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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62화 (62/241)

Chapter 62 - 62화 - 아카데미(13)

62화 - 아카데미(13)

늙은 노교수가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모두 정숙하고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그는 들고온 자료를 생도들에게 나눠 주며 입을 열었다.

“이론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균열에 대한 가설이 어떻다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실제 균열을 해결하는 것이겠지요. 균열학은 그를 위한 수업입니다.”

“모두 다음 주 시간표가 비워져 있지요?”

말 그대로였다. 다음 주는 수업이 하나도 없었다. 필수과목들도 전부.

“그때 균열 실습을 할 겁니다.”

몇몇 이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 언젠가 균열에 가게 될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실력은···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구제 불능입니다. 그런 실력으로 진짜 균열에 들어갔다간 절반은 죽어 나갈 겁니다.”

점잖아 보이던 교수 입에서 악담이 쏟아졌다.

“여러분이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인공 균열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교수가 사진을 하나 띄웠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도시였지만 균열이었다. 심심치 않게 튀어나오는 도시형 균열.

가운데 솟아오른 시계탑을 중심으로 폐허가 된 마을이 구현되어 있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폐허로 보이지만··· 이미 차원침식이 일어난 곳에 인공적으로 균열을 조성한 곳입니다. 다음 주에 여기서 균열 실습을 할 겁니다.”

실력에 자신 없는 생도들의 얼굴이 헤쓱해졌다.

“너무 걱정 마세요. 죽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하.. 그럼 모두 조를 짜주세요. 조건은 3인 1조입니다.”

“아..”

갑작스러운 조별활동에 생도들이 당황했다.

“차라리 조를 짜드릴까요?”

“네!”

저번에 파트너를 구할 때. 여자 생도에게 버림받은 남자의 반사적인 외침이었다.

“하하하! 안 될 말입니다. 아카데미에 졸업하면 가장 필요한 능력이 신뢰할 수 있는 파티원을 구하는 겁니다. 그때도 누군가에게 부탁할 셈인가요? 자기 목숨을 맡길 동료를 구하는데?”

“30분 드리겠습니다. 만약 조를 못짜면.. 안타깝지만 벌점을 부여하겠습니다.”

강수호는 교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뒤따라오려는 앤을 무시하고 곧바로 달려갔다. 아멜리아를 향해서.

“아멜리아! 아멜리아! 나랑 같은 조하자!”

그를 본 아멜리아가 머뭇거렸다. 누군가를 찾듯 두리번 거리는 그녀에게 시우가 느긋하게 다가 갔다.

“아멜리아 나랑 같이 하자.”

시우가 손바닥을 내밀자 얼굴이 밝아진 아멜리아가 망설임 없이 끄덕였다. 그라면 악몽의 영향을 받지 않는 특이 체질이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무슨..!”

강수호는 치밀어 오르는 질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입술을 깨문 고통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나, 나도 같은 조 할래.”

“뭐? 싫어.”

시우는 당연히 거부했고 아멜리아도 망설였다.

“넌.. 앤이랑 같은 조 해야지 않아?”

아멜리아의 순진한 물음에 강수호의 얼굴이 깨진 유리처럼 구겨졌다. 그때 앤이 거칠게 달려와서 수호에게 안겨들었다.

“수호야! 나는!? 설마 이제 와서 나를 버리려고? 그렇게 만져놓고!”

“뭐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마!”

“강수호.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앤이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윗사람이라도 되듯 딱딱한 어투였다. 그것을 들은 강수호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것이다.

강수호가 말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리는 사이. 헬레나가 다가왔다.

“저도 같은 조 할 수 있을까요?”

시우는 고개를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멜리아를 봤다. 그녀만 동의하면 됐다.

아멜리아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아랫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던 그녀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동의했다.

“으음.. 좋아요.”

*

시우는 강수호에게 신경 끄고 같은 조가 된 헬레나와 아멜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단.. 조장부터 정할까?”

아멜리아는 원래 말이 없었고 헬레나는 시우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할까?”

“저는 시우님이라면 좋아요.”

“응.”

“그럼 내가 조장 할게.”

교수가 나눠준 자료를 펼쳤다. 이번에 들어갈 인공균열에 대한 설명이 가득한 자료였다.

“나오는 몬스터가 키메라? 좀비 비슷하게 생겼네.”

“그러게요. 1성에서 2성 사이 몬스터네요.”

인공적으로 조성된 균열이라 그런지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가 몬스터 대용으로 있었다.

‘대충 보니까 한.. E급 균열인가.’

“포지션부터 정할까? 다들 전투방식이 어떻게 돼? 나는 근접전투가 주력이야.”

