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 - 31화 - 이다솜
31화 - 이다솜
각성한 이다혜가 능력을 시연했다.
이다혜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날카로운 창이 훈련실의 허수아비를 찔러댔다.
창은 묘하게 직선적이었다. 그걸 보던 시우가 물었다.
“곡선은 안 돼?”
눈을 감고 집중하던 이다혜가 고개를 저었다.
“잘 안돼요.”
“한 번 더 해 봐.”
그녀에게서 뻗어 나간 창이 허수아비를 향해 내달렸다.
시우가 그중간을 막아서자 이다혜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를 향해 날아가던 창이 휘면서 시우의 팔을 스쳐 지나갔다.
“되네.”
“으···”
시우의 옷깃이 잘려 나간 것을 보고 안절부절못하는 이다혜에게 말했다.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해 봐.“
시우는 삼류헌터 박진수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봤던 압도적인 강자가 있었다.
그림자를 다루는 사람이었는데 온 도시에 있는 그림자를 모조리 제어했다.
하늘을 가득채운 검은 창칼들이 하나의 몬스터를 향해 모조리 쏟아졌다.
그런 괴물 같은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몬스터가 떠올랐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시우가 이다혜에게 말했다.
“벌써 한계를 정하지 마. 각성자의 능력은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혹시 알아? 그림자를 통해 순간 이동이라도 하게 될지.”
이다혜는 잘려 나간 옷깃만 뚫어져라 볼 뿐이었다.
***
일주일 후.
시우가 균열에서 클랜원들을 쳐다 봤다.
한소영이 앞에서 몬스터들의 주의를 끌고, 뒤에 있는 이다혜가 그림자로 만든 무구들로 찌른다.
E급 균열의 근육질 원숭이가 순식간에 죽어 나가고 마지막 한 마리만 남았다.
“끼이이익!”
다른 원숭이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근육질 괴물.
원숭이라기보단 고릴라에 가까운 외형이었다.
놈이 바위처럼 단단한 가슴근육을 두드리며 포효했다.
쾅! 쾅! 쾅!
“우워어어어!!”
괴물의 포효소리에 두 여자의 눈빛에 긴장감이 돌았다.
한소영이 한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방패를 들고 그 앞에 섰다. 허리춤에 메어진 검은 뽑지도 않았다.
고릴라의 괴력이 깃든 주먹질이 그 작은 방패에 쏟아졌다.
한소영이 한 걸음씩 물러나며 그 공격을 받아냈다. 배리어의 틀어진 각도가 고릴라 주먹을 미묘하게 틀어냈다.
흘리지 못한 공격은 배리어를 씌운 방패로 막아 냈다.
“지금이야!”
그녀의 뒤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이다혜가 대충 쏘아낸 화살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눈 속임이다. 진짜 공격은 은밀하게 발아래서 다가왔다.
화살을 쳐 낸 고릴라의 발밑에서 검은 창살이 솟아올랐다. 놈의 하물이 꿰뚫렸다.
“끄와아아악!!”
괴물의 비명과 동시에 발악이 시작되려는 순간.
한소영이 비틀거리는 괴물의 턱을 배리어를 두른 주먹으로 후려쳤다. 턱이 박살 나며 괴물의 눈에서 빛이 꺼졌다.
***
그녀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균열에 익숙해졌다. 시우와 관계하면 할수록 혼원기 덕에 강해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균열에서 나오며 시우가 한소영에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없을 때는 F급만 다녀. 혹시 모르니까.”
“응.”
“마음 급하게 먹을 필요 없어 지금도 충분히 빠르니까.”
“알았다니까.”
한소영이 웃었다. 시우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기 때문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시우가 그녀와 잡담하며 클랜 하우스로 향했다.
이다혜는 말없이 졸졸 따라오는 중이었다. 그녀는 말이 너무 없어서 아직은 조금 불편했다.
‘시간 지나면 괜찮겠지···.’
클랜 하우스에 도착하니 누군가 입구에 서 있었다. 얼굴에 화상자국이 있는 남자였다.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에 절로 경계심이 들었다.
시우가 그를 바라보곤 미간을 조금 좁히다가 말했다.
“누구신지?”
얼굴에 화상자국이 있는 남자가 웃으며 인사했다.
“아..! 드디어 오셨군요.”
그가 악수를 권하며 손을 내밀었지만 시우는 멀뚱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왠지 모르게 꺼림칙해서 손을 잡기가 싫었다.
수상한 것투성이인 사람과 악수할 이유는 없었다.
머쓱해진 그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 처음 뵙겠습니다. 전 최준필이라는 C급 헌터입니다.”
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저는 최시우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손이 민망하군요. 하하. 저는 C급 헌터입니다.”
“네.”
시우가 멀뚱거리며 최준필이 말하는 것을 지켜봤다. 순간 최준필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얼굴에 난 화상자국 때문에 미묘한 변화도 티가 확났다.
최준필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평상심을 회복했다. 그러곤 어깨를 당당히 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당신의 클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3년 전에 C급으로 승급한 베테랑 헌터입니다. 계약금은 필요 없습니다. 정산 비율은 9:1 이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우가 말했다.
“안 됩니다.”
“예?”
“안 받는다구요. 클랜원으로.”
최준필이 당황했다. 아니 어째서? 이런 작은 클랜에 자신 같은 고급 인력이 와 준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한 마음을 담아 최준필이 물었다.
“아니 왜요?”
