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 11화 - 무술대회?(2)
11화 - 무림대회(2)
몸놀림을 바라보던 심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곤 손목을 잡고 진지하게 눈을 감았다.
끄덕.
“삼류 맞소!”
그의 선언에 관중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
그녀와 시우가 서로 마주 섰다. 그녀가 포권을 쥐며 인사했다.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중성적인 목소리.
“나는.. 화..무린이오.”
시우가 화무린에게 마주 포권하며 말했다.
“최시우.”
더 이상 대화는 필요 없었다.
둥-!
북소리가 울렸다.
시우가 그녀에게 검을 겨눴다. 기습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기에 빈틈을 노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딱히 빈틈이 보이질 않았다.
화무린은 흔들림 없는 자세로 시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중(重). 무거움으로 간다.’
온몸의 혼원기를 무거움으로 바꾸고 돌진했다. [하급 육체강화]로 증폭된 허벅지 힘으로 땅을 박찼다.
빈틈이 없으면 억지로 만들어야 했다.
파앗- 깡!
정직한 내려치기.
하지만 검이 부딪치는 순간에 무게를 증폭시켰다.
시우의 검을 막아 낸 화무린이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화무린의 균형이 조금 무너졌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빈틈이 여럿 생겼다.
실전을 통해 익힌 시우의 검격이 이어졌다.
화무린의 손이 바빠졌다.
“읏..!”
당황도 잠시, 화무린의 방어가 점점 안정됐다.
깡! 깡!
‘이대론 안 돼.’
가까스로 생긴 빈틈이 점점 사라져간다.
무거움만으로는 저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쾌(快)’
중검이 통하지 않자 시우는 혼원기를 쾌로 돌렸다. 전투 중에 혼원기 속성을 바꾼것은 처음었지만 고조된 감각에 자연스럽게 성공했다.
시우의 검이 한 박자 빨라졌다.
“흡!”
챙! 챙!
검과 검이 마주치며 강렬한 소리가 울렸다.
시우는 검을 휘두르며 점점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백중세,
하지만 내공이 부족했다. 벌써 혼원기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없었다.
쾌로도 역부족이었다.
‘쾌(快), 중(重)’
혼원기가 두 가지 속성을 빠르게 왕복했다.
쾌속의 검에 묵직한 거력이 담기기 시작했다.
여유롭던 화무린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깡- 깡! 까앙!
둘은 순식간에 수십합을 주고받았다. 시우의 감각이 고조되고.
어느 순간,
지금 혼원기가 담고 있는 속성이 쾌(快)인지 중(重)인지도 구별가지 않았다.
더 이상 혼원기는 신경 쓰지 않았다.
화무린에게 남은 마지막 하나의 빈틈에 온 정신을 쏟았다.
전심전력을 다한 찌르기.
남은 힘과 내공을 모두 쥐어짜 검을 내질렀다.
쉐액!
안색을 굳힌 화무린이 검을 마주 찔러왔다. 중간동작이 삭제된 듯 어느새 검을 찔러오고 있었다.
쩡-!
서로의 검 끝이 마주치며 강렬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아..!’
팔에 강렬한 통증을 느끼며 시우는 무아지경에서 깨어났다.
저릿거리는 통증. 어느새 내공은 바닥나고 없었다.
조금 아쉬웠다. 내공만 더있었으면, 이 감각이 잊혀지기 전에 한 번 더 휘두를 수 있었을 탠데···
‘어쩔 수 없지.’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검 끝이 파르르 떨렸다.
시우가 한 걸음 물러나며 숨을 골랐다. 무아지경에서 벗어나자 거친 숨이 느껴졌다.
“후우···”
한 달 동안 잘 먹고 수련했지만, 태생이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체력이 모자랐다.
지친 시우를 보던 화무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을 중단세로 세웠다.
화무린의 검이 시우에게 겨눠지고.
한순간.
멀리 떨어져 있던 검이 한순간에 커졌다.
‘읍!’
겨우 반응한 시우가 코앞에 다가온 검을 막아섰다.
그때, 화무린의 검이 뱀처럼 휘어지고.
쉬익-
시우의 검을 타고들어와 어느새 목에 대어져 있었다.
“허..!”
완패였다.
처음으로 보는 제대로 된 무공이었다.
