀 많아야지.”

강전기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 사실을 털어놨다.

“형, 죄송한데요. 사실은 저도 다 알고 있었어요. KM 이기민 전무가 저에게 이야기해 줬거든요.”

“…그렇구나. 하긴 지금의 리부트가 좋은 평가를 받는 건 다 너의 존재 때문이니까.”

“형이 그래도 어렵게 알뜰살뜰 잘 꾸려오신 회사인데 아깝지 않으세요?”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좀 지쳤어. 최근에 힘든 일도 있었고……. 그래서 솔직히 혹하긴 해.”

“그래도 형님을 고문으로 모시고 대대적인 투자를 해준다고 하니 힘드시다면 나름 괜찮은 조건인 거 같던데요.”

“맞아, 솔직히 제안이 너무 시기적절하게 들어왔어. 요즘 내가 경영에 회의감을 많이 느끼고 있잖아. 너도 알지?”

강전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이정수는 연기자들이 소송을 걸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형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도 이견은 없어요. 어차피 회사 이름만 바뀌는 거고 형하고 민호 형은 지분에 대한 보상을 받으실 테니까요.”

“전기 너는 거기서 프로듀서로 일할 거지?”

“그럴 생각입니다. 남은 애들은 제가 서포트해야죠.”

“그렇구나. 잘됐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할게.”

“형, 이제 고문님이시네요?”

“음… 뭔가 뒷방 늙은이 느낌인데?”

“에이, 채널 돌리면 나오시는 분이 뭘…….”

“아무튼, 고맙다. 우리가 받는 지분 가치가 너랑 핑크엔진 때문에 엄청 커졌어. 민호 녀석도 10%긴 하지만 고급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을 거야.”

“민호 형 좋겠네요. 평생소원이셨는데…….”

강전기와 이정수는 모닝커피를 마시며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대표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대, 대표님!”

기획 팀 이민영 대리였다.

“왜!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냐?”

“그게 아니라! 우리 회사 KM에 팔려요?”

“응? 뭐야? 그게 벌써 기사로 떴어? 아직 도장도 안 찍었는데…….”

강전기는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서 연예 기사란으로 들어갔다.

[본지 특종! 리부트 엔터테인먼트 KM 미디어와 매각 협상 중!]

「걸그룹 4차 대전」의 우승 팀 핑크엔진의 소속사 리부트 엔터가 KM과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정수 리부트 엔터 대표는 KM 미디어 그룹과…….

“…기사가 났네요. 어디서 정보가 샌 모양인데요?”

비슷한 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퍼지고 있었다. 강전기는 휴대 전화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이거 혹시 강 박사에 대한 정보도 흘러 나간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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