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 - 41화 - 보상
41화 - 보상
먼저 [무작위 중급 스킬]부터 개봉했다.
‘제발 좋은 거!’
시우가 눈이 빠져라 집중하기 시작하는데 눈앞에 양피지가 생성됐다.
상점에서 스킬을 살 때 보이던 양피지. 그것이 주르륵 펴지더니 어떤 글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이 솟아올라 시우에게 스며들었다.
-띠링
[균형의 저울 - 육화(肉火)]
- 육체를 태워 힘을 얻는다. 모든 전생체에서 사용 가능하다.
그것을 바라본 시우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사용해 보기 전에는 얼마나 좋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언제나처럼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육체를 태운다는 말이 영 껄끄러운 스킬이었다.
머릿속으로 어떤 스킬인지 느낌이 왔다. 살짝만 사용하면 후유증이 있을 스킬은 아니었다.
시험 삼아 살살 사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육화(肉火).’
-푸화학!
전신의 피가 한순간에 모조리 불로 바뀐 느낌이었다.
온몸의 피가 들끓는 기분. 실제로 끓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뜨겁다는 것만큼은 명확했다.
빌어먹게도 뜨거웠다. 온몸이 불타는 감각에 진저리가 났다.
‘시발 뜨거워!’
혼원기를 화 속성으로 돌려도 의미가 없었다. 실제 불에 타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것이었다.
고통에 대한 보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이 느려지고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저 멀리 기어가는 개미가 느껴질 만큼.
선명해진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각성 후에 처음 느꼈던 세상처럼 한순간에 감각이 달라졌다.
뿐만 아니라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이 아주 천천히 떨어졌다. 시간마저 느려진 것 같았다.
갈상인의 가속을 소모한 게 아쉬웠는데 효과만 따지면 그것의 상위호환이었다. 천천히 흐르는 세상을 멍하니 보다가 무언가 울컥거리며 올라왔다.
“푸웁..!”
피가 토해지며 각성이 끝났다.
시우가 옷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올라오는 것을 퉤 뱉었다.
새까만 무언가가 덩어리져 있었다.
“으.. 더럽게 아프네.”
시험 삼아 잠깐 써본 대가가 심각했다.
‘효과는 좋은데··· 페널티가 너무 센데?’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앉았다.
페널티가 심각하다면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얻어야 했다.
문제는 육체의 손상.
‘그러면···.’
시우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회복과 관련된 생각을 하니까 떠오르는 강렬한 이미지가 있었다. 팔다리가 잘려도 재생하던 지긋지긋한 괴물.
시우가 인벤토리에서 조각난 마정석을 꺼내 들었다. 놈의 기운이 담긴 마정석이었다.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도 아닌데 마정석이 있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마정석은 보통 푸른색인데 이것은 특이하게 검은색이었다.
게다가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혹시나 하고 조각난 것을 붙여보니 서로 붙었다. 역시 여기에 재생력이 담겨 있는듯했다.
‘되려나?’
혼원기공으로 해석이 가능한지 시도해봤다. 검은 마정석을 손바닥에 쥐고 기운을 흡수했다.
눈을 감고 집중했으나 영 까다로웠다. 재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정석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던 시우가 고개를 들었다.
[중급 정수 추출권]
- 중급 이하 현상을 추출해 정수로 만든다.
‘중급···. 중급이면 어디까지 가능한 거지?’
턱을 쓰다듬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에 시도해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역시.. 그럼 이건 되려나?’
괴물의 시체에서 얻은 검은 보석에 티켓을 들이댔다.
- [중급 정수 추출권]을 사용 가능한 대상입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 트롤 변형체 마정석에서 추출가능한 현상을 분석합니다.
[재생(54%), 적응(25%), 괴력(12%), 기타(9%)]
1. 재생
2. 적응
3. 괴력
중 택1 추출 가능합니다.
‘트롤..? 아무리 봐도 트롤이 아니었는데?’
트롤이라고 해 봐야 C등급의 2미터짜리 몬스터였다. 그런데 그놈은 적어도 B급은 되어 보이는 몬스터.
‘게다가 여기에 왜 몬스터가···?’
혈교놈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찝찝해졌다.
편하게 먹고살 만큼 강해지면 적당적당히 살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조금 더 강해질 필요성이 느껴졌다.
‘뭐.. 재밌기도하고.’
사실 강해지는 것 자체가 재밌었다.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강해지고 싶을 만큼. 강함이란 그 자체로 마력이 있었다.
고민하던 시우는 메시지로 눈을 돌렸다. 적응과 재생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선택했다.
‘재생.’
적응도 쓸 만할 것 같긴 한데 지금 필요한 건 재생력이었다.
-트롤 변형체의 재생력 추출합니다.
추출권이 가루가 되어 마정석에 스며들었다.
-웅웅
검은색 마정석이 덜덜 떨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허공에 맺혀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무언가 생성되는 신기한 광경.
결국 검은 마정석과 투명한 기운이 서린 보석. 둘만 남아 있었다.
검은 마정석이 더 칙칙해진 기분이라 보기만 해도 꺼려져서 인벤토리에 넣어 놨다.
투명한 보석을 집어 드니 무언가 맥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눌러보니 약간 말랑말랑거려서 만지는 맛이 있었다.
‘뭔가 여자 가슴같네.’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 덕에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재생(再生)의 정수]
- 정수를 흡수하시겠습니까?
‘응.’
