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6 - 46화 - 현대(3)
46화 - 현대(3)
C등급 균열 앞.
한 파티가 기쁜 얼굴로 시우에게 균열에 대한 입장권을 넘겼다.
이 균열은 더듬이 거미가 나오는 곳이라 일부러 클리어하지 않고 입장권한을 파는 것이다.
거대한 거미가 나오는 이 균열은 고위 헌터가 하위 헌터를 키우기 위한 균열로 적합해 인기가 많았다.
더듬이 거미는 높이만 2미터가 넘는 거대한 거미다. 날카로운 다리와 흉악한 턱이빨이 위협적인 몬스터지만 약점이 너무나 명확했다.
대부분의 감각이 더듬이에 몰려 있어 그것이 잘리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다.
그 상태로 다리를 잘라버리면 저등급 헌터도 검만 내지르면 죽일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홀로 다니는 거미가 제압하기도 쉬우니 버스용 몬스터로 유명해진 것이다.
몬스터가 죽을 때 옆에만 있어도 기운을 흡수할 수 있지만 직접 죽이면 더 많이 흡수한다.
균열에서 장비에 대한 홍보 영상을 찍고 남은 시간 동안 클랜원들을 집중적으로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
시우와 클랜원들이 균열 앞에서 몸을 풀었다.
뿐만 아니라 뒤에는 촬영팀도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장비는 균열 소재로 만들어진 억소리나는 장비.
균열에서 촬영하기 위해 들고 왔다.
시우가 스트레칭 하는 것을 보던 촬영감독이 걱정스레 물었다.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그래도 C등급 균열인데.”
“괜찮습니다.”
촬영감독은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믿지는 않았다. 정 안 되면 뒤 따라오는 호위들이 나설 것이다.
‘편집으로 되려나..’
시우는 뭔가 못 미더워 하는 감독이 보였으나 별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실력을 직접 보기 전에는 모든 말이 무의미했다.
한소영과 이다혜를 살폈다. 그녀들이 빨리 강해질수록 그가 편해진다. 특히 새로 들어올 클랜원들을 이끄는 파티장이 되려면 D등급까지는 커줘야 했다.
시우는 그녀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꼴깍이는 것을 보며 말했다.
“긴장 풀어.”
난생처음 들어가는 C등급 균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다혜는 시우의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한소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우.. 자꾸 긴장되네.”
“걱정 마. 나 말고도 호위 많잖아?”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데려온 호위 헌터들이 많았다. 이처럼 안정된 환경에서 버스돌리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시우 혼자서도 C등급 균열은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었다.
이왕 홍보영상을 찍는 거 제대로 뽕뽑을 작정이었다.
*
균열 안.
촬영감독은 긴장된 눈으로 카메라를 꽉 움켜쥐었다. 겉보기에는 싸구려 카메라지만 더럽게 비싼 균열소재로 만든 장비.
‘후우.. 제발 무사히 끝나길.’
등급에 맞지 않는 균열에 들어오는 것은 항상 무서운 일이었다.
그가 시우를 쳐다 봤다. 더듬이 거미의 흔적을 능숙하게 추적하는 것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됐지만. 아직은 몰랐다.
직접 몬스터를 대면하고서야 헌터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C급 헌터가 혼자서 C급 균열을 클리어하겠다니. 게다가 등급 낮은 파티 원들을 위해 몬스터를 무력화 시키기까지 하겠다?
남들이 들으면 어이없어서 웃을 일이다.
하지만 상사가 시키니 그는 이 자리에 왔다. 뒤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대비하는 호위헌터들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줘도 안 왔을 것이다.
‘제발 기본만 해라. 편집 잘해줄 테니까.’
2미터가 넘는 거대한 거미가 일행을 발견했다.
쾅쾅쾅!
거미가 단단한 바닥을 부수며 다가왔다. 단지 걷기만 하는데도 바닥이 박살 나고 있었다. 날카로운 다리에 찍힌 돌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까지 했다.
촬영감독이 침을 삼키며 시우라는 헌터를 찍었다.
‘어?’
-싹둑
그가 촬영 중인 시우라는 남자가 자연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은데 더듬이가 단칼에 잘려 나갔다.
“끼에엑!”
모든 감각이 모인 더듬이가 잘려 나간 거미들은 발광하기 시작했다. 제자리를 빙빙돌며 자기 혼자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것들을 적당히 피한 뒤 모든 다리를 잘라버렸다.
이제는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게 되었다.
“와..”
촬영감독이 감탄했다. C등급이라고 들었는데 엄청나게 깔끔한 솜씨였다. 실력이 좋다고 해도 한참 드잡이질 하고 나서야 겨우 이길 것이라 예상했는데 전혀 달랐다.
이 정도라면 편집도 필요 없었다. 찍은 그대로 교본에 실어도 될 정도였다.
검을 가져다 대기만 했는데 거미가 와서 더듬이를 잘려 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게 원래 이렇게 쉽나?’
하지만 그도 아니란 것을 안다. 더듬이는 거미의 치명적인 급소인 만큼 거미가 필사적으로 보호한다. 게다가 은근히 질기고 단단해서 자르기도 쉽지 않다.
