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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53화 (53/241)

Chapter 53 - 53화 - 아카데미(4)

53화 - 아카데미(4)

복부를 얻어맞은 앤이 바닥을 나뒹굴자 육중한 체구답게 엄청난 소리가 났다.

릴리네 교수가 시선을 강수호에게 돌렸다.

“네놈은?”

“어.. 교수님 저는 제어학을 배우는 데 아무런 불만도 없습니다.”

“쯧..! 내가 방금 저년의 공격을 흘리는데 얼마나 되는 마력을 썼을 것 같나?”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저년이 사용한 마력의 십 분의 일도 쓰지 않았다. 아직도 이 수업이 쓸모없다 생각하는 녀석이 있으면 말해라. 몸으로 느끼게 해주지.”

좌중이 조용해졌다.

릴리네 교수가 꼿꼿한 자세로 생도들을 둘러봤다. 경직된 표정은 아무리 봐도 교육자라기보다는 군인처럼 보였다. 그녀가 손목에 감긴 시계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그럼 한 학기 동안 같이 할 파트너를 정해라. 5분 주겠다.”

릴리네 교수의 말과 동시에 강의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떤 남자 생도가 옆자리에 앉은 여자 생도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나, 나랑 파트너할래?”

“윽..! 미, 미안.”

마치 폭탄에게 헌팅이라도 당한 듯 표정을 찡그린 여자 생도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른 데로 가 버렸다.

남겨진 남자 생도가 처량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런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교수는 경직된 자세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시우는 어찌할지 고민했다. 친구라곤 하나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갑자기 파트너라니.. 차라리 정해주지.’

적당히 기다리다가 남은 사람에게 다가갈 생각으로 앉아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진구야? 파트너 될 사람 없어?”

강수호 이 새끼가 또 깝치기 시작했다.

‘염병.’

“신경 끄라고 했을 텐데? 진짜 뒤지고 싶냐?”

폭력보다 더한 절망을 선물해주기 위해서 참았지만 정도가 있었다.

“하하.. 진정해 진구야. 넌 내 친구인데 어떻게 그래. 안 그래? 음.. 진구는 친구가 없으니까 파트너 구하기 힘들 거야. 내가 도와줄게.”

강수호는 그러더니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여자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하나 같이 시선을 피하며 선택 되지 않기를 바랐다. 진구와 파트너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아! 그래 앤! 네가 진구랑 파트너 해주지 않을래? 부탁할게.”

그 말을 들은 앤이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시우를 혐오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강수호를 탁 밀치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진구야! 어디가! 앤이랑 같이... 어?!”

강수호는 히죽거리며 웃다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시우가 향하는 곳에 그녀가 있었다.

시우가 입을 열었다.

“아멜리아 나랑 파트너 할래?”

멍하니 앉아 있던 아멜리아가 시우를 흘낏 보더니 말했다

“...그래.”

딱히 누구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것을 본 강수호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아멜리아! 차라리 나랑 하자. 지, 진구는 내가 따로 구해 줄게!”

그녀가 강수호를 힐끗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됐어.”

사실 그녀 처지에선 강수호를 배려한 것이었지만 강수호는 몰랐다. 그가 질투에 찬 시선으로 시우를 쳐다 봤다.

시우가 그를 보면서 씨익 웃어 주었다. 주먹까지 쥐고 바들바들 떠는 것이 아주 쌤통이었다.

“큭큭.. 앤이랑은 너가 파트너하면 되겠다. 안 그래?“

그 말에 앤이 반색했다.

“어머! 다행이다. 수호야 나랑 파트너하자!”

“어어?”

앤이 다가와 팔짱을 끼자 강수호가 당황했다. 뱃살인지 가슴인지 구별되지 않는 살덩이에 팔이 파묻혔다.

강수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앤은 막무가내였다.

“왜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뭐야 지금···. 나는 저 찐따 같은 놈이랑 파트너하게 하더니 이제 와서 빼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강수호가 식은땀을 흘리며 허둥거리는 가운데 5분이 흘렀다.

5분이 지나자 교수가 칼 같이 팔짱을 풀었다.

“아직도 파트너가 안 정해진 얼간이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라.”

그 말에 몇 명의 학생들이 앞으로 쭈볏거리며 나왔다. 강수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너, 너 파트너. 그리고 너랑 너.”

릴리네 교수가 그들을 짝지어 주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표정은 한결 편해 보였다.

그리고..

“호오.. 수업에 의문을 가지던 둘이군. 딱 좋다. 너희 둘이 파트너다.”

교수가 강수호와 앤을 파트너로 찍어 버렸다.

강수호는 눈을 부릅떴으나 결국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감사합니다. 앤 가자.”

