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 9화 - 동굴탈출
9화 - 동굴탈출
*
시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미친놈··· 여기서 뛰어내리다니···.”
바닥을 내려보니 아찔한 높이가 느껴졌다. 만장곡이라는 이름답게 까마득한 높이었다.
‘중간쯤인가..?’
위를 쳐다봤는데 몇백 미터는 더 올라가야 할듯했다.
휘이이잉-!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부스럭
팅! 팅! 팅···
바람에 밀린 돌멩이 하나가 끝도 없이 떨어졌다.
여기서 떨어졌다간 그대로 3회차행이었다.
돌멩이를 따라가던 시우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짝- 짝!
시우가 뺨을 때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쯧..! 악으로 깡으로 가자.”
강건해진 몸을 믿고 깡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동굴도 쉽게 빠져나왔는데 절벽이라고 별거 있을까 싶었다.
몸은 아주 살짝만 가볍게 만들었다. 혹여 너무 가볍게 했다가 칼바람에 날아갈까 봐.
피켈을 절벽에 박아넣으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쉬엄쉬엄 올라가니 영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하급 육체 강화]로 강건해진 육체 덕분이었다.
‘생각보다 쉽네.’
콰직.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어.. 억!?”
푸스슥-!
발을 디디던 발판이 절벽에서 떨어져 나갔다.
미처 피켈을 박기도 전에 시작된 자유 낙하에 절로 비명이 나왔다.
“으아아아악!”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죽음의 위기에 집중력이 극한으로 올랐다.
순식간에 혼원기의 속성을 흡자결로 모조리 전환했다.
가벼움을 담던 혼원기가 모조리 흡속성을 띄었다.
촤르르르륵!
흙먼지가 튀며 5미터가량 미끄러지며 내려가다 멈췄다.
옷이 순식간에 걸레가 되고, 갈려 나간 손바닥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하지만 그 덕에 겨우 멈춰설 수 있었다.
마치 자석처럼 온몸이 벽에 착 달라붙었다.
한순간에 혼원기가 절반 이상 사라졌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시발.. 뒤질뻔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벌렁거렸다.
반사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까마득한 절벽아래로 떨어지는 흙먼지들이 보였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허리띠에 연결된 피켈을 집어 들었다.
후우- 후우-
의식적으로 아래를 보지 않으면서 차근차근 절벽을 올랐다.
다행히 매끈한 일자 절벽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균열이 심한 협곡이라 중간중간에 쉴만한 곳이 있었다.
해가 쨍쨍할 때 출발했는데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두워지면 답도 없었다.
“뒤지게 힘드네.. 진짜..”
시우가 고개를 들어 절벽 위를 바라봤다.
끝이 멀지 않았다.
하늘이 점점 가까워졌다.
드디어.
털썩-!
“와우우!! 시바아아알!”
시우가 안도감에 땅바닥을 뒹굴며 포효했다. 절벽 위의 땅이 너무나 포근하고 안락했다.
두 손을 내려다 보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시발..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해.’
무식하게 악으로 깡으로 올라왔더니 온몸의 근육이 떨려왔다.
덜덜 떨던 시우가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지친 몸과 정신을 치유할 필요가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따스한 해장국을 하나 꺼내 들었다.
따뜻한 국물을 호로록- 마시자 지친 몸과 정신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아까 떨어질 뻔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극한의 집중상태에서 한순간에 혼원기의 속성을 바꿨다.
원래는 10분가량 명상 해야만 가능했는데 한순간에 모든 기운을 바꾸다니.
‘음··· 이렇게 였나?’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속성전환을 해봤는데 확실히 빨라졌다. 전환 속도가 3분가량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시도를 반복할수록 조금씩 빨라졌다. 마치 막힌 곳이 뚫린 듯 점점 더 익숙해졌다.
- [혼원기공(混元氣功)] : 1,032(-3,968) 카르마
확실히 상점에서도 그의 진전을 축하했다.
***
시우의 눈앞에 거대한 성문이 나타났다.
“어우.. 드디어..!”
현대 야영물품으로 무장했지만 노숙은 불편했다. 너무 티나는 물건은 자제했기에 더욱 그랬다.
산을 헤매고 강을 건넌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
호남성.
하늘 끝까지 솓아오른 성벽이 보였다. 스케일 하나는 더럽게 큰 동네였다.
거대한 성벽에 감탄이 절로 흘렀다.
‘이제 시작인가.’
바쁘게 돌아다니는 수 많은 사람이 보였다. 호객하는 점소이, 우르르 달려가며 웃는 아이들. 어딘가에서 들리는 흥겨운 음악 소리까지.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10살가량 돼보이는 꼬맹이였다.
“저.. 무사님 혹시 호남성은 처음이신가요?”
“응, 그런데?”
아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럼 제가 안내해드려도 될까요? 철전 10문만 주시면 하루종일 안내 해 드릴게요.”
문지홍의 기억을 뒤졌다. 철전 10문이면 정말 작은 돈이었다.
‘천원쯤 되려나.’
한참 부유하던 그가 간식으로 먹던 당과가 은 단위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미안한데. 내가 지금 돈이 없다. 음··· 이것들을 팔만한 데로 안내해주면 돈을 주마. 어때?”
