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 - 38화 - 청봉밀사(5)
38화 - 청봉밀사(5)
주설란이 놀란 눈으로 화면을 봤다.
“세상에 이게 대체···.”
시우와 내기를 한 털북숭이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흑의를 입은 정체불명의 괴한들. 그들이 털북숭이를 쫓고 있었다.
시우가 눈가를 찌푸렸다.
‘뭐야 저놈들은.’
단숨에 따라잡힌 그가 제압당했다. 검을 뽑고 저항했으나 의미가 없었다. 검이 반토막 나며 그대로 붙잡혔다.
‘검기?’
남자는 털북숭이를 찌르기 시작했다. 급소가 아닌부분만 섬세하게 찌르는 모습이 고문하는 것에 익숙해 보였다.
털북숭이가 울고불고 사정했으나 의미가 없었다. 남자는 무심한 얼굴로 검을 찔러댔다.
온몸에서 피를 뿜어내던 털북숭이가 결국 시체가 됐다.
옆에서 같이 화면을 보던 당화린의 표정에 불쾌감이 서렸다.
“윽···! 뭐야 저놈들은.”
한쪽에 서 있던 제사복을 입은 남자가 무언가 꺼내 들었다. 피처럼 붉어 보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방울이었다.
그가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털북숭이의 시체에서 검은 무언가가 빠져나오더니 흡수되기 시작했다.
화면으로만 봐도 불쾌해지는 광경이었다.
“혈마령!”
몰래 화면을 쳐다보던 주설란이 소리쳤다. 그녀는 드론의 신기함도 잊고 소리쳤다.
“그게 뭔데?”
“또 어디서 기어 나온건지··· 사람을 죽이고 영혼을 흡수하는 저주받은 물건이다.”
영혼을 대가로 기이한 공능을 부린다고 한다.
“음..”
털북숭이 시체를 집어 든 놈들이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쪽 방향으로 빠르게 드론을 날렸더니 저 멀리서 어떤 구조물이 보였다. 제단처럼 보이는 구조물.
절묘하게 가려져 있어 쉽게 찾기 힘든 위치였다.
토막난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고 그것을 제단에 쌓아 놓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수십 명이 모여 있어 보기만 해도 피곤해졌다.
“하···.”
시우가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청봉산의 이상 조사 완료.
저놈들을 확인하니 이상을 조사하라는 퀘스트가 클리어 됐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놈들. 저것들을 해결해야 퀘스트가 클리어 될 듯싶었다.
고민하던 시우가 주설란에게 말했다.
“무림맹에다 보고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설란이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힘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내가 말해도 안 믿을 거야. 난 그녀의 자식이니까. 믿어 준다 해도 하급무사들이나 한두 명 보내겠지. 희생이 생겨서야 제대로 일이 진행될껄.”
그 말에 시우가 고민했다.
제단을 처리하는 건 힘들고 위험했지만 따로 떨어진 몇 명은 가능해 보였다.
화면으로 봐서 부정확 했지만 한 명은 일류로 보이고 나머지는 별거 없었다.
“그럼 저놈들 죽이고 빠져나가자. 저 방울을 가져가면 맹에서도 믿어 주지 않겠어?“
주설란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아..! 맞아. 혈마령이면 충분해. 그럼 무림맹에서 제대로 된-”
당화린이 시우를 말렸다.
“잠깐만, 어디로 빠져나가게? 소란이 일 텐데 얼마 못 가서 쫓기게 될 거야. 너무 위험해.”
주설란이 대답했다.
“마을로 가면 돼. 청봉현.”
당화린이 눈가를 찌푸렸다.
“거기로 갔다가 저놈들이 쳐들어오면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할 텐데?”
주설란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거기엔 대단한 고수가 있어. 거기까지만 가면 안전해.”
“고수?”
“응. 청봉밀사엔 청월선자가 계셔. 엄청난 고수야.”
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그 가슴 큰 여도사를 말하는 거냐?”
뜨악한 주설란이 차가운 눈빛으로 시우를 쳐다 봤다.
“천박한..! 감히 그분께 그따위 소릴하다니.”
시우가 피식 웃으며 말을 돌렸다.
“얼마나 고수인데? 저놈들이 다 몰려들어도 괜찮을 정도로?”
“..저놈들이 괜히 저리 몰래 굴겠어? 저깟놈들 백이 몰려가도 청월선자께는 어림도 없어.”
