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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52화 (52/241)

Chapter 52 - 52화 - 아카데미(3)

52화 - 아카데미(3)

대련이 끝나고 시우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개명신청이었다.

자기 멀쩡한 이름 놔두고 다른 이름으로 살고 싶진 않았다.

성까지 바꾸는 개명은 절차가 복잡했지만 박진구는 고아였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신분제가 없는 대한제국이지만 사실은 지독한 신분사회다.

아카데미 생도가 지루하다는 표정을 몇 번 지은 것만으로 행정적인 절차가 빠르게 처리됐다.

‘최시우.’

행정실에서 명찰을 받아 든 시우가 가슴팍에 걸린 박진구라는 이름표를 던져 버렸다.

***

‘이게 F급 방이라고?’

시우가 2~3평 남짓한 좁은 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돈도 없으니 여기서 나갈 수도 없었다.

‘아니 밖에선 나름 귀족 취급하는데 대우가 왜 이래? 귀족도 급이 있다 이건가?’

시우가 불만 어린 얼굴로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래도 나름 푹신푹신해서 자는데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예전에 잠깐 살았던 고시원과 비슷했다. 거기에서 침대만 고급인 기분.

‘내 몸놀림을 보고도 F?’

납득할 수 없었다. 교수새끼가 눈이 제대로 달린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 세상은 마력 우월주의가 바닥에 깔려 있다. 그의 깔끔한 체술을 보고도 마력 수준만 보고 F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어쩐지 애새끼들이 병신처럼 싸우더니..’

몇몇 뛰어난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제자리에서 기를 모아서 한 방에 투사하는 형태로 싸워댔다. 그걸 보고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런 사정이 있었다.

F등급이 찍힌 이상 식사부터 잠자리까지 모든 게 불편해졌다.

***

좁은 방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산책이나 할 겸 주변 지리나 익히기로 했다.

‘대학교 느낌?’

다녀본 적은 없지만 전체적인 풍경이 현대의 대학교와 유사했다. 그것도 꽤 큰 대학교. 학부별로 건물이 나누어져있고 훈련실이나 운동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시설도 좋네.’

특히 그가 소속된 기사학부는 건물 하나만 해도 어지간한 고등학교 보다 컸다.

전생체 박진구가 선택한 학부였다. 근접 전투를 주로하는 이들이 모인 곳.

‘응?’

식당 쪽이나 둘러보려고 했는데 가는 길에 누군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가 보니 쪼그려 앉은 게 아니라 그냥 무릎을 끌어안고 자고 있는 거였다.

‘아멜리아?’

무릎을 끌어안고 가슴을 베개삼아 잠든 특이한 자세.

‘얘는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시우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속눈썹이 길어서 마치 요정이 눈을 뜨는 것 같았다.

보랏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웅..?”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박이던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도 고등학교 내내 같은 반이어서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다.

“진구..?”

“이제 시우야. 최시우. 이름 바꿨거든.”

“그래..?”

작게 고개를 끄덕인 아멜리아가 다시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말랑하고 푹신해 보여서 시우도 만져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곤 다시 잠들기 시작했다. 시우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얼굴.

시우는 어떻게 접근해야 그녀를 함락 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자리를 떴다. 무리하게 접근해 봐야 경계심만 살 테니까.

***

아멜리아를 뒤로하고 식당으로 들어간 시우가 감탄했다.

인테리어도 화려해서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시우도 돈 번지 얼마 안 돼서 가 본 적이 거의 없는 곳.

‘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시우가 키오스크앞에 섰다.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갈 생각이었다.

카드 대용으로 사용하는 학생증을 밀어 넣었다.

“하..”

숙소 뿐만 아니라 음식에도 차별이 있었다.

[F등급] 기본 정식 - 무료.

시우가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정식.

빵쪼가리와 고기 몇덩이가 들어간 스튜. 그게 끝이었다.

반면에

[A등급] 튀김 정식 - 55,000원.

랍스터 살처럼 고급재료가 듬뿍 들어간 튀김 정식이었다. 그 외에도 한식 양식 등 다양했다.

‘염병 더럽게 비싸네.’

물론 돈만 있으면 사 먹을 순 있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돈만 있으면.

“어머! 잔액부족? 안타까워라.. 제가 대신 내드릴까요?”

등 뒤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단정한 제복차림의 금발 미녀가 싱긋 웃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날렵한 슬랜더 체형이었는데 가슴은 E컵 정도 됐다. 나올데 나오고 들어갈데 들어간 모델 체형이 보기 좋았다.

연예인 사생팬마냥 그녀를 따라다니던 여자들이 재잘댔다.

“와..! 현아님 너무 착하신 거 아니에요?”

“꺄악! F급한테 그런 배려라니.. 역시 천사세요.”

시우는 뒤에서 배경처럼 따라다니는 여자들은 관심 밖이었다.

금발 머리 미녀에게 집중하며 눈을 빛냈다.

‘관찰.’

-재사용 대기시간입니다.

‘쳇..’

아쉬움을 삼킨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미인과 인연이라면 환영이었다.

“그러면 저야 좋죠. 감사합니다.”

시우가 진짜로 동의하자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곤 시우를 경멸 어린 눈으로 내려다 봤다.

한순간, 그녀의 얼굴을 가득 채우던 경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의 눈동자를 관찰하던 시우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제 거로 결제할게요.”

띡! 띡!

