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 5화 - 균열(2)
5화 - 균열(2)
시우가 숲을 헤치고 나가려다 멈칫했다.
문득 드는 생각에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벤토리]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칙 칙-! 화륵-
라이터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균열에서 난 소재로 만든 고급 라이터가 아니라 몇백 원짜리 싸구려 라이터인데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대박이군.’
균열전용으로 파는 이런 소모품들이 은근히 비싸다. 간단한 라이터만 해도 몇십만원이 넘을 정도.
대부분 부싯돌이나 파이어스틸로 불을 피운다. 하지만 자신에겐 [인벤토리]가 있으니 균열의 난이도가 한차원 낮아졌다.
‘다음부턴 드론이라도 몇 개 가져와야겠다.’
균열 소재로 만든 드론은 억소리 나게 비싸지만 일반 드론은 못살 정도는 아니다.
“후우..”
억지로 심호흡하며 기분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들뜬 상태로 균열을 돌아다니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혼자서 균열에 들어온 것은 처음인데도 묘하게 익숙했다.
‘아.. 박진수의 기억!’
바닥에 있는 흔적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시우가 주저앉아 발자국을 살폈다.
‘이건··· 고블린인가..?’
성인 남성의 허리춤에 오는 매부리코의 녹색 괴인.
정식 명칭은 따로 있었지만 사람들이 하나 같이 고블린이라 부르니 정식 명칭마저 고블린으로 변경됐다.
그러한 고블린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죽기 직전까지 몬스터를 쫓아다니며 사냥했던 박진수의 기억 덕분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겠네.’
몬스터를 찾아 하루 종일 숲을 뒤질 줄 알았는데 운이 좋았다.
놈들의 흔적을 곧바로 추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짐승시체를 파먹고 있는 고블린 세 마리가 보였다.
아무런 경계없이 시체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고블린들.
난폭하고 사납지만 멍청한 F급 몬스터 다웠다.
가슴팍에 메인 권총을 꺼내 들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 비싼 총을 쓸 이유가 없잖아.’
균열소재로 만들어진 더럽게 비싼 권총과 총알이었다.
총알 한 발에 만원 꼴이니 말 다 했다.
비상용으로 구매한 것인데 조금 아까워졌다.
다음에는 보통 소총을 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고블린을 노려봤다.
시우는 고블린의 머리를 조준했다. 그리고 숨을 참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바람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고블린 한 놈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살생, 카르마 1 획득]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에 시야가 가려져서 인상을 찡그렸다.
앞으로 이런 메시지는 원할 때만 보도록 바꿨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메시지가 사라졌다.
스릉
조용히 검을 빼 들었다.
“끼에엑?!”
“끼이잇!”
남은 두 마리의 고블린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했다.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온 것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애초에 총알이 뭔지도 모를 몬스터들이지만.
한 놈이 뒤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놈에게 달려들어 목을 쳤다.
촤악-
약간의 저항과 함께 고블린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끼에에엑!!”
남은 한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두 마리가 죽었는데도 달려드는 것이 이놈의 지능을 보여줬다.
‘실험 좀 해 보자.’
낡아빠진 단검을 집어 들고 달려드는 놈을 검으로 견제했다.
제 목에 검이 드리워진 것도 모르고 무작정 달려드는 놈에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각성하며 강해진 정도를 체감하고 싶었는데 이래선 의미가 없었다.
놈의 단검을 후려쳐 날려 버리고 검을 집어넣었다.
“끼에에엑!”
맨손이 된 놈이 달려드는 것을 조용히 관찰했다.
놈의 동작이 훤히 보이고 어떻게 공격하면 될지 빈틈이 쉽게 보였다.
‘생각보다 쉬운데?’
각성하며 강해진 육체와 박진수의 경험을 상대하기엔 고블린이 너무 허접했다.
놈의 손톱을 몇 번 피하다가 시시해서 발로 차버렸다.
“끼이익!”
바닥에서 바둥거리는 놈을 밟고 심장을 검으로 찔렀다.
“끼이이..”
시끄럽던 고블린이 조용해졌다.
각성 전에도 고블린 정도는 죽일 수 있었지만 이렇게 쉽지는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처럼 너무 쉬웠다.
‘이 정도라면 E급 헌터쯤 되나?’
총을 써서 기습했지만 이 정도라면 총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F급 균열을 검 한 자루로 클리어할 수 있다면 E급헌터라 할 수 있었다.
세 마리의 고블린의 가슴을 갈랐다. 하지만 마정석은 보이지 않았다.
‘꽝이네.’
F급 몬스터는 3~4마리 중 한 마리 꼴로 마정석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것이 헌터의 주 수입원이었다.
고블린의 손톱따위도 돈이 되긴 하지만 일일이 도축하긴 귀찮아서 내버려 뒀다.
짐꾼일 때 하던 일이 저런 시체를 도축하고 갈무리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도축은 3년의 짐꾼생활동안 지긋지긋 하게 했다.
궁핍하던 시절이 떠올라 손이 근질거렸다. 바닥에 떨어진 돈을 버리는 기분이었다.
‘성격을 좀 바꿔야겠어.’
고블린의 손톱이 눈에 밟혔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고블린 놈들이 흘린 단검을 대충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런 질 낮은 잡철도 균열소재라서 나름 값이 나간다.
