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학교 슈트라 (5)
루나는 일평생 누군가를 때려본 적이 없었다.
마법으로 공격한 것도 공격으로 판정한다고 해도 그녀가 타인을 향해 마법을 발사한 건 일생에 단 한 번뿐이었다.
자신을 덮치려고 했던 조교수.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오늘, 자신이 때린 사람의 숫자가 하나 더 올라가는 순간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짜아아악!
루나는 뺨을 맞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이스를 보며 외쳤다.
“루이스를 당장 데리고 가서 다시 연금하세요!”
“네!”
“루… 루….”
루이스는 마치 동사(凍死)로 죽은 사람의 모습으로 ‘루….’라는 글자만 내뱉을 뿐, 루나의 이름을 전부 입에 담지 못했다.
루이스는 눈동자에 생기가 지워지고,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면서 송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은 자들이 안치된 이 묘지와 딱 어울리는 외모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어떻게 해서든 산 사람으로 남겠다는 의지를 보이듯 루나의 이름을 간신히 입에 담았다.
“루… 나.”
하지만 루이스의 부름은….
“수호 씨!”
성수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달려가는 루나의 고막에 닿지 못했다.
망연자실하게 루나의 뒷모습을 보던 루이스의 옆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대로 사고를 치셨네요. 일단 성에 돌아가서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궁정 마법사였다.
하지만 루이스의 머릿속에 궁정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루… 나.”
“자, 뭣들 해. 루이스 브란트루프 경을 모셔가라.”
“네!”
그렇게 루이스는 병사들에게 이끌려 가면서….
“…루나.”
성수호의 품으로 뛰어든 루나의 모습을 바라봤다.
루이스는 환각이라고 생각하며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봤고.
문밖으로 완전히 끌려 나가는 루이스의 눈에 들어온 건….
피식.
루나를 끌어안고 자신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성수호의 모습이었다.
***
나는 루나를 품에 안은 채 절망한 표정으로 끌려가는 루이스를 보며 미소를 지어줬다.
‘완벽해!’
너무나 완벽한 마무리였다.
이런 마무리가 그저 우연히 일어났을까?
당연히 아니다.
‘또 레나가 고생해줬네.’
루이스가 내게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나는 레나를 호출했다.
내 호출에 아르모니아와 강한나는 당연히 이곳으로 레나를 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루이스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복잡하게 일을 진행하시네요?]
강한나의 목소리였다.
나는 루나를 끌어안은 채 통신으로 말했다.
‘단순하면 편하지만, 우리는 의뢰를 맡았잖아요.’
바로 레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궁정 마법사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루이스와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루나에게 알리고, 그를 잡기 위해 이곳에 같이 오는 것.
루이스가 내게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내가 짜낸 계획이었다.
[하긴… 그렇게 해결했으면 성전에서 의심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그 계획은….
‘이 정도면 급하게 짠 계획치고는 훌륭하지 않아?’
[저는 개인적으로 이쪽이 훨씬 저희 임무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르모니아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아니… 저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당신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서 걱정했을 뿐이지.]
사실 강한나가 걱정한 부분도 이해는 갔다.
[당신이라면 애초에 저 루이스라는 남자를 단숨에 죽일 수 있는 실력을 갖췄잖아요. 뭐랄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나도 모르게 불안했어요.]
하긴 보는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했겠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그거면 됐어요.]
‘그리고 이제부터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루이스는 이미 힘을 잃었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루나에게 맞은 뺨에 손이나 데워서 그 손으로 딸이나 치고 있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한 추억이 되겠네요.]
나는 강한나의 질색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동시에 묘지 쪽으로 살짝 시선을 줬다.
‘그런데 레나가 진짜 대단하긴 하네.’
묘지에는 꽃 몇 송이가 불에 타서 흙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원래 있어야 할 물건이 눈에 띄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네.’
위르겐과 노라의 유골을 담은 보자기.
보자기가 사라진 상태였었다.
당연하지만, 그 보자기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레나가 몰래 빼돌렸다.
‘나가고 나면 원래 자리에 돌려달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아르모니아에게 말한 뒤, 끌어안고 있는 루나의 귓속에 조용히 목소리를 흘렸다.
“미안해. 내가 애초에 싸우지 않았으면….”
“그만… 말하지 말아요.”
“아니, 말할래.”
나는 그렇게 말하며 루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괜히 내가 이곳에 들러서 미안해. 그렇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여기에는 왜 들렀어요?”
루나의 질문에 쉽사리 입이 열리지 않았다.
지금 당장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루나….)
(적당히… 껴안고 돌아가라….)
바로 옆에서 지켜봐 주는 위르겐과 노라의 영혼을 이 장소로 옮기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었다.
루나를 함선 소속으로 하고, 두 사람을 볼 수 있게 한다면 쉽게 이해해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릅니다. 루나 슈타트펠트는 아직 저희 소속이 되기에는 해결해야 할 부분이 산재해있습니다.]
‘끙… 알았어.’
아르모니아의 부정적인 의견을 들으며 그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루나에게 사실대로 말해주고, 그녀에게 감동을 주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결국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꿈에서 두 분께 혼났어.”
