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19 - 819.마법 학교 슈트라 (6)
“미,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어! 아, 아까 네 옆에 있던 머저리 같은 녀석이 너한테 이상한 짓을 했을까 봐 걱정한 거였어.”
“선배!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하넬로네가 에드가의 말에 발끈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험담을 한 에드가의 모습에 화를 내는 건가 싶었지만….
“제가 그런 애랑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미간을 꽉 쪼이며 중얼거렸다.
(와, 내가 이런 취급을 받네.)
내 뒷담화에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것도 금세 풀어졌다.
만약 내가 하넬로네와 에드가에게 함부로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약자의 위치에 있었다면 이마를 시뻘겋게 달구며 분노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아니, 지금 당장 복수 계획을 하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졸업하기 전에 제대로 교육 시켜줘야겠네.)
아무리 에드가가 부회장이고, 하넬로네가 우등생이라고 하더라도 두 사람은 학생 신분에 불과했다.
교수인 소냐의 인맥, 거기다 더 나아가서 학장의 인맥까지 있는 나다.
두 사람의 졸업까지 남은 시간은 가을학기인 3개월….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왜 그런 머저리랑…. 아까 그 머저리 때문에 당황해서 내가 말실수했어. 미안해.”
“…좋아요. 이번에는 넘어갈게요.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알았어.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을게.”
하넬로네를 내 오나홀로 만들고, 에드가를 머저리로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 실컷 업보 쌓아라. 나중에 10배로 청산해줄 테니까.)
나는 미래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히려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그 이후에도 손만 잡을 뿐, 별다른 스킨쉽을 하진 않았다.
(생각보다 시시하네. 이제 돌아갈까나….)
그렇게 다시 원래 육체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선배야말로 밀레나를 정리 못한 거 아닌가요?”
밀레나는 현재 서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밀레나 이름을 들은 에드가가 또 당황하며 횡설수설 변명했다.
“정리를 못 한다니! 나, 나는 애초에 걔랑 아무런 관계도 아니야!”
“네? 저는 예전에 두 사람이 매일 붙어있어서 당연히 사귀는 건 줄 알았는데….”
“학생회에 어울리지 못해서 내가 좀 신경 써준 것뿐이야. 그런 애랑 내가 무슨….”
하넬로네는 에드가의 변명을 듣고는 그가 보이지 않게 마녀가 지을 법한 미소를 지었다.
저 미소를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의도하고 뺏은 거네.)
일단 에드가와 밀레나의 관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넬로네가 중간에 끼어든 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희대의 쌍년이군.)
나도 하넬로네와 마찬가지로 연인들 사시에 끼어서 빼앗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나와 하넬로네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나는 과정과 결과, 모두를 중시하며 내게 마음을 준 여자에게 그만큼의 애정을 쏟아부어 준다.
반면에 하넬로네는 과정과 결과를 대충 즐긴 다음 단물 빠진 껌처럼 뱉어버리는 성격이었다.
지금 에드가가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그리고 하넬로네는 이미 루이스에게 갈아탈 준비 중이었다.
내가 그렇게 확신하는 사이에 하넬로네가 미소를 지운 뒤에 투덜거리듯 입을 열었다.
“흐음… 밀레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무슨 소리야?”
“요새 저를 노려보는 것도 그렇고… 가끔 저한테 시비 거는 것도 그렇고… 제가 선배를 빼앗은 못된 여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던데요?”
“뭐!?”
에드가가 하넬로네의 말을 듣고 인상을 확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좀 잘해줬더니,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 같아. 내가 내일 확실하게 말해놓을게.”
“후후! 역시 선배는 믿음직스럽네요.”
“크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너를 위해서는 다 해줄 수 있어. 말만 해!”
“후후후, 네!”
두 사람은 그 뒤에 실용성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꽁냥거렸다.
(밀레나만 불쌍하게 됐네.)
밀레나와 대화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어서 어떤 성격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선량한 피해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볼 일은 다 끝났네. 시간 나면 밀레나 쪽도 알아봐야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원래 육체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
..
아침 일찍 강의실로 향하는 길은 마치 불심을 깨닫기 위한 고행의 길과 같았다.
길바닥에 쓰러져서 자고 싶을 정도로 졸리지만, 강의실로 내 몸을 이끄는 것이 마치 고행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고행의 끝에 루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고행을 받아들이고 등굣길을 열심히 걸었다.
하지만 눈앞에 존재를 보며 오늘 고행은 평소보다 훨씬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학생회에 있는 성수호 맞지?”
