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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 엔터테인먼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새로운 거대 기획사의 등장에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가고 있었다.
―신생 기획사가 걸그룹만 다섯 팀이네? 이거 농담이지?
―의도적인 건가? 어떻게 된 거야 이거?
―방송 보니까 핑크엔진은 진짜 떡상 각이던데…….
―갑자기 걸그룹 명가(名家)가 된 신생 기획사.
―이게 다 일렉케이 프로듀서가 있기 때문이다.
―일렉케이라면 인정이지.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 방송 보고 팬이 됐다.
―인간이 아니무니다. 개깩기…….
―열라 부러운 놈. 걸그룹으로 사단을 만들 작정인가!
―어쩜 다섯 팀 전부 겹치는 이미지가 없냐?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겠는데?
―일단 소울퀸즈가 걸그룹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데……. 다른 네 팀은 강하네.
―한 달에 한 팀씩 컴백시키면 돌려막기 가능.
―남돌이 없어서 4대 기획사와 수익으론 못 비빔……. 행사 열라게 돌려야 할 듯.
―이거 예전부터 계획된 시나리오 아니냐? KM 미디어가 일렉케이 매수하고 수작 부린 듯.
―정당하게 지분을 인수하는 건데 무슨 개소리냐? 한물간 음모론 그만 언급해라.
―상황이 좀 그렇잖아. 핑크엔진에다가 레몬캔디 정도면 모르겠는데 클로버즈까지? 이건 냄새가 좀 나는 거지.
―클로버즈도 일렉케이가 프로듀싱한 거 아닐까? 강 박사라는 사람 이상하잖아. 가상의 인물이고…….
―설마? 세 팀을 동시에 프로듀싱했을 리가…….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클로버즈가 들고 나온 곡의 수준을 보면 왠지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믿기지 않지만…….
―그럼 세 팀은 원래 상위권으로 계획되었다는 거냐? 말조심해라. 그러다 고소미 먹으니까.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다고 그래? 난 세 팀의 프로듀서가 같은 사람일 수 있다는 소리만 했다. 몰아가기 금지 좀요…….
기사가 나간 후 합병 소식보다 일렉케이 프로듀서가 동시에 세 팀을 프로듀싱한 게 아닌가 하는 이슈가 더 주목을 받았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었다.
심지어 한 인터넷 신문은 교묘하게 기사를 써서 「걸그룹 4차 대전」에 대한 공정성을 의심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관련 이슈가 커지자 KM 미디어는 긴급 기자 회견을 열었다.
“KM 미디어 산하 다이아 엔터테인먼트와 리부트 엔터테인먼트가 합병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표 이사는 다이아 엔터의 최은영 이사가 맡게 되며 일렉케이 프로듀서가 총괄 프로듀서에 취임할 예정입니다.”
“저기요! 항간에 떠도는 방송 조작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 신문사 기사의 거침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희 제작진은 재미를 위한 편집을 제외하곤 조작한 내용이 없습니다. 만약 부정한 짓이 드러난다면 KM 미디어는 모든 매니지먼트 사업을 영구적으로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의 투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간 내부적으로 혁신을 이룬 KM 미디어는 정도 경영을 추구합니다. 「아이돌 메이커」와 같은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KM 미디어의 대변인으로 나온 법무 팀 변호사가 굳은 얼굴로 성심성의껏 해명했다.
“악의적인 비방과 근거 없는 내용을 허위로 유포 시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며…….”
“뉴써치 김일권 기자입니다. 일렉케이 총괄 프로듀서가 클로버즈까지 프로듀싱한 게 사실입니까?”
“글쎄요. 저희가 합병 전 사실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관련 질문이 계속 오가며 소란스러운 장면이 이어졌다. 결국, 어떤 결론도 나오지 않은 채 기자 회견이 끝났다.
조작에 관한 의심은 많이 사라졌지만, 클로버즈에 관한 의심스러웠던 장면들이 하나둘씩 짤로 인터넷을 떠돌기 시작했다.
―일렉케이가 클로버즈를 프로듀싱했다는 증거 동영상이다.
1. 클로버즈의 레전드 무대였던 첫 공연에서 소감을 말할 때 막내 김주리가 실수로 일렉케이 이름을 언급할 뻔함.
[그, 그게… 일… 흐업… 강, 강 박사님요.]
5초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사람들은 분명하게 ‘일’이라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2. 클로버즈 멤버들이 계속해서 일렉케이와 눈빛을 마주치는 모습 포착!
