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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64화 (64/241)

Chapter 64 - 64화 - 아카데미(15)

64화 - 아카데미(15)

흑백으로 보이던 세상이 컬러로 바뀐 기분이었다.

영약을 먹고 선명해진 기감에 적응하기 위해 사방을 탐색했다. 곳곳에서 절뚝거리는 좀비 키메라가 느껴졌다.

‘중(重), 예(銳).’

쉬익- 퍼억!

가느다란 장침이 혼원기를 머금었다. 그것들이 수십 미터를 격하고 머리에 박혀들었다.

가벼운 쇠침을 멀리 던지는 것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던진 이 한수에 적절한 무게와 날카로움을 담은 혼원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원래라면 이 정도 섬세한 내공 운용은 무리였는데 이제 가능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 영약도 헬레나덕에 먹었네.’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동굴이 아니었다면 얻지 못했을 영약. 수상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녀를 따라다니면 자다가도 떡이 나왔다.

‘응?’

영약을 먹고 예민해진 마나 감응력 때문에 무언가 느껴졌다. 느슨해진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마력 흐름이 조금 이상한 거 같은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마력 흐름이 거슬렸다. 자연적인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어딘가로 흐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잠깐만... 멈춰 봐.”

“응?”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멜리아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거슬림에 집중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야 끝에 다른 조가 보였다.

선천마력이 1성에서 2성 정도 되는 최하위 생도들로 보였다.

그중 한 명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작은 키에 대비되게 출렁거리는 가슴 때문이었다.

‘키는 작은데 어우..’

160도 안 돼 보이는 키때문에 유난히 특정 부위가 강조된 느낌이었다.

그녀의 허리띠에 매달린 물약들도 특이했다. 노란색, 붉은색 등등 다양한 액체가 담긴 포션병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겉으로 느껴지는 이미지가 딱 연금술사에 가까웠다.

그들에게 다가가는 좀비 키메라 한 마리가 있었다. 침착하게 대응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몬스터.

“내가 처리할게!”

연금술사로 보이는 여자가 노란색 포션병을 좀비에게 던졌다. 날아가던 병이 좀비 머리에 부딪쳤다.

파지지지직!

“그어어..!”

깨진 유리병에서 번개가 튀어나왔다. 정체불명의 액체에서 발생한 강렬한 전격에 좀비가 휩싸였다.

그녀와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위협적인 전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을 맞은 좀비는 멀쩡하지 못할 것이다. 아까 파악한 좀비 능력대로라면 그랬다.

“크와아악!”

그런데 좀비는 멀쩡했다. 배리어마저 깨지지 않았다. 살짝 경직된 것이 피해의 전부였다.

거의 근접해야 돌진하던 좀비가 10미터 밖에서부터 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훨씬 빨랐다.

연금술사 일행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어.. 왜 안 죽어?”

“세라 진정해. 내가 막을게! 하압!”

체격이 건장한 남자 한 명이 좀비를 막아섰다.

한 손 검과 방패를 든 것이 기사학부로 보였다. 녀석이 좀비에게 방패를 들이댔다.

쾅! 콰앙!

“으윽?!”

좀비의 공격을 받아내던 방패남의 안색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생각보다 좀비의 완력이 강했다.

연속된 충격에 균형이 무너졌다. 앞으로 내민 방패가 날아가고 좀비한테 팔을 붙잡혔다.

반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강력한 좀비의 악력에 의미가 없었다.

“어어..? 아아아악!!”

쩌어억!

좀비의 머리가 세로로 갈라지며 남자의 팔을 깨물었다.

“꺄아악!! 떨어져!”

연금술사 일행은 좀비와 한 몸이 되어 뒹구는 방패남을 두고 어쩔 줄 몰라 했다.

파지직!

다행히 방패남이 허리에 차고 있던 허리띠에서 배리어가 발생했다. 좀비의 이빨은 그 방어 마도구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파고들지 못한 이빨에서 까드득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생도들에게 일괄 지급된 아티팩트의 성능이 제법 쓸 만했다.

