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1 - 51화 - 아카데미(2)
51화 - 아카데미(2)
주제도 모르고 까분 얼간이를 패준 시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이 얼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전생체 박진구를 괴롭히려던 녀석.
‘평소 괴롭히던 놈한테 처맞았으니.. 내일부터 아카데미에 제대로 나오려나 모르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시우는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선천마력이 최하위인 1성 생도가 2성급 마력을 각성한 일진을 팼다.
‘병신 같은 세상이군.’
시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지었다. 이 세상은 타고난 마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각성하며 얻은 마력에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다.
1성부터 ~ 10성까지.
말 그대로 계급이었다. 성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선천마력이 높은 사람은 성장마저도 빨랐다.
시우의 전생체가 타고난 선천마력은 최하위. 말 그대로 밑바닥 계층이다.
이런 병신 같은 세상에 적응할 생각하니 답답해졌다. 뭐만 하면 주변에서 지랄할 게 뻔했다.
‘아예 막 나가 버릴까? ‘
막 세상에 들어온 이시점. 이때가 가장 홀가분하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림이나 현대는 잃을 게 생겨서 막 나가긴 힘들지만 이곳은 다르다.
꼭꼭 감춰뒀던 욕망을 모조리 풀어내버릴 수 있는 세상이었다.
“흠..”
고민하는 시우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헬레나 아이헤른.
망해 버린 북한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를 막는 북부대공의 딸이다.
‘고향이 강원도면서 헬레나라고...’
어이없긴 하지만 이 세상이 그렇다.
시우의 세상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생성된 균열에 의해 사방에서 차원침식이 일어났다.
지형도 헌터지구와 전혀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말 그대로 인간과 아인종이 몬스터와 뒤섞여 영역다툼을 벌이는 세상이라고 보면 된다.
헬레나가 다가오는데 시우가 눈가를 찌푸렸다. 무언가 애절하고 열망어린 눈동자로 다가오는 게 심상치 않았다.
‘눈은 또 왜 저래?’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다가온 그녀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어..”
기억 속에서 알고 있는 헬레나는 얼음공주 그 자체. 그런데 지금 눈앞의 헬레나는 활화산같았다.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따라온 남자의 놀란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왜?”
주변의 경악이 더 커졌다. 아카데미라서 겉으론 평등하지만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헬레나는 그따위 일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특이한 반응에 눈동자가 반짝였다.
“시계탑..! 시계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나요?”
“뭐..?”
뜬금없는 소리에 시우가 인상을 썼다. 전혀 모르겠다는 그의 얼굴에 헬레나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라도 들은 것처럼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더니 눈을 감았다.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헬레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혹시라도 기억나면 말해 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뭔진 모르겠지만 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복잡한 얼굴로 그녀가 떠나갔다.
뒤따라다니는 남자가 시우를 한번 째려보곤 다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
***
그녀가 떠나고 시우가 이어진 대련을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심했다.
“흐아압!”
제자리에서 누가 더 마력을 크게 모으나 시합하는 것 같았다. 무림에서 저따위로 싸웠다간 단칼에 목이 베일 것이다.
‘다들 마력 하나는 더럽게 많네.’
생도들의 실력에 비해 마력이 많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마력 농도가 짙었다. 적어도 [헌터지구]에 비해서 두 배는 많았다.
그리고 바벨탑이 세워지며 아인종들에게 내려진 축복.
‘상태창.’
—————
이름 : 박진구
등급 : 1성 생도
보유 특성 : [유니크]항마(抗魔)
보유 가호 : -
기질 : 자격지심, 겁쟁이, 전투회피, 심신미약
스테이터스
[힘 : 11], [민첩 : 8], [지능 : 2], [마력 : 1]
—————
이 세상 각성자들이 일반인과 다른 가장 큰 증거.
‘에휴.. 기질이 뭐 이래?’