빛으로 변한 보석이 시우에게 파고들었다. 정수가 그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떠돌며 단전을 향해 파고들려 했다.
시우가 단전으로 향하려는 정수를 억지로 막아섰다. 이래선 이 육체에만 적용될 게 뻔했다.
‘거기 말고’
억지로 끄집어내듯 정수를 마력코어로 인도했다.
- 마력코어에 재생(再生) 특성이 추가됩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마력코어의 영향을 받은 육체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거지.’
눈을 감고 명상한지 5분 정도가 지나자 피를 토하던 육체가 멀쩡해졌다. 능숙해질수록 재생력이 올라갈 것 같았다.
솔직히 그 괴물수준의 재생력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만 해도 만족이었다.
청봉산에서 전투하며 얻었던 자잘한 상처들이 눈에 띄게 아물고 있었다. 피부 상처들이 눈에 보일 듯이 아물고 있었고 내상에 특히 효과적이었다.
너덜너덜해졌던 기혈이 모두 멀쩡해졌다.
“후..”
실시간으로 나아지는 것이 느껴지니 살것 같았다.
‘대박인데.’
게다가 하나의 보상이 더 남아 있었다.
[전투특화 무작위 전생(3레벨) 각성권]
“흠···.”
잠시 고민하던 시우가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지금처럼 별다른 위험이 없을 때 사용하긴 아까웠다.
하루짜리 소드마스터가 됐는데 할 것이 없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지금 써도 좋긴 할 텐데.’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경험하며 수련하면 그것만으로도 기연이었다.
물론 소드마스터의 기억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열심히 김치국을 마셨다.
“후··· 아끼자.”
이번에는 적이 생각보다 강했다. 시우의 경지로 어림없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 최후의 희망이 될 만한 각성권이었다.
‘아끼는 건 그만두려 했지만.. 이건 지금쓰면 오히려 손해야.’
인벤토리에 넣어 둔 시우는 억지로 신경을 끄고 카르마를 확인했다.
- 보유 카르마 : 782
‘오··· 600정도 올랐나? 많이 모였는데?’
카르마 획득 내역을 살펴보니 무림 맹의 장로라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날린 것만 300이상 얻어냈다.
확실히 드론으로 어그로를 끌었더니 평소보다 많이 모였다. 시우가 고민에 잠겼다.
‘적절한 선에서 어그로를 끌면 이득이긴 한데···. 생각해 볼 문제네.’
고민에 잠겨 있다가 우연히 여도사와 눈이 마주쳤다.
청봉밀사에서 지내다보니 부쩍 자주 만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때마다 요망한 눈웃음을 치는 그녀였다.
그녀는 유독 시우에게 친절했다.
이유도 없는 호의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절했다.
‘내 얼굴이 취향인가?’
그녀같은 여고수가 안겨든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시우도 그녀를 보며 마주 웃어줬다.
***
며칠이 흘렀다.
시우가 염화를 이용한 검기를 두른 뒤 당화린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서로를 향해 느릿느릿 하게 검을 휘둘렀다.
-쩌엉!
검기가 부딪치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남들이 보기엔 장난하듯이 천천히 검을 맞대는 것을 반복하는 거였지만 오히려 빠르게 휘두르는 것보다 힘들었다.
천천히 검을 휘두르니 자세에 신경 쓰다가 검기가 끊기기 일수였다.
10분도 안 됐는데 머리가 띵해졌다.
“생각보다 힘든데? 머리 깨지겠다.”
그녀도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즐거워 보였다.
“그래도 효과는 좋지 않아?”
확실히 힘든 것에 비해 효과가 좋았다.
검기의 유지력이 확연하게 올랐다. 그녀가 가문에서 배웠던 수련법이었다.
*
당화린과 대련을 마친 시우가 바위 앞에 섰다. 주변에는 매끄럽게 잘린 돌조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시우가 거대한 바위를 노려보다가 진각을 밟았다.
- 쾌진격(快進擊) : 섬화(剡火)
한순간의 돌진에 이어진 쾌검. 시우가 스쳐 지나간 바위가 반토막 났다.
잘린 부위에서 뜨거운 김이 폴폴 피어올랐다. 열기 자체는 위력적이었지만 오히려 실패였다.
아무런 열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바로 검기를 완성한 때였다. 최대한 줄였음에도 바위는 뜨거웠다.
‘될 거 같은데..’
호흡을 가라앉히고 벤다는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괴물을 향해 섬화를 처음 사용했을 때를 떠올렸다.
고조된 집중과 살떨리는 위협. 괴물의 머리를 잘라 내던 그 순간.
주위가 조용해지고 심장 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붉은 아지랑이가 아니라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지만 시우의 시선은 바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던 시우가 다시 한번 진각을 밟았다.
‘벤다!’
모든 감각을 바위에 집중시켰다. 이 순간 오히려 검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바위를 자르겠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서걱!
염화에 의지하지 않은 순수한 검기.
토막난 바위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아..”
그것을 확인한 시우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드디어 일류!’
한 번 벽을 넘자 검기를 다루는 것이 점점 더 익숙해졌다. 일반 검기가 성공하자 염화를 두른 붉은 검기마저 더 위력적으로 변했다.
내공을 두르고 검을 휘두르는 기분은 최고였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검을 휘두른 시우가 몸을 씻고 방으로 향했다. 기분 좋은 개운함과 뿌듯함이 느껴지는 충실한 하루였다.
그렇게 방으로 향하던 그에게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하앙..!
여성 특유의 신음 소리에 쾌감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