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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M 케이콘
비행기 안으로 들어온 강전기가 성기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성 실장! 왜 우린 이코노미석이야? 일을 왜 이따위로... 하아...”
“태국 가는 비행기가 이게 마지막이라 어쩔 수 없어. 그리고 회사에 돈도 별로 없잖아. 아껴야지.”
강전기는 회사에 돈이 없다는 소리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음... 그래. 애들이라도 비즈니스석 탔으니 다행이지. 까짓거 금방 가니까 참아야지 뭐.”
“뭔 소리야. 방콕까지 6시간 걸리는데?”
“어? 상당히 머네. 몰랐다. 가본 게 일본하고 미국밖에 없어서.”
둘이 이야기를 하며 통로를 지나는데 승무원들이 강전기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몸매 미쳤다.’
‘옴마야.. 카리스마 대박.’
그녀들은 비즈니스석에 탄 남자 아이돌보다 일렉케이를 보고 더 놀라고 말았다.
“야... 이거 너무 좁다. 큰일 났다.”
“어? 그러네? 너 다리 왜 이렇게 길어?”
“나 다리 긴 거 이제 알았냐?”
“거참 신기하네. 긴 다리가 불편할 때도 있구만.”
“대충 참고 가야지 뭐.”
“그래. 우리는 회사 스텝이잖아. 아티스트 퍼스트 아니냐!”
“왜 이래. 나도 M 케이콘 출연하잖아.”
“넌 그냥 게스트고...”
[손님 여러분, 방콕까지 가는 코리아항공 7822편 곧 출발하겠습니다. 기내에서 승무원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전자담배를 포함한 흡연….]
기내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가 천천히 활주로를 이동하며 하늘을 날았다.
[손님 여러분, 방금 좌석 벨트 표시등이 꺼졌습니다...]
벨트 표시등이 꺼지자 강전기가 의자 등받이를 뒤로 눕혔다.
‘어우... 피곤하다. 6시간 동안 잠 좀 자야겠군.’
강전기는 어제 청담동으로 이화를 불러 뜨거운 밤을 보낸 상태였다.
영화 촬영 때문에 자주 보기 힘들어서 그런지 하루에 몰아서 여러 번 절정을 맛보게 해줬다.
‘음... 살맛 난다. 이화랑 리나랑 같이 불러야 하는데... 도통 시간이 안 나네. 음냐...’
그는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피디님. 주무세요?”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디선가 본 사람이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어? 너희는...”
“안녕하세요. 피디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좁은 이코노미석을 밝히는 외모.
걸그룹 4차대전에 출연했었던 유앤아이ENT 소속 걸그룹 라라걸즈의 이서린, 김선아였다.
유앤아이에서 배우 지망생을 섞어 만든 비주얼 그룹.
EK엔터 소속 가수들보다 먼저 정식데뷔를 치르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너희들도 방콕에 가는구나?”
“네! 저희 정식데뷔 한 거 아시죠?”
“그럼. 노래도 들어봤지. 100위 안에 들었던데?”
“다 방송빨이죠 뭐.”
“그래. 열심히 해.”
“아... 이거 좀 드세요.”
라라걸즈의 비주얼 센터 이서린이 초콜릿을 내밀었다.
“뭐 이런 걸 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녀들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와... 이서린은 진짜 실물 쩐다. 보면 볼수록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이 아닌 거 같아.”
옆에 있던 성기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놀라고 있었다.
라라걸즈 멤버들의 외모가 뛰어난 건 사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이서린은 특출났다.
마치 동양의 율리아 파블로바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확실히 배우 지망생 출신이라 다르긴 하네.”
“아냐. 쟤는 모델 쪽으로 가려다가 스카웃됐을걸? 키가 173cm도 정도 되잖아.”
“그래? 쟤도 다리 엄청 긴데 피곤하겠다. 유앤아이는 애들을 왜 이코노미석에 태웠대?”
“모르지 뭐. 돈이 없든지, 스케줄이 꼬였는지... 다들 오늘 나가는지라 자리가 없었나 보네. 우리처럼...”
“우리야 워낙 대규모 인원이라 어쩔 수 없잖아. 어쨌든 나는 눈 좀 붙일 테니 깨우지 마. 밥도 안 먹을 거야.”
