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3 - 63화 - 아카데미(14)
63화 - 아카데미(14)
흔적을 따라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키메라 한 마리가 나타났다.
“별거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잡히면 위험해요.”
몬스터 수준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야 대응하기 편해진다. 겉모습은 여기저기 살더미가 꿰메진 좀비같았다.
“그어어어···”
절뚝거리며 걸어오던 좀비가 10미터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좀비의 장딴지가 부풀더니 한순간에 돌진해 왔다.
촤악! 쩌어억!
그것도 모자라서 얼굴이 세로로 갈라지며 뾰족한 이빨 수십 개가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감춰져 있는 뇌가 드러났다.
“징그럽네.”
쇠젓가락을 닮은 장침 하나를 꺼내 던졌다.
휘익- 꽈직!
좀비의 미약한 배리어가 부서졌다. 뇌를 꿰뚫린 키메라는 시체로 되돌아갔다. 몬스터가 가장 격렬하게 공격할 때 약점이 드러나는 형태였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1성 생도도 잡을 순 있겠네.’
대충 어떤 느낌으로 만들어진 균열인지 알 수 있었다. 생도들이 몬스터의 흉측한 외모에 겁먹지 않으면 쉽게 클리어할만한 균열이었다.
몇 분마다 좀비 무리가 나타났다.
아멜리아의 풍계 마법에 좀비머리가 잘려 나가고 헬레나의 마탄이 쏘아지면 총이라도 맞은 듯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깔끔하네.’
특히 헬레나는 다른 생도들에 비해서 확연히 능숙했다. 최소한의 마력만 사용한 효율적인 살상.
어린 생도답지 않은 관록이 보였다. 너무 능숙해서 이상할 정도였다.
저번에 그녀가 말했던 시계탑과 관련된 이야기. 그것과 나이답지 않은 능숙한 태도를 연관지으니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흐음...’
장예화의 능력을 이용해봤다. 거짓간파에 더해 호의와 적의를 판단하는 능력.
아멜리아와 헬레나 모두 시우를 향한 호의만 가득했다.
수상하긴 했으나 호의로 가득 찬 시선을 보니 딱히 캐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중에 친해지고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친해진다는 것은 당연히 육체적인 의미였다.
*
“그워어어..”
약간 뛰듯이 걷는 좀비 키메라가 끝도 없이 나타났다. 직접 손대기도 찝찝한 외양이라 장침을 던져 죽였다.
헬레나가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대단하네요. 어디서 배운 기술인가요?”
“음.. 친구한테 배웠어.”
“어머 그래요? 누군지 정말 궁금하네요···.”
시우는 헬레나와 대화하다가 그녀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멜리아가 보였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잡아줄까?”
헬레나가 사이에 껴들었다.
“앗! 안 돼요. 균열 안에서 그런 행동이라니... 교수들이 다 보고 있단 말이에요.”
“음.. 그렇대. 아쉽다 그지?”
“웅..”
여기서 최대한 많은 좀비를 잡거나 어딘가 있을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끝이다.
‘너무 쉬운 거 아닌가..?’
반대의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균열에 들어온 사람 기준으로 생각하면 꽤 어려운 정도였다.
한참 흔적을 추적하며 번갈아 가며 몬스터를 사냥했다.
이들의 실력에 비해 몬스터가 너무 약해서 산책 나온 기분이었다.
“아멜리아. 요즘도 잘 못자?”
“응···? 아.. 최근엔 조금 나아졌어.”
“그래? 다행이네.”
시우가 악몽의 기운을 빨아들인 덕분에 그녀의 악몽 강도가 낮아졌다.
“넌.. 괜찮아?”
“어?”
“시우는 잠 잘자? 꿈을 꾼다던가.. 그런 거 없어?”
“딱히? 한 번 잠들면 푹자.”
“그래..? 다행이다.”
아멜리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평소 맹하고 어둡던 그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눈부신 미소였다.
연꽃이 활짝 핀듯한 그 미소를 보니 그녀를 제대로 꼬시고 싶어졌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한참 서로 눈을 바라보는데 헬레나가 갑자기 소리쳤다.
“저, 저기 좀 봐요.”
“응?”
무너져가는 건물 잔해. 그 돌조각 사이에 지하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절묘하게 숨겨져 있어 발견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오.. 신기하네 어떻게 찾은 거야?”
“흐흥.. 제가 눈이 좀 좋답니다.”
일행은 지하로 향했다. 무너진 잔해를 헤치고 들어가자 지하실이 나타났다. 낡아 비틀어진 가구 몇 개가 부서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딱히 뭐 없는데?”
“그러게요.. 엇?”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던 헬레나가 벽을 건드렸다.
통-
무언가 비어 있는 곳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얼굴이 밝아진 헬레나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퉁! 퉁!
마력을 담은 손으로 두드리자 미세한 실금이 있던 벽이 후두둑 무너져 내렸다.
지하로 향하는 길이 하나 더 있었다.
“어?”
그런데 이곳은 인공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원래 있던 곳이 차원침식으로 우연히 연결됐는지 길이 엉망진창이었다.