무협지를 보며 상상했던 무공 한 자락을 본 기분이었다.
“하하···”
시우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런 시우에게 화무린이 감탄했다.
“자네 대단하군··· 나중에 고수가 되겠어.“
휘이이익-!
관중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다.
“와아아아!”
“으아아아악!! 안 돼!!”
시우가 지친 몸을 이끌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쳤지만 모든 힘을 쏟아내니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화무린이 무대 위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심판이 나서서 열을 셌지만 당연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우승 상품인 100년 하수오는 화무린의 손에 들어갔다. 화무린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영약을 받아들었다.
막상 영약을 보자 조금 아쉽긴 했다. 하지만 털어 버렸다. 그보다 대련을 통해 느꼈던 성장이 더 중요했기에.
화무린이 사방에 포권하며 인사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
괴상한 소리에 시우가 고개를 돌려보니.
비성자가 시뻘게진 눈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대회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며 비성자를 위로 했다.
“그.. 너무 낙심하지 마.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거 아니겠어?”
“아으···. 이, 이건 사기야···. 어흑···!”
비성자에게선 괴상한 소리만 흘러나왔다. 눈물도 주르륵 흘려대는 게 정말 꼴불견이었다.
하지만 조금 이해가 갔다. 가장 나쁜 것이 줬다 뺏는 건데, 사연승에 이어진 패배에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복권 1등인 줄 알았는데 전 회차인 것을 알아차리면 이런 기분일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미안해졌다.
“에잉···! 잘 지내라 난 간다.”
바닥에서 부들거리는 비성자를 내버려 두고 자리를 떴다.
*
객잔에 가서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시우를 부르며 달려왔다.
“소협!”
화무린이었다.
“소협! 다행히 안 갔군. 내 자네한테 할 말이 있네.”
“응? 무슨 할 말?”
“음··· 내가 조금 미안 해서 말이지.”
“뭐가 미안하다는 거요? 서로 정당하게 겨뤄서 승패가 가려졌을 뿐인데···?”
시우의 말에 화무린이 움찔했다.
“으··· 그리 말하니 더 미안 해지는군. 아무튼 이거 받게.”
무언가 쩔쩔매던 화무린이 네모난 상자를 건넸다.
대회의 우승 상품인 100년 하수오였다.
“하수오..? 이걸 왜?”
“그.. 아무튼! 이건 이제 자네 거네. 어차피 내겐 효과도 없어.”
얼떨결에 건네받은 시우가 볼을 긁적였다. 고맙긴 한데 공짜로 영약을 받긴 미안 했다.
“에이··· 공짜로 받긴 좀 그렇고, 이거라도 하나 받게.”
시우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초콜릿을 하나 꺼내 들었다.
초콜릿을 건네받은 화무린은 묘한눈으로 시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언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초콜릿을 만지작거렸다.
“···이게 뭐지? 딱딱한데?”
“당과? 비슷한 거라고 해야 되나. 초콜릿이라고 부르는 간식일세.”
“간식···? 포장이 꽤 고급스러운데.”
화무린이 심각한 얼굴로 은박지를 벗기고 초콜릿을 살폈다.
킁킁
냄새를 맡은 화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당연히 아니지. 날 뭐로 보는 거야.”
시우의 눈치를 보던 화무린의 붉은 혀가 빼꼼 튀어나왔다.
할짝-
초콜릿을 조금 햝아 먹은 화무린의 눈동자가 조금 커지더니 초콜릿을 조심스럽게 한 입 깨물었다.
“히얏! 다, 달앗! 이게 어, 얼마만이야···”
높은 고음이 울려 퍼졌다. 화무린이 초콜릿을 한 입 더 깨물었다.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를 깨무는 것 같았다.
“으으음..! 헛! 흠흠.. 고, 고맙소. 차, 참 달군.”
고음은 헛기침과 함께 사라졌다. 시우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 어설픈 남장은 언제까지 하려는 거요?”
“나, 남장..! 어, 어떻게···?”
‘아니 모르면 병신 아닌가..?’
누가 봐도 여자인데 본인은 모른다니 어이가 없었다. 시우가 건네받은 하수오 상자를 흔들며 말했다.
“아, 미안하오. 아니면 됐소. 아무튼, 준다니 고맙게 먹지. 다음에 보자고.”