어제 면담에서 봤던 학생이었다.
참고로 어제 면담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전부 3학년생이었다.
내게 반말을 하는 건 딱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애초에 하넬로네에게 존대를 하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나는 후배로서 예의를 차리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혹시 기억하려나? 어제 면담하면서 봤을 텐데….”
“네, 기억납니다. 물의 공명 동아리 부장님이시죠?”
“기억해줘서 고마워.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네.”
나는 졸음이 담긴 하품을 억지로 참으로 날 학생을 따라 외진 곳으로 들어갔다.
외진 곳이라고 해도 오전이라 그런지 딱히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도착하자마자 본론을 이야기했다.
“오래 붙잡지 않을게. 학생회에 들어가서 회계 보조를 맡고 있다며?”
“네.”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학생은 내 대답에 만족해하며 이야기를 진행했다.
“혹시 괜찮다면 우리 동아리 예산을 좀 더 끌어올 수 있도록 네가 도와줄 수 없을까?”
“…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내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예산을 집행하는 건 회계의 일이지만, 너는 보조잖아. 네 입김도 존재하겠지.”
“하지만 저는 그저 보조 같은 역할이라….”
“무리하게 도와달라는 건 아니야. 그저 예산을 좀 더 받을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거야. 만약 도와주면….”
물의 공명 동아리 부장을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너한테도 일부 떼어줄게.”
“….”
물의 공명 동아리 부장은 어제 하넬로네에게 협박당한 부장 중의 한 명이었다.
하넬로네에게 협박을 당하기 전에도 청렴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하넬로네의 손에 휘둘렸으니, 아예 막 나가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심지어 슈트라에도 크게 문젯거리가 되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슈트라 동아리가 아무리 예산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슈트라 학교 입장에서는 애들 용돈 수준일 것이다.
나는 무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선배와 만난 사실도 기억 속에서 지우겠습니다. 그럼 이만….”
“자, 잠깐…!”
나는 물의 공명 동아리 부장의 간절한 부름을 무시하고 다시 강의실로 향했다.
하지만 강의실로 향하는 길은 고행 그 자체였다.
“네가 혹시 성수호….”
“어제 봤던….”
“좋은 제안을….”
다른 동아리 부장들도 나를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내가 거절한 이유는 단순했다.
‘고작 돈 몇 푼 받고 족쇄를 차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다고.’
학생들 입장에서 슈트라의 돈은 최고의 재화이지만, 내 입장에서 슈트라의 돈은 그냥 이쪽 세계에서만 쓸 수 있는 화폐일 뿐이었다.
거기다 나는 레빈 왕가와 브란트루프 가문을 내 손에 넣었다.
돈을 끌어오는 건 코를 푸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오는 부장들을 뿌리치며 간신히 강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방과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회실로 향하는 길에도 부장들이 계속 나타나서 내게 부정한 제안을 건넸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단칼에 거절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 길을 갔다.
학생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력이 쭉 빨려 있었다.
나는 탈진한 듯이 한숨을 쉬며 회계 자리에 앉아서 능글맞게 서류를 보는 하넬로네를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오… 이게 다 저년 때문이지?’
내 원래 목적은 학생회에 들어와서 아리엘을 꼬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입인 내가 학생회장 직책을 가진 아리엘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일단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게 중요했다.
문제는, 수행 과정에서 하넬로네의 계략 때문에 나까지 휘말려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싱글벙글 웃는 하넬로네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배.”
“아! 왔구나. 어서 와~”
하넬로네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환영해줬다.
나는 웃으며 환영해주는 하넬로네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캬… 어제 내 뒷담화를 그렇게 해 놓고 뻔뻔하게 웃는 거 봐라.’
마법 실력은 나보다 한참 낮지만, 연기력만큼은 나보다 재능있어 보였다.
나는 그렇게 나를 향해 거짓 미소를 지어주는 하넬로네를 보며 에드가의 모습을 슬쩍 확인했다.
“….”
에드가의 눈동자에는 적의를 넘어선 살의가 잔뜩 담겨 있었다.
‘거참… 나는 그냥 열심히 회계 보조를 했을 뿐인데, 계속 적이 생기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학생회장 아리엘은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열심히 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밀레나와 루이스는….
“선배. 이건 어떻게 할까요…?”
“…거기 놔.”
짧은 대화만 주고받으며 서기 업무를 보고 있었다.
