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 15화 - 철무방(2)
15화 - 철무방(2)
***
철무방 내부 심처.
붉은 머리를 가진 여인이 앉아 있었다.
전신에 근육이 가득했다. 하지만 과하진 않았다.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이 담긴 몸매는 건강미가 철철 흘렀다.
헬스장에 보일 법한 운동녀같았다.
여인만 아니었더라면 진작 후계자로 확정되었을 거라는 말의 주인공.
철비화였다.
그녀에게 다가온 여인이 보고를 올렸다.
“아가씨, 막내 도련님이 방주패를 사용했답니다.”
방주패.
철무방의 규칙에 따라 후계자들은 각각 하나의 방주패를 가진다.
방주패는 일종의 명령권이다.
가문의 힘으로 가능한 거의 모든 일을 지시할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후계가 정해진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것이었다.
철비화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방주패···? 그 쓰레기가 갑자기 왜?”
공손히 서 있던 여인이 땀을 삐질거렸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보고할 내용이 아니었다.
망설이던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자신에게 망신 준 삼류 무사를 혼내준다고···.”
“···뭐?”
***
화무린의 거대한 가슴에 시선을 빼앗긴 시우가 정신을 차렸다.
‘헛..!’
그리고 냉정하게 파악했다.
‘일류 하나, 이류 둘.’
인벤토리에서 돌격소총을 꺼내 들었다.
철무방 놈들은 총구가 겨눠지는 데도 화무린만 쳐다보고 있었다.
‘모르면 맞아야지.’
조용히 일류 머리를 조준했다. 숨을 참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흠칫한 놈과 시선이 마주쳤다.
탕! 탕탕탕!!
날아간 총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와중에 급소를 피하다니 대단하긴 했다.
하지만.
“크윽!”
이어서 날아간 총알에 다리가 꿰뚫렸다. 기동력이 절반 이상 날아갔다. 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티잉!
다음 총알은 근육을 뚫지 못 했다.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마력에 튕겨나갔다.
‘마력 장막!’
내공의 힘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경지가 일류다.
곧바로 총구를 돌렸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라 해봐야 겨우 1~2초.
탕!
아직까지 멍청히 서 있던 이류 이마에 구멍이 생겼다.
“뭐, 뭐야!”
남은 놈들이 정신 차리기도 전.
두두두두!
총알을 난사했다. 정확히 조준하기 보단 사방에 휘갈겼다.
“끄아악!”
삼류놈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다.’
삼류는 대부분 바닥을 기었고, 이류 한 명은 죽었다.
화무린의 숨겨진 경지가 드러나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
허벅지에 피가 철철 흐르는 대주가 악을 썼다.
“시바알!! 암기다! 모두 쳐라!!”
소리친 대주가 화무린에게 달려들었다.
그나마 멀쩡히 서 있던 네 명은 시우에게 향했다.
그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며 화무린을 살폈다.
‘일류인데 괜찮을까?’
화무린이 밀린다면 현대화기를 더 꺼내 들 생각이었다.
대주와 화무린이 싸우기 시작했다.
챙! 챙!
희끗하게 보이는 장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생각보다 팽팽했다. 화무린이 쉽게 당하진 않을 것 같았다.
조금 안심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놈들에게 권총을 갈겼다.
탕! 탕! 탕!
“아아악!”
먼저 삼류 세 명부터 총으로 쏴 버렸다.
탕!
이류 무사에게도 쐈지만 빗나갔다. 본능적으로 피했는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놈!”
마지막 남은 이류 무사, 부대주가 달려들었다.
상대의 허벅지가 부풀며 진각을 밟은 순간.
꽈앙!
땅바닥이 터져나갔다.
내공의 힘을 이용한 돌진이었다. 발바닥에서 내공을 분출해 급격하게 가속했다. 어찌나 빠른지 신형이 주욱 늘어난 것 같았다.
세 걸음은 떨어져 있던 놈이 찰나만에 코앞까지 다가왔다.
쐐액-!
쾌속의 찌르기.
극한의 집중 상태였기에 겨우 반응했다.
날카로운 은빛 검날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검은 피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났다간 불리해질 뿐이다.