그녀의 자신감에 당화린의 표정도 조금 풀렸다.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시우가 놈들의 주둔지 까지 거리를 보고 머리를 굴렸다.
기습으로 빠르게 처리하고 도망치면 별로 위험할 것 같지 않았다.
“아무튼 저놈들 빨리 처리하자. 합류하면 골치 아프겠네.”
“후.. 좋아. 그런데 너는 왜 나를 도와주는 거지?”
시우의 입장에선 그녀가 자신을 도와주는 거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말했잖아. 나도 의뢰 받았다고.”
그녀가 조금 납득하며 감탄했다.
“그대는 신의가 있구나. 그 정도 일로 저런 놈들과 싸우려 들다니.”
“윽. 전혀.”
시우는 그런 피곤한 행동을 하고싶지 않았다. 그저 상황이 적당했을 뿐.
*
하늘높이 떠 있는 드론을 통해 모든 상황을 파악하니 압도적인 이점이 있었다.
일행이 놈들에게 접근했다. 들키지 않을 만한 거리에서 놈들을 몰래 쳐다 봤다.
역시나 일류 한 명을 제외하곤 별 볼 일 없는 놈들이었다.
당화린이 양손 가득 비도를 집어 들었다.
이상함을 느낀 일류고수가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는 순간.
-쉐에엑!
-파파팍!
“끄으윽..!”
여섯 개의 비도가 동시에 날아갔다. 두 명을 제외한 모두의 치명적인 급소에 암기가 꽂혔다.
시우가 그녀의 솜씨에 조금 감탄한 것도 잠시.
멀쩡한 일류를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괴상한 방울을 든 남자와 일류 무사는 멀쩡했다. 그들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당화린이 아쉬워했다. 그녀의 비도는 일류 무사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방울든 남자를 지킨 것이 제대로 된 일류 고수였다. 역시나 총화기도 통하지 않을 만한 고수였다.
그가 분노에 가득 차 소리쳤다.
“감히..! 누구냐!!”
곧 시체가 될 자들과 대화할 이유는 없었다.
“치자.”
문답 무용으로 달려드는 시우 일행을 제사복 입은 남자가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네놈들은 죽어서도 고통 받으리라!”
그가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 짤랑! 짤랑!
듣기 싫은 방울 소리와 동시에 불길한 기파가 쏟아졌다. 일행이 반사적으로 막았으나 의미가 없었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그녀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이상한 소리를 웅얼거렸다.
“아, 안 돼..!”
“흐윽..!”
그것을 보던 시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멀쩡했기에 두 여자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것은 방울든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환령음을 듣고도 멀쩡한 거지..?”
‘환령음? 환상인가.’
시우가 대충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
놈들의 수준이라고 해 봐야 일류 한 명 빼곤 별거 없었다.
때문에 기습을 통해 하위 무사들을 쓸어 버리고 남은 일류는 세 명이서 달려들면 쉽게 이기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저 방울 소리 때문에 계획이 흐트러졌다.
일류 무사가 검을 뽑으며 시우에게 다가왔다.
“고문하다 보면 뭐든 나오겠지. 내가 처리하겠소.”
시우가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이길 수 있나?’
지금이라도 다른 세상으로 가서 강해져서 돌아와야 하는가?
‘일격.’
일검에 못 죽이면 현실로 도망간다.
시우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상대의 검에 검기가 맺혀들었다. 검기를 두르고 자유롭게 걸어오는 것이 상당한 고수였다.
‘가속, 쾌(快).’
갈상인에게서 뽑아낸 가속이 절반 이상 소모됐다.
세상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일류 무사의 검에 맺힌 검기가 느려진 세상 속에서도 빠르게 다가왔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 시우와 상대만이 멀쩡히 움직였다.
시우가 진각을 밟았다. 온몸의 마력과 내공이 들끓었다. 도망가도 모자랄 지경에 검기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상대의 인상이 천천히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얼핏 보이는 눈동자에 놀라움이 서렸다.
강렬한 검기를 두른 상대의 검 방향이 바뀌었다. 팔이 아닌 목을 향해서.
서로가 비슷한 속도로 상대의 목을 노렸다. 상대가 중간에 검 끝을 돌렸음에도 시우보다 빨랐다.
그러니 시우의 목이 먼저 떨어질 것이 당연했다. 원래라면.
