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1 - 61화 - 아카데미(12)
61화 - 아카데미(12)
균열학 시간.
흰머리가 수북한 노교수가 칠판에 분필 가루를 휘날리며 소리쳤다.
“균열..! 수많은 가설들이 있지만 모두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도 가장 유력한 설은 조각난 차원 파편이라는 것입니다.”
“모종의 이유로 망해 버린 세상의 조각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균열 속에는 수많은 문명 흔적이 존재합니다.”
“심해 깊은 곳에서 살아가는 어인이나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엘프들의 흔적도 있습니다.”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엘프는 외모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아인종. 귀가 긴 것만 제외하면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초창기엔 이런 이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대규모 균열 사태 때 갑자기 나타난 이종족 또한 몬스터 취급 했습니다.”
생도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죠? 이제는 함께 몬스터를 상대하는 아군이니까요.”
교수가 화면에 엘프 사진을 띄웠다. 잘생긴 미남 미녀들.
“이런 다른 종족과 함께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작은 일로도 서로 오해가 불거지기 십상이죠.”
“엘프들을 실제로 본 생도가 있나요?”
늙은 교수가 헬레나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대꾸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수업도 제대로 안 듣고 한 생도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누구지?’
보니까 최근에 개명한 최시우라는 학생.
“최시우군?”
지루한 듯 책을 넘기던 생도가 고개를 들었다.
“네?”
“시우군은 엘프를 실제로 본적 있나요?”
“아뇨.”
“흠.. 그들을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뭐.. 예쁜여자?”
“하하···. 그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죠.”
교수는 한순간 헬레나의 표정이 굳는 걸 봤지만 설마 싶었다.
‘에이 설마.. 대공녀같은 여자가 뭐가 부족해서?’
“흠흠.. 뭐 겉보기엔 그렇죠. 하지만 그들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조심하십시오. 성격이 좋진 않거든요.”
“다들 표정에 의문이 가득하군요. 좋습니다.”
교수가 영상을 하나 틀었다. 생도들의 입에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와.. 예쁘다.”
“자, 잘생겼어.”
열 명의 선남 선녀 엘프무리가 걸어오는 동영상이었다. 모델처럼 길쭉길쭉한 팔다리와 그에 어울리는 우윳빛 피부.
그들 주위가 유독 화사하게 보일 정도였다.
특히 선두 엘프의 미모는 독보적이었다. 연둣빛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요정같았다.
“예쁘죠? 이 장면은 아카데미에서 엘프와 처음 교류한 영상입니다.”
막 아카데미 정문을 통과한 그들을 생도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환영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엘프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대표로 나온 생도가 화환을 엘프의 목에 걸려고 하는 순간.
짜악!!
화환을 선물받던 엘프가 다짜고짜 생도의 뺨을 후려쳤다.
당황한 생도가 화를 내기 시작하고 서로 분위기가 험학해지기 시작했다.
동영상이 멈췄다.
“어떤가요? 왜 뺨을 때렸는지 아시겠어요?”
한 생도가 입을 열었다.
“화환, 그러니까 잘린 꽃을 선물해서?”
“하하. 엘프들이 식물을 사랑하지만 화환때문에 사람의 뺨을 때릴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정답에 근접하긴 했어요. 여기 화환을 목에 걸어 줄 때 이 부분!”
교수가 레이저 포인트로 엘프의 귀를 강조했다.
“엘프에게 귀는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부위라고 합니다. 그런 귀가 스쳤다는 이유로 뺨을 때린 겁니다.”
“물론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말로 충분히 오해를 풀 수 있었을 텐데 다짜고짜 뺨을 치다니. 저들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오만합니다.”
“이처럼 타 종족과 상대할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참 설명하던 교수가 손목시계를 살폈다.
“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잠시 쉬었다 하겠습니다. 10분 뒤에 다시 시작하죠.”
***
노교수가 강의실에서 나가는 것을 본 시우가 눈을 돌렸다.
어젯밤에 강수호에게 영상을 보냈었는데 반응이 궁금했다.
‘얼굴만 봐도 알겠네.’
강수호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딱 봐도 영상으로 몇 발은 뺀 얼굴이었다.
‘큭큭. 그게 어떤 영상인지 깨달으면 무슨 반응이려나··· 어?’
녀석을 몰래 보고 있는데 강수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가장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아 스마트폰을 빼 들었다. 딱 봐도 무언가 몰래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 새끼.’
저걸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 고민하는데 강수호를 지켜보는 사람이 한 명 더있었다.
앤.
그녀가 거대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닌자처럼 조용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까치발을 들어가며 강수호의 폰을 훔쳐보던 그녀가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촬영? 미친.’