앤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그의 팔짱을 끼자 강수호가 움찔거렸다. 그걸 보니 고소함이 입안 가득 멤돌았다.

고개를 돌려 아멜리아를 쳐다봤다. 그녀는 졸린 얼굴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아멜리아.”

“···응?”

보랏빛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한 학기동안 잘 부탁해.”

시우가 손바닥을 내밀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데 손은 좀 그래···.”

시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각성 할 때부터 신체 접촉을 꺼리는 그녀의 이유가 궁금해졌으나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녀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처음 이었으니까.

‘어떻게 꼬셔야 되지? 온기갈망이라.. 그게 도대체 뭐야?’

시우가 고민하느라 입을 다물었고 그녀는 원래 말이 없었다. 서로 말도 없이 앉아 있는데 릴리네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첫날이니.. 기본만 하지. 모두 파트너와 손바닥을 마주대라.”

그녀의 말에 아멜리아가 표정을 굳혔다. 정말하고 싶지 않은지 얼굴에 곤란함이 가득했다.

교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말 병아리들 같군.. 당장 안 움직이는 놈들은 모조리 벌점이다.”

벌점이 쌓이면 퇴학까지도 가능했다.

생도들이 허겁지겁 손바닥을 마주대기 시작했다. 시우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멜리아?”

“···미안.”

아멜리아가 손을 잘게 떨며 내밀었다. 그런데 미안?

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손바닥을 마주댔다. 차갑고 부드러운 손바닥이 느껴졌다.

‘이 손으로 대딸 시켜야겠다.’

시우는 음란한 생각을 숨기고 미소 지었다. 그걸 보던 아멜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응? 뭐가?”

영문 모를 소리였으나 아멜리아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

아멜리아. 그녀는 저주를 받았다.

선조가 몽마의 왕을 처리하면서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였다.

몽마의 왕이라 하면 단일 개체로 전선 하나를 감당할 정도로 엄청난 괴물.

그런 괴물의 목을 벤 선조는 엄청난 위업을 쌓았다.

하지만 몽마의 왕은 곱게 죽지 않았다. 선조에게 악몽의 저주를 내렸다.

“아아.. 아멜리아.. 미안하구나.”

피를 타고 이어지는 저주는 아멜리아에게 까지 이어졌다.

처음엔 아멜리아도 몰랐다. 그저 악몽만 꾸는 건데 뭐 어떻단거지?

직접 저주를 느낀 처음에도 그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저 기분 나쁜 꿈을 가끔 꾸는 정도.

그러나 그녀가 각성하면서 악몽의 격이 달라졌다. 악몽 속에서 칼에 베이면 다음날 실제로 그 부분이 하루 종일 화끈거렸다.

목이라도 베인 날에는 죽음의 공포에 벌벌 떨며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어찌저찌 참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가장 문제는 타인과 접촉할 때 일어났다.

신체 접촉이 일어나면 상대에게 저주의 기운을 흘린다.

상대는 본능적인 거리낌을 느끼고 그녀에게 손을 뗀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신체 접촉을 유지하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

상대도 그 악몽을 꾸는 것이다.

물론 그녀 만큼 실질적이고 강렬한 악몽은 아니겠지만 보통 악몽보다는 훨씬 질 나쁜 악몽이다.

결국 그녀는 남들이 손이라도 닿으면 불같이 화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를 필사적으로 숨겼지만 언제 들킬지 몰라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몽마의 왕을 죽인 영웅의 가문은 그렇게 잊혀졌다. 영웅이 집안에 틀어박히자 걱정하던 사람들도 곧이어 관심을 끊었다.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기억은 짧으니까. 그러한 세상 속에서 살아온 아멜리아가 [마력의 효율적인 제어] 수업.

그곳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안.”

그녀는 파트너가 된 운 없는 박진구, 아니 최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까 봐 강수호는 거절했던 건데, 그는 그녀의 마음도 못 알아주고 질투에 찬 시선이나 보내다니.

그녀도 계속 밀어내는 데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강수호가 조금은 고마웠기에 더욱 밀어내는 것이었다.

‘하아..’

시우의 손바닥이 다가오고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람 특유의 온기가 따스했다. 하지만 그 온기는 곧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녀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그녀가 가슴을 졸이며 다가올 혐오를 기다리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

시우는 여전히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응? 뭐가?”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를 보니 당황스러웠다.

마력이 너무 없어서 그녀의 저주를 제대로 느끼지 못 하는 건가? 보통 본능적인 꺼림칙함을 느끼는데···.

중학교부터 얼굴만 알던 그를 정말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직시했다.

그의 호의섞인 눈동자와 더불어 느껴지는 따스한 손바닥.

오랜만에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

‘아...’

그녀는 따스함에 집중하느라 질투에 찬 눈으로 노려보는 강수호는 느끼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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