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 - 35화 - 청봉밀사(2)
35화 - 청봉밀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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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달리던 시우와 당화린이 말에서 내렸다. 하루 종일 말을 탔더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당화린이 기지개를 켜는 것을 보던 시우가 물었다.
“검기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
“검기..? 갑자기 왜?”
“일류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뭐어? 이류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내공도 얼마 없지 않아?”
시우가 볼을 긁적였다. 외장 마력코어에 대해 설명하자니 애매했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검기라··· 어? 잠깐만.”
당화린이 단검을 하나 뽑아 들고 눈을 반개했다. 평소와 다르게 차가운 분위기가 그녀에게서 풍겨나왔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 단검에 눈이갔다.
- 우웅
미약한 아지랑이가 단검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시우의 눈이 조금 커졌다.
‘검기? 아니 언제?’
지금 보니까 그녀의 기운이 이전과 달랐다.
눈을 반개한 당화린이 머리를 흔들더니 아지랑이도 사라졌다. 그녀의 얼굴이 약간 상기됐다.
“하아.. 이제 알겠네. 검기는 집중이야.”
시우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일단 축하부터 건넸다.
“축하해. 언제 일류가 된 거야?”
그녀의 눈빛이 달콤해졌다. 무언가 감격스러운 얼굴에 손끝도 조금 떨렸다.
“흠흠.. 시우랑 그, 그거 하다 보니까 오늘 기운이 이상하더라구.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히히.”
단검을 기쁜 눈으로 바라보던 당화린이 시우를 쳐다봤다.
“이제야 스승님이 말씀하셨던 게 이해가 가. 검기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강력한 집중력으로 기운을 응집한 게 다야.”
“집중?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당화린이 귀엽다는 듯 시우를 보며 웃었다.
“당연하지. 어지간한 집중력으로 될 거 같아? 웬만한 일류 무사도 명상을 통해 집중력을 끌어올려야 가능한 게 검기야.”
“아, 그래서 저번에 철무방 무사가 검기를 못 쓰던 건가.”
“그자는 아마 일류 초입일 거야. 부상을 입고 검기를 휘두를 만한 집중력은 없었겠지.“
“그렇군···.”
약간 실망하는 시우를 보던 당화린이 고개를 저었다.
“내 단검에다가 철붙이를 대봐.”
그녀가 눈을 감고 집중하니 단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시우는 그녀의 단검에 비도를 들이대봤다.
“어?”
약간의 저항과 함께 철로 만들어진 비도가 조각났다. 엄청난 절삭력이었다.
그녀가 눈을 뜨며 말했다.
“제대로 된 일류 무사는 당연히 전투 중에 검기를 능숙하게 사용해. 검을 마주댔다간 조각나버릴 텐데 그런 고수와 빈손으로 싸울 수 있겠어?”
시우가 상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검이 잘릴 정도로 날카롭다면··· 검술차이가 아무리 대단해도 순식간이다.
당화린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집중력이 조금 부족해도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해.”
“뭔데?”
당화린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원래 이런 거 함부로 알려주면 안 되는데··· 시우니까 알려줄게.”
그 기특한 소리에 시우가 그녀를 와락 안았다가 깜짝 놀랐다.
“앗 따가!”
그녀 상의에 숨겨진 장침에 찔렸다. 그녀가 웃으며 시우를 살짝 밀어냈다.
“아하하..! 위험하다니까. 난 함부로 안으면 안 돼!”
시우가 그녀의 상의를 노려봤다. 거대한 가슴이 흔들거리는데 마음껏 안을 수 없다니.
참담한 기분이었다.
저 장침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그녀에게 아공간 관련 물건을 주고자 마음먹었다.
당화린이 시우를 보며 작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흠흠.. 아무튼 검기를 쉽게 사용하는 방법은 초식이야.”
시우는 내려치기를 하며 태산압정이라고 외치던 삼류 무사들이 떠올랐다.
“초식? 태산압정같은 거?”
“응. 거창한 이름에 비해 내려베기인 그거.”
혼원기공은 기공술이라 사용할 만한 초식이 딱히 없었다. 몇몇 초식들이 있긴했는데 시우의 경지론 무리였다.
“쉽게 말하면 초식은 일련의 동작을 몸이 기억하게 하는 거야.”
“몸이 기억한다는 게 무슨 말이야?”
“가장 간단한 예가··· 젓가락질? 보통 젓가락질을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게 다루잖아? 음식을 집는다고 생각하지 손가락을 벌리고 다시 오므리고··· 이러진 않잖아?”
“그렇지.”
“그것처럼 어떤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머리로 신경 쓰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곤 해. 수십 번을 찌르고 베는 것을 몸이 기억하게 하고 이름 붙이는 거지. 그게 초식이야.”
