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 - 34화 - 청봉밀사
34화 - 청봉밀사
- 번쩍
[무협지구]에 도착한 시우가 눈을 뜨니 막 해가 떠오르는 산속이었다.
옆에는 온몸에 시우의 흔적이 남겨진 당화린이 잠들어 있었다. 숨쉴때마다 거대한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홀린 듯 바라봤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하얀 덩어리를 보던 시우가 정신을 차렸다.
‘아차. 퀘스트.’
시우가 인벤토리에서 [중급 퀘스트 발생권]을 꺼내 들었다. 마치 열차 티켓처럼 생긴 네모난 종이였다.
그가 종이를 움켜쥐니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무협지구]에서 중급 퀘스트를 발생 시키시겠습니까?
[ Y / N ]
‘응.’
[ 운명 계산 중··· ]
- 쿠구궁!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수레바퀴가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했고, 바다처럼 드넓은 강이 흐르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나의 소리에서 여러 가지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다양한 이미지들이 시우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그 모든 소리와 느낌이 환상처럼 사라져 버렸다.
시우가 곰곰이 생각했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고개를 저으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집중했다.
[ 운명 계산 완료 ]
- 퀘스트를 선택하십시오.
1. 청봉산의 이상 조사 및 해결.
2. 문지홍(전생체)의 은원 정리.
‘전생체의 은원..? 어우..’
상상만 해도 귀찮았다. 집어치우고 청봉산에 집중했다.
청봉밀 배달을 위해 가던 청봉밀사. 그 근처에 있는 산이 청봉산이다. 그 산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사하고 해결하라는 퀘스트.
‘뭔 일이 있길래···.’
잠시 고민하던 시우가 선택을 마쳤다.
[퀘스트]
- 청봉산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사하고 해결하십시오.
1. 청봉산의 이상 조사.
2. 이상 해결.
성공 보상 :
1. [무작위 중급 스킬]
2. [중급 정수 추출권]
3. [전투특화 무작위 전생(3레벨) 각성권]
- 제한 시간 : [13일 15시 21분···]
퀘스트 보상을 보던 시우가 눈을 빛냈다. 스킬은 말할 것도 없이 유용한 보상이었다.
‘무작위인 게 아쉽긴 한데··· 다른 건 뭐지?’
[중급 정수 추출권]
- 중급 이하 현상을 추출해 정수로 만든다.
모호한 설명에 시우가 눈가를 좁혔다.
‘현상? 혹시 각성자들의 능력도 현상인가?’
혼원기공으로 다른 사람의 기운을 흡수하면 그 능력을 흉내 낼 수 있긴 했다.
하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능력은 단순히 소모하여 사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건 일단 패스.’
[전투 특화 무작위 전생(3레벨) 각성권]
- 3레벨급 운명을 가진 이의 전생을 각성한다.
‘설명이 애매한데 경지로 알려주면 안 되나?’
시우의 생각과 동시에 설명이 추가됐다.
- [3레벨급] : 일류 ~ 초절정 경지를 가진 이의 운명.
시우의 눈이 커졌다.
‘초절정.’
초절정이라 하면 검기를 넘어 검강을 흩뿌려대는 엄청난 고수였다. 현실에서는 S급 헌터로 불리는 자들.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강자들이었다.
“후우···”
탐나는 보상이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직 얻은 것도 아닌데 설레발 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검강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모습을 상상하니 입꼬리가 자연히 올라갔다.
시우가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고개를 내렸다.
당화린의 거대한 가슴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어갔다. 당장에라도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동안 당화린이 생각날 때마다 [무협지구]에 잠깐씩 들렀다.
당연하다시피 당화린과 관계했는데 이틀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강인한 이류 무사의 체력도 소용없었다.
시우는 그때부터 미안해서 차마 [무협지구]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하지만 클랜 일이 정리가 됐으니 이제 여기에 신경 쓸 차례.
시우가 잠든 그녀를 쳐다보며 기억을 떠올렸다.
‘철무방 놈들이 쳐들어 왔었지.’
[무협지구]에서 그는 철무방의 습격을 물리치고 당화린과 관계한 상태였다.
그녀의 쫄깃한 속살을 떠올리다가 막 잠에서 깨어난 당화린과 눈이 마주쳤다.
당화린이 시우를 째려봤다. 이틀내내 시달려서 너무 피곤했다. 그녀가 목이 잠긴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으.. 완전 짐승도 아니고··· 도대체 얼마나 하는 거야.”
“미안.”
할 말이 없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이틀내내 짐승한테 범해진 기분이겠지. 시우가 물을 마시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도 좋았.. 이크!”
“뭐엇! 합..!”
시우가 그녀의 입에 도너츠를 하나 집어넣었다. 새하얀 슈가파우더가 듬뿍 묻혀진 도너츠였다.
“미안, 이거 하나 먹어. 배고프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그녀에게 도너츠를 바쳤다.
