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 - 24화 - 재벌녀(2)
24화 - 재벌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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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장.
시우와 한소영이 서로에게 목검을 겨눴다.
작게 심호흡한 그녀가 푸른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목검을 내리쳤다.
시우의 팔이 올라가다가 멈칫했다. 팔꿈치에 생성된 작은 장막에서 저항이 느껴졌다.
한소영의 배리어였다.
배리어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지만 이 정도 저항이면 목이 베이기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녀와 시우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시우가 그녀의 검을 막으며 감탄했다.
“좋은데?”
“아..! 바로 깨져 버리네..”
그녀가 조금 시무룩해 하길래 시우가 고개를 저었다.
“동급이면 깨기 쉽지 않을 거야. 다시 해 보자.”
따악! 따악!
목검이 부딪치며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우는 그녀와 검을 주고받으며 감탄했다. 단순한 공방이지만 걸리적 거리는 배리어가 한둘이 아니다.
공격 경로에 생성된 배리어가 그녀를 향한 공격을 차단했다. 어쩌다 공격을 성공해도 피부에 생성된 배리어는 단단해서 깨기 쉽지 않았다.
공방에서 중요한 경로가 제한되자 그녀의 단순한 공격도 매섭게 느껴졌다.
그녀가 목검을 찔러왔다.
시우가 한걸음 물러나려는데 등 뒤에 배리어가 생성됐다.
맞아줄 생각으로 가슴에 내공을 두르고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가슴팍에 목검이 닿았다. 그러나 정작 공격에 성공한 그녀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윽···! 머리야.”
“왜 그래?”
한소영이 이마를 누르며 말했다.
“마력이 부족해서. 배리어가 몸에서 멀어질 수록 마력소모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 같아. 내구력도 낮아지고.”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등 뒤의 배리어가 불안정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각성한지 며칠 만에 이 정도로 능력을 다루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애초에 마력도 별로 없을탠데 감탄이 절로 흘렀다.
“며칠 안 됐는데 이 정도면 대단한 거야. 동급이면 이기기 힘들겠어.”
시우는 그녀를 영입하기 잘했단 생각에 뿌듯해졌다.
그녀는 재능이 있었다.
***
대련이 끝나고 시우는 카페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은 시우가 눈을 감았다. 약속 시간까지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갈상인의 기운을 살피기 위해서 내면에 집중했다.
[하급 마력코어]에 담긴 갈상인의 기운을 분석했는데 생각보다 대단했다.
‘가속이라···. 내 쾌(快)랑 느낌이 조금 다른데?’
시험 삼아 일부 기운을 소모해서 차이점을 알아냈다.
갈상인의 초능력으로 이뤄진 가속은 엄밀히 말하면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시우의 혼원기의 쾌(快) 속성은 몸을 빠르게 하는 것. 효과는 비슷했지만 담긴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단순히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조작하는 것이라···.’
갈상인의 ‘가속’ 능력을 분석하다가 두 가지 사용법을 깨달았다.
혼원기에 뒤섞어 쾌(快) 속성을 강화할 수 있다. 어쩌면 혼원기에도 가속 특성이 섞일지 몰랐다.
두 번째는 그대로 소모하는 것이다.
잠깐 동안이라면 일류고수 움직임에 필적할 것이라 예상됐다.
‘음···.
일단 천천히 분석하면서 나중에 처리하기로 했다. 어차피 가만 놔둬도 혼원기와 조금씩 뒤섞이니까.
어쩌면 그게 더 완벽한 소화방법이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에 시우가 눈을 떴다. 저번에 장예화에게 찾아갔을 때 안내해주던 비서 아가씨가 보였다.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건넸다. 아는 얼굴이라 더 반가웠다.
“오셨네요? 이나연씨 맞죠?”
150cm 가량 되는 귀여운 아가씨가 시우의 손을 맞잡으며 순진하게 웃었다.
“네 안녕하세요.”
***
“······이상입니다.”
보고를 마친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며 장예화를 힐끔거렸다. 그는 그녀가 다리를 꼬며 고민에 잠긴 것을 몰래 훔쳐보는 취미가 있었다.
눈을 감고 손가락을 까닥거리던 장예화가 말했다.
“흐응··· 알았어요. 전 퇴근할 거니까 나가 봐요.”
아쉬움을 삼킨 비서실장이 나가고 장예화가 생각했다.
3일 전에 각성한 헌터라니···.
그녀의 눈동자가 빛났다. 시우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다가 옆에 있는 여 헌터를 알게 됐다.
얼마 전까지 짐꾼이었는데 3일 전에 각성했다고 한다.
절로 흥분됐다.
집으로 가면서도 시우에 대한 생각만 났다.
“하아.. 진짜일까?”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신입 비서는 보낸지 오래였지만 그 후로 연락이 없었다.
세, 네시간 걸린다고 들었지만 잘되고 있는 건지,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집에 도착했는데도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서 답답했다.
‘드라마나 볼까..?’
그녀가 소파에 간드러지게 앉아서 TV를 켰다.
TV에서는 한창 인기 있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외모 때문에 약혼자에게 차이고 고통받던 여주가 각성하고 절세미인이 되어 복수하는 이야기.
얼굴에 가득하던 잡티가 몽땅 사라지고 우유 빛깔 아기 피부가 됐다. 뿐만 아니라 절벽이던 가슴이 볼록 하게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절로 질투가 치밀었다.
“저게 말이 돼? 어머, 어머! 저거 좀 봐”
어느새 여주가 달라붙는 약혼자를 발로 차버리고, 연하남과 끈적한 스킨십을 즐긴다.
