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 - 20화 - 길드 만들기(2)
20화 - 길드 만들기(2)
균열에 가려던 시우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까 균열에 가서 보여 줄 필요도 없었다.
시우가 손바닥을 펼치고 바람을 일으켰다.
C급 헌터, 이류 무사들의 재주에 한소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C, C급?!”
시우의 어깨가 으쓱했다.
“내가 말했잖아.”
한소영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진짜···. 이 정도라면 클랜은 만들겠는데?”
작은 규모의 각성자가 모인 집단을 클랜이라고 한다.
“뭐···. 클랜부터 시작해야지.”
*
시우가 계획을 세웠다.
“갈상인 그놈 유인하자.”
“유인?”
균열 내부에서는 살인행위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헌터 협회의 방치가 이어지며 더욱 그런 경향이 생겼다.
헌터 협회는 균열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균열 밖 치안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다.
한소영이 망설였다. 도덕심 때문은 아니었다. 균열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온 뒤로는 동화책도 도덕심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아?”
시우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놈 성격을 생각해 봐.”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갈상인의 성격이 떠올랐다.
시우가 설명했다.
“우리가 길드, 그래 클랜부터 시작한다고 치자고. 나야 그놈보다 세니까 상관없지만···. 새로 받을 각성자도 그럴까? 그놈이 사사건건 방해하면 될 것도 안 돼.”
잠시 고민하던 한소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일단 그놈 위치부터 파악해야지.”
한소영이 고민했다.
“위치? 흥신소라도 가야 되나?”
잠시 고민하던 시우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잠깐만.”
혹시나 한 시우가 갈상인의 SNS를 뒤졌다.
어떤 여성을 뒤에서 몰래 찍은 사진이 보였다.
[블랙리스트 추가]
한소영, 이 짐꾼년 받아주면 나랑 전쟁이야 알겠어?
이년 꼭 따먹고 만다. 후기남겨줌
>형님 대단하십니다. 나중에 균열이나 같이 가시죠.
>어휴 미친놈.
└ 너 누구냐? 실명까고 말해라.
“미친···.”
가관이었다. 사진만 봐도 한소영임을 알 수 있었다.
“왜?”
한소영이 그 게시글을 보더니 미간이 찡그려졌다.
“또라이 새끼···. 하아··· 진짜 죽이고 싶네.”
게시글을 더 내리자 놈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외제차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멋들어지게 기대서 커피를 마시는 사진이었다.
낯익은 배경덕에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강원도의 균열 다발 지역이다. 자잘한 하급 균열이 자주 생기는 지역인데, 최근에 유독 발생률이 올라간 지역이었다.
시우가 눈을 빛냈다.
“찾았다.”
못 찾았으면 수소문을 하거나 흥신소를 이용하려 했는데 다행이었다.
시우가 끄덕이며 한소영에게 말했다.
“가자.”
한소영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
강원도.
시우와 한소영이 의자에 앉아 커피를 꺼내 들었다.
갈상인은 이미 균열에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길드에 대한 이야기나 하기로 했다.
“먼저 비밀을 보장할 방법이 필요해.”
“비밀?”
“응. 내 능력이 좀 특이해서. 알려졌다간 온갖 날파리들이 껴들 걸.”
‘섹스로 여자를 강화시킨다는 게 알려지면 온갖 할머니들이 달려들 거야.’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예쁘면 상관없지만 외모에 신경 안쓰고 그대로 늙은 사람도 가끔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강하긴 더럽게 강했다.
“그래..? 그럼 마나 계약서를 써야 되나? 그거 비싸지 않아?”
한소영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서로의 마나를 걸고 계약하면 비밀은 보장되겠지만 계약서가 제법 비쌌다.
“너무 빡세지 않아? 아무도 안 들어 올 거 같은데?”
“처음엔 어쩔 수 없어. 그니까··· 엄청 간절한 사람을 찾아야지.”
“간절한..?”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간절함이라면 뒤지지 않다. 시우가 찾아오기 전까지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아직 시우의 능력을 정확히 모른다.
한소영이 시우에게 물었다.
“그럼 C급 된 것도 숨길 거야?”
