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2화 〉 522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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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빈
[연기 LV 12], [현실주의], [성실함], [신중함], [허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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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게이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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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나를 와락 끌어안은 여자의 기질창이었다.
김예빈이라는 여자는 베이지색 스웨터와 허벅지까지 내려온 갈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첫눈에 본 감상을 말하자면….
‘…너무 닮았는데?’
시호가 직접 나타난 줄 알았다.
나를 껴안은 여자가 시호랑 빼다 박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그야 자세히 보면 살짝 다를 수 있겠지만, 어둠 속에서 그런 것을 캐치해내는 건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호랑 닮은 김예빈은….
‘지금 시호 들어 있는 거 맞지?’
[맞습니다. 빙의 중입니다.]
시호가 빙의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이 오게 된 이유를 딱 하나 짐작할 수 있었다.
‘한미소한테 걸었던 성벽이 영향을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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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소 (종속 1단계)*
성벽 : (종속의 주인이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를 그에게 바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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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성벽.
하지만 괴상하다고 해서 성벽이 발현되지 않는 건 아니다.
저항감은 있겠지만, 한미소에게 계속 빙의한다면 시호도 분명 저 성벽에 영향을 받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벌써? 너무 빠른데….’
그런데 효과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나는 최소한 일주일 후에 소소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
[여우 혼령의 혼잣말과 지금 상황을 조합해보면 그녀가 애초에 그런 성향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시호는 언제나 혼잣말을 숨 쉬듯이 내뱉는 여자였다.
그리고 혼령답게 대부분 하는 말들은 육체가 없어서 생기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나와 한미소의 관계에 관한 혼잣말이었다.
내가 종속으로 명령하긴 했지만, 한미소는 내가 없는 장소에서 나에 대해 험담을 했다.
시호는 그게 못마땅해서 언제나 내 코앞에서 그 여자 버리라고 아우성쳤고….
[아마 한미소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른 여자로 빙의하는 것을 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왕 하는 거 똑같은 외형의 여자를 골랐고?’
[저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르모니아는 추측이라고 표현했지만,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아르모니아의 말에 침묵으로 동의했다.
내가 멍하니 시호를 바라보자, 시호는 아까보다 좀 더 나은 국어책 읽기로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괘,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실수로 발이 걸려서….”
“아, 괜찮습니다. 저도 놀라서….”
그렇게 시호를 제대로 일으켜 세운 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저는 괜찮은데, 다리 괜찮으신가요?”
“….”
내 말과 함께 시호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리를 절뚝거리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잠깐 앉을 수 있는 곳까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데….”
나는 물밀듯이 밀려온 인파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지금 당장 앉을 장소가 있을지 의문이네요.
“아….”
이런 상황에서 앉을 만한 장소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시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그럼… 사람이 좀 빠질 때까지 부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로 괜찮다면 얼마든지요.”
“고맙습니다.”
내 대답에 시호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뒷사람에게 밀리듯 내게 바싹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붙는 순간….
퓨우우웅… 파아아앙!
검은색 하늘을 찢고 튀어나오듯 수많은 불꽃을 담은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와… 예쁘네요.”
“혼자 보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 이후 나는 김예빈의 몸에 빙의한 시호와 같이 폭죽 구경을 하게 되었다.
초면에 가까웠지만, 딱히 어색함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어렵지 않게 연락처까지 주고받았다.
연락처를 먼저 교환하자고 한 건 나였지만, 시호 쪽에서 변명을 둘러대면서 내 제안을 합리화했다.
도와준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싶다고…
그리고 그 보상은 다음 날 바로 이루어졌다.
시호는 주고받은 연락처로 연락하더니, 바로 점심 식사 약속을 잡았다.
“혹시 좋아하는 거 있으세요?”
“아, 뭐든 좋아해요.”
그리고 심지어 호칭도 하루만에 정해버렸다.
“에이, 이왕이면 제가 쏘는 건데 오빠가 좋아하는 거 먹어야죠.”
저 오빠라는 호칭이 엔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300살 먹은 여동생이 생겼네.’
사실 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럼 저는 한식이 좋겠네요.”
“아! 제가 마침 좋은 곳 알아요! 거기로 가요!”
나는 그렇게 김예빈의 몸에 빙의한 시호와 한식집을 들렀다.
그렇게 식사하면서 김예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예인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아직 인지도가 부족했지만, 드라마 단역급 조연으로 몇차례 출연한 경험이 있는 배우.
