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간신히 한 편이 나왔습니다.
와... 언제나 책상에서 편히 쓰다가 간병 자리에서 쓰려니 엄청 힘드네요;;;
내일도 한편 쓸 수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써서 올리겠습니다.
마법 학교 슈트라 (5)
원래 목적지는 내 방이었다.
내가 만약 클라우디아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면 위르겐과 노라가 호들갑을 떨며 소란을 피웠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들른 곳은 그런 분위기와 동떨어진 고요한 방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방의 주인이 흥겹게 입을 열었다.
“설마 이렇게 버림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뭔가 슬퍼 보이는 대사치고는 목소리는 흥겨웠다.
나는 골리는 재미를 지닌 흥겨움 같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도 거기에 맞춰줬다.
“하하… 죄송합니다. 최근에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내 말을 들은 학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허, 농담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오지 않아서 섭섭한 건 사실입니다.”
“하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학장이 느긋한 성격이라는 건 내가 아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곁에 있던 과거의 사람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미친… 뭐야… 왜….)
내 옆에 경악한 눈으로 학장을 바라보는 클라우디아만 빼고….
그녀는 처음 학장을 볼 때부터 저 말을 반복하고,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클라우디아도 처음에는 내게 다급하게 물어봤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내 입장을 바로 파악한 뒤, 저 말을 반복하며 얌전히 따라왔다.
그리고 내 입장상, 학장 앞에서도 혼령과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었다.
자칫 독특하고, 능력 있는 놈에서 진짜 미친놈으로 평가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더불어서 혼령과 관련된 능력에 관해서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학장이 원하는 죽음에 도달하게 해주려면 그가 모르는 카드가 그만큼 많아야 하니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학장과 같이 방에 들어와서 물었다.
“혹시 저를 찾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죠.”
“네.”
학장이 이렇게 자리를 권유한 것을 봐서는 짧은 대화로 끝날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오래 앉은 각오를 하고 앉아서 그를 마주했다.
학장은 나와 맞춰서 맞은 편에 앉은 뒤, 은은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명화로 표현될 정도로 나와 학장 사이에는 예술적인 고요함이 감돌았다.
그야 그 명화의 주인공은 저 양반이고, 나는 그냥 건너편 들러리 수준이겠지만….
문제는 그 고요함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여자가 있다는 게 흠이었다.
(흐이이익! 왜 저래!? 저 양반 왜 저렇게 얌전해!? 혹시 머리 다쳤나?)
“….”
클라우디아의 호들갑 때문에, 내 마음이 흐트러졌지만, 내가 누구인가.
나 성수호. 연기력 하나는 나름 인정받은 녀석이다.
(흐이이익! 징그러!!! 저 인간이 저렇게 웃을 리가 없어!!)
“….”
나는 주변에서 울려 퍼지는 토네이도 같은 호들갑을 무시하며 학장을 향해 물었다.
“혹시 무슨 일로 불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허허허, 알겠습니다.”
학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 슬슬 슈트라로 돌아갈 시기 아닙니까?”
“아….”
워낙 많은 사건을 겪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몰랐다.
시기를 대충 계산해보니, 어느새 슈트라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었다.
일단 가보인 반지도 찾았겠다, 루나가 정식으로 영지와 직위를 하사받으면 바로 슈트라로 떠나야 할 것이다.
“벌써 그렇게 됐네요.”
“생각보다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더 빨리 흐른 것 같기도 하고….”
아까까지 환했던 학장의 미소에는 슬픔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서 섞이기 시작했다.
분명 즐거웠지만, 아쉬움이 많이 깃든 표정이었다.
학장을 한동안 고개를 내리고 테이블을 바라보더니, 다시 미소를 환하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 부탁한 마법진을 슬슬 알려줄까 싶습니다.”
내가 학장에게 부탁한 마법진.
바로 영사관 쪽에 존재하는 마기와 관련된 마법진이었다.
까먹은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들려온 영혼 소리 때문에 혹시 몰라서 배우길 미뤘던 마법진.
슈트라에 가기 전에 전부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장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야말로 지금까지 미뤄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학장이 알려주겠다고 해서 당황스러웠지만,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이었다.
학장은 내 대답에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꼭꼭 숨겨 놓고 천천히 알려주고 싶었지만, 2학기가 시작되면 바쁠 것 같아서 미리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학장은 빨리 털어내고 싶은 것이 아닌, 그저 나를 배려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전부 알려줬다고 저를 소홀히 하시면 저도 섭섭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제가 어떻게 학장님을 소홀히 하겠습니까.”
“허허허.”
학장의 환한 웃음에….
(으아아아악!! 이상해!!! 저 양반 이상해졌어!!! 흐아아아아앙!)
클라우디아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하아… 정신 나갈 거 같다.
나는 클라우디아의 소행성 충돌 급 비명을 들으며 학장에게 간신히 마기 트랩 마법진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비명으로 내 귀를 테러하던 클라우디아는 어느새 갑자기 조용히 나와 학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학장은 친절하게 내게 마법진을 그려서 어떤 기능을 지녔는지 일일이 설명해줬다.
다만 워낙 재능이 출중해서 그런지 교수들이 해주는 설명에 비해서 너무 간략화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다행히 배움의 목적보다 마법진 전수의 목적이 강해서 그런지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클라우디아는….
(예전이랑 똑같이 가르치는 건 영 소질이 없네. 당신은….)
그렇게 혼잣말을 흘리며 흐뭇하게 학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
..
학장은 그렇게 내게 마법진을 전부 알려주고 나서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혹시 시간이 난다면 이 성의 뒷산에 같이 오를 수 있겠습니까?”