여기저기 종유석이 나 있는 천연 동굴이었다. 좁고 험해서 바닥을 기어들어가야 하는 동굴이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공간같은데?”
“한 번 가보는 게 어때요?”
시우가 아멜리아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언제나처럼 그에게 모든 결정권을 넘겼다.
이런 따분한 균열실습에서 나타난 유일한 흥미거리인 만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 보자.”
무너질까 봐 길을 넓히지도 못하고 기어들어가야 했다.
“제가 먼저 갈게요.”
헬레나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앞장 섰다. 동굴을 기어가다 보니 그녀의 드레스가 말려 올라갔다. 눈앞에 헬레나의 검붉은 팬티가 보여서 가는 맛이 있었다.
‘아무리 아티팩트라지만.. 균열에서 저런 차림이라니. 너무 좋네.’
얼마 지나지 않아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먼저 도착한 헬레나가 라이트 마법으로 동굴을 밝히고 있었다.
“오..”
헬레나의 팬티가 눈앞에서 사라진 아쉬움도 잠시. 공동이 보였다.
마치 혼원기공을 얻었던 동굴처럼 한쪽에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시우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유독 눈에 띄는 물웅덩이를 바라봤다. 우윳빛 액체가 가득 담긴 신기한 구덩이.
신기한 느낌에 가까이 갈수록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허..”
딱 봐도 영약이었다. 게다가 그가 직접 본 영약 중 가장 수준 높은 영약.
100년 하수오나 청봉밀은 비교도 안 되는 정순한 기운이 느껴졌다. 길가다 당첨된 복권을 주운 기분이었다.
‘이걸 이렇게 쉽게 얻는다고?’
“와.. 이거 영약 같은데?”
“그러네요!”
아멜리아도 흥미가 생긴 듯 다가왔다. 쪼그려 앉아 살펴보던 그녀는 그것만으로 호기심이 풀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우가 말했다.
“어쩌지 삼등분할까?”
두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음.. 전 괜찮아요.”
“..나도 마력이 늘면 좀 그래서.”
“둘 다 관심 없어?”
“전.. 어렸을 때부터 많이 먹었으니 괜찮아요.”
“응. 시우 너먹어.”
“허..”
안 그래도 예쁜 아가씨들이 아주 천사로 보였다.
‘이걸 그냥 다 준다고?’
시우가 가방에서 꺼내는 척 인벤토리에서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혼원기의 흡자결을 이용해 바닥에 고인 한 방울까지 모조리 담았다.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들 때문에 한 모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이 육체도 강해져야하니까.’
시험 삼아 한 방울만 삼켰다. 순수한 기운 그 자체라서 부작용은 없어 보였다.
“꿀꺽.. 꿀꺽.. 크으.. 달달한데?”
생각보다 달달한 맛이었다. 꿀이나 설탕정도는 아니지만 은은한 단맛이 딱 좋았다. 삼분의 일 정도 되는 양을 마셨는데 온몸이 뜨거워졌다.
당장에 가부좌를 틀었다.
강렬한 열기가 피를 타고 흐르는 기분이었다. 마치 육화(肉火)를 쓴 것 같았다.
기혈을 타고 흐르는 영약의 기운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내공의 순환을 방해하는 온몸의 탁기를 긁어모으며 막힌 세맥을 뚫어냈다.
온몸을 몇바퀴 돌리며 영약의 기운이 사그라들 때쯤 탁기만 남았다.
탁한 기운을 한곳에 모아 손가락 끝으로 응집시켰다. 작은 상처를 내서 뽑아내니 마치 검은 핏방울처럼 보였다.
‘염화(念火).’
화륵
탁기는 손가락에 피어난 불꽃에 의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후우..”
온몸이 개운했다. 전생체의 마나 감응력이 너무 낮아서 눈을 감고 다니듯 답답했는데 이제야 살것 같았다.
‘이 정도면 현대 몸 정돈 되네.’
형편없는 마력감응력이 해결됐다. 이제 다른 세상 육체랑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았다.
한 모금 마신 것만으로 육체가 이 정도로 개선되다니. 먹은 영약이 생각보다 더 뛰어났다.
‘엄청 쉽게 얻은 것 같은데··· 이게 도대체 무슨영약이야?’
띠링
- 영약. 공청석유(空靑石油)를 복용하였습니다.
- 모든 스탯이 10 상승합니다.
- 마력이 추가로 13 상승합니다.
- 마력 장애가 개선됩니다.
“오···!”
“어떠신가요?”
헬레나가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아멜리아도 은근히 관심이 많아 보였다.
“마력이 엄청 늘었어. 이 정도면··· 4성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와! 축하드려요!”
아멜리아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그를 콕콕 찔렀다. 시우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자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력이 늘었는데도 그녀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
영약을 온전히 소화한 시우가 동굴에서 나오는데 막 이곳에 들어오려던 강수호와 마주쳤다.
‘뭐야.. 조금만 늦었으면 이 녀석이 영약 먹었겠는데?’
녀석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나가는 강수호를 보다가 우연히 헬레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