당화린이 말을 이었다.
“초식이 몸에 익숙해지면 두 가지 장점이 생겨.”
“두 가지?”
“응. 하나는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거랑···.”
시우도 자주 사용하는 몇몇 동작이 떠올랐다. 진각과 동시에 검을 내지르는 것. 급격한 돌진에 이은 찌르기였다.
“아까 말했던 검기를 사용할 때 유리해.”
시우가 잠시 고민하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머리로는 검기를 유지하고 몸은 알아서 검을 휘두르는 건가?”
당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면 집중력이 부족해도 검기로 싸울 수 있어. 제대로 된 검기보단 투박하겠지만 그래도 검기는 검기야. 이 정도만 할 줄 알아도 훌륭한 일류 무사야.”
“그렇군···.”
시우가 검기를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뛰었다. 하나의 벽만 넘으면 검기를 피워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녀가 경지를 갈무리하기 위해 하루를 더 쉬고 다시 달렸다. 덕분에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이양시 근처에 있는 청봉현.
청봉밀사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인구 밀도만 따지면 호남성보다 높을 정도로.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시우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의아해졌다.
“사람들 표정이 어둡네?”
“그러게..? 꽤 부유한 마을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 청봉밀사에 도착했다.
막연하게 스님들이 있는 절을 상상했는데 조금 달랐다. 바삐 돌아가는 상단같은 느낌이었다.
일꾼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찰이긴 한가..?”
어디선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호.. 옛날에 사찰이었긴 한데 지금은 아니랍니다. 그저 전설이 있을 뿐이지요.”
육덕진 가슴을 가진 여자가 시우와 당화린에게 인사했다.
전체적으로 짧은 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새하얀 살결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통적인 도사가 아니라 활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30대 중반의 매력적인 유부녀가 떠오르는 미모.
그런데 전설?
시우의 눈에 깃든 호기심을 알았는지 여도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시우의 얼굴을 보더니 더욱 친절해졌다.
“옛날에 한 신선이 강림하여 이곳에서 거악과 싸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 신선은 거악을 무찌르고 무너진 사찰을 다시 일으켰죠. 그러곤 청봉을 지키라 명했다고 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선도 신선인데 강림한 신선이 겨우 꿀벌이나 지키라 명하다니 이상한 이야기였다.
“청봉을 지키라 했다고요?”
“네. 그때부터 이곳에서 청봉밀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설이 사실인지는 저도 모른답니다.”
여도사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무언가 유혹적인 몸동작에 홀린 듯 바라봤다.
옆에 있던 당화린이 시우를 툭 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전 최시우라고 합니다. 하오문에서 의뢰받고 왔습니다.”
시우의 말을 듣고 여도사가 조금 당황했다.
“아..! 이런. 길이 엇갈리셨나 보군요.”
“네?”
여도사가 미안한 듯 시우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요즘 청봉밀 채집량이 크게 떨어져서 의뢰를 취소한 참이었습니다.”
“취소요?”
“네. 그래도 찾아와 주셨으니 일부나마 보상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우가 고민에 잠겨 있는데 여도사가 누군가를 불러 지시했다.
“청봉밀차 두잔 가져오너라.”
“예.”
곧이어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차가 도착했다. 김이 모락모락 풍기는 따뜻한 차였다.
여도사가 시우와 당화린에게 차를 건넸다.
“이건 죄송한 마음에 드리는 선물입니다. 제 비법이 담겨 있는데 입에 맞으시길 바랍니다.”
말과는 달리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차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감사합니다만. 물량이 부족하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머, 걱정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답니다.”
그녀의 미소에 당화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자의 감 때문에 무언가 거슬렸다.
경계하는 그녀와 달리 시우는 차를 들어 올렸다. 향긋한 향기가 매혹적이었다.
‘독이라도 있으면··· 현실로 튀어야겠다.’
아무런 은원도 없는 미시 여도사가 자신을 해칠 것 같지는 않아서 반쯤 마음을 놓았다.
후루룩
따듯한 차를 한 모금 삼키니 가장 먼저 달콤한 꿀향이 맡아졌다. 이어서 여러 약재들의 씁쓸한 맛이 지나고 은은한 단맛과 함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차를 마시자 내공이 미미하게 증가하는 게 느껴졌다.
혼원기공을 익혀 기감에 예민한 시우이기에 느낄 수 있었다. 현대에 있는 클랜원들에게 주면 딱 좋은 영약이었다.
이것만 많으면 그녀들과 시우 모두 성장이 빨라질 것이다. 게다가 효과도 효과인데 맛도 좋았다.
현대에서 팔아도 먹힐 맛.
끝맛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무언가 익숙한 맛이었다.
‘이 부드러움은··· 우유?’
왠지 모르게 여도사의 거대한 가슴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