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 21화 - 한소영
21화 - 한소영
***
균열 내부.
시우가 한소영의 엉덩이를 꽉 틀어쥐었다.
그녀의 몸이 작게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느낀다고?’
이렇게 쥐어 봤자 고통스러울 뿐일 텐데 의심스러웠다.
찰싹
한소영이 시우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갑자기 엉덩이는 왜 만져?”
“그놈 유인하려고.”
그 어이없는 말에 한소영이 피식 웃었다.
“겨우 이런다고 오겠어?”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올걸?”
“안 올 거 같은데···.”
시우는 철무방 일을 겪으며 세상에 얼마나 미친놈들이 많은지 깨달았다.
게다가 단순히 엉덩이를 쥔 것만이 아니었다.
각성한지 일주일도 안 된 것. F급, 어리버리하던 모습 등등. 수많은 미끼를 뿌려 뒀다.
‘이래도 안 오면··· 뭐 어쩔 수없지. 될 때까지 시도하면 그만이다.’
사실 자기가 갈상인이라 해도 들어올 거 같았다.
시우가 한소영에게 말했다.
“내기할래?”
“내기?”
“진사람이 이긴사람 소원 들어주기.”
한소영이 웃었다.
“흐응···. 좋아! 너 내가 이기면 엄청 비싼 거 사 먹는다?”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먹고 싶은 게 있었다.
*
보통 늑대보다 조금 더 큰 늑대가 으르렁거렸다.
목 주위에 뾰족한 털이난 갈기늑대다. 일반 늑대완 다르게 힘도 강하고 인간에게 맹목적인 적의를 가지고 있다.
일단 달라붙어서 온몸을 비벼댄다. 방심했다간 놈의 가시 같은 털이 온몸에 박힌다.
“으르르···”
파앗
늑대가 시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촤악!
시우가 일 검에 갈라진 짐승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갈기늑대네?”
한소영이 그것을 보고 작게 입을 벌렸다.
“와..! 너 진짜 되게 세구나.”
감탄하던 한소영이 갈무리를 시작했다. 시우가 말리려다가 같이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갈무리하고 있으니, 짐꾼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한소영이 소곤댔다.
“이 꼬리 털은 어디 쓰길래 비싼걸까?”
갈기늑대의 털 중 유일하게 부드러운 꼬리 털. 만지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글쎄? 붓이라도 만드나?”
시우는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성인용품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이 털로 만든 붓으로 애무하면 어떤 여자던지 보낼 수 있다고 들었다.
‘하나 살까?’
*
시우와 한소영이 점점 숲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깨갱
시우가 갈기늑대를 죽이면서 흩날리는 기운에 집중했다. 몬스터는 죽으면 주변에 기운을 퍼뜨렸다.
헌터들은 그 기운을 흡수해서 강해진다.
시우가 기운의 흐름을 느끼다가 한소영에게 말했다.
“소영아, 잠깐 손목 좀.”
“응? 자.”
의아함도 잠시, 한의사처럼 진맥을 하는 시우의 얼굴을 한소영이 빤히 바라봤다.
“왜 그래?”
시우가 눈을 감고 집중했다.
각성자와 비 각성자의 차이가 궁금했다. 혼원기공으로 해결 가능한지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녀의 기운을 살펴보니, [무협지구]의 일반인과 조금 달랐다.
‘깨진항아리? 구멍 난 풍선?’
한소영의 기운은 깨진 항아리같은 느낌이었다.
갈기늑대를 죽이고 퍼진 기운이 그녀에게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지만 쌓이지 못했다.
몸에 스며든 기운은 깨진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 버렸다.
시우에게 조금씩이나마 쌓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음···.”
시우가 인상을 조금 썼다. 그녀의 기운을 보고 있으니 무언가 간질거렸다.
임계점.
항아리가 가득 차서 넘쳐흐르는 순간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설마 이게 각성 조건인가?’
그런 확신이 들었다.
문제는 깨진 항아리를 채우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항아리부터 고쳐야 돼.’
방법이 없진 않았다.
그녀와 관계를 맺으면 항아리를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원기공으로 타인의 기운을 가장 잘 다룰 때는 성관계 때니까.
그녀의 몸과 마음이 개방될 수록 더 쉬워진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소영아 우리 섹스할래?’
시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어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구구절절 설명하려니 머리가 아팠다.
한소영이 조금 겁먹었다.
“왜? 나 어디 아파?”
“아니, 그건 아니고···.”
*
갈상인이 균열 내부로 들어왔다.
“흐으음~ 뉴비냄새!”
F급 균열 특유의 허접함이 물씬 풍겨왔다.
‘각성한지 일주일 된 놈이 겁도 없이 혼자서 들어가다니···.’
“흐흐흐..”
어떻게 혼내줄지 고민했다. 균열에 뒤따라 들어온 것을 떠들어 대면 귀찮으니 죽이는 것은 당연했다.
‘몬스터랑 싸움 붙일까?’
분명 놈은 보스 몬스터를 보면 도망갈 것이다. 그전에 발견해야 했다.
놈이 균열을 빠져나가면 곤란했다. 이렇게 완벽한 기회가 흔치는 않았다.
갈상인이 빠르게 자리를 떴다.
‘뭐야. 기본도 안 된 놈이잖아.’
사방에 흔적이 가득했다.
일반인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흔적.
