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09 - 809.마법 학교 슈트라 (6)
나는 학장의 집을 나오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허, 오히려 적적하게 혼자 지내는 저를 찾아와줘서 고맙습니다. 올 때는 연락 없이 그냥 오셔도 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학장과 인사를 마치고 나는 기숙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첫날이라 시험 삼아 눈가리개를 착용해 본 것이 전부라 그런지 아직 해가 저물어 가는 중이었다.
나는 반듯한 원형을 유지하고 점점 붉어지는 태양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기숙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마냥 가볍지 않았다.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학장이 부담스럽기 때문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네.’
학장이 알려준 투명 마법진 인식 능력을 익히는 것이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눈가리개를 쓰면 투명 마법진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눈가리개를 벗었을 때도 그 감각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내 고민을 들은 아르모니아와 강한나가 서로 생각한 조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눈가리개를 에넬로 만들어 보는 게 어때요?]
[아니면 그 투명 마법진 인식 능력도 하나의 능력이니, 다른 교수들의 능력을 확인해서 에넬로 배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 그쪽이 훨씬 낫겠네요.]
확실히 에넬만 있다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에넬을 사용한다는 건 결국 에넬을 소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상되는 소모 비용은….
[눈가리개를 만드는 건 20만 에넬, 능력을 배우는 건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소 20만 에넬.
지금 우리에게는 194만 에넬이 있고, 20만 에넬을 쓰는 건 크게 무리가 가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굳이 에넬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한동안은 여기서 머물러야 하잖아. 그때까지 열심히 배워보지 뭐….’
슈트라에 돌아온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미친 듯이 노력해도 배우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에넬을 사용해도 늦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향후 계획을 세우며 남자 기숙사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응?”
태양이 산꼭대기에 얹힌 모습과 동시에 한 여자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클라우디아의 깐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올~ 첫째 부인께서 친히 마중을 나오셨네?)
“….”
아까처럼 깐족댔지만,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나는 클라우디아의 말을 무시한 채 루나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여기는 무슨 일이야?”
내 물음에 루나는 살짝 삐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 놓고 혼자 어디를 가시더니… 혹시 제가 방해된 건가요?”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는 실실 웃으며 바로 루나를 껴안았다.
그러자 루나는 오히려 얼굴에 홍조를 띠며 당황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지, 지금 사람들이 보잖아요.”
루나의 말대로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이라 그런지 남자 기숙사 주변에는 남자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루나를 껴안자 다들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크게 뜨며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와아… 소문이 사실이었네?)
(하아, 거짓말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아무리 말 걸어도 잘 상대해주지 않는 이유가 있었네.)
나는 그런 남학생들을 슬쩍 훑어본 뒤에 루나를 껴안은 채 흥얼거렸다.
“보면 어때서?”
“아으….”
루나는 창피해하면서도 쉽사리 내 품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남학생들 사이에서 한껏 자랑을 펼친 뒤에 루나를 품에서 떨어뜨리고 말했다.
“이렇게 만난 거 산책이나 할래?”
“후우… 좋아요.”
그렇게 나는 루나와 같이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학교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루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오늘 아침부터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걸어서 힘들었어요.”
“아… 엄청나게 몰려오긴 했지.”
루나는 슈트라에 돌아오자마자 슈트라에 퍼진 소문 덕분에 화제의 인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주로 퍼진 소문은 슈타트펠트 가문의 복권과 루나의 백작 승계에 관한 것이었다.
원래 남학생에게 인기 있던 루나는 더 많은 남학생에게 데쉬를 받은 것이었다.
나는 뚱한 표정으로 루나를 보며 물었다.
“…남자들이 말 걸면 그냥 무시해. 알았지?”
“하아… 그렇게 무시하게 만들고 싶으면 옆에 있어 주지 그러셨어요?”
“하하하….”
나는 차마 루나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루나가 투덜거리듯이 대답했어도 분명 잘 대처했을 것이다.
“사실 곤란한 건 여성분들이에요.”
“여성…?”
그리고 의외로 많은 여학생이 루나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여학생들이라면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인 루나에게 질투심을 느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루나에게 말을 건 이유는 질투가 아니었다.
“같이 식사하자고 얼마나 보채던지….”
“의외네? 괜히 시비 걸면서 귀찮게 할 줄 알았는데.”
“왜 시비를 걸어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원래 질투라는 게 원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잖아. 그 여자들이 너한테 질투하는 줄 알았지.”
여자들이 루나에게 질투심을 못 느끼는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로서 질투심을 느끼기에 루나의 위상이 너무 올라가 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슈트라 내부에는 계급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수와 학생 사이의 문제일 뿐이었다.
학생들도 서로 대놓고 밝히지 않을 뿐이지, 암묵적으로 귀족과 평민끼리 무리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노려서 루나를 자신들의 무리에 편입시키려는 계획일 것이다.
영지를 가진 백작.
거기다 백작의 자제나 후계자 같은 게 아니다.
루나는 진짜 영지를 가진 백작 당사자였다.
심지어 1학년생.