본능적인 판단과 동시에.
오히려 전진했다. 파고들어 명치에 팔꿈치를 꽂아 넣었다.
뻐억!
‘중(重)!’
타격 순간에 무게를 증폭했다.
“윽!”
부대주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예상치 못한 반격인듯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아쉬움에 혀를 찼다.
꽤 큰 소리가 났지만 타격감은 적었다. 이류답게 내공으로 방어한 것이다.
‘쾌(快).’
당황한 상대에게 계속 달려들었다.
평생 수많은 몬스터와 싸운 박진수의 경험이 떠올랐다.
놈에게 익숙한 거리를 줘선 안 된다.
초근접 박투가 답이었다.
*
단칼에 목을 베려다가 명치를 얻어맞은 부대주는 당황했다.
‘피했다고?’
부대주가 당황해서 물러나려 했다. 너무 대책없이 거리를 허용했다.
그때 시우가 초근접 거리에서 검을 휘둘렀다.
이대로 물러나면 검에 베인다. 안색을 굳힌 부대주가 내공을 가슴팍에 둘렀다.
퍼억-!
시우의 검 손잡이에 내리찍힌 가슴팍에서 얼얼한 통증이 밀려왔다. 내공을 집중한다고 몸이 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릿한 통증에 짜증이 치밀었다.
‘건방진! 삼류주제에!’
부대주가 서둘러 물러나려 했다. 이 거리는 너무 불리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시우가 피해를 강요했다.
그대로 물러난다면 검에 베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발바닥으로 향하던 내공을 회수해 방어로 돌렸다.
초근접 박투가 지속됐다.
부대주는 검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힘들었다. 그에겐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대와 싸운 경험이 없었다.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타격이 계속 이어졌다.
퍽! 퍽!
검날만은 최선을 다해 피했다. 다행히 검에 베이진 않았지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상황이 이어졌다.
망치에라도 맞은 듯 더럽게 아팠다.
이를 악문 부대주가 기겁했다. 어느새 시우의 손에 들린 장검이 단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 시발?”
기겁할 노릇이었다.
시우의 현란한 단검술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검날도 피하기 버거워졌다.
“개 같은!”
억지로 발바닥으로 내공을 분출해 한 걸음 크게 물러났다. 그 과정에서 가슴팍을 크게 베이고 말았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치명상을 입을 뻔했다.
여기저기 베인 곳이 화끈거리고 가슴팍이 욱신거렸다.
지금 상체를 살피면 피멍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삼류따위를 상대하느라 이렇게 상처 입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부대주가 시우를 살벌하게 노려봤다.
시우가 혀를 찼다.
최선을 다해 막았지만 결국 놈이 거리를 벌렸다. 이제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긴 힘들어졌다.
단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다시 철검을 빼 들었다.
부대주가 가슴팍을 쓰다듬다가 시우를 노려봤다.
“놈..! 감히 내게 대항할 실력은 있구나! 허나! 그 행운도 이제 끝이다!”
“뭐래. 병신처럼 처맞은 게.”
“이익!”
부대주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경계가 가득한 것이 전처럼 돌진해 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힌 부대주가 검을 휘둘러왔다.
놈의 팔에 집중 된 내공에서 급가속이 시작됐다. 팔만 다른 생명체인 것처럼 속도가 달랐다.
채찍같은 검격!
놈의 동작보다 한 박자씩 빠른 검격이었다. 그 미묘한 불균형에 막기 버거웠다.
쐐애액-!
챙! 챙!
시우의 손이 바빠졌다.
놈의 검은 빠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한 방, 한 방이 묵직했다. 삼류와는 격이 다른 검력이었다.
평범한 검과 가속된 검이 섞이니 막기 버거웠다.
일검을 막을 때마다 충격이 누적됐다.
“윽!”
검을 막을 때마다 뼈가 저리고, 미처 피하지 못한 검에 스쳐 상처가 늘어났다.
“으하하! 개 같은 놈. 사지를 잘라주마!”
기세등등해진 부대주가 소리를 질러댔다.