“아니, 그건 밝혀야지. 그냥 밝히긴 아깝고 비싸게 팔거야.”
“그게 팔려?”
“글쎄?”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가 무어라 말하려 할 때 시우가 말했다.
“나왔다.”
“응?”
시우의 시선을 따라가니 갈상인이 보였다.
막 균열에서 나온 듯 몇 명과 같이 부산물을 팔고 있었다.
미끼를 뿌릴 시간이다. 시우가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나한테 맞춰줘. 내가 알아서 할게.”
“응..? 알았어.”
***
협회 직원에게 맡겨놨던 짐을 찾은 갈상인이 기지개를 폈다.
D급 균열의 수익은 약 400만원. 4명의 파티원과 균열을 돌아 1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소모품을 제하면 그보다 조금 적지만, 그래도 100만원이다.
하루 일당치곤 엄청났다.
갈상인이 옆에 있던 짐꾼을 게슴츠레하게 쳐다 봤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온갖 짐을 들고 있었다. 보통 파티라면 버릴 내장 따위도 모조리 들고 왔다.
갈상인의 악취미를 위해서였다.
“야, 냄새나니까 좀 떨어져. 어휴~ 썩은 내하곤.”
“···예, 죄송합니다.”
균열 내부에서도 어리바리한게 초보짐꾼 티가 팍팍 났다. 내장을 챙기라고 했는데 반박없이 챙긴 것이 강력한 증거였다.
‘이런 놈들은 신고식 좀 해 줘야지.’
갈상인이 비죽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니 일당은 그 내장으로 퉁치자.”
짐꾼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예?”
“왜? 그거 팔면 20만원은 나올 텐데. 싫어?”
짐꾼이 당황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내장들은 쓰레기였다. 사실 그게 맞다. 여러 더러운 것들에 절여진 이 내장들은 판매가 불가능했다.
“어···!”
갈상인이 목소리를 깔았다.
“하..! 야! 너 짐꾼 몇 번 해봤어.”
“어어··· 3번이요.”
“미친..! 개뉴비 새끼네. 이러면 오히려 내가 돈을 받아야 돼. 교육비로, 알아?”
짐꾼이 사색이 됐다. 이전 파티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더 당황했다.
“어, 어.. 죄, 죄송합니다.”
갈상인이 조금 분위기를 풀었다.
“쯧.. 내가 불쌍해서 차마 돈은 안 받는 거야. 알았어? 내장 가지고 꺼져.”
억지로 웃던 짐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어··· 갈상인 헌터님 혹시 이거 어디에 팔아야 되는지···.”
갈상인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일갈했다.
“내가 그딴걸 어떻게 알아! 팍 씨!”
짐꾼이 울상이 돼서 자리를 떴다.
떠나는 짐꾼을 보며 낄낄거리던 갈상인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두 명이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다. 한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가 찍어놓은 여짐꾼이었다. 각성도 하지 않은 일반인치고 엄청나게 예뻐서 한참 작업 중이었다.
그런데.
“미친년이..!”
짐꾼년이 감히 자기 몰래 균열을 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어떤 놈이 껴준 거지?’
갈상인이 입을 꾹 다물다가 말했다.
“야, 알아서 돈보내라. 나 간다.”
부산물을 팔던 동료가 의아해했다. 항상 술 마시던 놈이 웬일이지?
“어어? 어디가? 술 안 마셔?”
“어, 먼저 가라.”
갈상인이 짜증스런 표정으로 한소영을 따라갔다.
한참을 따라가니 한소영이 어떤 남자와 균열 앞에 섰다.
‘F급 균열?’
협회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딱 봐도 초보로 보였다.
‘어떤 새끼가 내 경고를 무시하고···!’
갈상인이 다가 갔다.
초보 헌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제가 들어가면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간다는 거죠?”
협회 직원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딱 봐도 일에 성의가 없어 보였다.
“아 그렇다니까요! 귀찮게···. 아카데미에서 안 배우셨어요?”
“아..! 죄송합니다. 기억이 잘..!”
초보 헌터가 머리를 어색하게 긁적이더니 협회 직원 눈치를 봤다.
“혹시 시간제한도 있나요?”