“알았어. 피곤하면 주무셔. 가자마자 리허설이니까...”
강전기는 고개를 좌석에 붙이고 수면을 취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어제 이화가 몸을 부르르 떨며 애액을 쏟아내는 장면과 자신의 대물을 정성스럽게 빨아주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세상은 정말 살만한 곳이야.’
곯아떨어진 강전기는 누가 툭툭 치는 통에 눈을 번쩍 떴다.
“다 왔어. 내릴 준비 하자.”
“음? 벌써?”
“너 어제 술이라도 마셨냐? 어째 한번을 안 깨고 스트레이트로 자냐?”
“끄응... 이제 좀 개운하네. 어디 보자.”
강전기는 비행기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밖을 내다봤다.
“와. 날씨 죽이네. 여긴 겨울에 안 추운가 보다.”
“20도 중반에서 왔다 갔다 하나 봐.”
“와우... 수영도 좀 하고 그래야겠다.”
끼이익- 덜컹-
비행기가 방콕 돈므앙 공항에 착륙했다.
일행은 짐을 챙겨 비행기에서 내려왔다.
“매니저님들 애들 잘 챙기시고…. 혹시 짐 놓고 내린 거 없나 잘 보시고요.”
성기호 실장이 일행을 챙기며 공항을 이동하려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야. 강전기!”
강전기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르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누구...”
“회사 차렸다고 이제 전 동료도 무시하냐?”
“응?”
강전기는 일단 성기호에게 출국 수속을 마치라고 이야기한 뒤 자기를 부른 사람에게 다가갔다.
“뭐야? 너 키가 더 커진 거야? 아니면 깔창을 깐 거야?”
“.........”
서글서글하게 생긴 호남형 남자가 손으로 키를 재보며 살짝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강전기는 잠시 누구지 하다가 이내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바로 SSJ 소속 딥블랙 멤버인 리더 태인이었다.
“어. 태인아. 오랜만이다.”
강전기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태인은 그의 손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봐도 참 얼굴은 번지르르하네. 기분 나쁘게시리….”
말투에서 명백하게 적대감이 느껴졌다.
눈에서 은은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랄까?
‘아... 원판 녀석이 연습생 시절 주아라랑 원나잇을 해서 아라 남자 친구였던 이 녀석이 빡쳤다고 했던가...’
자기가 한 일도 아닌데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드는 강전기였다.
어쨌거나 제삼자가 보기엔 자신이 가해자 아니던가.
“왜 그래. 내가 팀을 나간 지가 언젠데….”
“훗... 니가 요즘 좀 잘나간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태민은 손에 치렁치렁한 액세서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패션 감각이 상당히 뛰어났다.
‘자슥... 옷 잘 입네. 그래. 나라도 화나지. 만약 전 여친이 그랬다면 뚜껑 열렸을 테니까...’
그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태인아.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다. 너희도 이제 남돌 1티어잖아. 다 잘됐는데 예전 일로 이러면 좀 그렇지.”
“예전 일? 웃기고 있네. 너 걔네들 곡까지 써주고 아주 지랄을 하더라?”
“아... 그거? 나는 아라랑 아무 사이도 아니...”
“조용히 안 해? 이 씨발 새끼가 어디서 그 이름을 들먹여?”
태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다.
“쏘리...”
“너 내 눈에 띄지 마. 진짜 뒤지는 수가 있어.”
“태인아. 너 말이 좀 심하다?”
“분명 경고했다. 씨발아.”
공항 한복판에서 불꽃 튀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찰칵-
팬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자 태인의 표정이 급변했다.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가식적인 비즈니스용 미소가 입가에 드리워졌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들었다.
“아... 사인이라도 좀 해드릴...”
하지만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그를 지나쳐 강전기에게 다가왔다.
“일렉케이님! 꺄아악! 어머어머... 대박. 저 팬이에요.”
“예? 저요?”
“네! 방송 잘 봤어요. 저 진짜 팬이에요.”
“어... 음...”
강전기는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본인은 아이돌도 아니고 프로듀서 아니던가.