“어머! 어머..! 어우 숭해···.”
노처녀인 그녀에게 자극이 너무 셌다.
주변 친구들에게 도도하다. 남자를 길가의 돌멩이로 여긴다. 이런 식의 가스라이팅을 당한 그녀는 노처녀로 30살을 맞이했다.
그런 그녀가 눈이 빠져라 드라마에 집중했다.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안 볼 수가 없었다.
어느새 드라마가 끝나갔다.
여주는 연하남도 모자라 옆집에 사는 신혼남편도 눈독들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며 엔딩음악이 흘렀다.
“하아···.”
침을 꼴깍 삼키던 장예화가 갈증을 느꼈다.
‘와인이나 한잔할까···.’
한쪽에 비치된 와인바에서 와인을 한잔 따랐다.
그녀가 홀로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며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다.
장예화가 뉴스를 보다 눈살을 찌푸렸다.
[OO철강 망나니 또 사고쳐.]
- 모 클럽에서 OO철강의 망나니로 유명한··· K씨
회사이름을 가리고 이니셜로 묘사했지만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버진 뭐 이런 놈이랑 선을 보래. 아이 짜증 나.”
SH스미스가 잘 안 됐다면 꼼짝없이 아버지 말을 따라 저런 놈과 결혼할 뻔했다.
벌컥 벌컥.
짜증 나서 와인을 벌컥거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지이잉- 지이잉-
“하아.. 이 밤중에 누구야..?”
걸려 온 전화에 짜증내던 그녀가 목을 풀었다.
“흠흠..”
중요한 사람이었다.
딸깍
그녀가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네. 장예화입니다.”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친 일하는 사람 특유의 어투였다.
- 장사장님. 나 이영철입니다.
이영철.
잘나가는 공방의 수장이었다.
단순한 공방이 아니었다. 손에 꼽힐 정도로 실력 있는 수십 명의 장인들이 모인 거대한 대장간의 주인.
균열에 나온 부산물을 이용한 최고급 무구를 생산하는 곳이다.
장예화의 회사인 SH스미스는 중저가 브랜드에서 독보적이다.
하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헌터들은 SH스미스 제품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성비가 아니라 성능이니까.
SH스미스가 하이엔드 제품에 약하다는 약점을 보안하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이영철 장인은 그녀가 한참 공들이던 상대였다.
“어머, 당연히 알죠. 직접 통화하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녀의 친절한 말투에 이영철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가 망설이다가 말했다.
- 하아··· 내 이 말을 할지 말지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하기로 했소.
장예화의 미간이 조금 찡그려졌다. 설마 제안을 거절하려고···?
“어머.. 어떤 말씀을 하시려고..?”
스마트폰으로 이영철의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내 딸이 그.. 장사장 회사에 취직을 했더라 이 말이요. 나도 몰랐으니 아마 사장님도 몰랐을 겁니다.”
장예화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 갔다.
‘이 씨? 신입 중에 이 씨가 누가 있더라?’
그녀가 모든 신입들의 이름을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 해졌다.
장예화의 목덜미에 땀방울이 또르르 흘렀다.
“어머. 그러셨구나. 제가 잘 봐 드릴게요! 이, 이름이···?”
- 내 딸년 이름은 이나연이요. 들어 보니까 비서로 취직했다던데···. 잘해주지 말고 눈물나도록 가르쳐 주시오.
장예화의 입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 스마트폰에서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대신 그···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위험한 일만 없게 해주시오. 이쪽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막 나가는 놈들이 좀 많소?
“요, 요즘엔 그러지 않..”
- 에이! 내가 무기 만들어서 먹고 사는 놈인데 그걸 모를까. 내 그게 걱정돼서 전화했소. 아무튼 부탁 좀 해도 되겠소?
창백해진 장예화의 얼굴색과 다르게, 목소리는 비교적 침착하게 나왔다.
“그으..러셨구나··· 호호. 제가 비서한테 그런 일을 시킬리가 없잖아요? 위험한 일은 절대! 안 시킬게요!”
스마트폰에서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믿고 끊겠소. 다음에 선물들고 찾아가지.”
“예. 그럼요. 좋은 밤 되세요~”
장예화가 떨리는 손으로 연락처를 뒤졌다.
[최시우 헌터]
바로 문자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했다.
- 시우씨?
- 시우씨 이거 보면 빨리 연락 좀 해주세요.
- 시우씨!!
···
응답이 없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 손톱을 물어뜯던 그녀가 전화를 걸었다.
‘받아라. 받아라.’
♬♬~
컬러링 소리가 지독하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교장님 훈화말씀도 이렇게 답답하지 않았는데.
딸각
‘아!’
스마트폰에서 귀찮은 듯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장예화가 다급하게 말했다.
“시우씨? 제 비서 아직 안 갔죠? 일이 좀 생겼어요. 다른 사람으로 보내줄게요.”
- ···.
대답 없는 상대에 그녀의 가슴이 철렁했다.
“시우씨?”
스마트폰에서 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어쩌죠? 이미 시작했는데요?
“아아..!”
장예화는 눈물이 찔금 나올 것 같았다. 아직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물었다.
“위, 위험한 건 아니죠?”
시우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 당연히 위험한 거 아니죠. 절대로 안전합니다.
그의 자신감에 장예화가 조금 안심했다. 창백하던 안색이 조금 돌아오고 손끝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믿을게요.”
장예화는 조금 안심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