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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54화 (54/241)

Chapter 54 - 54화 - 아카데미(5)

54화 - 아카데미(5)

릴리네 교수가 외쳤다.

“서로의 손바닥에 마력을 투사해라. 본인이 다룰 수 있는 최소한의 마력으로 상대의 방어를 뚫고 손바닥에 침투시켜라. 그게 마력 제어의 기본이다.”

‘오..’

시우가 눈을 빛냈다. 합법적으로 아멜리아의 손을 마음껏 만지작거릴 수 있는 수업이었다.

다행히 아멜리아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작게 입을 벌리며 손바닥이 마주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할게?”

“아.. 응.”

아멜리아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최악의 재능이군.’

시우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 전생체의 마력 재능은 최악이었다. 현대나 무림의 육체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자잘한 문제점이 느껴졌다.

항마력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냥 마나 감응력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겨우 이딴 일로 가로막힐 순 없었다. 억지로 감각을 집중시켜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웅

마력이 꾸물꾸물 아멜리아의 손바닥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마음 같아선 혼원기의 속성을 쾌감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이 육체로 그랬다간 단박에 들통 날 것이다.

‘아쉽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나쁘진 않았다.

*

릴리네 교수가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생도들을 일일이 지적했다.

“마탄이라도 쏘려는 거냐? 출력을 줄여라.”

“이게 최소입니다.”

“헛소리 하지 말고 줄여라. 못하면 벌점이다.”

“네에?! 끄응..!”

지적받은 생도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가 미간을 오무리며 집중하자 출력되던 마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흥. 되면서 엄살이라니.. 이번 기수는 정말 쓰레기 같군.”

숏컷의 미녀 교수가 돌아다니며 잔소리하자 생도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또각. 또각.

“음..”

그런 릴리네 교수도 헬레나와 이름 모를 여자 생도가 서로 손바닥을 마주대고 있는 것을 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북부대공의 딸답게 기본이 탄탄했다. 미미한 마력이 상대의 방어를 꿰뚫고 스며들고 있었다.

빈틈을 톡톡 두드리며 상대방을 지도하듯 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감탄하며 자리를 떴다. 눈이 높아진 만큼 잔소리가 심해졌다. 그녀가 강수호와 앤 앞에 멈춰 섰다.

“하! 그 곱상한 얼굴의 반만큼이라도 노력했으면 이 지경 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가진 마력이 아깝구나.”

지적받은 강수호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졌다. 그는 확실히 마력컨트롤을 위해 수련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타고난 마력을 휘두를 뿐.

혀를 찬 릴리네 교수가 자리를 떴다. 그래도 강수호는 나름 호평받은 편이었다.

“쓰레기 수준이군. 그따위로 할 거면 그냥 자퇴해라. 어차피 얼마 못 가 시체가 될 테니.”

잔소리 하며 돌아다니던 그녀가 시우 앞에 멈췄다. 시우는 태평했으나 파트너인 아멜리아가 긴장한 것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음..”

릴리네 교수의 눈이 감탄으로 가득 찼다.

시우가 가진 마력이라고 해 봐야 1성. 가진 마력이 적으면 그만큼 다루기 힘들어진다.

온 힘을 다해야 들 수 있는 역기에 비해 가벼운 아령이 다루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녀도 1성급 마력으론 시우 정도로 마력을 다룰 자신은 없었다.

마치 실력보다 훨씬 강한 제어력을 가져야만 저리 될 것 같았다. 마력이 적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훌륭하다.”

짜증스런 표정으로 강의실을 돌아다니던 교수의 입에서 칭찬이 나오자 시선이 쏠렸다.

겨우 선천마력이 1성. 대부분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삐쭉였지만 헬레나 공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참기 힘들 정도였다.

그녀가 더욱 뜨거워진 눈으로 시우를 몰래몰래 쳐다 봤다.

*

시우는 아멜리아의 말랑한 손바닥을 마음껏 즐겼다.

쥐꼬리만 한 마력을 그녀의 손바닥을 향해 밀어 넣으면 그녀가 막아 냈다.

이것을 반복하고 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혼원기를 뒤섞는 기운섹스가 생각났다.

‘하, 시발 꼴리네.’

하지만 여기서 달려들 수는 없는 노릇. 느긋하게 꼬셔야했다.

아멜리아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손바닥을 붙잡고 있으려니 감정적인 교류가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보랏빛 눈동자에 무언가 정체 모를 감정이 서려 있었다.

‘저건 무슨 감정이지..’

여러 여자를 만나며 눈치가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기 힘든 감정이었다. 호기심과 호의?

그런 느낌도 들었는데 정확하진 않았다.