눈썹을 모으며 화내려던 당화린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콤한 맛에 한껏 오므려졌던 이마가 점점 풀려 나갔다.
“우움.. 그러니까.. 우물- 너는 꿀꺽. 흐아! 이게 뭐야? 아니지! 아무튼 너는-!”
한참을 잔소리하던 당화린이 한숨을 쉬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시우가 입가를 닦아주자 그녀의 잔소리가 완전히 멎었다.
“···알았어?”
“응. 앞으론 자제할게.”
“자제.. 하아..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싶냐고 물으면 당연하지.
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당화린도 조금 고민에 잠겼다.
“음.. 어쩌지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네.. 너무 힘든데.”
그녀 혼자서 안 된다면 동료를 모으면 될 텐데··· 나중에 그녀가 기분 좋아보일 때 말해 보기로 했다.
물을 마시고 완전히 잠에서 깬 당화린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런데 철무방은 괜찮을까?”
잠시 고민하던 시우가 말했다.
“걔네 입장에서 저번에 습격한 건 무리한 거 아냐?”
“아마도? 철무방이 호남성에서 이름높긴 하지만 무가도 아닌데 일류 무사를 잃은 것은 타격이 크겠지.”
예상대로의 답변에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끄자.”
황당한 대답에 당화린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떠올랐다.
“응? 신경 끄자구?”
“어. 그 망나니놈 상대편 세력도 있다며? 첫째 아가씨던가?”
“그랬었지.”
“그쪽도 머리가 있다면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지 않을까? 정치적으로든 무력적으로든.”
“음··· 그렇겠지?”
“지네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도록 냅두자고.”
당화린이 조금 감탄했다.
“하긴 그쪽에서도 책임질 사람이 필요할 테니까···.”
시우가 말을 이었다.
“혹시나 우릴 찾아오면 처리하면 되는 거고, 아무튼 호남성에 되돌아가기 전까지 신경 끄자.”
그녀가 작게 입을 벌리며 말했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같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네.”
“일단 오늘 하루 푹 쉬자.”
“하아··· 그래. 오늘은 푹 쉴거야. 건들지 마.”
시우가 피식 웃었다. 솔직히 본인도 너무했다 싶었다. 이틀간 제대로 밥도 안 먹고 수십 번을 넘게 했으니···
“그래. 배 안 고파? 밥이라도 먹자.”
당화린이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감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거 먹어봐.”
“신기하게 생겼네. 이게 뭐야?”
시우가 데리야끼 소스가 듬뿍 묻혀진 수제버거를 내밀었다.
“수제 버거. 아니 햄버거인가?”
“햄버거? 신기한 이름이네.”
당화린이라고 모든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달달한 맛이 있는 음식은 대체로 좋아했다.
시우가 수제버거를 향해 입을 벌리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 봤다.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선홍빛 혓바닥이 보이니 자연스럽게 집중력이 올라갔다.
그 시선에 당화린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민망하게 왜 그리 보는 거야. 딴 데 봐.”
“귀여워서.”
“뭐, 뭐어..? 나 참.”
그녀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부끄러워하던 그녀가 결국 햄버거를 깨물었다.
당화린의 눈이 커지고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우물우물.
귀여운 다람쥐처럼 우물거리는 그녀를 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입가에는 당연하게도 소스가 묻혀 있었다. 흉하지 않게 살짝 묻어 있는 소스가 신기했다.
일부러 묻힌 것인지 실수인지 알 수 없는 절묘한 위치.
“맛있어!”
눈동자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그녀의 입가를 닦아줬다. 당화린은 입가에 닿은 부드러운 손수건이 기분 좋은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던 시우도 버거를 한입 깨물었다.
‘오? 맛있는데?’
혀가 즐거워졌다.
신선한 양상추와 함께하는 고기패티, 그리고 그것들을 아우르는 소스가 풍부한 맛을 줬다.
햄버거는 인스턴트라는 편견이 있던 시우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당화린이 저리 맛있게 먹는 이유가 있었다.
밥 먹다가 시우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당화린은 두볼이 빵빵해져서 행복한 표정으로 버거를 먹고 있었다.
“화린아.”
우물거리며 수제 버거를 먹던 당화린이 고개를 들었다.
“웅?”
“넌 이류잖아?”
“응. 그런데?”
시우가 그녀가 먹던 것을 다 삼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대회는 어떻게, 아니 왜 나온 거야?”
“어어..? 아니 그, 그게..”
시선을 피하는 그녀에게 시우가 미묘하게 웃었다.
“화린이 사기친거야?”
“사, 사기라니..!”
그녀의 귓불이 빨개졌다.
“경지숨기고 삼류대회에 나오면 사기아닌가?”
“으읏..! 미, 미안..”
아무말도 못 하고 눈길을 피하는 그녀에게 시우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살다 보면 사기도 치고 그러는 거지 안 그래?”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한 듯 거세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