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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국뽕 좀 푸짐하게 넣어봤습니다. 즐감!
태국 M 케이콘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갑옷을 입은 멤버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괴물들을 써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경연 때 급하게 만들어진 CG가 아니라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영화 수준의 퀄리티.
마치 미국의 히어로물 영화에 나오는 듯한 전투 장면이었다.
“우와아아!!!”
난데없는 액션.
박진감 있는 사운드.
얼이 쏙 빠졌던 마린이 관객들의 엄청난 호응 소리에 놀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뭐지? 영화인가? 얘들이 케이팝 아이돌이라고?’
그야말로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
아이돌 전원이 출연하는 영화라고?
그것도 자신들의 컨셉으로?
망한 아이돌이 사실은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다?
파워레인저 시절 고리타분한 스토리인데 고퀄리티의 영상과 사운드를 듣다 보면 저절로 개연성이 생길 것 같았다.
스크린에는 다섯 명의 소녀가 갑옷을 입은 채 승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뎁스 포즈와 양팔을 쫙 펴고 있는 모습 전형적인 전대물의 모습.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들은 유치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대 조명이 꺼졌다.
스크린에는 음방 출연이 불발돼 길거리 공연에 나서는 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침내 무대 위.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컬러풀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클로버즈였다.
말괄량이들처럼 얼굴에 밴드를 붙이고 머리를 묶은 소녀들은 방송에서 불렀던 프리데뷔 싱글곡에 맞춰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별빛 속의 댄스]
길거리 공연이 끝나고 퇴근 후 골목에서 만난 괴물들과 전투를 치르는 듯한 신나는 코믹 댄스가 일품인 곡.
클로버즈는 엄청난 환호성에 힘을 얻은 듯 열정적인 댄스를 선보였다.
특히 춤신춤왕 이태리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멤버들도 그녀에게 감화되었는지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기 시작했다.
‘미, 미친... 무슨 컨셉이...’
걸크러시, 걸리시한 틴크러시, 코믹&큐티라니...
마린은 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그룹마다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놀라는 중이었다.
그것도 같은 회사에서 말이다.
그녀는 태국에서 솔로 아티스트로 데뷔할 게 아니라 한국으로 가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K엔터테인먼트라고 했지?’
그렇게 태국의 어린 아티스트 중 최고 포텐셜을 가진 인재가 한국행을 결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넷플릭 개봉일 홍보와 함께 클로버즈의 주제가 OST가 공개되었다.
‘별빛 속의 댄스’를 능가하는 신나는 리듬의 복고풍 댄스곡과 망한 그룹으로 현실에서 부르고 다니는 청순한 컨셉의 곡.
강전기가 3시간을 투입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으로 귀에 착 감기는 편안하고 경쾌한 멜로디가 일품인 곡이었다.
‘와... 처음 듣는데도 귀에 팍팍 들어와 꽂히네.’
“따완. 이 곡을 전부 아까 그 일렉케이 프로듀서가 작곡했다고?”
“응. 그렇다니까? EK엔터 곡들은 전부 일렉케이 프로듀서가 만들어. 레몬캔디 이보경만 빼고...”
“이보경?”
“걔가 일렉케이 프로듀서 수제자야. 곡도 발매하고 10위권에도 들었을걸?”
“아...”
마린은 그 이야기를 듣고 묘한 경쟁심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과 비슷하게 벌써 작곡을 하고 있는 멤버가 있었다니...
가슴속에 호승심이 그녀를 자극하고 있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다들 수고했어. 그리고 너무 잘했다.”
EK엔터 대기실에는 강전기와 핑크엔진, 레몬캔디, 클로버즈가 함께 모여있었다.
그야말로 스태프 포함 스무 명이 훌쩍 넘어가는 대규모 인원이었다.
“피디님. 저희 잘했죠?”
레몬캔디의 살균미소 공소연이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밝게 웃었다.
“그래. 너희들이 태국에서 제일 인기 있더라.”
“헤헤... 저희도 깜짝 놀랐어요. 다들 저희 노래 따라부르시더라고요.”
강전기는 귀욤이 공소연을 아빠 미소로 쳐다보다가 핑크엔진의 레이카와 두 눈이 마주쳤다.
“크흠... 레몬캔디도 잘했지만 핑크엔진도 잘해줬다. 오늘 신곡 발표했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좋은 것 같아. 너희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응이 오고 있는 거 알고 있지?”
“네! 저 무대에서 컴백곡 추는데 진짜 소름 돋았어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요? 전 진짜 무대 체질인 거 같아요.”
리더 김인하였다.