고블린 단검을 흔들었다.
‘돈이 없다’는 말에 실망하던 아이 표정이 밝아졌다.
“좋아요! 안내할게요!”
아이를 따라가며 거리를 구경했다.
이국적인 풍경에 해외여행 온 기분이었다.
따앙! 따앙!
곧 망치소리가 들리는 대장간에 도착했다.
“여기예요!”
대장간에 들어가니 근육질 거한이 헝겊으로 손을 닦으며 나왔다.
“어서 오십쇼.”
시우가 고블린의 낡은 단검을 보여 주며 물었다.
“이걸 팔고 싶은데 얼마나 합니까?”
대장장이의 표정이 한순간에 썩어들어갔다.
엄지와 검지로 낡은 단검을 집어 들었다. 대충 살피더니 퉁명스레 말했다.
“잡철이군. 철전 50문이면 사겠소.”
불친절한 태도에 혀를 찼다.
“보는 눈이 없구만. 이건 얼만데?”
시우가 식칼을 내밀었다. 천 냥샾에서 산 3,000원짜리 식칼이었다.
매끈한 현대 식칼에 대장장이가 눈을 부릅 떴다.
불순물 하나 없는 식칼을 홀린 듯 바라봤다.
“으음··· 이건.. 은자 10냥!”
은자 10냥이면 대략 100만원. 흡족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
“안녕히 가십쇼!”
짭짤한 수입을 얻었다.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기며 아이한테 물었다.
“근처에서 소면 제일 잘하는 집이 어디냐? 그리고 잘만한 곳도.”
“그럼 요리 잘하는 객잔으로 안내 해 드릴게요.”
아이의 안내에 따라 객잔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쇼!”
다가온 점소이에게 말했다.
“소면 한 그릇이랑 숙박.”
“예! 소면이랑 숙박, 하룻밤에 철전 35문입니다요.”
“일인실이냐?”
“어··· 일인실로 하면 50문입니다.”
점소이에게 은자를 넘기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수십 개의 철전을 대충 집어 아이한테 줬다.
“이제 안내는 됐으니까. 그냥 가서 쉬어라.”
"아..! 가,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곧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면이 도착했다.
별다른 건더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냄새가 좋았다.
기대감에 담아 국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
“오..!”
눈이 조금 커졌다. 곧장 소면을 한움큼 집어 들었다.
후르룩-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짭짤하니 간도 적당하고 감칠맛도 제법이었다.
‘맛집이군.’
다시한번 국물을 음미하는데 누군가 다가와 탁자를 두드렸다.
똑똑-!
“헤헤- 소협! 합석해도 되겠소?”
어디에서나 보일 평범한 놈이었다. 너무나 평범해서 위화감이 들 정도로.
그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미 앉아 놓고 웃기는 놈이군.”
“하하..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마시게. 그나저나 자네··· 냄새가 나는군.”
“뭐?”
저도 모르게 팔을 들었다. 코를 킁킁 거렸다.
‘큼.. 확실히..’
며칠간 제대로 씻지 못했더니 냄새가 조금 났다.
그 꼴을 보던 청년이 쿡쿡 웃어댔다.
“하하.. 그게 아니라.. 자네. 아, 먼저 통성명부터 하지. 나는 비성자라고 하네.”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넉살 좋게 다가오는 태도에 흥미가 생겼다.
“최시우.”
“최가(家)..?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여기도 최씨가 있었나?’
비성자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아, 오해는 말게 전혀 못 들어 본 가문이라 그러네. 자네··· 삼류 무인이지 않나?”
“···지금 시비 거는 거냐?”
별것도 없어 보이는 놈이 삼류 무인이라고 물으니 웃기는 일이었다.
“어허! 진정하시오. 소협, 삼류 무인이 욕도 아닌데 왜 이러시오. 무공에 입문하면 누구나 삼류 무인이지 않소? 시비 건다니 당치도 않소.”
눈치보던 녀석이 말을 이었다.
“음··· 내가 보니까 자네는 호남성에 온 지 얼마 안 된듯한데··· 맞소?”
고개를 끄덕여주니 비성자가 헤벌쭉 웃었다.
“역시 내 눈은 아주 정확하다니까! 그럼 자네 곧 열릴 무술대회도 모르겠군?”
“응?”
무술대회라니 귀가 쫑긋했다.
“일주일 뒤에 호남성에 무술대회가 열리지. 딱 자네가 참가하기 적당한 무술대회!”
비성자는 한결같이 친절하게 굴었다. 계속 반말하기도 뭐 해서 대충 어울려 줬다.
“에이, 됐소. 당신 말대로 나는 겨우 삼류인데 무술대회는 무슨···.”
“어허 포기하지 마시오. 그대가 삼류이기에 권하는 것이오. 이번 대회는 삼류 무인 까지만 참가할 수 있소! 그대에게 아주 좋은 기회라 할수 있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아니, 무슨 병신 같은 무술대회가 삼류로 경지를 제한한단 말이오?”
비성자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모르냐는 듯.
“아니, 당연히 좆밥 싸움이 제일 재밌으니까 그렇지. 고수가 나와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싸워대면 그게 재밌겠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