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9 - 39화 - 청봉밀사(6)
39화 - 청봉밀사(6)
뽑혀진 팔과 함께 멀리 날아갔던 염화가 시우에게 되돌아왔다.
괴물은 시우의 검에 맺힌 붉은 점을 경계하며 으르렁거렸다.
평생을 몬스터와 싸워왔던 박진수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팔다리부터.’
무리하게 치명타를 먹일 생각을 버렸다.
- 후웅!
거대한 팔이 철퇴처럼 내리꽂혔다.
-콰앙!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 위력적인 일격에 집중력이 절로 올라갔다. 가속을 쓴 것도 아닌데 놈의 공격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한걸음 옆으로 피하고 차분하게 검을 휘둘렀다.
약간의 저항이 느껴졌지만 손가락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어디선가 비도가 날아와 괴물의 눈알에 꽂혀들었다. 당화린의 비도였다.
“오..!”
“끄워어억!”
괴물은 눈알에 박힌 비도가 거슬리는지 망설임 없이 파내버렸다.
제 눈을 파버린 괴물의 눈이 텅 비었다. 그런데 안쪽에서 살이 차오르는 게 눈마저 재생하는 듯했다.
잘려 나간 손가락도 마찬가지였다.
“허..”
시우가 어찌 상대할지 고민하며 괴물 주위를 빙빙 돌았다.
-쾅! 쾅!
한대만 맞아도 치명상을 입을 위력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피부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만 느껴도 피부가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눈알이 재생되지 않은 사각을 이용하여 공격을 피하는데 주설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 좀 끌어 줘!”
그녀가 주변을 돌며 불티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시우가 놈의 공격을 피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검을 휘둘렀다.
당화린도 비도를 날려대며 하나 남은 눈알을 앗아가려 했지만 괴물이 한쪽 눈을 필사적으로 지켰다.
‘쾌(快), 섬(剡)’
빠름과 날카로움. 놈의 억센 살과 뼈도 날카로움이 담긴 검에 잘려 나갔다. 검기까진 아니어도 충분히 날카로운 검이었다.
괴물의 주위를 돌며 힘줄이나 사지 말단부위를 토막 냈다. 당화린의 비도가 놈을 고슴도치로 만들었으니 이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더럽게 끈질기네.’
재생력이 문제였다. 놈의 손가락을 수십 번 잘라 냈으나 다시 자라났다. 게다가 재생되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는 기분이었다.
시우가 빈틈을 노리고 검을 내질렀다.
-푸욱!
검이 살에 파묻혀서 전진하지 않았다.
‘질겨졌어?’
괴물이 당하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어느새 놈은 점점 강해지는 중이었다. 재생능력도 피곤한데 적응력까지 좋았다.
갑작스러운 저항에 시우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놈의 다리가 날아왔다.
시우가 얼마 안 남은 가속능력을 사용하려다 감탄했다.
- 쾅!
비도가 날아와 다리를 막았다.
저 가벼운 비도가 어떻게 저런 괴물의 공격을 막아선 것인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얼핏 보이는 당화린의 안색이 헤쓱했다.
시우가 도망을 고민하고 있을 때 주설란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 됐어. 피해!”
- 콰아앙!
그녀의 목소리와 동시에 사방에 퍼져 있던 불티가 놈에게 집중됐다.
불티 하나하나가 의지를 갖춘 듯 괴물에게 쏘아졌다. 날아온 불꽃들이 괴물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워어어!”
괴물이 괴로운 듯 팔을 허우적댔다.
그것을 보던 시우가 멈칫거렸다. 올라간 집중력에 염화 속으로 주변에 있는 기운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염화는 응집하려는 성질이 있었다.
‘이거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시도해 볼지 말지 고민했다.
“끄워억!”
괴물이 괴로운 듯 포효했지만 기세는 여전했다.
불타버린 살덩이가 떨어지며 재생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것을 보니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다.
주설란은 코피를 흘려대며 괴물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우가 화린이에게 말했다.
“화린아 저놈 이마 뼈 좀 뚫어줄 수 있어?”
“..해볼게.”
그녀가 녹빛 비도를 꺼내 들더니 집중하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상황에도 눈을 반개하던 그녀의 비도에 작게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것을 보던 시우가 준비했다.
당화린의 손이 히끗거림과 동시에 시우가 땅을 밟았다.
‘섬(剡), 화(火).’
혼원기의 두 속성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가속도 모조리 소모했다.
빛살처럼 날아가는 비도와 시우가 동시에 날아갔다.
아지랑이가 맺힌 비도가 괴물의 머리에 파고들어 갔다. 쩌적거리며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뒤를 시우의 검이 이었다. 시우는 이 검격이 자신이 만든 초식임을 깨달았다.
- 쾌진격(快進擊) : 섬화(剡火)
붉은 아지랑이가 맺힌 그의 검이 혜성처럼 날아가 괴물의 이마를 꿰뚫었다. 그가 내지른 검 중 가장 빠른 일검. 극한의 쾌검이었다.
-콰직!
-쿠웅!