아틀러 성 뒤편에는 산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이미 루나와 함께 아틀러 뒷산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곳에 존재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 혹시 묘지 말씀이신가요?”
“오호, 이미 아시는군요.”
“네. 루나랑 같이 들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다시 들러도 괜찮습니다.”
내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자, 학장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에도 루나 학생에게 동행을 부탁해야겠군요. 혼자서 가기에는 어려웠는데, 그렇다고 외지인 둘이 방문하면 그곳에 안치된 자들이 더 불편해하겠죠.”
학장은 은근슬쩍 내게 루나에게 부탁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사실 부탁이라고 하기에도 뭐하다.
학장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그가 내게 해준 건 마법진을 재조립해준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그에게 받은 건 무수히 많았다.
이번 루나와 카린의 사건을 전부 해결하는 데에 학장의 영향력이 80% 이상 차지했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알겠습니다. 루나에게 말해 놓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내가 그렇게 일어서서 루나에게 가려고 하자, 학장이 미소를 버리지 않은 채 고개를 절레거렸다.
“저도 지금 당장 갔으면 하지만, 방문하는 건 슈트라로 떠나기 전으로 미뤄놓는 게 좋겠군요.”
“…?”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의 표정을 짓자, 그가 이유를 설명해줬다.
“아직 듣지 못한 모양이군요. 레빈의 왕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국왕이요?”
다른 사람도 아닌 국왕이다.
그런 양반이 갑자기 왜 아틀러로 행차를 하겠다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는 데에는 큰 이유가 존재했다.
“저는 언뜻 들었지만, 이번에 큰 사건을 겪으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렇죠.”
“그 일의 마무리 차 직접 온다는군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약식으로 치러졌던 영지와 작위 수여식을 정식으로 거행하기 위해 이곳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이런 국가적 중대 사안이라면 당연히 레빈 왕궁에서 직접 치렀을 것이다.
아무리 레빈 왕가가 루나에게 큰 죄를 지은 것과 다름없다고 해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그들은 보는 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존재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왕의 직접적인 행차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눈앞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양반.
이 양반이 있으니, 왕가가 남의 눈치를 보며 위엄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레빈에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도 학장 덕분에….
그렇게 나는 한동안 학장과 대화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따 저녁에 찾아뵙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최근에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식사를 못 했는데, 저도 간만에 만찬을 즐기고 싶군요.”
“하하….”
나는 그렇게 쓴 미소를 남기며 학장의 방을 나섰다.
그렇게 나서자마자 클라우디아의 반응을 살펴봤다.
아까까지 학장의 모습에 난색을 표하며 몸을 꽈배기처럼 뒤틀던 클라우디아는….
(흐응… 많이 변했네. 세상은 뒤엎을지언정 저 인간은 안 바뀔 줄 알았는데.)
둥둥 떠 있는 채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내가 가진 반지에 이끌려 왔다.
슬슬 궁금해졌다.
클라우디아는 학장과 정확히 무슨 관계였을까?
나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위르겐과 노라를 만나기 전에 그녀에게 물었다.
“학장님이랑은 무슨 사이셨어요?”
전에 학장이 했던 말과 지금 클라우디아의 반응을 보면 대충 짐작은 갔다.
하지만 사람 관계라는 게 정확하게 딱 짚어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이면서 연인일 수도 있고, 철천지원수면서 동료일 수 있었다.
내 질문에 클라우디아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내 아버지….”
“…네?”
내가 귓구멍이 드디어 맛이 갔나 싶은 순간이었다.
“…이자, 선생님이자, 연인이자….”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며 실실 웃더니, 마지막에 한마디로 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해줬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며 모든 것이었지.”
“….”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한편으로 완벽한 설명이기도 했다.
아마 학장이 어린 시절부터 클라우디아는 보살펴준 것 같았다.
정확한 사정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클라우디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저기 한가지 여쭤봐도 돼요?”
(어. 뭔데?)
클라우디아의 얼굴과 몸짓에 경계심 따위는 이미 메마른 상태였었다.
클라우디아는 하루 동안 유원지에 놀러 온 어린아이처럼 내 앞에서 살랑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알기로 슈타트펠트 가문은 자손 대대로 은발을 이어받았다고 들었거든요.”
(은발…? 아, 내가 낳은 애가 은발이긴 했지. 그 뒤에도 지하로 찾아오는 애들 전부가 은발이기도 했고.)
“그런데 정작 본인은 적갈색 머리카락이….”
말꼬리가 흐려졌다.
처음에는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입 밖으로 내뱉고 보니, 내 질문이 실례되는 질문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조금 전까지 학장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다른 남자 이야기를 꺼냄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학장을 좋아했지만, 정략결혼을 했을 가능성도 컸을 것이다.
대륙 전쟁이 일어날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상황이었을 것이다.
개인의 행복이 아닌, 가문이나 국가의 안위를 위해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이용하는 경우도 빈번했을 것이고….
그렇게 내가 말꼬리를 흐리며 클라우디아를 봤다.
클라우디아는….
(아… 맞다. 내가 끝까지 비밀을 지켜서 아무도 모르겠구나.)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린 뒤,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방금 보고 왔던 양반. 지금은 하얀색 머리카락처럼 보이지만, 소싯적에는 진짜 화려한 은발이었어.)
“…?”
학장이 은발인 거랑 뭔 상관… 잠깐….
“어… 그, 그럼….”
내가 황당한 얼굴로 클라우디아는 보자, 그녀가 씨익 웃으며 새끼손가락 하나를 올려서 까닥거렸다.
(엉. 내가 낳았던 애가 나랑 저 양반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야.)
“….”
대륙을 뒤흔들 세기의 비밀이 동네 추문으로 변질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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