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140화 영웅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8)
어두컴컴한 방에 한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자동으로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방 안은 성수아가 지내는 수준의 규모와 비슷한 넓은 방으로 구조는 비슷했지만, 방의 위생 상태가 성수아의 방과 판이하게 달랐다.
겹겹이 쌓인 피자 박스와 인스턴트 음식을 담았던 비닐들이 방 구석구석에 쌓여 있었다.
넓은 방이라는 이점으로 많은 쓰레기를 쌓아놓을 수 있는 이 방의 주인은 침대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단발머리에 긴소매 티셔츠와 다리 라인이 살아있는 청바지를 입은 여성.
초서현은 침대에 다이빙하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아오… 죽겠네….”
침대에 엎드려 누운 채로 끙끙대는 소리를 내는 초서현은 고개를 돌리고 유리 벽으로 된 창밖을 보면서 갑자기 실실 웃기 시작했다.
“거참… 밖에서 진짜 뭐 하던 사람이야?”
초서현은 오늘 오전에 있었던 생도들과의 대련을 떠올렸다.
5조까지 무난하게 진행되었던 훈련은6조의 차례에서 난도가 대폭상승했다.
6조 생도들은 송아라의 실력을 믿고, 그녀에게 모든 힘을 실어주며 초서현에게 맹공을 펼쳤다.
설상가상 계속 초서현을 도와주던 성수호의 도움도 사라진 상태.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화살이 그렇게 좌우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나? 혹시 보조 마법의 도움?”
오늘 성수호가 보여줬던 활 솜씨는 기예를 넘어서 신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성수호의 앞을 막고 있는 생도를 피해서 쏘는 곡사 기술은 초서현도 지금까지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성수호의 프로필에는 특기가 따로 적혀 있지 않았지만, 마법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다고 비고란에 적혀 있었다.
다만 생도 수준 이하로,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재능이 없으며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용도로만 사용한다고 적혀 있었다.
송아라가 초서현에게 검을 휘두르는 순간 성수호의 화살이 날아와 송아라의 검을 튕겨냈고, 다른 생도들도 속수무책으로 무기가 날아가는 경험을 맛봤다.
그래, 화살이 휘어서 날아갈 수 있다고 쳐도 이상한 점이 하나 남아 있었다.
“…분명 파괴력이 약했는데, 오늘은 완전 딴판이었어…. 애들 손에서 무기를 떨구게 할 정도면 보통 수준의 타격이 아닌데.”
영사관에 막 입학한 생도들이 1학기 동안 하는 훈련이 있는데, 바로 악력 훈련이다.
영사관에 입학한 생도들은 진짜 무기로 훈련을 하게 되고, 무기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서 온종일 무기를 잡고 휘두르는 연습을 한다.
그 외에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무기를 다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영사관 내에서 최하위에 머무르는 생도조차 성인의 손을 쉽게 으스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악력이 강한 편이다.
그런 생도들이 성수호의 화살에 맞고 무기를 놓치는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
결국 그로 인해서 초서현은 6조와 대련하는 동안 별 탈 없이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초서현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중얼거렸다.
“하아… 땀 엄청났네. 일단 좀 씻자….”
초서현은 옷을 바닥에 훌훌 던져 버리고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온수를 틀고는 거울에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단발머리에 잡티 하나 없는 얼굴.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심통 맞은 표정의 얼굴.
그리고… 온몸에 새겨져 있는 무수한 상처들.
베인 흔적과 화상자국, 바늘로 꿰맨 자국들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초서현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제 다 극복한 줄 알았는데….”
초서현은 훈련 중에 봤던 발밑에 피어오르던 그림자를 떠올렸다.
대인전을 할 때마다 나타나는 환영.
분명 환영이었지만, 그 환영은 자신을 옭아매며 사지로 몰아넣었다.
분명 2년간 그 환영을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2년간 나타나지 않았던 환영이 또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서현은 자신의 몸에 상처들을더듬으며 울먹거렸다.
“평생 날 따라다닐 셈이야? 내가 그렇게 당신한테 잘못한 거야?”
초서현은 거울에 새하얀 김으로 뒤덮인 상태에서도 울먹이며 자신의 몸에 난 상처들을 계속 어루만졌다.
***
나는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향하면서 아르모니아와 통신했다.
‘아까 곡사 괜찮았지?’
[흠잡을 데 없는 출중한 능력이었습니다.]
오전 수업, 초서현과의 대련에서 보여준 6조의 작전은 훌륭했다.
내 화살의 방해로 전력을 낼 수 없다고 판단한 생도들은 한 명이 활약을 포기하고 아예 나를 전담 마크한 상태로 나머지 생도들이 초서현에게 모든 힘을 쏟는 계획.