그게 바로 김예빈이었다.
“아… 왠지….”
“왜요? 드라마에서 저 본 기억나세요?”
“아뇨. 제가 드라마를 많이 못봐서… 그냥 예쁘길래, 연예인 아닐까 싶었는데. 적중했네요.”
“아… 아! 하하하! 너무 추켜세워주신다! 히히….”
시호는 내 말을 듣고는 한참을 실실거리며 웃었다.
김예빈에게 예쁘다고 말했지만, 정작 외모가 비슷한 자신이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서로에 관해 알아가던 우리는….
“오빠… 혹시 이렇게 밥 먹는 거 별로인가요?”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을…?”
“아까부터 조용하시길래요. 그게… 혹시 제가 시끄럽게 떠들어서 별로인가 싶어서요.”
내가 대부분 말에 반응만 할 뿐, 평소보다 말수가 적은 느낌이라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내가 널 처음 만난 것처럼 해야 하는데, 주절주절 떠들 수는 없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지만, 겉으로는 표정 관리를 하며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즐거워요. 다만….”
“…?”
“김예빈 씨는 연예인이잖아요. 저 같은 녀석이랑 이렇게 밥을 먹어도 되나 싶어서요.….”
“….”
내 말을 들은 시호는 표정을 굳히고, 천천히 나와의 자리를 좁혀왔다.
그렇게 좁혀오던 시호는 내 옆에 바싹 붙어서는 내게 귓속말을 걸었다.
“저는… 오빠가 마음에 드는데, 오빠는 어떠세요?”
“그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이상형이세요. 그런데…”
“흐히히!”
“??”
순간 놀랐다. 너무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서….
시호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나갔다.
“크음… 그, 그럼 됐네요!”
옆자리에 있던 시호는 내 말을 끊고는 내 팔을 살며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오빠도… 제 이상형이에요. 됐어요?”
“네?”
“쉿! 밥 먹는 중이잖아요. 일단 이런 거북한 이야기 말고 편한 이야기 해요!”
“하하… 네.”
나는 지는 척 연기를 하며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서 같이 식사하던 시호는 내게 눈치를 보며 묻기 시작했다.
“오빠….”
“네?”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
60 정도 나이대의 남자들이 10평짜리 방에 책상 하나를 두고, 의자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J… 요새 연락이 뜸하더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겠나?
쉿! 전에도 말했지만, 그 명칭 입에 담지 말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는 안심해도 되네.
마지막 남자의 말과 함께 방 안에 있던 남자들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있는 방은 온통 체크무늬의 벽으로 뒤덮여 있었다.
벽의 정체는 최고급 방음재.
그들의 소리가 외부로 새 나갈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도 저번에 그렇게 생각하고, 안심했다가 된통 깨졌어. 조심해야 할 거야.
거참… 우리가 이런 신세가 될 줄은….
그들의 소리가 방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여있는 남자들의 정체는 유명 언론사의 임원들.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만으로도 유력 정치인의 손과 발을 꽁꽁 묶을 수 있는 언론사 실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보력도 결국 한 사람에게는 하찮은 활자 조합일 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입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이 새끼들은 도저히 말을 들어 처먹질 않네.’
아무리 협박해도 위치가 있는 만큼 반발심도 커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결국….
‘두 명은 선거 끝나면 아웃 시키고… 나머지 두 명은 좀 더 지켜보자.’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차례 도청과 도촬, 그리고 기밀문서들을 쭉 훑어보던 강한철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뜬 장소는….
“역시 여기가 편해.”
현실이 아닌, 네트워크 속이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고, 사람들을 게임 속 말처럼 조종하는 즐거움까지.
강한철에게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고민태만 해결하면 되는데… 역시 쉽지 않네.”
강한철은 신분을 완벽하게 숨기고, 고민태의 주변을 뒤집으며 점차 압박해 나갔다.
짜증과 더불어서 피어오르는 즐거움.
강한철은 입가를 올리며 날카로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역시 쉽게는 넘어가지 않는다 이건가.”
그렇게 한창 미소를 짓던 강한철은 문뜩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면서 걱정하기 시작했다.
“시호는 어디 갔지?”
강한철은 오늘 온종일 시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가 가끔 있긴 있었다.
바로 사촌인 강한나와 만나고 있을 때였다.
가끔 그녀와 말동무해주기 위해서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언제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불안해.”
오늘따라 그의 본능이 계속 그의 심기를 쿡쿡 찌르며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강한철은 시원하게 도출해낼 수 있었다.
