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325화 (326/898)

EP.325 325화 위그드라실 (3-34)

“아저씨는… 혹시 발레복 입은 여자 좋아해요?”

“하하… 그거 싫어하는 남자 없을걸요?”

성수호의 대답이 곧 한여름의 대답이었고, 한여름의 채널의 존재들의 대변하는 대답이었다.

└발레 섹스! 섹스발레!

└해라! 지금 당장 하라고!

‘씨발 개소리들을….’

한여름은 그렇게 속으로 대답하면서도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마음속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경멸감… 그리고 거기서 오는 기대감.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분명 앞서 있었지만,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검은 씨앗이 또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감을 산산이 박살 내는 존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복장도 없이 어떻게 해?

0층에서 대부분 상점에서 편의성이 가득한 제품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장소에서도 한여름의 기억에 발레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1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0층처럼 쇼핑을 할 수 있는 장소도 거의 없고, 정말 필요한 아이템들만 파는 곳이 1층의 중앙 마을이었다.

간식 같은 것도 거의 없고, 음식 맛도 0층 호텔에 비하면 형편없다는 수준이었다.

즉, 한봄이 발레복을 지금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위층 가면 있겠네.

└ㅋㅋㅋㅋ 하긴 거긴 없는 게 없으니까.

‘위층?’

한여름은 위층이라는 단어에 순간 잡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성수호보다 더 경계하는 게 바로 층의 이동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는 올라가는 조건이 뭐야?’

제피룸에서는 조건을 초반부터 알려주었지만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방식은 아직 전혀 듣지 못한 상태였었다.

한여름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채널의 존재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2층 올라가는 법 뭐예요?”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은 없었다.

└몰?루

└열심히 하다 보면 알게 될 듯

└그건 우리가 알려줄 수 없지.

공략과 관련되어서 그런지 그들을 정보에 대한 짤막한 힌트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롱하기 시작했다.

└씨발 2층 올라가려고? 그냥 죽어.

└자살이라는 편한 방법을 놓고 왜 열심히 사니….

└아하! 한봄 발레섹스 보고 싶은 거구나! 아니, 섹스 발레를 보고 싶은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그런데 둘 다 존나 끌리네. 발레섹스도, 섹스발레도.

‘이 개새끼들이….’

그들의 힌트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채널의 존재 중에 한여름에게 호의적으로 대한 녀석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호의적이지 않을지언정 이 정도로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않았었다.

한여름을 기대하며 시끄럽게 떠들던 존재들은 어느 순간 한여름의 실패에 웃고 떠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더 큰 실패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아이디 전부 다 기억해 놓겠어… 소원? 성수호 다음은 너희들이야.’

한여름은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텐트 안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한여름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소리가 오고 가지 않았다.

그저 귀에 들리는 건 추잡한 입소리뿐이었다.

“쮸읍, 츄으읍.”

“흐흐… 아저씨, 애가 같아.”

한여름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성수호가 한봄의 가슴을 빨고 있는 상황을….

‘씨발… 씨발….’

한여름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원하는 그런 소리를 듣지 못한 것에 짜증과 함께 자기 혐오에 물들기 시작했다.

결국 한여름이 귀를 기울이는 동안 두 사람이 하는 행위는 가슴 애무와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시시껄렁한 대화.

└씨발 왜 저 새끼만 순애 찍는 건데!

└원래 순애가 있으면 NTR은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임

└뭔 개솔?

└생각해봐 한여름이 NTR 당해야지 성수호가 순애를 할 수 있는 거잖아. 원래 모든 순애의 뒷면은 NTR인 거임.

└씨발 개천재네.

└원래 NTR과 순애는 종이 앞면과 뒷면이지. 다만 종이를 가지지 못한 새끼는 보기 싫은 장면을 계속 봐야 해서 문제지 ㅋㅋㅋㅋㅋ

└거기다 한여름은 종이를 코앞에서 뚫어지게 보는 거지.

한여름은 채팅창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고, 바로 구토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왜….’

5초 전까지만 해도 한여름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자기 귀를 즐겁게 해줄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하지만 정작 들려온 건 그저 성수호와 한봄의 시시콜콜한 대화였고, 그 덕분에 기대감이 팍 죽어버린 것이었다.

‘기대해? 내가? 내… 내가? 씨발!’

그제야 이성이 제 자리를 찾아갔고, 한여름은 자신의 텐트로 향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응? 뭐야? 가려고?

└그냥 텐트로 쳐들어가서 죽어!