시우는 놈의 검을 막으며 무언가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한칼 한칼이 고비였지만 어떻게든 막아 낼 수 있었다.
‘어딘가 익숙해.’
화무린과 했던 대련.
그녀의 검은 부대주의 검보다 느렸는 데도 막기 버거웠다.
단순한 휘두름에 불과함에도 무언가 달랐다.
‘뭐가 다르지?’
그녀의 검을 떠올리자 시우의 검이 달라졌다. 그녀의 검술이 조금 이해가 갔다.
‘흡(吸).’
시우의 혼원기가 흡자결을 띄었다.
채앵!
흡자결을 띈 검이 부대주의 검을 붙잡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충분했다.
검이 검을 타고 올라갔다. 마치 뱀처럼.
촤악-!
손등을 베인 부대주가 당황했다. 이 무슨 개 같은 검술인가!
흡속성을 띄던 시우의 혼원기에 한 가지 속성이 추가됐다.
‘흡(吸), 쾌(快),’
대회 때와는 달랐다. 마치 두 가지 속성이 동시에 적용된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혼원기가 끈끈한 격류처럼 느껴졌다.
촤악- 촤악!
부대주의 손이 순식간에 걸레가 되기 시작했다.
손이 걸레가 된 부대주가 발악하며 진각을 밟았다. 일단 거리부터 벌리고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상대는 자신의 기동력을 따라올 수 없다.
쾅!
바닥이 터지며 부대주가 한순간에 물러났다.
‘지구전이다.’
내공을 분출하지 못 하는 놈과 자신의 기동력은 천지 차이.
놈의 검술이 대단하지만 발은 자신에게 닿지 못하리라.
치욕스럽지만 기동력을 이용해 지구력 싸움을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어..?”
부대주가 당황했다.
분명히 한 걸음 크게 물러났는데도 여전히 시우가 앞에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삼류가 어떻게···?’
부대주의 머리가 허공을 날며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
부대주의 머리를 날린 시우가 뒤를 돌아봤다.
발을 디딘 곳에 무언가 터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발바닥을 이용한 내공분출.
이류의 증거였다.
시우가 화무린을 찾았다.
그녀와 대주의 싸움은 팽팽했다. 둘 모두 내공이 거의 바닥났다.
대주보다 경지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접전을 펼치는 그녀를 보니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화무린 옷이 여기저기 베인 것을 보니 분노가 치솟았다.
시우가 대주에게 다가가며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탕!!!”
촤악!
움찔한 대주가 화무린의 검에 크게 베였다. 화무린이 작게 웃었다.
“씨발!!”
“크크..! 탕! 탕!”
시우의 입에서 총소리가 나올 때마다 놈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때마다 화무린의 검에 큰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대주가 악을 썼다.
“씨발놈아 그만해라!!”
“탕! 탕! ···.”
탕!
“아악!”
입총에 반응하지 않는 대주에게 진짜로 총을 쏴버렸다.
왼팔에 총을 맞은 대주가 비명을 질렀다.
재밌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대주는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우가 주변을 둘러보니 도망가려는 철광오가 보였다.
‘놓칠 수 없지.’
철광오의 양 허벅지에 권총을 쐈다.
탕! 탕!
총에 맞은 철광오가 철퍼덕 쓰러졌다.
“아악!”
그때, 대주의 입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씨발 새끼! 그만하랬지!!!”
대주가 이성을 잃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제 목을 향해 다가오는 화무린의 검을 무시하고 시우에게 무언가 던졌다.
철광오를 보고 있던 시우는 미처 피할 새가 없었다.
“어..?”
펑-!
무언가 터지며 안개가 솟아올랐다.
“아앗! 안 돼!”
대주의 목을 베며 당황한 화무린의 표정이 안개로 가려졌다.
반사적으로 숨을 참았지만 조금 들이마시고 말았다.
휭- 휭-
화무린이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안개를 헤치고 다가왔다.
“시우! 괜찮아?”
조심스럽게 내공을 돌린 시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딱히 이상한 것은···.
그때 시우가 고개를 내렸다.
몸 한 곳에 피가 쏠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랫도리가 빳빳하게 세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