중간에 찰진 랩까지 선보이는 실력파 리더 아니던가.
네임드로즈의 신디와 자웅을 겨뤘던 인재다웠다.
‘저 녀석 나중에 쇼미너더골드나 출연시켜야겠구만. 후... 심상치 않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망의 정식 데뷔를 치른 클로버즈 차례였다.
그녀들의 정식데뷔곡은 금일 오전에 음원이 풀린 상태였고 CA 미디어 그룹과 넷플릭의 빵빵한 홍보로 드라마 시즌1 공개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였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영상도 저 정도면 적어도 망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흥하면 더 좋고... 흐흐...’
“클로버즈 너희들도 잘했어. 예능 방송이나 드라마 출연 말고... 어때? 오랜만에 무대에 선 소감은?”
“너무 재미있었어요! 드라마도 좋긴 한데 역시 아이돌 활동도 재밌는 거 같아요.”
막내 김주리가 오른손으로 경례를 하며 힘차게 대답했다.
“하하... 신났구나?”
“네! 전 데뷔앨범 커플링곡이 너무 좋았어요. 청순한 컨셉. 저랑 너무 잘 어울리지 않나요?”
“우웩...”
김주리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이태리가 헛구역질로 태클을 걸었다.
“뭐!”
“네가 청순이 어울리니? 나라면 모를까...”
“어머? 언니. 나 엄청 청순하잖아.”
“뭐래. 돼지가...”
“베이글한테 돼지라니!”
“풋...”
탕탕-
“얘들아. 조용. 장난 그만치고!”
강전기가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치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오늘 수고했다. 내가 잠깐 인터넷으로 반응 봤는데 우리 평가가 압도적으로 좋아.”
“와아아!! 대박!”
“꺄아아! 역시!!”
“강전기! 강전기!”
모두가 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초반 천상 보컬조와 밴드 곡을 선보인 레몬캔디, 미친 수준의 컴백곡을 발표한 핑크엔진, 일주일 뒤 넷플릭에 공개 예정인 클로버즈까지...
인터넷 커뮤니티와 M케이콘 미튜브 채널은 온통 EK 소속 아티스트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형국.
[4세대 압도적 인기! EK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의 진격이 시작됐다! 이제는 세계다!]
[임팩 아레나를 가득 메운 케이팝 팬들. 그중에서 가장 호응이 컸던 이들은 놀랍게도 EK엔터 소속 아이돌이었다!]
강전기는 기뻐하는 소속 그룹 멤버들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견한 녀석들.’
자신의 정확한 방향 지시에 의해 포텐이 만개한 영향이 컸지만 대견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오늘 다들 고생했어. 이제 차로 이동하자. 오늘 호텔에서 파티가 있으니까 마음껏 즐기는 거야. 알았지?”
“네!!!”
“그런데 너무 늦게 자지는 마라. 내일 스케줄 때문에 새벽에 출국해야 하는 거 알지?”
“우우우!!!”
소속 멤버들은 파티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한껏 들떴다가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하자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하하... 녀석들. 바쁠 때가 제일 좋은 거다. 찾아주는 곳 없어봐라. 지금 이런 생활이 엄청 그리울 테니까!”
“으악! 우리 피디님. 또 꼰대 발언! 제발!!”
도른자 남민지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미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모두가 웃으며 임팩 아레나를 떠나갔다.
스윽-
그들의 떠나가는 모습을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여성 솔로아티스트로 유일하게 M 케이콘에 참가한 싱어송라이터 차미였다.
그녀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강전기가 차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콰득...
그녀는 꽤 초조한 모양이었다.
오늘 ‘The way home’의 주제가를 부를 때 치던 강전기의 피아노 연주는 예전 죽은 오빠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오빠.......’
# # #
밤 12시.
소속사 식구들과 신나는 파티를 마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온 강전기는 개운하게 샤워를 마쳤다.
오늘 임팩 아레나에서 한 공연은 화제성으로 보나 실력적인 면으로 보나 꽤 성공적이었다.
그는 샤워가운을 입은 채 맥주 한 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콕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였다.
‘흐음... 대단한 하루였어.’
그야말로 다른 회사를 압살하는 퍼포먼스였다.
태국 M 케이콘은 4세대 걸그룹 톱은 ‘EK엔터’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자리였다.
걸그룹 엠파이어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였다고 할까?
‘후후후...’
그런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
갑자기 강전기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 : 이기민]
“응? 오밤중에 기민이 형이 웬일이지?”
강전기는 고개를 갸웃한 뒤 이기민의 전화를 받았다.
- 형!