└죽이는 게 아니라. 죽으라고? ㅋㅋㅋ

└ㅋㅋㅋㅋㅋ텐트 쳐들어가면 그건 그거대로 진짜 개 웃길듯

마음 같아서는 진짜 텐트로 쳐들어가서 난동을 피워서라도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목표가 있었다.

‘보석… 씨발 그것만 얻고 내용만 볼 수 있으면….’

성수호가 촬영된 장면.

그가 1층에 도착한 뒤 무슨 짓을 하는지 최대한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조금 전까지 이성이 잠식되었던 한여름은 성욕을 풀 수 없다는 생각에 이성이 그사이를 비집고 나와서 잠시 그의 머릿속을 환기해줬다.

하지만 이미 고기 기름이 잔뜩 낀 싱크대처럼 찌들은 그의 성욕이 완전히 씻겨 나간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 더러운 싱크대 안에서 간신히 수세미를 잡은 수준일 뿐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몸을 엉기적거리며 다시 텐트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걸음 걷는 순간이었다.

‘잠깐… 어디지?’

성수호의 텐트로 올 때는 한봄의 신음이나 말소리를 듣고 추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되돌아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왔던 길을 기억하기에는 이성이 성욕에 사로잡혔던 터라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기억을 할 수 없었다.

소리도, 시야도, 기억도 없이 자기 텐트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대충 왔던 길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기어갔다.

하지만 분명 이미 텐트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어야 하는 한여름은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텐트의 촉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씨발… 잠깐… 어, 어디야!’

생각 같아서는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자존심과 더불어서 지금 자기 상황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 시간에 갑자기 눈을 가린 채 맨발로 기어 다니는 자기 모습을….

이런 불안한 속에서 그나마 그를 위로하는 것이 바로 안전지대였다.

‘이, 일단 안전지대는 나가면 느낌이 있어. 그 밖으로만 나가지 않으면 돼.’

그렇게 그는 기어 다니며 텐트를 찾기 시작했다.

***

(이게 뭐야….)

(맙소사….)

나는 갑작스러운 소란에 눈을 뜨고 나서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한봄뿐이었다.

그것도 웃통을 까고 있는….

‘옷을 벗고 껴안는 거 참 좋아하네….’

뭐랄까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한봄은 옷 벗고 껴안고 자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거 같았다.

나를 부드러운 바디필로우처럼 껴안으며 헤실헤실하고 있었다.

한봄도 마침 밖의 소리에 반응하며 잠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딱 봐도 텐트 밖에서 다른 여자들이 이미 기상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를 당황하는 눈으로 보는 한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일단 좀 기다렸다가 나와요. 밖에 무슨 상황인지 보고 올게요.”

“으으… 네.”

한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옷을 부랴부랴 입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텐트 밖을 나와서 무슨 상황인지 확인해봤다.

그리고 텐트에 나오자마자 왜 여자들이 웅성거렸는지 알 수 있었다.

“…쟤 왜 저기서 저런대요?”

“그게…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

한여름이 땅바닥에서 진짜 노숙자처럼 누워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

..

민하연은 두통이 나듯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하아… 일단… 나랑 여기 세 분이 동행하고, 수호 너는 봄이랑 한여름 좀 데리고 가줘.”

“그래.”

아침부터 한여름의 이상한 행동 덕분에 여자들의 심기가 더욱더 불편해졌다.

텐트에서 얌전히 있어야 할 놈이 오밤중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 나는 아무 짓 하지 않았다고 앞이 안 보이는 걸 어떡해!”

“그래… 앞이 안 보이는 건 이해하는데 도대체 왜 저분들 텐트 주변에서 그 꼴로 있었던 건데? 신발은 왜 벗고?”

한여름은 우리에게 중간에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텐트를 나와서 길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다들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무작정 거짓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냥 밖에서 추레한 몰골로 자고 있던 게 아니었다.

하필 한여름이 누워서 자고 있던 곳이 바로 삼인방 텐트 근처였던 것이었다.

“그… 그게… 신발 신으면 시, 시끄러울까 봐….”

“하아….”

“진짜야! 그렇다고 밤 중에 사람을 부를 수도 없잖아!”

민하연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이라는 게 아무리 알리바이나 증거가 있더라도 전과가 있다면 자동으로 색안경이 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지금 한여름의 위치였다.

“일단 수호가 기본적으로 여기 몬스터들 전부 쓸어버릴 정도로 강하니까 너랑 봄이 데리고 가도 될 거야.”

“너, 너는 왜 따로 가려는 건데?”