밀레나는 루이스의 미소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우울한 표정으로 서기 일을 할 뿐이었다.
처음 봤을 때도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오늘은 훨씬 더 우울해 보였다.
‘아마 에드가가 한소리를 해서 그런 거겠지.’
사실 이 모든 상황의 원흉은 다름 아닌….
“자, 그럼 시작하자.”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하넬로네 때문이었다.
루이스에게 마음이 있는 하넬로네는 에드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나와 밀레나를 이용했다.
내게는 질투심을 유발하게 만들고, 밀레나를 들먹이며 그녀를 떨쳐내게 만들었다.
하넬로네에게 제대로 휘둘려진 에드가는 루이스를 볼 겨를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넬로네는 루이스를 꼬시면서 예산도 몰래 빼먹을 계획을 동시에 실행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계획.
하지만 그 계획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운이 나쁘네. 내가 학생회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분명 계획대로 흘러갔을 텐데.’
하필 재수 없게 내가 신입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었다.
“선배,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이제부터 내가 부탁하는 서류들을 가지고 와줘.”
“네.”
“일단 저 책장에 꽂혀 있는 동아리 예산표를….”
그렇게 나와 하넬로네는 예산 집행을 위한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
하넬로네의 보조를 맡으며 예산 집행을 검토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넬로네가 기지개를 켜면서 외쳤다.
“끝났다!!!”
학교의 동아리 수준의 예산이라고 해도 예산은 예산이었다.
돈과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환호하는 하넬로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너도 수고 많았어! 네가 옆에서 보조해준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었어.”
“하하… 제가 한 거라고는 그냥 서류를 가지고 온 것뿐인데요?”
내가 말한 것처럼 내가 한 일은 하넬로네가 부탁한 서류를 가지고 오고, 다시 돌려놓고 하는 것뿐이었다.
예산 검토와 관련된 일은 하넬로네가 혼자서 모조리 처리한 것이었다.
“에이, 그것도 잘한 거야. 간단한 심부름이긴 하지만, 이런 것도 못 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하하하… 감사합니다.”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을 들으며 쓰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학생회실을 내부를 확인했다.
학생회실에는 나와 하넬로네, 그리고 밀레나와 에드가가 남아 있었다.
학생회장인 아리엘은 건물 순찰을 돌겠다며 나갔다.
그리고 원래라면 루이스는 있어야 했지만….
‘카린이 일 처리는 확실하네.’
카린에게 명령해서 오늘 학생회실에 못 오게 만들었다.
따로 세세한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카린이라면 알아서 루이스를 잘 붙잡을 것이다.
하넬로네는 팔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자, 우리는 이만 돌아갈까?”
“아, 부회장과 밀레나 선배는….”
내가 두 사람을 보며 운을 띄우자, 에드가가 바로 하넬로네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같이 돌아가자.”
“…네, 그래요!”
순간이지만 보였다.
하넬로네의 귀찮음이 잔뜩 담긴 표정이….
내가 회계 보조를 맡고 나서 에드가는 매번 하넬로네를 끝까지 기다렸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하넬로네와 단둘이 있는 것을 막으려는 것 같았다.
하넬로네는 나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후배야, 그동안 수고했어! 내일 같이 밥이라도 먹자! 아니지… 외박해서 맛있는 거 사줄게!”
“하하… 기대하겠습니다.”
하넬로네는 나를 이용해서 에드가의 질투심을 또다시 끌어올리며 학생회실을 나갔다.
“…쯧.”
그리고 에드가는 거기에 또 걸려들어서 나를 한껏 노려본 뒤 하넬로네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학생회실에는….
“….”
“….”
나와 밀레나만 남게 되었다.
밀레나는 방금 전에 남아 있던 에드가와 하넬로네의 잔상을 보듯이 두 사람의 떠나간 장소를 응시했다.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품으며….
나는 그런 밀레나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선배는 아직 일이 더 남으셨나요?”
“…안 끝났어. 학생회실 문은 내가 잠글 테니까. 돌아가.”
밀레나는 냉정하게 대답하며 다시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밀레나를 응시했다.
밀레나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슬며시 들어서 불쾌감을 표출했다.
“…뭐야? 할 말 있어?”
나는 그런 밀레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어요.”
“???”
지금까지 인사조차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는 내가 직설적으로 말하자, 당황한 듯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밀레나를….
“선배… 혹시 하넬로네 선배한테 복수하고, 에드가 선배를 되찾고 싶지 않으세요?”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