물론 방송에 나왔다지만 요즘엔 그리 얼굴을 보이지도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티어 아이돌을 제치고 사인을 하게 되다니….
태민의 얼굴이 붉어지며 스스로 화를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휙-
그는 몸을 부르르 떤 뒤 몸을 돌려 일행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딥블랙 멤버 6명이 편안한 포즈로 서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 강전기를 보며 손을 들었다.
‘쟤가 데이브였나?’
원판인 강전기가 안 좋은 사건으로 데뷔조에서 빠지고 새롭게 멤버로 들어온 딥블랙 비주엘 센터였다.
아무래도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모르다 보니 강전기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모양.
그는 피식 웃으며 느릿하게 몸을 돌려 공항을 빠져나갔다.
‘하아. 피곤하구만. 원판이 싸지른 똥을 왜 내가 치워야 하는 거야. 짜증 나네.’
강전기의 외모로 살기 위한 작은 액땜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우... 모이는 장소가 어디더라?’
강전기는 휴대전화를 들어 성기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가 출국장을 빠져나올 때.
방콕 돈므앙 공항은 엄청나게 혼잡스러웠다.
M 케이콘 때문에 방한하는 KPOP 스타들을 보기 위해 팬들이 공항을 거의 점거하다시피 한 것이다.
“어우... 난리도 아니네. 확실히 케이팝이 대세는 대세야.”
다른 곳은 몰라도 동남아에서는 확실히 서양음악을 능가할 정도의 인기인 모양.
강전기는 선글라스를 끼고 빠른 걸음으로 통로를 빠져나갔다.
“꺄아아악! 일렉케이!”
“까아악!”
케이팝 팬들은 심지어 일렉케이 프로듀서까지 다 알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나가다가 엄청난 소리에 깜짝 놀라 주변을 쳐다보니 수많은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빠, 빨리 나가야겠어.’
강전기는 별다른 인사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성기호를 따라 버스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어. 그래. 후와... 팬들 미쳤다. 무슨 공항을 점거하다시피 했네.”
“그만큼 케이팝이 인기인 거지.”
핑크엔진에게 인사를 받은 강전기가 한숨을 돌리며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 괜찮아?”
“괜찮아요. 해외에도 저희 팬들이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기쁜걸요?”
사과머리를 한 최시우가 엄지 척을 시전하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래. 다들 손 좀 흔들어줘라. 처음 왔는데도 저렇게 플래카드 들고 맞이해주는데….”
“너무 감동이에요.”
“뭘... 너희들도 이제부터 세계적으로 놀건데...”
“피디님. 저희도 빨리 컴백하고 싶습니다.”
리더 김인하가 굳은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서 나까지 홍보하러 같이 왔잖아. 이번 컴백곡은 더 흥할 테니까 걱정 그만해.”
“이번엔 기필코 레몬캔디를...”
“아이고... 참 쓸데없는 경쟁 하고 있네. 식구들끼리...”
“거봐 내가 뭐랬어. 얘들 은근히 라이벌 의식 있다니까?”
“쯧쯧. 너희는 이번에 준비한 거나 잘해.”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하고 창밖을 바라보니 팬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좋을까.’
전생에 강전기는 극도의 대인기피, 외모 콤플렉스로 공연장이나 팬미팅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엔터회사의 총괄프로듀서로 당당하게 합류할 수 있었다.
거기다 소속 아티스트 세 팀을 거느리고서 말이다.
‘크…. 많이 컸다. 강전기.’
버스는 공항을 출발해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버스 안에서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태국의 멋진 풍광을 음미하고 있었다.
‘역시 돈이고 뭐고 이게 최고라니까?’
“야. 전기야. 저기 좀 봐. 저기 건물 보이지? 저기가 임팩 아레나야. 우리가 공연할 곳...”
“오! 멋지네. 내일 잘해서 무대 한번 뒤집어 놔야지.”
“준비 많이 했잖아. 애들도 그렇고...”
“이번에 확실히 4세대 톱이 누구인지 보여줘야지.”
“너무 압살하는 거 아닌지 몰라.”
“흐흐흐...”
강전기와 성기호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진하게 웃었다.
대망의 M 케이콘.
드디어 4세대 걸그룹 제국 대관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