게다가 흔적도 문제였다. 갈무리를 너무 대충했다.
‘쯧쯧. 이래서 뉴비는···.’
딱 봐도 가볍고 비싼 부위만 골라서 도려 낸 티가 났다. 조금만 무거워도 땅바닥에 버려 뒀다.
‘짐꾼을 ‘가져’왔으면 뽕을 뽑아야지 한심하긴! 균열에 연애질이나 하러 들어온 건가!’
그의 베테랑정신이 꿈틀거렸다. 빨리 참교육을 하라며 울부짖었다.
흔적을 추적했다. 친절하게 길을 내놔서 따라가기 편했다.
아우우우!
저 멀리서 갈기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곧이어 두 명의 인형이 공터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역시나 손을 부여잡고 연애질이나 하고 있었다.
갈상인이 숨죽이며 쳐다 봤다.
마지막 확인작업이 필요했다.
‘허리춤··· 없고, 가슴팍에도 없다.’
둘 다 권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갈상인의 입이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흐헤헤헤. 총도 없이! F급 균열에! 혼자 왔어?!”
그는 짐꾼은 사람으로 세지 않았다.
사사삭!
수풀을 헤치고 달려갔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라곤 없었다.
*
시우가 몸에 기운을 돌리며 감각을 세웠다. 갈상인이 숨죽이며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놈의 경지는 허접했지만 혹시 몰랐다.
총이라도 갈겼다간 다칠 수도 있었다.
그때 놈이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뛰쳐나왔다.
“흐헤헤헤. 총도 없이! F급 균열에! 혼자 왔어?!”
그러는 갈상인도 총은 없었다. 시우는 어이가 없었다.
“하..!”
갈상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끼야 다시 말해 봐라.”
“뭐?”
“아까 나한테 니가 왜 선배냐고 씨부리지 않았냐? 다시 해 보라고.”
시우가 이를 악물었다. 표정 관리하기 힘들었다.
“큭..!”
“푸힛! 응? 이제 와서 겁나? 혼나기 싫으면 해야지?”
이를 악문 시우가 입을 꾹닫았다.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으이!? 시바 짐꾼은 뭐 하러 가져온 거야? 연애질이라도 하려고? 응? 아카데미에서 그러라고 가르치든?”
“크하하하!”
시우가 결국 배를 잡고 웃어댔다.
시우가 웃자 갈상인의 목소리가 확 낮아졌다.
“···웃어? 하아···! 못쓰겠네. 겨우 F급짜리가 D급한테 개겨?”
갈상인이 자세를 잡았다. 일단 한 군데 잘라놓고 이야기할 작정이었다.
매섭게 시우를 노려보던 갈상인이 능력을 발동했다.
갈상인의 세상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능력은 ‘가속’. 본인의 몸을 두 배는 빠르게 할 수 있는 범용성 좋은 능력이었다.
이 능력을 가진 이후로 기습에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갈상인이 땅바닥을 박찼다.
채앵!
허공을 날았다. 갈상인의 검이.
“어?”
찢겨진 손아귀에서 피가 흘렀다. 갈상인이 멍하니 제 손바닥을 쳐다 봤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검을 놓쳐 버렸다.
욱신!
손목이 삐었는지 시큰거렸다.
“어, 어?”
시우가 검을 겨누고 있었는데 언제 빼든 것인지도 몰랐다.
갈상인은 시우가 장침을 제 몸에 박을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
시우가 몸이 마비된 갈상인을 쳐다 봤다.
장침을 이용한 점혈.
고수가 되면 손가락으로도 가능하지만 시우에겐 무리였다.
당화린에게 배운 것인데 유용한 기술이었다.
“···!”
말도 못 하고 몸을 작게 부들거리는 갈상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낭에서 권총을 꺼내 든 한소영이 물어 봤다.
“벌써 끝났어?”
“응. 좆밥이더라.”
한소영이 시우에게 물었다. 이놈에게 당한 것이 너무 많아서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못 움직이는 거야? 때려도 돼?”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당연하지. 맘껏 때려.”
딱! 딱!
한소영이 딱밤을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물건이야 ‘가져’오게? 응? 말해 봐.”
이마가 빨개진 채로 한소영을 노려보는 갈상인. 마비된 그가 무어라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눈만 점점 충혈 될 뿐이었다.
시우도 고통으로 일그러진 갈상인의 표정을 보니 통쾌함이 서렸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미친놈이 새벽에 대리로 불렀었지.’
하루 종일 짐꾼일로 고생한 뒤 균열에서 나왔다.
짜증 나는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갈상인이 일당을 떼먹으려 했다. 악을 써서 받아 냈다.
그랬더니 새벽에 술 취한목소리로 튀어나오라고 했다. 대리 대신 시우를 부른 것이다.
당연히 무시하고 안 갔더니, 꼬장이 시작됐다.
놈 때문에 파티가 잘 안 구해져서 한동안 땜빵이나 전전했다.
일주일 전에 한소영이 땜빵자리를 권했던 것이 바로 그때였다.
각성한 뒤로 정신없이 보내느라 잠시 잊었었다.
‘생각하니까 더 열 받네. 이걸 어떻게 죽이지?’
딱!
한소영이 손을 털며 말했다.
“아휴- 손 아파. 이 돌머리.”
갈상인을 혼내줄 방법과 한소영을 각성시킬 방법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녀를 보던 시우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소영아 나랑 섹스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