놈의 머리 반쪽이 잘려 떨어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시우가 허공을 날아 땅바닥에 착지했다.
뒤늦게 휘둘러진 괴물의 팔이 허무하게 땅바닥을 후려쳤다.
베인 부분에 염화가 일렁였다.
반토막난 괴물의 머리마저 재생되기 시작했다.
‘안 되나..?’
어느새 완전히 봉합된 놈의 머리. 염화는 살덩이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머리 절반이 날아갔는데도 괴물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온몸을 불태우던 주설란의 불도 서서히 꺼져가며 그녀가 피를 토했다.
“쿨럭..!”
괴물의 하나 남은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당장에라도 시우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그런데
“크허어···.”
포효할듯 입을 벌린 괴물의 입에서 헛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시우에게 돌진하려던 괴물의 무릎이 꺾였다.
- 쿠쿵!
괴물이 허공을 잡으려는 듯 팔을 허우적거리며 쓰러졌다. 육중한 몸체에 흙먼지가 가득 날렸다.
놈의 뒤통수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염화가 괴물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걸 본 주설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불은 대체..?”
처음 보는 괴이한 불. 주작단의 무공을 이은 자신도 태우지 못한 괴물을 태우다니···.
한참을 꿈틀거리던 놈이 재가 되기 시작했다. 잿더미에는 조각난 검은 마정석과 방울이 남아 있었다.
시우가 그것들을 집어 들고 두 여자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다른 놈들이 쫓아올지도 몰랐다.
“빨리 튀자.”
***
어떤 남자가 토막난 시체가 가득한 공간에서 술병을 홀짝였다. 주변에 시체가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 지도 어언 두 달. 처음에는 군기가 바짝들었던 그들도 시간이 흐르며 점점 안일해졌다.
여자도 없는 산속에서 숨어 지내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 달려왔다.
“단주님!! 제사장님이 당했습니다!”
“뭐..?”
부하가 빠르게 상황을 알렸다.
그 말에 한가롭게 술을 마시던 남자에게서 기파가 몰아쳤다. 피 냄새가 자욱하던 공간에 술 냄새가 확 풍겨 왔다.
몸 안에 흐르던 술기운을 모조리 날려 버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병.. 어떤 새끼냐. 귀찮게시리..”
시체가 돼 버린 호위놈을 욕했다. 제사장 새끼도 문제였다. 귀찮다고 호위를 한 명만 데려가다니.. 약해빠진 녀석이 그따위로 구니 죽어도 쌌다.
여유넘치는 단주에게 부하가 전전긍긍하다가 말했다.
“저.. 단주님 놈들이 청봉현으로 향했습니다. 단원들이 쫓고 있지만 늦을지도 모릅니다.”
“하..! 그딴 시골 마을 따위 싹 쓸어 버리면 그만이지.”
“하지만.. 상부에서 절대로 청봉현에 들어가지 말라고···.”
“쯧. 늙다리 도사하나 있는 게 뭐 어때서? 청월선자? 그깟년은 나한테 걸리면 정액받이가 될 것이다. 하..! 이렇게 된 거 그년이나 잡아 와서 변소로 써야겠다.”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자신감 넘치는 말과 동시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곤 시우일행을 뒤쫓기 시작했다.
얼마 있지도 않은 나무를 밟아가며 숲을 달렸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니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먼저 출발했던 부하들을 제치고 앞서나갔다.
도망가고 있는 세 명의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
시우가 표정을 굳혔다.
거의 마을에 도착했는데 결국 따라잡혔다. 어디선가 날아온 검기가 앞길을 막았다.
-콰콰광!
길이 무너져 내리며 그걸 피한 일행의 속도가 확 줄어들었다. 한순간에 길이 막혔다.
‘시발. 검기를 날려?’
최소 절정은 돼야 시도해볼 기술을 날려대는 놈이 있었다. 고수로 보이는 남자가 하늘을 날듯이 달려와 길을 막아섰다.
그 빠른 속도에도 먼지하나 나지 않게 착지한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일행을 노려봤다.
그가 일행의 경지를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버러지같은 놈들이 감히..!”
시우가 그를 살피는데 경지가 보이지도 않았다. 일행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염병.’
그는 오만한 자세로 서 있었지만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뒤이어 수십 명의 괴한들이 뒤쫓아왔다.
앞길을 막은 남자가 고개를 까닥였다. 마치 손쓰기도 귀찮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입만 놀렸다.
“산 채로 붙잡아라.”
“존명.”
수십 명의 무사들이 강렬한 기세를 풍기며 달려들었다. 이류 끝자락 몇 명을 제외하면 전부 일류 무사였다.
시우가 현실로 튈까 머리를 굴리는데 허공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이 밤중에 무슨···.”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모두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그 목소리에 건방지게 굴던 남자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가 긴장으로 경직된 몸을 억지로 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막을 테니 신령을 회수해라.”
하늘에서 내려온 청월선자가 그를 비웃었다.
“후후.. 건방진 것이 주제를 모르는구나.”
- 우웅!
어두운 밤하늘에 푸른 달이 사방에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