능숙하게 주문을 마친 그녀가 추종자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휙 던지듯 식권을 내버려 둔채.

마치 정치인이 이미지 관리하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시우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

저렇게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은 오랜만이라 신선한 기분까지 들었다.

‘개 같은 년이 지가 사준다고 해 놓고..? 저년도 자지로 혼내줘야겠네.’

아멜리아에 더불어 한 명의 사냥감이 추가됐다. 그녀의 명찰에 적힌 이름과 얼굴을 기억했다.

‘강현아라고? 그런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처음 보는 여자가 분명했는데 무언가 낯익었다.

***

주말이 지나고 드디어 첫 수업이 찾아왔다.

강의실을 둘러보니 몇몇 이들은 벌써 친해진 건지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하긴 고등학교부터 거의 같이 다녔으니까..’

각성자들은 특수한 시설에서 교육받는다. 덕분에 대부분 고등학교에서부터 봤던 이들이었다.

물론 거기서 박진구는 왕따였기 때문에 얼굴만 알았다.

시우가 시간표를 확인하니 과목 이름이 보였다.

[마력의 효율적인 제어] - 릴리네 교수

최근에 신설된 실습 과목인데 학장의 강력한 의지 덕에 모든 학부의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

더 강한, 더 많은 마력이 미덕인 이 세상과 동떨어진 과목이다. 이 과목은 미세한 마력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것이 주목적이다.

때문에 이 과목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시간에 마력을 더 많이 만들 생각이나 하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었다.

‘하긴 대기 중에 마력이 이렇게 많으니..’

이렇게 마력이 많다면 좀스럽게 자잘한 마력에 집중하기 보단 시원시원한 화력투사가 더 편하고 강력했다.

구석에 앉아서 강의실을 둘러보는데 헬레나 공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시우를 계속해서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때. 강의실 문이 열리고 숏컷 머리의 미녀가 뚜벅거리며 들어왔다.

말없이 교탁에 자리 잡은 그녀가 글자를 적었다.

릴리네.

딱딱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 마치 군인 같았다.

“내 이름이다. 질문있나?”

어떤 여자가 손을 번쩍들었다. 후덕을 넘어 육중한 몸매와 20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얼굴 곳곳에 심술이 묻어 있었다.

시우가 관상을 믿진 않지만 딱 봐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여자였다.

‘못생겼네.’

취향과 전혀 동떨어진 여자였다. 그녀는 교수가 허락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목소리마저도 잔소리처럼 듣기 싫었다. 유리창이 깨질 것 같은 하이톤.

“교수님! 이 과목을 왜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마력이 늘면 마력 제어력은 자연스럽게 올라가지 않나요?”

표독스럽게 외치는 중년 아줌마가 연상됐다.

그런 그녀에게 강수호가 멋들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앤! 그러지 마. 이 과목은 음··· 그래, 진구 처럼 마나가 별로 없는 생도를 위한 거 아니겠어?”

뜬금없는 소리에 시선이 박진구, 시우에게 쏠렸다.

“진구가 누구야? 아 쟤?”

“큭큭.. 쟤는 마력도 거의 없으면서 어떻게 여기 들어온 거지?”

“힘은 세다잖아 돌쇠처럼 키킥..”

시우는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강수호를 보며 씨익 웃어줬다. 저놈이 저럴 수록 어떻게 갚아줄지 기대되는 심정까지 들었다.

‘내가 꼭 저놈 앞에서 아멜리아 따먹는다.’

강수호는 시우의 표정을 보고 무언가 맘에 안 드는 듯 입꼬리를 내렸다. 언젠가부터 저 녀석의 표정이 영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강의실에서 시우를 비웃지 않은 사람은 몇 없었다. 그중 하나가 헬레나 공녀였다. 그녀는 오히려 본인이 모욕당한 듯 강수호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우연히 공녀를 바라본 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의 적의였다.

‘쟨 왜 저래?’

생도들이 떠드는 것을 팔짱 끼고 바라보던 릴리네 교수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 이름이 뭐지?”

“앤인데요?”

“강수호입니다.”

“좋다. 두 생도는 교수를 향해 전력을 다해 공격 해 보도록.”

“..괜찮겠습니까?”

“병아리들이 주제 파악도 못 하는구나. 닥치고 덤벼라.”

“제가 먼저 할게욧!”

앤이 릴리네 교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육중한 살덩이가 푸들푸들 떨렸다.

온몸의 마력이 넘실거리더니 마탄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웅웅!

강렬한 진동이 모인 공격은 한눈에 봐도 위협적이었다.

‘3성이라던데.. 저 정도면 D급?’

화력 하나만큼은 D급 헌터가 전력을 다한 것과 비슷했다. 물론 둘이 붙으면 마력을 모으다가 목이 잘려 나가겠지만.

푸슈웅!

쏘아진 마력 탄이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릴리네 교수에게 날아갔으나 그녀는 태평했다.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받아 내더니 한 바퀴 돌려 그대로 날려 버렸다. 그것만으로 마탄은 앤에게 되돌아갔다.

‘오..’

시우가 보기에도 대단한 기예였다. 순수한 마력컨트롤로 이루어진 일종의 무술이었다.

퍼억!

“꺄아악!”

콰당탕!

반사된 마탄에 복부를 얻어맞은 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육중한 체구답게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우가 피식웃는데 우연히 헬레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웃음을 참는듯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눈동자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그녀의 별명에 의문이 생길 정도로.

'아니, 얼음 공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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