이런 짤들이 결정적인 증거라고 SNS에 회자되며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네티즌 수사대 진짜 무섭다. 그걸 잡아내다니…….”
강전기는 그 동영상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EK 엔터테인먼트가 발족하면서 충분히 터질 수 있던 일이었어.”
성기호가 나름 예측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 밝혀? 말아?”
“음… 내 생각은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두는 거지. 맘대로 생각하라고…….”
“그냥 밝혀도 되지 않을까?”
“최근 기자 회견을 통해 조작 논란 이슈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데 네가 인정해 버린다면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또 다른 논란?”
강전기는 고개를 갸웃하며 성기호를 바라보았다.
“방송 진행하면서 미션을 사전에 유출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솔직히 말해서 동시에 세 팀을 프로듀싱했다는 게 물리적으로 말이 되질 않잖아. 안 그래?”
“하긴……. 나에게 가능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가질 수 없는 절대 불가능한 영역일 수도 있겠지. 꼭 강호 형님 노래 가사 같네.”
“그런데 네가 인간이냐?”
“그게 무슨 소리야?”
강전기는 기호의 뜻 모를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잘생겼지, 키 크지, 능력 있지, 노래도 잘하지, 운동도 잘한다며? 아… 성격은 좀 그런가?”
“성격이 뭐, 인마? 확!”
“어허… 이거 봐. 인성은 좀 문제 있잖아.”
“그건 너랑 놀아서 그래. 근묵자흑(近墨者黑) 모르니? 내가 원래 안 그랬는데 너 때문에 인성이 좀 변한 거 같다.”
“헛소리 좀 그만! 너 예전에 과에서 여자애들 후리고 다니면서… 우읍…….”
갑자기 강전기의 우악스러운 손이 성기호의 입을 덮쳤다. 강전기는 누가 들었을까 봐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쉿! 조용히 해. 인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목소리 좀 낮춰라.”
“웁웁… 허억… 야! 갑자기 코하고 입을 다 막으면 어떡해!”
“…어디 가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
“내가 무슨 혼인빙자간음을 한 것도 아니고……. 그게 그렇게 죽을죄야?”
“그 법률은 진즉에 폐지됐다.”
“거봐.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죄라고 위헌 결정 났잖아. 내가 뭐 결혼하자는 소리를 했어? 아니면 강제로 하길 했어?”
“하긴 했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인마. 넌 생각하는 게 좀 음침하다.”
“전기야, 내가 충고하는데 미리미리 대비해 놔라.”
성기호의 날카로운 말에 가슴이 뜨끔한 강전기였다.
‘음… 원판 녀석이 뭔 짓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살짝 걱정되었으나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은 특수 스킬들이 있지 않은가?
‘3성 스킬인 마인드 컨트롤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군.’
마인드 컨트롤은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만 통하는 기술이긴 하지만 강전기는 어떻게든 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레이카를 이용해서 증거를 싹 다 인멸…….’
“음… 이건 좀 너무 나갔나?”
“그게 무슨 소리야? 너무 나가다니?”
“아, 아니야. 그냥 하는 소리야.”
“싱겁긴…….”
“기호야, 걱정하지 마라. 네가 걱정하는 일이 생긴다면 까짓것 한국 뜨지, 뭐. 그런 건 사고 취급도 안 하는 빌보드로 옮기든지… 아니면 미튜버로 전직해서 세계 여행을 떠나든지 할 테니…….”
“뭐? 세계 여행? 자유로운 영혼이냐?”
“그냥 말이 그렇다고……. 지금 한다는 게 아니라…….”
강전기는 홍익미녀의 사명을 떠올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의 머릿속으로 멜리나나 율리아 같은 서구적인 얼굴이 스쳐 갔다.
“후후…….”
성기호는 갑자기 실없이 웃는 강전기를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이, 이상한 놈.’
“아무튼,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자고……. 이런 건 시간이 약이야.”
“사람들이 진짜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냥 잘 이용해 봐. 미스터리한 남자 일렉케이 프로듀서님.”
강전기는 성기호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기호의 말대로 괜히 또 다른 논란을 초래하면 향후 있을 스케줄에 지장을 줄지도 몰랐으니까…….
“오케이, 알았다. 그건 네 의견을 따르기로 하지.”
“그래, 그리고 좀 있으면 블루비 컴백한다며? 오랜만에 나오는 건데 잘됐으면 좋겠다.”
“걱정하지 마. 잘될 것 같아. 곡도 잘 나오고……. 이화도 완벽하게 회복했거든.”
강전기의 가늘게 뜬 눈에 자신감이 감돌고 있었다.