저깟 기질이 그에게 영향을 끼치진 못 하지만 전생체의 삶을 살필수록 한숨이 나왔다. 평생 호구처럼 당하고 산 녀석이었다.
그는 전생체의 과거에 대해선 웬만하면 신경 쓰지 않는다.
한번 신경 쓰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까.
그에게 직접 해를 끼치는 것만 아니면 무시할 생각으로 특성으로 눈을 돌렸다.
-[유니크]항마(抗魔)
모든 마법적인 현상에 저항합니다.
‘염병.’
딱 보기엔 좋아 보이지만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마법적인 현상을 거부하는 바람에 전생체는 각성한 이래로 마력이 조금도 늘지 않았다.
하지만 시우는 검기상인 경지에 오른 무인.
대기 중에 떠도는 마력을 의지로 끌어모아 단전에 보냈다. 온몸이 격렬히 거부하는 것을 무시하고 강행했다.
검기를 형성할 만한 집중력 앞에서 유니크 등급의 항마도 별수 없었다. 애초에 힘의 총량이 낮기도 했고.
띠링!
- 경이적인 업적.
- 특성이 진화합니다.
[유니크]항마(抗魔) → [전설]항마력(抗魔力)
- 의지에 따라 마법적인 현상에 저항합니다.
- 이름이 변화합니다.
박진구 → 최시우
- 기질이 변화합니다.
기질 : 호색, 효율 중시, 침착, 은원 중시
제대로 집중력을 투사하자 상태창이 업데이트 됐다. 이름이 바뀌고 부정적인 기질들이 싹 사라졌다.
‘내 이름을..’
이름이 업데이트 되는 것을 보니 신기하긴 했지만 애초에 상태창부터가 초월적인 현상이었다.
특성이 진화하면서 마력이 쌓이는 것을 거부하던 저항이 싹 사라졌다. 이제 이 육체도 남들처럼 마력을 쌓을 수 있게 됐다.
‘항마력.. 의지와 상관없이 작동하던 것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 거네.’
나쁘지 않았다.
- 업적 보상으로 랜덤 가호를 획득합니다.
[관찰의 눈(A)]
- 하루에 한 번 대상의 메인 기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 스킬 같은 건가.’
예쁜여자의 기질을 알 수 있다면 꼬시기 편해질 것이다. 시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돌렸다.
1번 생도, 강수호가 다가오고 있었다. 헬레나의 뒷모습을 보며 걸어온 그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그는 뒤따라온 여성 생도들을 힐끗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진구야. 왜 그랬어?”
“뭐?”
시우가 눈앞에 다가온 강수호. 재수 없을 정도로 잘생긴 놈을 바라봤다.
‘더럽게 잘생겼네.’
그가 각성하면서 균형이 맞춰지고 깨끗해진 피부덕에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지만 이놈은 격이 달랐다.
말 그대로 얼굴로 먹고살수 있을 정도로 잘생긴 외모. 배우라도 됐다간 수많은 사람이 열광할 얼굴이었다.
이놈은 이 전생체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그나마 친한 친구.
아니, 전생체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시우가 보기엔 전혀 아니었다. 전생체를 은근히 괴롭히고 자신감이 없도록 가스라이팅하는 사이코패스였다.
그가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를 그렇게 때리면 어떡해? 아무리 대련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의 목소리를 황홀하게 듣던 여자들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맞아. 무식하게 주먹으로 때리고.. 푸훗..!”
“그래도 제법 잘싸우던데? 둘 다 한심하긴 했지만.”
“아.. 내가 보기엔 진구가 평소엔 맞고만 있다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놀란 거 같아. 아..! 진구야 너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야. 그냥 좀.. 비겁했던 거 같아서. 가서 사과하는 게 어때?”
여기까지 듣던 시우가 한숨을 쉬었다. 애새끼가 쫑알 거리는 게 패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퇴학당하고 계급세상으로 퐁당 빠지는 것이다.
겉으로나마 평등한 아카데미 생활이 그나마 나았다.