“…네?”
루나는 갑작스러운 대화 주제에 애처로운 분위기를 덮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루나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최근에… 꿈속에서 루나 부모님이 나오셨고, 좀… 아니, 많이 혼났어.”
“뭐, 뭐라고 혼났는데요?”
루나는 갑작스러운 주제에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물었다.
나는 그런 루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딸이랑 떨어지지 않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불같이 날뛰시더라.”
내 말을 들은 위르겐이 내 옆에서 진짜 불같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진 않았다! 다만,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여보… 옆에 어르신들 계시는데….)
(아….)
위르겐이 주변 혼령들의 눈치를 보자, 혼령들은 서로 몇 차례 바라본 뒤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떠나줘야겠군.)
(그래요. 죽었어도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 했는데….)
(그래, 그래! 너희들은 너무 눈치가 없어!)
(….)
클라우디아의 호통에 다들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 조용히 자리를 떠나갔다.
혼났다는 내 말을 들은 루나는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더니, 내게 묻기 시작했다.
“…두 분이 같이요?”
“아니… 아버지만 그러셨어. 어머니는 많이 이해….”
내가 말하는 중에 노라가 살며시 미소를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넘어가 주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나는 노라의 말에 서늘함을 느끼며 말을 정정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이해 해주셨어.”
“…수호 씨.”
“응?”
루나는 나를 꼭 끌어안고 내 가슴에 파묻히며 중얼거렸다.
“그럼… 최근에 저랑 만나지 않은 게 꿈 때문인 건가요?”
“아… 살짝 죄책감이 느껴지더라고. 그리고 루나도 바빠 보였고….”
나는 루나를 끌어안은 채 계속 속삭임을 흘려 넣었다.
“그래서 오늘 사과드릴 겸 한번 들른 거였어. 그런데… 미안해.”
“그만.”
“흐읍?”
키스한 게 아니다.
루나가 엄지와 검지로 내 입술을 꽉 닫은 것이다.
“만약에 한 번만 더 미안하다고 하면 저… 정말 화낼 거예요.”
“…알았어.”
사실 루나가 저런 식으로 경고하지 않았다면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야지. 내 이미지가 올라가니까….
루나는 얌전히 내려다보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미소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루나의 시선은 어느새 내 팔로 향해 있었다.
“수호 씨. 일단 가서 치료해요. 이대로 뒀다가는 흉터 생겨요.”
“아, 별거 아냐. 보기에는 좀 탄 것처럼 보이지만, 정복 덕분에 방호가 되어서….”
“그냥 빨리 가서 치료해요!”
루나는 그렇게 내 팔을 끌고 아틀러 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묘지를 나가며 두 사람을 향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위르겐과 노라도 내 사정을 이해해줬는지 미소를 지으며 시선으로 나를 배웅해줬다.
다만 두 사람과 다르게….
(끄아아악! 끌려간다! 애들이랑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클라우디아는 머리채가 잡히듯 내 쪽으로 끌려 오며 아틀러 성에 도착할 때까지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
..
나는 아틀러에 돌아오고 나서 루이스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간 루이스가 연금이 풀린 것처럼 행동한 건 그저 병사를 위협해서 얻어낸 자유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더 큰 비밀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게 사정을 설명해준 궁정 마법사에게 되물었다.
“일부러 나갈 수 있게 빈틈을 준 거라고요?”
“네.”
사실 완벽하게 연금을 시키려고 하면 진작에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무리 루이스라고 해도 왕궁 기사가 경계를 서면 쉽게 위협하지 못할 테니까….
“알렉산더 왕자님께서 제게 몰래 명령을 하달했었습니다.”
“아하….”
당연히 저 명령은 루이스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루이스가 이런 식으로 자유를 얻고 몰래 나가다 보면 더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내린 왕자의 뒤에는….
[카린 브란트루프가 조심스럽게 진행한 계획입니다.]
카린이 아직 궁정 마법사에게 이런 명령을 직접 내릴 위치는 아니었다.
아마 왕자에게 입김을 넣어서 루이스를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들 계획을 세운 거겠지.
‘계획을 세운 거라면 좀 미안하네.’
괜히 루이스가 나를 건드리는 바람에 카린은 알 수 없는 계획이 수포가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아르모니아의 말 덕분에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카린은 그저 루이스를 곤란하게 만들 약점 하나 더 만드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사건으로 루이스 브란트루프에게 족쇄가 걸린 것 또한 사실입니다.]
생각해보면 루이스가 병사를 위협해서 빠져나간다고 딱히 사건, 사고를 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답답하니까 돌아다닌 것이라고 하면 주변에서도 이해할 것이다.
귀족이니까!
심지어 진짜 조용히 산책만 한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그의 의심을 풀어줄 가능성도 컸다.
그것도 그냥 귀족이 아닌, 공작가의 자제니까!
아마 카린은 조용히 나온 루이스가 사고를 칠 수 있는 무언가 계략을 마련해 놨을 것이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카린이라면 왠지 재미는 계획을 세웠을 것 같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궁정 마법사와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날이 지나고 나서….
“국왕 폐하 납시오!!!”
드디어 레빈의 국왕이 아틀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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