시우와 아멜리아가 기운을 주입하는 것도 잊고 서로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시간의 흐름도 잊고 상대를 바라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쾅!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 그와 동시에 강수호의 짜증스런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끝났어..! 끝났다고! 뭐 하는 거야 손 떼!”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어느새 릴리네 교수는 나가고 없었다. 수업은 끝난 지 오래였다.

“아..!”

아멜리아도 이제야 알았는지 손바닥을 떼려다가 잠시 망설였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온기라 조금 아쉬웠다.

시우는 당연히 미인과의 스킨십은 환영할 일이기에 그녀의 손바닥을 놓아주지 않았다.

“야!!”

아직도 손을 떼지 않은 둘을 보고 강수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는 것도 모자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력도 쓰지 않고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시우가 아멜리아의 손을 잡은 채 등 뒤로 끌어당겼다. 그러곤 한걸음 옆으로 비키며 강수호의 발을 툭 걸었다.

콰당탕!

그것만으로 녀석이 바닥을 나뒹굴며 넘어졌다.

“꺄아악!! 수호야!”

앤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 강수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녀를 밀친 강수호가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다.

“이익..!”

코피가 한줄기 흐르고 있었고 광대뼈 부분이 퉁퉁 부어 있었다. 보나 마나 멍이 들만한 상처였다.

‘큭큭.’

더럽게 쌤통이었지만 여기서 더 열 받게 하려면 방법이 있었다. 녀석이 자주 하는 짓거리.

“아! 미안 수호야. 괜찮아? 그러게 왜 갑자기 달려들었어. 놀랐잖아.”

“너... 너!”

강수호가 동족혐오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발작하며 달려들었다.

녀석이 이성을 잃고 휘두르는 주먹을 휙휙 피하면서 다시 한번 발을 걸었다.

콰당!

“끄윽!!”

그 괴상한 장면을 보던 생도 몇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세, 세상에..”

“갑자기 왜 저래?”

“그러게? 수호야 괜찮아?”

시우의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들의 수준으론 어떤 일인지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강수호 혼자서 바닥에 나뒹구는 것처럼 보였다.

“수호야!!”

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육탄전차가 달려오는 기분이었지만 이년도 무게중심이 엉망이었다.

이 세계는 기본적인 동작이 너무나 부실했다. 모든 것을 마력으로 해결해서 그런가?

시우가 그년을 넘어뜨려 강수호에게 던져 버렸다. 땅바닥에서 막 일어나려던 강수호가 앤에게 깔아 뭉개졌다.

“악!”

그 순간. 앤이 눈을 빛내더니 강수호와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버둥거리던 강수호가 앤을 밀어 내다가 가슴에 손이 닿았다. 그것을 느낀 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수호야 어딜 만지는 거야!”

“뭐..?! 무, 무슨!”

시우가 보기엔 뱃살인지 가슴인지 구분이 안 갔지만 앤이 수호의 팔을 꽉 끌어안으며 그의 손동작을 강조했다.

창백해진 강수호의 얼굴과 반대로 앤의 입꼬리는 아주 살짝 올라가 있었다.

엄청나게 저돌적인 여자였다. 이 기회에 강수호의 코를 꿰려하다니. 무서운 여자였다.

‘하.. 씨 골때리는 년이네.’

앤을 밀어줬을 때 어떤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시우가 뒤를 돌아보니 아멜리아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바닥에서 나뒹구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시우가 아멜리아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또 있었다.

헬레나 공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그녀가 아직도 바닥에서 앤과 비비적거리고 있는 강수호를 향해 싸늘이 말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강의실에서 함부로 폭력을 사용하다니.”

“어.. 그, 그게.. 죄송합니다.”

강수호의 눈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무언가 억울하고 답답해 죽으려는 그 표정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앤도 그때만큼은 입꼬리를 내리며 헬레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을 내려다보던 헬레나가 시우를 따스하게 바라봤다.

“저한테 죄송할 게 아니죠. 시우님. 괜찮으신가요?”

그 온도차를 느낀 아멜리아가 저도 모르게 시우의 손을 꽉 쥐었다. 본인도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시우는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는데 제대로 부르는 사람은 처음이라 의아해졌다. 입학 대련부터 이상하게 관심이 많아 보이는 그녀가 이해가 안 됐다.

‘흠··· 호의는 확실한데. 이유를 모르겠네.’

그녀와 전생체는 인연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 의문이었다.

“괜찮아. 아, 혹시 반말하면 안 되나?”

지금껏 신나게 반말했지만 주변의 반응이 영 좋지 못했기에 물어 봤다.

“아닙니다. 편히 말씀하세요.”

“어. 그래.”

헬레나는 시우에게 시종일관 미소 지으며 말했지만, 시선 끝에 은은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런데 수업도 끝났는데 언제까지 손을···.”

시우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아직도 아멜리아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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