헬레나가 아멜리아를 보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멜리아씨는 풍계마법사 맞죠?”

“네.”

“그럼 아멜리아씨는 후방에 계시면 되겠네요. 저는 근접전투도 자신 있고 원거리전도 특기거든요. 제가 전방에 더 가까운 중위를 맡을게요.”

“···.”

아멜리아가 미간을 좁히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뭔가 기분이 나빠졌는데 왜인지는 잘 몰랐다. 그녀는 남과 이렇게 이야기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맞는 거 같았다.

“그럴까?”

“네. 그게 좋겠죠?”

아멜리아는 뚱한 표정으로 헬레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헬레나님. 아, 악수 하실래요?”

“네?”

뜬금없는 소리에 헬레나가 당황하자 아멜리아도 허둥지둥하기 시작했다.

“마, 많이는 안 되고 조, 조금만... 핫! 아니에요. 죄송해요.”

얼굴이 새빨개진 아멜리아가 고개를 팍 숙였다. 머리에서 김이라도 날것처럼 홍당무가 돼 버렸다.

***

인공 균열 실습날.

시우는 예쁘장한 두 여자를 살폈다.

아멜리아는 보랏빛 눈동자가 매력적인 폭유녀였고 헬레나는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고위 귀족 영애같았다.

동작 하나하나에 여유와 품격이 넘치고 가끔 시우를 빤히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미인.

‘저 정도면.. G컵? H인가?’

헬레나의 꽉 조여진 드레스 너머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가슴이 보였다. 타이트하게 압박돼서 가슴이 얼마나 큰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쩌면 가슴을 베개 대용으로 쓰는 아멜리아와 비슷한 크기일지도 몰랐다.

그녀들을 보다가 노교수가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이 들렸다.

“여러분. 아무리 인공균열이라지만 진지하게 임하십시오.”

“네에~”

몇몇 생도들이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태도였다.

생도들의 가벼운 태도에 노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직접 체감하고 느끼기 전에는 태도를 바꾸긴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귀하신 분들의 자식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가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조장이 와서 배리어 장치를 받아가십시오.”

벨트 형식의 방어 마도구.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하고 위급 시 안전한 장소로 전송까지 시켜 주는 아티팩트였다.

‘이런 걸 모두에게 나눠주다니.’

탐나는 아티팩트였다. 저것만 있으면 현대의 클랜원들이 더 안전해질 것이다.

‘저것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겠다.’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알아볼 생각이었다.

인공 균열.

시우 조의 입장 차례가 됐다. 5분 간격으로 무작위 위치로 이동되는 마법진에 진입하고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다. 긴장 풀고 가만히 서 있어라.”

시우의 세상에선 아직 연구중인 텔레포트 마법진. 그런데 이곳은 벌써 상용화 됐다.

‘확실히··· 마법적인 수준은 여기가 더 높아.’

마나가 넘쳐나서 그런지 마법학은 더 발달했다. 근접 전투가 수준 낮은 것과 비교됐다.

시우가 조원들을 둘러봤다. 헬레나를 보는데 그녀는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갈까요?”

일행이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동했다.

번쩍

마치 다른 전생에 들어가듯 눈앞의 풍경이 확 바뀌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주변이 낡아빠진 폐허로 가득 찼다.

유난히 눈에 띄는 건축물이 하나 있었다.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시계탑.

시우는 문득 헬레나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분명 시계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냐고 물어봤었지.’

헬레나를 힐끔 살폈다. 그녀는 위치를 파악하듯 주변을 바쁘게 둘러보고 있었다.

‘흠...’

고민하던 시우가 주변을 살폈다. 인공균열도 균열이니 만큼 환경 파악이 먼저였다.

유난히 눈에 띄는 살점조각이 있었다. 쪼끄려 앉아서 살피고 있는데 헬레나가 다가와 눈을 빛냈다.

“와.. 벌써 찾으셨네요?”

“아, 이거?”

키메라의 살점조각.

마치 일부러 흘린 듯 일정한 거리마다 떨어져 있는 살덩어리가 보였다.

‘학생들을 위한 힌트인가..’

아무래도 몬스터와 비슷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았다.

실제 몬스터의 흔적을 추적하는 스킬을 가진 그가 이런 흔적을 쫓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이쪽이네. 정했던 포지션대로 출발하자.”

그의 거침없는 태도에 헬레나는 무언가 기대어린 눈으로 쳐다 봤다. 생도답지 않은 능숙한 태도. 역시 무언가 달랐다.

박진구의 과거에 대해 조사해 보면서 더 확신했다.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행동하는 그는 비밀이 있어 보였다.

‘절대 평범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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