자신들의 무리에 편입시켜서 3년 동안 친분을 두텁게 쌓아 놓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두통을 느끼는 듯한 루나에게 한마디 조언을 건넸다.
“다가오는 학생들보다는 전에 같이 친했던 학생들이랑 계속 친분을 유지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지금 달려드는 학생들은 전부 자기 이득을 위해서 루나에게 달려드는 녀석들이었다.
그에 비해서 전부터 그녀와 친했던 학생들은 그녀의 신분보다는 순수하게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 학생들이었다.
심지어 반역 가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을 때도 친하게 대해주던 학생들이다.
내가 봤을 때는 루나는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루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할게요.”
아마 루나라면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알아서 그 친구들을 더 챙겨줬을 것이다.
더 이상 그 주제로 이야기하는 건 의미 없다고 판단한 루나는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전환했다.
“카린 님께서 마법에 재능이 있으실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카린에 관한 이야기였다.
“응. 원래는 재능이 없었는데, 저번에 도적 토벌 때 우연히 재능에 눈을 떴나 봐.”
“…그게 정말 우연일까요?”
루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루나는 허공에 마법진 구사하는 능력과 필기 실력을 확인한 뒤부터 내 실력을 높이 평가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학장의 마법 실력과 동등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평생 마법에 재능이 1도 없던 카린이 갑자기 마법에 눈을 뜨니, 나와 연관이 있으리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심지어 나와 같이 있을 때 마법 재능에 눈을 떴으니, 더욱더 심증이 굳혀졌을 것이다.
사실 그게 맞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루나에게 무작정 말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많잖아. 도적을 토벌하던 학장님의 마법을 보고 뭔가 깨달았을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루나는 심증을 굳혔는지, 내가 하는 말을 믿는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루나의 표정을 보며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루이스는 왜 그렇게 된 걸까?”
“아….”
루나는 루이스의 이름을 듣자, 아까 이야기를 싹 잊었다는 듯이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어요. 제가 물어봐도 도통 대답을 해주지 않아요. 아마 아틀러에서 큰 병을 얻은 게 아닌지 걱정이에요.”
루나는 루이스와 안 좋은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아직 소꿉친구로서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슈타트펠트 가문 묘소에서 나를 공격하고, 심지어 나와 루나의 잠자리 도중에 방해까지 했다.
루나는 그런 잘못을 한 루이스를 질책할망정 아직 소꿉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루이스, 네가 루나를 그렇게 끈질기게 사랑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야 나도 루이스 못지않게 루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가 평생을 걸쳐서 루나를 사랑한 이유를 이제서야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
그런 성격을 지닌 여자가 옆에 있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듣기로는 그렇게 큰 병은 아니라고 하더라. 금방 나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고마워요.”
그렇게 루나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산책을 계속 즐겼다.
다만 산책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루나가 워낙 인기가 많아진 탓에 그녀에게 말을 거는 학생들도 엄청 많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2~3학년 학생들도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와서 루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루나는 그때마다 정중하게 대화를 거절했다.
다만 표정에는 싸늘함이 감도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루나는 말을 걸었던 학생 한 무리를 돌려보내고 나서 내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루나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것을 선호하는 스타일이었다.
무도회나 연회에 참석할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가기 때문에 크게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습적으로 대화를 걸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는 루나를 보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해가 지고 주변에 마나석으로 된 가로수가 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학생들 숫자는 아까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아직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랄까, 봄 학기 때보다 학생 수가 많은 거 같네?”
“아마 날씨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리고….”
루나는 나와 같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무리를 지어 다니던 학생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부분 나와 루나처럼 남녀로 이루어진 커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름 학기 동안 학교에 남아 있던 학생들끼리 친해져서 그런 거 같아요.”
여름 학기 동안 외부로 나간 학생보다 내부에 남은 학생이 훨씬 많았다.
장거리 여비가 워낙 비싸고, 그 때문에 여비를 마련할 수 없는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남아서 생긴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학생들끼리 눈이 맞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나는 주변에 들리지 않게 루나에게 소곤소곤 말했다.
“아쉽네. 봄 학기 때는 숨어서 몰래 할 수 있었는데.”
“그, 그런 이야기는 밖에서 하지 마세요.”
루나는 얼굴을 붉히며 혹시라도 내 말을 들은 사람이 싶어서 주변을 황급히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루나의 어깨에 슬며시 팔을 걸쳤다.
“이런 분위기라면 굳이 떨어져서 걸을 필요는 없겠는데?”
“….”
나는 당연히 루나가 당황하며 한 소리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루나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히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품에 더 깊게 파고들어 왔다.
나는 그렇게 루나와 같이 꼭 붙어서 산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찰싹 붙어서 산책을 하다 보니 서로 좋은 것과 별개로 아쉬움도 증폭되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몰래 숨어서 키스도 하고, 스킨쉽도 했겠지만, 지금처럼 학생 커플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품에 달라붙어서 산책하는 루나의 귓속에 조용히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동아리방 열쇠 있는데. 거기서 조용히 이야기 나눌래?”
내 질문에 루나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그렇게 루나와 같이 동아리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