“하아···. 이 균열은 6시간짜리네요.”
균열마다 시간제한이 다르다. 균열의 규칙이라기 보단 협회의 규칙이었다.
균열 브레이크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시간제한.
안에 있는 헌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균열에 크기, 난이도 등에 따라 시간제한이 있었다.
그 시간제한이 끝나면 다음 파티가 진입한다.
서로 균열 내부에서 마주치면 좋은 꼴 못보기 때문에 그 전에 나와야 한다.
‘저것도 모르다니 뉴비네.’
뉴비핥기 갈상인이 눈을 빛냈다.
가까이 가 보니 아는 녀석이었다.
‘뭐야 짐꾼새끼잖아.’
평소 싸가지없이 굴던 짐꾼이었다. 한동안 안 보인다 싶더니 설마···.
“야, 너 각성했냐?”
갈상인의 반말에 초보 헌터 시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뭔데 반말이야?”
갈상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각성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냐? 선배한테 반말하게?”
“뭐래.. 니가 왜 선밴데?”
시우가 갈상인을 노려보며 뒤에 있던 한소영을 제 품에 끌어당겼다. 눈빛에 적의가 가득했다.
빠직
갈상인의 얼굴이 분노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시발. 싸가지 없이 뭐 하냐? 싫어하잖아.”
“아닌데? 소영아 싫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짐꾼년을 보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말만 걸어도 째려보고 지랄하던 년이 저리 굴다니!
‘걸레같은 년이!’
시우가 갈상인을 비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귀찮은 티를 팍팍 내는 협회 직원에게 말했다.
“암튼 저희 들어가도 되는 거죠?”
협회 직원이 귀찮다는 듯 대충 말했다.
“아, 예~ 들어가십쇼.”
시우가 고개를 끄덕이곤 균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갈상인이 그것을 노려보다가 눈을 부릅떴다.
놈이 그를 비웃더니 한소영의 엉덩이를 콱 틀어쥔 것이다.
뒤늦게 주먹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었다.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녀석은 이미 균열로 들어가고 없었다.
이를 악물던 갈상인이 협회 직원한테 말했다.
“야, 저 새끼 정보 좀 줘 봐.”
“예? 안 돼요.”
태블릿을 품에 안고 숨기는 직원을 노려봤다.
“아, 시발 100만원 줄 테니까 내놔. 그게 뭐 비밀이라고. 어차피 조금만 찾아보면 다 나오잖아!”
“아이, 안 되는데···.”
격렬히 거부하던 협회 직원이 은근슬쩍 힘을 풀었다.
직원의 손에 들린 패드를 빼앗았다. 빠르게 훑었다.
‘각성 등급은··· F?’
굳어 있던 갈상인의 얼굴이 조금 돌아왔다.
‘미친 새끼. 겨우 일주일 전에 각성? 육체 강화? 하···!’
어이가 없었다.
“허허..!”
짐꾼일 때부터 싸가지없는 것은 알아봤지만 각성하고도 저러다니.
‘교육 좀 시켜야겠네. 덤으로 그년도··· 크흐!’
딴청 부리며 서 있는 직원에게 말했다.
“야, 자리 좀 비켜봐.”
“예? 설마 들어가시게요? 걸리면 큰일 나요.”
뇌물이나 받아먹는 말단 주제에 말이 길었다. 돈을 더 달라는 것이다.
“100만원 더 줄 테니까 꺼져.”
“···.”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협회 직원이 말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그냥 화장실이 급한 거니까.”
그러면서도 가만히 서 있는 게 가관이었다.
“쯧.’
갈상인이 지갑에 있던 돈을 대충 꺼내서 넘겼다.
협회 직원이 히죽 웃으며 돈을 셌다. 수표와 현금이 섞여 있었다.
200만원이 조금 안 되지만, 잠깐 자리를 비켜 주는 대가로는 차고 넘쳤다.
“전 화장실 좀 갔다 올 테니까 절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하..! 귀찮게, 빨리 꺼져.”
“···.”
협회 직원이 사라졌다.
갈상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만족스레 웃었다. 아무도 없었다.
“히히! 뒤졌다. 씹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