다가오던 상대의 팔이 아주 잠시 멈췄다. 허공에 생겨난 푸른 장막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경악서린 그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사람 목을 베는데 검기는 필요 없었다.
-촤아악!
-투욱.
빙글빙글 돌며 주변에 피를 뿌리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거만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방울든 남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 어떻게···!”
시우는 조금 전에 내질렀던 일검이 묘하게 아쉬웠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갔으면 마력 코어에 담긴 한소영의 배리어를 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적을 앞에 두고 여운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넌 도대체 뭐냐!! 환상도 통하지 않고..!”
방울든 남자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거만하던 표정이 공포에 물들기 시작했다.
시우가 검을 들고 다가가며 뒤에 있는 여자들을 가리켰다.
“저거 당장 풀어라. 뒤지기 싫으면.”
“뭐, 뭐···! 시, 싫다. 날 보내주지 않으면 그년들은 평생-“
같잖은 소리를 하는 놈을 보며 시우가 표정을 굳혔다. 말로 해서 알아들을 놈이 아니었다.
“그냥 죽어라. 내가 알아서 할게. 아니다 죽이면 풀릴 것 같은데 아니야?”
“흡..! 아, 아니다. 내가 죽으면..!”
놈의 얼굴에 당황이 서리고 시우가 결심했다. 만약에 환상이 풀리지 않는다면 카르마를 모아 해결할 마음이었다.
“그냥 죽어.”
시우가 다가가자 놈이 뒷걸음질 치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으···”
남자가 눈을 질끈 감더니 쥐고 있던 방울을 높이 들었다.
-푸욱!
방울이 심장을 관통했다. 손잡이가 송곳처럼 날카로워서 가능한 일이었다.
스스로 심장을 꿰뚫고 입에서 피를 토하던 놈이 웃었다.
“쿨럭..! 흐흐.. 혈존이시여..”
저게 뭐든 간에 적이 바라는 일을 그대로 놔둘 순 없었다.
시우의 검이 놈의 목을 날려 버렸다.
‘뭐야.’
그런데도 놈의 목에선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붉은색이던 목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온몸의 피가 어딘가로 응집되듯이 사지 말단부터 흰색으로 변했다.
눈살을 찌푸린 시우가 검을 휘둘렀다. 뭔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온몸을 갈기갈기 자르는데 어느 순간 검이 멈춰 섰다.
심장부위에 파고든 검이 꿀렁거리는 살에 의해 붙잡혔다. 검신을 통해 손끝에 불쾌한 감각이 느껴졌다.
- 촤악!
시우가 놈의 배를 걷어차 억지로 검을 뽑아 냈다.
바닥에 나뒹구는 놈의 몸, 아니 살덩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시우가 그것을 노려보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으으.. 뭐, 뭐야..?”
당화린의 괴로운 듯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 안심됐다. 환상이 풀렸다.
‘죽이면 풀리는 거였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꿈틀거리는 살덩이가 심상치 않았다.
‘염화(念火).’
시우가 붉은 점이 맺힌 검을 내질렀다. 살덩이를 파고든 염화가 살덩이를 태우기 시작하자 불쾌한 냄새가 났다.
-그워어어
입도 없는 살덩이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쩌억
살덩이가 갈라지며 거대한 팔이 튀어나왔다.
그 작은 살덩이에서 튀어나온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괴물.
4미터가 넘는 인간형 괴물이었는데 피부도 없는 끔찍한 생김새였다. 새빨간 근육과 혈관이 그대로 드러난 외형이었다.
“끄와아악!”
놈이 염화에 불타고 있는 팔을 보더니 망설임 없이 뜯어 버렸다.
-찌익
-콰콰광!
던져진 팔이 수십 구의 나무를 박살 내며 날아갔다. 팔 길이만 해도 시우의 키만했다.
엄청난 괴력.
게다가 찢겨나간 팔이 조금씩 재생되고 있었다.
“허..!”
압도적인 힘과 재생력을 가진 괴물.
피부도 제대로 없는 놈이 끔찍한 목소리로 포효했다.
“크워어어!!”
놈의 포효에 공기파가 터져 나갔다. 압도적인 위용이었지만 놈이 뜯어낸 팔을 보니 승산이 보였다.
팔을 뜯어냈다는 것은 염화가 통한다는 것이다.
시우가 검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