* * *
블루비의 첫 음악 방송이 있는 날이었다.
블루비 멤버들은 숍에 들러 1차로 단장한 후 방송국으로 출근했다. 방송국 앞은 이미 많은 팬으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전부가 블루비의 팬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등장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와아…….”
블루비가 방송국 앞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졌다.
파파파박…….
엄청난 플래시 세례였다.
“이화야! 여기!”
한 찍덕이 일행 중 제일 가운데 있던 이화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이화는 예전처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걸그룹 최강의 비율답게 압도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왓! 대박!”
블루비의 홈마 중 네임드로 알려진 ‘타킬’은 자신이 찍고 있는 게 실화인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에 몸매도 몸매였지만 그녀의 온몸에서 은은한 광채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헉… 다쳤던 사람 맞아? 피부 뭐야? 무슨 아기 피부도 아니고…….’
그는 잠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LCD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조명을 받고 찍은 듯한… 아니, 포샵을 한 것 같은 투명감.
“미, 미쳤는데? 치료가 아니라 업그레이드를 했어.”
타킬은 오늘 찍은 사진이 지금껏 찍었던 사진 중의 최고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야말로 진정한 레전드였다. 심지어 방송국 앞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조차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화를 아래위로 멍하니 지켜볼 정도였다.
한편, 이화는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자신은 역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했다.
강전기의 무흣한 단백질 테라피(?)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정화 나노 머신이 적용된 사람이 하필이면 걸그룹 최강 몸매라는 이화였으니 시너지가 폭발했다. 아우라가 하늘로 승천하는 느낌이었다.
팬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방송국 대기실로 입성한 블루비.
방송국 복도에서 남자들의 시선은 계속해서 이화를 추적 중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쳐다보게 만드는 마력이 생겨버린 것이다. 하도 광채가 나서 멤버들을 제외하고는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보조 피디가 공지를 전달하러 왔다가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며 어버버를 시전했다.
“사람들이 이화 언니만 본다.”
“그러게.”
“왜 저래?”
“예전에도 그랬잖아. 뭘 새삼스럽게…….”
“에이…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너희들, 이화 때문에 블루비가 있다는 걸 잊지 마.”
리더 수아의 말에 리드보컬 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인정하지. 그런데 보면 볼수록 신기해서…….”
정진이 언급하는 것은 이화의 급격한 상태 호전이었다. 사실은 호전이 아니고 몇 단계 업그레이드가 된 거지만…….
사실 이화는 이전부터 자신의 흉터를 멤버들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었다. 오히려 의사들이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내 특별한 비법이니까 깊이 알려고 하지 마. 큭큭…….”
이화는 멤버들을 보고 나직이 웃었다.
“이화야, 나도 좀 알려줘. 너만 쓰지 말고…….”
“응, 안 돼.”
그녀의 음성은 단호했다.
“아! 좀!”
“메롱…….”
“이게!”
“꺄하하하…….”
정진이 이화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쳤다.
“그런데 얘 예전에 좀 까무잡잡했었는데 왜 이렇게 뽀얘진 거야? 어쩜 이러지?”
“피부에 맞는 화장품이라도 찾은 거야?”
“비슷해.”
“나도 좀 쓰자.”
“그건 아무나 못 써. 리나라면 모를까…….”
옆구리 공격을 당해서 잔뜩 웅크린 채로 리나를 응시하는 이화였다.
“나? 나는 별로 필요 없는데?”
리나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반문했다.
“리나야, 이화 언니가 비법을 알려준다는데 왜 거부하니?”
“난 원래 아기 피부잖아.”
“웃기시네.”
“사이즈도 남다르고…….”
리나가 뜬금없이 팔로 자신의 가슴을 한껏 모으며 위용을 뽐냈다.
“어우… 얘 말하는 게 요즘 왜 이래? 뭐 잘못 먹었나 봐.”
“그러게. 점점…….”
“아니, 왜 리나만 쓸 수 있냐고.”
“그건 비밀이야.”
“칫… 싱겁긴……. 됐어.”
정진이 삐졌는지 팔짱을 끼고 몸을 홱 돌려버렸다.
‘정진아, 미안해. 넌 쓸 수가 없어.’
이화는 강전기를 떠올리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요즘 컴백 준비로 강행군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에게 마사지를 받고 늘어지게 자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자자! 오늘 나가서 레전드 한번 찍어보자, 얘들아.”
“오케이! 파이팅!”
“아자아자! 블루비, 파이팅!”
한편, 어제 공개된 미튜브 조회 수는 미친 기세로 신기록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