한여름은 민하연이 성수호와 떨어지는 것에 안도하는 것과 동시에 자기를 그나마 지켜주지 않을까 하는 인물이 떠난다는 사실에 걱정이 들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미친놈… 이제 마음 떠난 애가 너를 얼마나 도와주겠냐고….’

민하연은 내 속을 대변하듯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너랑 같이 가고 싶지는 않아.”

“뭐, 뭐!? 야, 민하연!”

한여름은 보이지 않는 민하연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한여름의 외침에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여름이 외치고 있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야! 민하연 어, 어디야! 대답해!”

민하연은 고개를 절레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어젯밤은 즐거웠어?”

“엥?”

“아무리 여유롭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곳에서 봄이한테 손을 뻗어?”

아침에 어수선한 덕분에 한봄이 몰래 나와서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하필 민하연의 눈에는 걸린 모양이었다.

“아냐. 아무것도 안 했어.”

“…하긴 그래 보였어.”

“엥?”

이건 또 믿네?

“애초에 조용히 뭘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분위기잖아.”

민하연은 대충 상황을 직감하고 하는 말이었다.

가뜩이나 소리가 울리는 던전 안에서 신음을 내뱉었다가는 바로 여자들의 항의를 받았을 것이다.

민하연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였다.

“나도 좋지만, 봄이 좀 챙겨줘.”

“…응.”

아마 본인 입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게 마냥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 기점으로 한가지 결심한 사실이 있었다.

‘이제 눈치 보지 말아야겠다.’

[민하연의 눈치 말입니까?]

‘응, 오히려 눈치 보니까 더 힘들게 하는 거 같아.’

계속 이런 식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민하연의 입장도 굉장히 곤란할 것이다.

한번 말하는 것도 속이 쓰릴 텐데, 두 번 세 번 계속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진짜 민하연에게 미안한 짓을 하는 것이다.

나는 민하연의 쓴 미소를 보고 나서 저 멀리 허우적거리는 한여름을 바라봤다.

“어, 어디야! 다들 어디 있어!?”

한여름… 한봄… 재미있는 파티네.

..

..

민하연이 나와 한봄을 배려해서 그룹을 나눠줬지만, 막상 우리 둘이 큰 행위를 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행위를 하려고 해도 텐트도 없이 진행할 정도로 한봄이 개방적이지는 않았다.

거기다 바로 옆에 한여름도 있으니….

마지막 남은 몬스터의 미간에 화살을 박아주면서 말했다.

“자, 다시 가죠.”

“네.”

“….”

대답은 한 사람뿐이었다.

한여름은 대답 없이 우리 뒤를 잘 따라오고 있었다.

사실 이쯤이면 답답함을 느끼며 도움을 요청할만할 텐데 한여름은 군말 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리 던전 구조가 단순하게 쭉 뻗어 있다고 해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 불안할 텐데 말이다.

‘의외인데?’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야 눈을 가리고 무슨 행동을 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지만, 앞으로 걷는 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그런 놈이 어제 그 꼬락서니로 자고 있었다니.’

나는 아침에 봤던 추레한 몰골의 한여름을 떠올리며 실실 웃어댔다.

그렇게 기분 좋게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을 먹을 타이밍이 돌아왔었다.

“일단 여기서 먹고 가죠.”

“네.”

나는 한봄의 대답을 듣고는 밥을 먹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하는 중에 갑자기 한여름이 허우적거리며 다가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야… 이거 풀어줘.”

한여름이 얼마나 얌전해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풀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풀라고 명령식으로 이야기한 것에 비해서 굉장히 점잖아졌다.

하지만 나는 정작 그런 한여름의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는 것을 떠올렸다.

“싫어.”

“뭐, 뭐! 그럼 어떡하라고! 밥을 먹어야 하잖아!”

“기다려 대충 차려줄 테니까.”

“뭐… 뭐?”

한여름은 자기가 뭘 잘못들은 것처럼 얼굴을 구기며 되물었다.

나는 그런 한여름에게 똑같이 말해주며 진짜 밥을 차려주기 시작했다.

‘좋아. 이번에는 이거다!’

[…?]

어차피 간편식으로 먹기 때문에 차리는 건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여름에게 대충 밥이 담긴 그릇을 건네준 뒤에 한봄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속삭였다.

“한봄 씨, 혹시… 어제 부탁한 것처럼 저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한봄은 무슨 소리인가 싶은 표정으로 잠시 나를 골똘히 보더니, 내 건너편에 허우적거리며 밥을 먹는 한여름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한봄이 내 말을 이해하고는 바로 내 바지를 벗긴 다음 한여름이 들리게 중얼거렸다.

“와… 진짜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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