생도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초서현의 기질을 알고 있어서 그녀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마법진을 이용한 곡사.
내가 쏜 화살이 나를 마크하고 있는 생도를 돌아갈 수 있게 좌우나 위쪽에 마법진을 구사하고 화살을 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냥 화살이 아닌, 초전도체 화살을 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날아간 화살은 뇌속성 마법에 영향으로 방향을 틀면서 엄청난 가속과 함께 파괴력을 얻게 되었다.
덕분에 생도들 무기가 그들의 손을 떠나면서 초서현에게 여유를 줄 수 있었다.
만약 조준력이 없었다면 그 능력이 있다고 해도 생도들의 무기를 정확히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확실히 손가락으로 튕기는 거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세지긴 했는데, 쏠 때마다 에넬을 쓰니까 주의해야겠네.’
한발에400 에넬. 전혀 비싸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에넬이 꽤 여유로운 상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다 보면 에넬도 분명 바닥나는 날이 올 것이다.
‘아, 이참에 뇌속성 레벨이나 올려보자. 10까지 올려줘.’
[알겠습니다.]
마법력이나 궁술은 에넬이 많이 들어가니, 다음으로 뇌속성 기질을 올리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뇌속성 기질을 올린 김에 연습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레벨 5에만 머물러서 불안하네. 혹시 모르니까, 연습이나 해볼까?’
조준력이 마냥 만능은 아닐 것이다.
일단 뇌속성이나 궁술, 마법력 같은 중요한 스킬을 올리면 몇 발 써봐야지 조준력 스킬도 손으로 적용할 테니까.
나는 기숙사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통신했다.
‘훈련실은 보조 교관도 쓸 수 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다만 고급 시설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간단한 사격 연습장은 사용 가능합니다.]
‘…시불.’
분명 내가 필요한 시설은 사용할 수 있다고 들어서 문제는 없었지만, 기분이 몹시… 더러워졌다.
보조 교관은 강도 높은 훈련 좀 하면 덧나나?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사격 연습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쏴아악!
“응?”
누군가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라 웬만하면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빨리 몇 발 쏴보고 가자.’
그냥 평범하게 활을 쏴보는 거라면 전혀 눈치 보일 일이 없겠지만, 내가 하려는 연습은 곡사 연습이었다.
필연적으로 뇌속성 마법으로 인해서 평범한 화살 소리보다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서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까도 생도들이 그거 뭐냐고 계속 물어봐서 곤란했지….’
[계속 둘러대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적당한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냥 마법 묘기라고 하면 넘어가지 않을까?’
[….]
아, 아닌가?
어차피 마법도 못 쓰는 애들인데,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아르모니아와 만담을 즐기며 연습용 활을 하나 빼 왔다.
아까 내가 쓰던 활과 같은 녀석이었다.
‘…교관용 활이라고 받아서 쓰던 게 이거였어?’
[아마 보조 교관에게 지급되는 건 연습용 활인 것 같습니다.]
‘…서럽다, 서러워!!’
나는 분노의 혈류를 손으로 응집시켜서 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렇게 활을 들어 올려서 아르모니아에게 화살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순간이었다.
먼발치에서 화살을 쏘고 있던 여성이 나에게 달려오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어!? 성수호 쌤!”
“응?”
화살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는 여성은 송아라였다.
..
..
“화살을 쏴보면 성수호 쌤의 대처법도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연습하고 있었어요.”
“대단하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까 오전뿐만 아니라, 오후에도 진행된 훈련으로 지쳤을 텐데도 이렇게 나와서 주특기가 아닌 무기로 훈련하는 송아라가 대견했다.
뭐랄까, 열심히 하는 아름다운 여성은 남자의 기분을 한껏 올려주는 매력이 있으니까.
[남성은 어떠십니까?]
‘어허! 지금 짐의 신성한 속마음을 더럽히려 하는 것이냐!?’
[….]
나의 일갈에 아르모니아는 조용해졌다.
어디서 감히 내 속마음에 남자를 들이려고….
송아라가 나를 향해서 웃으며 질문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그거 어떻게 하신 거예요?”
“아….”
그거라고 하면 당연히 곡사겠지.
“그냥 화살을 쏠 때, 마법도 같이 쓴 거다.”
“어떤 마법이요!?”
“하하… 그건 비밀이다. 나도 비장의 능력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
“으으….”
송아라는 비장의 능력이라는 말에 더는 집요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가 쓴 곡사에 관한 질문은 포기했지만, 활 솜씨에 관한 질문은 포기하지 않았다.
“쌤! 저 활 쏘는 자세 좀 봐주실 수 있어요?”