- 동생! 오늘 공연 멋지더라.
- 보셨어요? 오늘 신경 좀 썼습니다.
- 그러게. 인터넷이 난리네.
- 하하... 그런데 오밤중에 웬일이세요? 거기는 새벽 아닌가요?
- 어. 맞아. 좀 급한 일이라...
- 에이. 형 전화면 자다가도 받아야죠. 이제 씻고 자려고 했어요.
- 잠 안 깨워서 다행이네.
- 네. 말씀하세요.
- 아.. 그게…. 너희 내일 새벽 비행기로 한국 돌아온다던데? 맞니?
- 맞아요. 왜요?
- 태국에 아는 친구가 있는데 네 팬이라면서 내일 좀 만날 수 있냐고 하길래.
- 형 친구요?
- 하하... 남자는 아니니까 걱정 마. 혹시 내일 시간 좀 돼?
- 음... 애들은 다들 스케줄이 꽉 차 있긴 한데 저는 뭐 없다고 해도 무방하죠. 회사 일이야 성 실장이나 이 대표가 해도 되는 그런 업무고요.
- 그래? 그럼 시간 있다는 거네?
- 예.
- 휴, 그럼 잘됐다. 내 친구가 태국에서 알아주는 얘야. 태국 관광도 시켜주고 끝내주게 대접해줄 거야. 어때 관심 있어?
- 음... 뭐... 나쁘지 않죠. 저도 해외 관광은 별로 안 해봐서….
- 오케이. 그러면 내일 9시에 리무진이 호텔로 갈 거야. 넌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 알았어요. 형. 형이 소개해주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리도 없고...
- 그럼. 그래. 갑작스럽게 부탁했는데 허락해줘서 고맙다. 네가 오늘 내 체면 살려줬다.
- 집도 빌려주셧는데 동생은 이럴 때 써먹어야죠.
- 그런가? 하하.. 그래. 그럼 끊는다.
- 들어가세요. 형.
뚜루룽-
강전기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정이었지만 나름 괜찮은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요즘 너무 매너리즘에 빠졌었는데 관광이나 하면서 힐링 좀 해야겠어.’
그는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방콕의 야경을 감상했다.
[똑똑-]
‘응?’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응? 이 시간에 누구지? 기호인가?”
강전기는 맥주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뭐지?’
밖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문을 열었더니 옆에서 모자를 눌러쓴 누군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누, 누구...”
강전기는 살짝 놀라 움찔하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모자를 쓴 사람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여자인 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윤기 나는 검은색 머리카락이 촤르륵 흘러내렸다.
“어??”
강전기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제야 눈치챘다.
“차미 씨?”
“...........”
강전기의 방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여성 싱어송라이터 차미였다.
“차, 차미 씨가 왜...”
“저 이렇게 계속 서 있게 하실 건가요.”
묘하게 차갑게 들리는 말투.
강전기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핀 뒤 차미를 방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오세요.”
차미는 강전기를 쳐다보지 않은 채 호텔 방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러더니 들고 있는 봉투를 침대에 휙 하고 던지는 게 아닌가!
노란 봉투는 침대에 떨어져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강전기는 뭐에라도 홀린 듯 쏟아진 내용물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왠지 데자뷔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으음...”
사진 꾸러미를 하나하나 넘겨 보고 있던 그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던진 사진에는 유원희 별장에서 찍힌 사진을 비롯해서 청담동으로 들락거리는 이화와 리나 그리고 율리아, 백장미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강전기는 놀란 표정으로 차미를 응시했다.
“참…. 재미있게 사시더군요.”
비틀린 입꼬리를 하며 강전기를 날카롭게 쳐다보는 차미.
그녀의 청량감은 온데간데없고 스산한 다크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크흠...”
“알아내는데 힘들었어요. 설마 건물이 피부관리실하고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그 말을 들은 강전기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말았다.
“어, 어떻게...”
강전기는 차미와 헤어질 때 느꼈던 찜찜함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얘랑 엮이면 안 되겠어.’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이었는데…. 그게 현실이 될 줄이야.
확실히 현재 그녀는 정상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차미의 특성 분석을 긴급하게 떠올렸다.
‘그렇군. 맞아. 얘는 심각한 브라콤이었어. 죽은 오빠를 못 잊는….’
거기다 인공지능이 대상 공략시 엄청난 보상치가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해준 상대이기도 했다.
‘하아... 얘랑 엮이긴 찝찝하긴 하지만... 일이 이 정도가 됐는데 수습은 해야겠지.’
강전기는 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슬렌더인 차미의 실루엣을 훑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