“최근에 행동이 너무 이상해. 분명… 다른 혼령을 만나고 나서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어.”
최근 유일하게 시호에게 일어났던 독특한 일.
시호의 봉인이 풀리고 나서 처음으로 등장한 혼령의 존재.
비록 강한철이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시호는 분명 직접 보고 자신이 모르는 능력까지 썼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혹시 그 영혼이 시호에게 영향을?”
그는 자신이 가진 정보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추론하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혼령, 구준병의 집, 초인종을 누른 알 수 없는 현상, 그리고….
“이민수….”
모든 것과 전혀 연관이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의 이름이 강한철의 입에 담긴 것이었다.
“연관이 없어? 아냐….”
위의 일이 일어나고 나서 전혀 관련 없다는 듯이 등장한 인물.
아무런 정보도 없는 인간이 하이볼 당첨과 동시에 거액의 후원.
그 이후에 그저 여자를 만나며 희희낙락거릴 뿐이었다.
마치 자기 할 일은 다 끝났다는 듯이….
“…일부러 관심을 끌려고?”
과한 억측이었지만, 그런데도 강한철은 억측을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갔다.
“마치 내가 몰래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집 안에 아무것도 들이지 않았어.”
이민수의 집에는 강한철이 몰래 염탐할 수단이 최소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최소화된 수단조차 강한철은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그렇게 진행되던 강한철의 억측이 결론에 도달했다.
“…고민태의 끄나풀?”
잠시 중얼거리던 강한철은 코웃음을 치며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만약 맞으면? 그런 녀석이 뭐가 도움이 되나?”
웃길 뿐이었다.
그저 하이볼에 당첨되고, 상대편 후보에게 후원금을 건넨 것이 전부였다.
이민수의 집을 보지 못하더라도….
“몰래 연락하는 건 내게 숨길 수 없지. 역시 쓸데없는 생각이었네.”
고민태와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했다면 강한철이 몰랐을 리가 없었다.
강한철은 고민태와 연관된 자들의 생활까지 전부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허탈하게 웃던 강한철이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 표정을 굳혔다.
“잠깐… 혼령?”
강한철은 시호가 만났다는 혼령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혼령을 보는 능력이 있는 강한철도 네트워크 안에서만큼은 혼령을 볼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고민태가 연락 수단으로 혼령을 이용했다면?
그렇게 생각하던 강한철은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냐… 고민태는 시호를 보지 못해.”
100%는 아니지만, 거의 100%에 가깝게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그 녀석이 시호를 봤다면 진작에 한나를 가만두지 않았겠지.”
그의 사촌 남매인 강한나는 현재 고민태의 연구소에서 몰래 근무하면서 강한철이 접근 불가능한 연구소 내부를 조사하는 중이다.
만약 고민태가 시호를 볼 수 있었다면 그녀와 붙어 다니는 강한나를 가만뒀을 리가 없었다.
“쯧… 별 같잖은 녀석 때문에 괜히 신경만 쓰이네.”
강한철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여러 개의 화면을 동시에 띄웠다.
화면들에는….
“….”
전날 시호에게 알려줬던 여자들이 비추고 있었다.
“후우….”
하루 동안 시호를 보지 못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분명 머릿속은 그녀들이 시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동공은 정신을 꽉 잡고 모든 것을 시선에 넣고 있었다.
그렇게 여자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순간이었다.
하아, 하아…. 오빠, 나 처음이라 떨려….
“응?”
강한철은 요염한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화면에는….
오빠… 아프지 않게… 와줘.
“크흠….”
시호의 모습과 흡사한 여자가 알몸인 채 침대에 누워서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강한철은 짜증 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동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번에 그 PD 욕하던 여자잖아?”
그리고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변명하듯 혼잣말을 시작했다.
“흥, 걸레 같은 년…. 별것도 아닌 티비에 나오고 싶어서 몸이나 파는 건가.”
강한철은 김예빈이 PD라는 녀석과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판단했다.
“전에는 연기자하고 싶다고 남자를 멀리하더니… 이 여자도 똑같네.”
강한철은 시호와 똑 닮은 여자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강한철… 정신 차려. 이 여자는 시호가 아니야.”
강한철은 그렇게 집중하며 화면을 끄려는 순간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응?”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화면에는….
나 이래 봬도 테크닉은 자신 있어.
실실 웃고 있는 이민수가 시호와 똑 닮은 김예빈의 다리 사이에 골반을 밀어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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