시우가 고개를 저었다. 의심스러운 놈을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놈의 자신감과 다르게 놈은 그다지 매력적인 클랜원도 아니었다.
“제 마음입니다. 이제 가주시죠.”
최준필이 조건을 달리하며 다시 매달렸다. 하지만 조건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우의 계속 된 거부에 최준필이 시우를 조금 노려보다가 떠났다.
시우가 그를 바라보며 눈가를 좁혔다. 의심스러운 놈이었다.
“의심스러운 것 천지네.”
한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뭔가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 차였다.
“뭔가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지긴 하더라. 왜 그러지? 화상자국 때문인가?”
“그거 뿐만 아니야. 내가 클랜만든 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데. 게다가 C급이 이런 클랜에 왜 들어와?”
한소영도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시우는 대단한 사람이어서 클랜에 들어오고 싶은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아니었다.
“···그러네. 뭐 하는 놈이지?”
“조사 좀 해 봐야겠다. 당분간 균열엔 가지 마.”
그 말에 한창 균열에 다니는 재미를 느끼던 한소영이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녀도 시우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응··· 알았어. 아쉽네.”
***
며칠 후.
최준필이 편의점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편의점에서 멀뚱거리며 서 있는 알바생을 향해서.
“당신이 왜 여깄어?”
알바생이 당황했다. 처음 보는 놈이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근데 눈빛이 이상해서 마주 화내기도 꺼려졌다.
근무 첫날부터 이런 놈을 만나다니···.
“네, 네?”
“이 시간에 근무하던 다솜씨··· 아니 알바생은 어디 가고 네놈이 여기 있냐고!”
알바생은 짜증이 조금 났지만 최대한 미소를 유지했다. 미친개한테 물려선 약도 없었다.
“하하···. 그만 뒀다고 들었는데요?”
최준필이 눈을 부릅떴다. 두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가 부들부들 떨면서 되물었다.
“그만뒀다고···?”
“네. 이사 갔다고-.”
콰앙!
알바생이 거칠게 흔들리는 문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시발. 부서진 거 아냐?”
*
최준필이 전력으로 달려갔다. 차가 막혀서 택시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꺄아아악!”
중간에 부딪친 누군가가 비명을 질러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지금 단 하나만을 생각하고 달려가는 중이었다.
“설마··· 안 돼!!”
최준필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어떤 건물 앞에 도착했다.
입구에 걸린 ‘구원 클랜’이라는 간판이 거슬렸다.
‘감히 누가 누굴 구원한다고···!’
최준필이 눈을 부릅떴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그녀가 웃으면서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제 언니의 손을 붙잡고 봉투를 흔들며 웃는 그녀를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저 미소를 보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참아왔는데.
엄한 놈이 그녀의 미소를 가로채 버렸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땅바닥을 쿵쿵거리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여기까지 뛰어오느라 거칠어진 숨이 튀어나왔다.
“하악..! 다, 다솜씨!! 이다솜씨!!”
거친 목소리에 이다솜이 움찔거렸다. 그녀가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돌아봤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얼굴만 보면 경계가 풀리···.
“누구세요?”
인상을 쓰며 말하는 이다솜을 본 최준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누구..세요···?”
최준필의 머리가 멈췄다.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이해가 잘 안 갔다.
“누구..? 누구라고?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몰라?”
그의 목소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이게 거칠게 달려온 것 때문인지 그녀의 말 때문인지 구별이 안 갔다.
“다, 다솜씨.. 나 몰라? 편의점에서 그렇게 많이 봤는데···?”
잠시 인상을 찡그리던 이다솜이 그제야 무언가 떠올렸다.
그녀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아..! 자주 오셨던 손님. 그런데요···? 저 편의점 그만 뒀는데요?”
그의 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끊어지기 직전의 가느다란 선만이 그의 본능을 억제했다.
“소.. 손님이라고? 내가? 그럼 왜 친절하게..! 으아악!”
그가 성큼성큼 걸어와 이다솜의 손목을 부여잡자 옆에서 경계하던 이다혜가 그를 밀치려 했다.
하지만 이다혜는 막 각성한 F급 헌터일 뿐이었다.
신체 능력만 따져 봐도 C급인 최준필과 비교가 안 됐다.
단숨에 다가오는 그녀를 뿌리쳤다.
이다혜가 땅바닥을 뒹굴며 뒤로 넘어졌다. 그녀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윽..!”
“언니!! 꺄아악!”
놀란 이다솜이 언니를 부축하려는 것을 최준필이 막았다.
손목을 꽉 부여잡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손.. 손님이라고!! 그렇게 친절하게 해 줘놓고 손님!! 이.. 이..! 게다가 여긴 뭐야! 여기 사는 거야?! 그런 거냐고!!”
최준필이 분노에 가득 차 버럭 소리를 질렀다.
최근에 지어진 깨끗한 건물. 그녀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그래선 안 됐다.
“아파..! 놔!”
고통에 찡그려지는 그녀의 얼굴에 최준필의 이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고통과 분노. 혐오와 두려움이 가득 차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참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그가 무언가 하려 할 때 안면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날아갔다.
콰아앙!
“끄어어억!”
땅바닥을 나뒹굴며 세상이 거칠게 흔들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는데 무언가 툭 떨어졌다.
본인의 앞니였다. 흔들리다가 툭 떨어진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누군가 자신을 발로 찬 것을 깨달았다.
“넌..!”
시우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최준필을 노려봤다.
“시발. 지금 뭐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