마음 같아선 마정석만 깔끔하게 챙기고 싶었지만 잡철까지 무시하긴 힘들었다.
‘음··· 이건 그냥 가져다 팔기만 하면 되니까. 땅에 떨어진 돈을 버리긴 좀 그렇지.’
*
고블린의 흔적을 추적하며 만나는 고블린들을 도살했다.
몬스터가 남긴 흔적들이 너무나 쉽게 보였다.
흔적을 따라가면 여지없이 고블린이 나타났다.
세 네마리의 고블린도 검 한 자루로 모조리 죽일 수 있었다.
한시간 동안 고블린을 추적하며 죽였다.
그러다가 유독 덩치 큰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발견했다. 한 마리가 특출나게 머리 하나만큼 더 컸다.
‘저놈이 보스군.’
붉은 눈으로 시우를 노려보던 고블린 두목이 도끼를 집어 들었다.
제 부하들이 모조리 죽은 것을 깨달았는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시우는 [인벤토리]에서 권총을 뽑아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홀스터에 집어넣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했다. 기습에도 좋았고.
탕! 탕! 탕!
나름 보스라고 머리를 노렸는데 피해냈다. 놈의 볼에 총알이 스친 상처가 생겨났다.
두 마리의 덩치 큰 고블린은 피하지 못했다. 미간에 구멍이 뚫리며 즉사했다.
남은 세마리의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시우는 인벤토리에 총을 집어넣고 검을 뽑아 들었다.
놈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니 절로 긴장감이 올라왔다. 확실히 보통 고블린에 비해 기세가 대단했다.
집중 속에서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놈들의 노린내가 확 풍기고, 근육의 꿈틀거림이 선명히 보였다.
“끼에에엑!”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시간차가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고블린이 단검을 내질러왔다.
빤히 보이는 손목에 검을 휘둘러 손목을 날려 버렸다.
잘린 제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러대는 고블린을 무시하고 한 걸음 크게 물러났다.
“끼이익!!”
어느새 다가온 도끼와 단검.
도끼는 막고 단검은 피했다.
단검을 내지르고 균형이 무너진 고블린의 빈틈이 보였다.
시우가 도끼를 크게 밀어내고 비틀거리는 고블린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머리가 사라진 시체를 발로 차며 반동을 이용해 물러났다.
이제 남은 고블린은 둘.
그나마 한 마리는 손목이 잘려 울부짖고만 있었다.
“후우..”
극한의 집중에 느려졌던 세상이 돌아왔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삼류헌터 박진수의 기억 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일전이지만 시우에겐 처음이었다.
이성적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위험을 감수하고 몬스터를 사냥하자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이게 헌터..!’
시우가 희열을 느끼며 주춤거리는 고블린 두목을 검으로 겨눴다.
*
탈출구가 허공에 생겨났다.
보스 몬스터인 고블린 두목이 죽자마자 탈출구가 생겨나고 시우를 따라다녔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날붙이들과 시체에서 마정석을 꺼냈다.
위장용으로 메고온 배낭에 마정성과 날붙이들을 모조리 담았다.
그리고 출구로 밖으로 나왔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협회 직원이 화들짝 놀랐다.
“어어?! 최시우 헌터님?”
“네. 여기 부산물 처리 좀 부탁드립니다.”
“아, 예! 와..! 엄청 빠르시네요. 대단하십니다. 혹시 능력이..?”
협회 직원의 감탄한 눈빛에 애둘러 대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보스가 근처에 있더군요.”
시우가 대충 대답하자, 눈치를 보던 직원이 헛기침하며 감정을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부산물을 감정하는 동안 누군가 다가왔다.
머리를 금발로 물들인 여자가 윗가슴을 드러낸 채 걸어오고 있었다.
“오빠, 시간 좀 있어?”
탄력적인 몸을 보아하니 각성자로 보였다. 그녀도 막 균열에서 나왔는지 달아오른 얼굴로 유혹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만든 구멍사이로 천박하게 손가락을 휘젓고 있었다.
각성자들의 성관념은 극과 극이었다.
일부는 엄청나게 방탕하다. 전투로 달아오른 육체를 성관계로 푸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극히 보수적인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방탕한 쪽이었다.
시우는 습관적으로 거절하려다가 멈칫했다.
여체를 생각하니 아랫도리가 약간 뻐근해졌다. 고블린들을 죽이는 것에 목숨이 위험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거칠고 위험한 일이다.
헌터들 중 일부가 어째서 방탕하게 사는지 알 것도 같았다. 참으려다가 굳이 참을 이유도 없지 싶었다.
“기다려.”
그녀가 붉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흐응··· 좋아.”
협회 직원이 힐끗 바라봤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흔히 보이는 광경이었다.
최종 금액은 102만원. 하루 일당 치곤 어마어마 했다.
실제로 걸린 시각은 2시간밖에 안 됐던 것을 보면 압도적인 수입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F급 헌터들이 이렇게 수입이 좋진 않았다.
보통 2~3명이서 같이 균열을 들어가고 소모품도 많으니 하루 일당은 20~3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시우는 헌터의 기억을 통해 빠르게 고블린을 추적해서 도살했으니 이런 수입이 가능한 것이다.
시우의 입이 귀에 걸렸다.
앞으로의 수익이 기대됐다. F급이 이런데 더 높은 등급은 어떨지 기대됐다.
엉덩이를 살랑이며 서 있던 거유녀에게 말했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