***
강수호는 멍한 표정으로 노교수가 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수업을 듣는 내내 집중이 안 됐다.
어젯밤에 전송된 영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송된 영상. 누가 보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살색으로 가득 찬 야한 동영상.
촬영 구도, 화질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심장을 찌르르 울리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덕분에 어제 혼자서 몇 번이고 싸질렀다.
‘하씨.. 생각하니까 다시 보고 싶네.’
강수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조용히 구석으로 이동했다.
‘조, 조금만 볼까.’
결국 그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스마트폰을 빼 들었다.
여자의 몸을 검은색 모자이크로 범벅해놔서 보이는 것은 거의 없었다. 가려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호기심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하다 보면 절로 빠져들었다.
언뜻 드러나는 턱선만 살펴도 미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여자가 거대한 자지를 가진 남자에게 애원해대는 영상은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제길··· 너무 크잖아. 저게 말이 돼?’
게다가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하물에 질투심이 치밀었다.
결국 애원하던 여자의 처녀막이 꿰뚫렸다. 그것을 보니 발기가 멈추지 않았다.
모자이크 밖 침대 시트에 드러나는 붉은 자국을 보면 여자가 처녀임을 알 수 있었다. 첫경험에 이런 영상을 찍은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무슨 처녀가...’
파과의 고통에도 허리를 들썩이는 여자는 너무나 야했다.
그 음란한 모습에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꿀꺽. 이게 뭐라고 이렇게 꼴리지.’
가슴이 간질거렸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강수호는 영상에 빠져들었다. 자꾸만 목이 타들어 갔다. 침을 삼켜대며 집중했다.
그는 눈이 새빨개지는 것도 모르고 집중했다.
“수호야 뭐 해?”
“악!!”
소스라치게 놀란 그가 황급히 화면을 껐다. 고개를 들었는데 최악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히히!”
앤이 괴상한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의 추태가 모조리 찍히고 있었다.
강수호가 두 눈을 부릅떴다.
“무, 뭐 뭐야!!”
머리가 고장 난듯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수호야 여기서 그런 걸.. 히힛..!”
앤이 히죽거리는 것을 보던 강수호가 정신을 차렸다. 스마트폰. 그의 추태를 찍은 저 폰을 뺏어야 한다. 뒷수습은 그다음이었다.
‘안 돼!’
생각할 것도 없이 손을 뻗었다.
파앗!
“꺄아아아악!!!”
“어어..?!”
앤은 대비라도 했는지 한 걸음 물러나며 소리를 질러댔다.
“뭔 소리야?”
“뭐야?”
뾰족한 비명 소리에 생도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들이 본 장면은 수호가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듯 앤에게 손을 뻗는 장면.
강수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이 굳어 버렸다. 그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수호랑 앤이네? 그런데 저 손모양이 좀···.”
하필 강수호의 손 앞에 앤의 가슴 살덩이가 있었다.
“수호야 어딜 만지는 거얏!”
“뭐!!”
누가 봐도 오해할 장면이었다. 하필 체구가 큰탓에 그녀의 스마트폰을 쥔 손이 가슴께에 가까웠다.
“나도 좋지만.. 여기서 만지면 곤란해.”
“아니야!!”
강수호가 발작하듯 비명을 질렀지만 여론은 이미 넘어가 버렸다.
“와.. 수호 남자네.”
“허..! 취향 특이하네. 저런 돼ㅈ.. 이크.”
어떤 여자 생도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그를 째려봤다. 평소 수호를 쫓아다니는 그녀가 편을 들었다.
“수호가 그럴 리 없잖아! 수호야 말 좀 해 봐!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어어.. 그, 그게.. 그러니까..!”
강수호는 앤의 품 안에 있는 스마트폰 때문에 변명 할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한다고 해도 그의 이미지는 끝장이었다.
결국 그가 입을 다물었다. 편을 들어 주던 여자 생도의 표정도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앤이 강수호에게 팔짱을 끼며 무어라 속삭이자 그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가 힘없이 주저앉고 앤이 새침한 표정으로 옆에 앉았다.
“와··· 설마 둘이 사귀는 거냐?”
“이열 축하한다. 그래도 여기서 가슴만지는 건 좀 그렇지 않냐?”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시우는 감탄만 나왔다. 앤이 뭐라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강수호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
앤의 멧돼지 같은 저돌성은 보고 배워야 할 정도였다.
‘대단하군.’
반쯤 장난삼아 보냈던 영상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줄은 몰랐다. 흡족한 마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둘이 잘 어울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