“아… 내가 뭐, 봐줄 게 있나 싶네. 나보다 송아라 생도가 훨씬 잘 쏠 텐데.”
“에이! 저 성수호 쌤에 비하면 한참 낮죠.”
송아라는 장난스럽게 활을 잡으며 자세를 잡고 활시위를 튕기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 당장 내 연습은 물 건너갔다는 게 느껴졌다.
친하지 않은 생도면 몰라도 수업 쉬는 시간마다 나를 배려해준 생도를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나도 궁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잘 가르쳐준다는 보장은 못 하겠네.”
“괜찮아요! 성수호 쌤이 어떤 스타일인지 좀 알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야 내일 대처도 해보죠. 히히….”
오호? 나를 견제하기 위해서 나한테 배우는 거라고?
대부분 저런 이야기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법이지만, 송아라는 교관으로서 나를 꽤 신뢰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송아라가 나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고민했다.
‘이왕이면 궁술로 이끌어보고 싶긴 한데….’
뭐랄까, 교사로 이곳에 와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이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을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송아라를 볼 때마다 내가 이끌어서 키워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장래를 쉽게 바꾸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제 3학년이고, 바꿔서 오히려 문제가 생길 우려도 있습니다.]
‘그래도 뭐… 연습 정도는 계속해볼수 있잖아.’
나는 활시위를 장난스럽게 튕기며 놀고 있는 송아라를 보면서 말했다.
“자세는 일단 봐주마. 다만 제대로 배울 생각이 들면 궁술을 담당하는 교관님에게 직접 교육을 받아라.”
“넵!”
나는 활시위를 당기는 송아라의 자세를 봐주면서 결국 내 연습을 하지 못했다.
..
..
“오늘 늦으시길래 혹시 안 오나 걱정했어요.”
“하하, 설마요. 성수아 교관님 바람맞히면 그건 중죄죠.”
“후후….”
성수아와 나는 어제처럼 낚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랑 다른 점이 있었다.
성수아가 대놓고 나를 다리에 앉힌 상태로 끌어안은 상태로 낚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수아는 내가 말해준 오늘 있었던 일을 들으며 대화를 이끌어갔다.
“아라가 승부욕이 강해요. 여기 다니는 교관분들도 아라와 대화는 나눠본 적 없어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아… 저 성수아 교관님.”
“네? 어머!”
내가 고개를 들어 올려서 성수아를 쳐다보니, 성수아라 내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쩜… 성수호 교관님. 어린 시절 사진 없나요?”
“하하… 다 집에 두고 왔죠.”
집이라고 말하니, 갑자기 집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집에서 제일 중요한 게 떠올랐다.
‘사놓은 게임들 아직 쌓여 있을 텐데….’
[….]
거기다 막 딸 치려는 도중에 아르모니아가 소환해서 성희랑 상상 섹스도 못 했는데.
성수아가 내 침울한 표정을 보더니 갑자기 미안해하면서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뭔가 사연이 있으신 줄도 모르고….”
“네? 아, 아닙니다.”
성수아는 정말 미안한지 본인도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예전에 딸 못 쳐서 침울해졌어요! 라고 말할 수 없었기에 다시 주제를 돌렸다.
“그… 초서현 교관님에 대해서 아시는 거 있나요?”
“초서현 교관님이요?”
성수아는 내 질문에 의도를 의심하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애초에 같이 일하는 사람에 관해서 물어보는 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닐 테니까.
“글쎄요…. 아는 게 있다고 해도 좀 오래 알고 지내서 어떤 부분을 궁금해하시는 건지 모르니….”
“생도 시절에 꽤 유명하셨다고 들어서요.”
“아…. 입학 당시에는 굉장히 유명했다고 듣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는… 따로 아는 게 없어서….”
아마 성적이 낮았다는 말까지 하기는 꺼리는 것 같았다.
거기다 성수아와 초서현은 4살 차이로 영사관을 같이 다니지도 않았다.
듣는 이야기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석 입학으로 생도 시절 한창 날렸으면 뭔가 일화가 한두 개 정도 있을 법한데, 성수아는 초서현의 생도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 초서현 교관님께서 저를 별로… 아… 아니다. 이건 잊어주세요.”
“….”
성수아는 씁쓸하게 웃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
여기에 처음 올 때도 들었던 정보였지만, 초서현과 성수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좋은 관계는 아니라고 아르모니아가 설명해줬다.
정말 사랑과 전쟁인가?
성수아는 한차례 손을 휘휘 젓더니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내게말했다.
“아! 초서현 교관님과의 친분이 중요하신 거라면 초서현 교관님의 생도 기록부를 뽑아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