거미의 동작을 모조리 읽어야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다. 그가 신이 나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시우가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는 거미 머리에 칼을 박아 넣으며 촬영이 마무리됐다.
“좋습니다. 혹시 모르니 한 두 번 더 찍을게요.”
시우는 감독의 말을 들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클랜복지를 홍보할 겸 버스돌리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님. 혹시 저희 클랜원들이 마무리하는 버전으로 찍어도 됩니까?”
“음··· 나쁠 건 없습니다만 한 방에 못죽이면 곤란해요. 괜히 검이 안 좋아 보일 수 있으니까···”
“그건 괜찮을 겁니다.”
시우와 대련을 자주한 그녀들의 실력은 동급보다 우월했다. C급 몬스터라지만 가만히 꿈틀거리는 거미를 못죽일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거대 거미 한 마리를 토막 냈다.
“끼이익..”
한소영과 이다혜가 긴장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지만 그녀들은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깔끔하게 거미의 머리를 꿰뚫었다.
-콰직!
단단한 두개골이 백련정강 시리즈, 백련검에 꿰뚫렸다.
“아..”
둘은 평소보다 훨씬 많이 스며드는 마력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감독이 그 장면을 찍으며 소리쳤다.
“컷! 좋습니다.”
두 여자는 각성자 중에서도 미모가 유독 뛰어난 편이라 찍는 맛이 났다. 이 정도라면 저들을 메인 모델로 해도 될 정도였다.
SH스미스에서 새로 출시한 백련검이 거미의 머리를 꿰뚫는 장면이 잘뽑혔다.
너무나 쉽게 C급 몬스터를 토막 내고 죽인 것이 중요했다.
이것을 본 수많은 하위 헌터들이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능할 것 같았다.
***
촬영을 마친 시우일행이 균열에서 빠져나왔다.
시우는 클랜원들이 밝아진 표정으로 따라오는 것을 보니 만족스러운 웃음이 났다.
그녀들은 덕분에 D급에 제대로 들어섰다. 청봉밀을 먹으며 수련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쭉쭉 성장할 것 같았다.
그녀들이 새로 들어온 클랜원들을 이끄는 파티장이 돼야 하니 빠르게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촬영팀과 인사한 뒤 해산하려는데 어떤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이.”
시우가 그를 보는데 어디선가 본거 같은 얼굴이었지만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다.
뒤따라오던 촬영감독은 그가 누군지 아는지 재빨리 카메라를 켰다. 더럽게 비싼 균열소재 필름이었지만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네가 최시우란 놈이냐?”
“그런데?”
그가 비죽 웃었다.
“새끼. 날 보고도 태도가 그따위야? 실력에 자신 있어?”
뜬금없는 시비에 어이가 없어서 뭐 하는 놈인지 훑어 봤다. 마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이 세상 헌터들과 다르게 그는 보기만 해도 경지를 알 수 있었다.
‘이류, 아니 C급이네?’
약해빠진 녀석이 까부는 것을 보니 한심한 기분이었다. 녀석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 조만간 잡지에 나온다며? 뭐 재능있는 루키의 비결? 큭큭큭..”
“정신에 문제있냐? 갑자기 왜 이래?”
그의 표정이 확 굳었다. 자존심이 상한 듯 입을 벌리며 어이없어 하기까지 했다.
“하..! 나 몰라?”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기억나진 않았다. 시우가 여전히 모르는 눈치로 보이자 남자는 열 받았는지 목소리가 낮아졌다.
“스피드맨! 스피드맨을 모른다고?”
“아, 스피드맨?”
시우가 피식 웃었다.
뉴튜버 스피드맨. 구독자 100만이 넘는 헌터로 제법 유명했다.
그의 주 컨탠츠는 시비걸고 상대를 일방적으로 패는 것. 각성자 쌍방이 동의한 결투는 법적인 제재가 없기에 가능한 짓거리였다.
상대가 결투에 동의하지 않으면 할 때까지 조롱하고 괴롭힌다.
“하.. 봐줄라해도 주제를 모르네.”
“봐줘?”
“그래 새끼야. 내가 조만간 너를 밟아줄 작정이거든.”
거기까지 말한 스피드맨이 갑작스럽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런데 1억만 주면 살살해 줄게. 음··· 적어도 얼굴은 안 때린다. 어때?”
“하하..”
시비를 걸면서 덜 때린다며 돈을 뜯다니 신박한 새끼였다.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웃어? 1억 5천.”
그러면서 씨익 웃는 게 죽빵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시우가 한마디 했다.
“5억.”
스피드맨이 5억이라는 말을 듣고 얼빵한 표정을 지었다.
“5억..?”
사실 스피드맨의 취미는 액수를 야금야금 올려가며 상대를 약 올리는 것. 그런데 이놈은 한 방에 5억까지 자진해서 올렸다.
이 정도라면 봐줄 만 했다.
“좋···”
시우가 스피드맨의 말을 끊었다.
“5억 주면 살살 해 줄게 어때?”
“뭐?”
시우가 녀석을 보며 비웃엇다.
“5억 주면 살살 패준다고 새끼야. 못 알아먹어? 아, 적어도 이빨은 남겨둘게. 밥은 먹어야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