“자, 잠깐만..!”
*
어느새 객잔에 도착했는데, 화무린이 따라 들어왔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신기하네··· 어떻게 알았지? 이보게 점소이.”
점소이가 웃으며 다가왔다.
“예, 어서 오십쇼!”
화무린이 점소이에게 제 턱을 쓰다듬으며 모델처럼 자세를 잡았다.
“내가 어떻게 보이나?”
잠시 당황하던 점소이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아··· 하하! 잘생긴 쾌남아로 보입니다요. 나으리.”
“그렇지..? 고맙네. 그럼 적당한 음식으로 이인분 부탁하네. 아! 죽엽청도”
“···예!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점소이가 총총거리며 사라졌다.
화무린이 신비한 문양의 녹색 팔찌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잘되는데···?”
그것을 보던 시우가 조금 당황했다. 팔찌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별수 있나 그냥 배쨌다.
“뭐, 내 눈엔 예뻐 보여서 그런 거니 이해하쇼.”
“뭐..! 예, 예뻐?!”
당황한 화무린이 제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기하네··· 이게 예뻐?”
잘 쳐주면 평범보다 조금 위였지만 하얀 피부덕에 꽤 미인으로 보였다.
‘그나저나 반말?’
“응, 예쁜데?”
“그래? 히힛! 나 참..! 이게 예쁘다고..? 히이-”
해죽거리며 귀엽게 웃던 화무린이 얼굴을 다잡았다. 그러곤 시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흐으음···?”
그때 점소이가 죽엽청과 간단한 안주 몇 개를 탁자에 올렸다.
엄청나게 빨리나온 음식. 하지만 퀄리티는 꽤 뛰어났다.
“오..! 숙주인가?”
시우가 음식을 집어먹으며 감탄했다.
다행히 그녀도 억지로 캐물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를 지켜보던 화무린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망설이다 말했다.
“그건 그렇고··· 아까 주머니에서 초콜릿 꺼낼 때 말이야···.”
젓가락질을 하던 시우가 잠시 멈칫했다.
“주머니에서 그··· 초콜릿을 꺼냈잖아?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 같지가 않던데? 모양도 달랐어.”
소매로 입을 닦은 시우가 얼버무렸다.
“잘못 봤겠지.”
화무린이 뚱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아. 서로 교환하자.”
“뭘?”
그녀가 새하얀 양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길고 예쁜 손가락에 절로 눈이갔다.
“잘 봐.”
그녀의 손동작을 유심히 지켜보던 시우가 놀랐다.
쉭-
“어때?”
눈 깜박할 사이에 그녀의 손에 비도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오···! 신기한데?”
“헤헤. 신기하지? 이거 알려줄게 너도 알려주라. 응?”
신기하긴 했지만 탐나진 않았다. 애초에 [인벤토리]가 있는 시우에겐 필요 없는 재주였다.
‘더군다나 [인벤토리]를 줄 수도 없고 말이야.’
혹시나 하던 시우가 [상점]에서 ‘아공간’ 관련 물품을 살폈다.
적당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인벤토리(Lv.0) 부여권] : 1,000 카르마.
- 배낭 크기의 [인벤토리(Lv.0)]를 대상에게 부여한다.
‘윽! 더럽게 비싸잖아. 다른 거’
[공간 확장 주머니(초소형)] : 100 카르마.
- 배낭 크기의 공간 확장이 걸린 주머니.
‘있긴 있네··· 그래도 공짜로 줄 순 없지.’
[상점]에서 돌아온 시우가 잠시 고민했다. 그녀의 매끈한 피부가 마음에 들었다.
“이건 어때. 내가 그 재주를 매일 한 번씩 보여 줄게. 얻는 건 너 하기에 달린 거지.”
“응응. 초콜릿 꺼낸 그거 말이지?”
화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눈동자가 참 예뻤다.
시우가 작게 끄덕이며 계획을 세웠다.
‘일단 대련부터 시작해서···’
“응. 대신 그때마다 나와 대련 해 줘. 어때?”
“대련···? 좋아! 나야 좋지. 그런데 내가 금방 알아낸다고 화내면 안 된다?”
“하하, 너야말로.”
시우와 화무린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서로가 이겼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