시우가 강수호를 바라보며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다.
“됐고, 신경꺼라.”
어깨에 올려진 손을 탁 치우며 말하자. 강수호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하지만 곧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맞다. 너 저번에 내가 소개해준 여자는 어떻게 됐어?”
“누구?”
“뭐..?! 벌써 잊었어? 너 울고불고 난리쳤잖아.”
알면서 뭘 처묻는단 말인가. 뒤에 있던 여자들이 강수호에게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아아. 내가 아는 사람을 소개해 줬는데 쟤가 글쎄 크큭.. 명품백 사다 바치면서 헤어지지 말아 달라고 막 애원했어.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뭐어? 꺄하하! 아재도 아니고 명품백을 사줬어?”
전생체가 힘들게 모은 돈이 모조리 빨렸다. 그러면서도 그 년은 대주지도 않고 홀라당 가 버렸다.
‘하아.. 이 새끼 선 넘네?’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넌 내 취향이 아니야. 수호 부탁으로 만나려 했는데.. 미안.
명품 손가방을 들고 날라버린 그녀가 생각났다.
거기까지 전생체의 기억을 떠올린 시우가 씨익 웃었다.
전생체의 기억이라면 무시하겠지만 강수호는 선을 넘었다. 현재 그에게까지 엿을 먹이려 하고 있었다.
시우가 강수호를 어떻게 괴롭혀줄지 생각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단순히 패주는 것은 너무 쉬웠기에 재미가 없었다.
더한 절망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때. 대련을 주관하던 교수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93번! 93번 뭐 하나?!”
시우를 놀리던 강수호가 화들짝 놀랐더니 어떤 여자에게 달려가 잠을 깨우기 시작했다.
“아멜리아!”
그녀는 바닥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가슴이 얼마나 큰지 무릎 위에 얹어진 가슴이 베개처럼 그녀의 얼굴을 받치고 있었다. 빵빵한 쿠션처럼.
강수호가 그녀를 보석처럼 애지중지 했다. 딱 봐도 마음이 있어 보였다.
어깨라도 잡아서 흔들면 될 텐데 입으로만 열심히 깨웠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자꾸만 잠에 빠져들었고 손만 닿아도 화를 냈다.
‘아마 각성했을 때부터인가?’
같은 중, 고등학교 출신이라 얼굴은 아는 사이였다. 전생체는 남몰래 좋아했지만 말도 못 걸어본 존재.
“아멜리아! 아멜리아 일어나! 너 차례야.”
그 말에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얼굴에 피곤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하암.. 졸려.”
“아멜리아! 대련이야 정신 차려.”
“알았으니까 조용해..”
교관이 불쾌한 듯 그녀를 노려봤다.
“그새를 못 참고 자다니..!”
아멜리아가 멍한 얼굴로 교관의 잔소리를 무시했다. 피곤한 표정으로 힘없이 대련장에 올라왔다.
그 무성의한 태도에 상대가 기분 나쁜듯 그녀를 노려봤다.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달려들 작정으로 자세를 낮췄다.
교관이 미간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시작!”
딱!
시작과 동시에 아멜리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가벼운 동작이지만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콰콰광!
“으아아악!”
달려들던 상대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바람이 뭉쳐진 공기 폭탄에 얻어맞은 결과였다.
쿠웅!
“끄으으윽.”
십여미터를 날아간 상대가 낙법도 제대로 못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팔이 부러진 듯 벌벌 떨며 끙끙거렸다. 그를 본 교수가 혀를 찼다.
“쯧.. 93번 승.”
아멜리아가 거대한 가슴을 출렁거리며 하품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잠들려는 그녀를 강수호가 애지중지하며 달랬다.
시우도 아멜리아의 아름다운 외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예쁜데? 관찰.’
- 대상의 메인 기질은 ‘온기갈망’입니다.
시우가 입맛을 다셨다.
아멜리아를 빼앗겼을 때 강수호의 반응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