저 아티팩트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으면 안전한 장소로 전송될 것이다.

‘음?’

방패남의 허리띠에서 발생하던 배리어가 거칠게 흔들렸다.

콰직!

“끄아아아악!!”

배리어가 박살 났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팔이 좀비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잘린 팔 단면에서 피 분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패닉에 빠진 연금술사 일행이 비명을 질러대고 그 소리를 들은 좀비 몇 마리가 그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전송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뭐야... 전송장치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방패남이 상처 입으면서 대기 중 마력 흐름이 더 이상해졌다. 녀석의 팔에서 유실된 마력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좀비들의 근육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비실비실하던 녀석들의 팔다리가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허리에 달린 안전장치를 살폈다. 통신칸이 제로였다. 바깥과 통신이 안 됐다.

시우가 뒤에 있는 여자들을 살폈다. 아멜리아는 당황하고 있었는데 헬레나는 조금 눈살을 찌푸리고 끝이었다.

“아무래도 결계같아요.”

“일단··· 도와주자.”

헬레나와 아멜리아의 원거리 공격에 좀비 머리가 터져 나갔다.

몰려들던 모든 좀비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연금술사 일행은 그제야 이쪽을 눈치챘다.

당황하던 연금술사가 정신을 차렸다. 시체가 된 좀비의 머리를 벌리더니 방패남의 팔을 꺼내 들었다.

연금술사가 잘린 팔을 들고 다른 한 명이 방패남을 부축했다. 그리고 시우일행에게 허겁지겁 다가왔다.

“하악.. 하악..! 고, 고맙습니다!”

“끄으.. 가, 감사합니다.”

방패남 덕분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 짐승에게 물어뜯긴듯 깔끔하지 못한 절단면이 보였다.

“팔은··· 붙으려나 모르겠네.”

이 세상의 의술에 대해 잘 모르니 판단이 안 섰다. 뒤에 있던 헬레나가 입을 열었다.

“두 시간 이내라면 붙일 수 있을 거에요. 포션있으세요?”

“아! 여기 하급 포션···.”

“그거 말고 이거로 치료하세요.”

그녀가 상급 포션을 건넸다. 단순한 행동에도 그녀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친해져야 돼.’

헬레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시계탑을 바라봤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마력의 흐름이 시계탑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었다.

“일단··· 마력 흐름을 보니까 시계탑이 문제같아. 가는 길에 안전지대도 있으니까 거기로 가서 상황을 살피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안전지대.

인공 균열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대피소였다. 비상 상황을 대비한 지하 벙커 비슷한 거였는데 들어가는 순간 최하점이다.

하지만 이미 실습은 엉망진창이 된 지 오래. 연금술사 일행을 그곳에 데려다주고 시계탑으로 가서 문제를 알아보면 될 거 같았다.

그 말을 들은 헬레나가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시간도 없는데 바로 갈까요?”

*

일행이 시계탑을 향해 출발했다.

바람 칼날로 좀비 머리를 자르던 아멜리아가 얼굴을 찡그렸다. 마주치는 몬스터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시우야... 좀비가 더 단단해진 것 같아.”

그녀의 말대로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몬스터가 강해지고 있었다.

‘균열 안에서 누군가 죽을 수록 점점 강해지는 것 같은데.’

사방의 마력이 중앙의 시계탑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도 위험해질지 몰랐다.

지금도 벌써 최하급 생도들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들이 당하면 그 마력은 고스란히 중앙탑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만큼 몬스터는 강해질 것이고··· 악순환이었다.

“빨리 해결해야겠는데?”

“그러네요.”

그의 추리를 들은 헬레나가 눈을 반짝였다. 마치 칭찬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선생님 같았다.

“으으..”

방패남이 잘린 팔을 내려다보며 울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포션으로 응급처치하고 마취시켜서 고통은 적을 테지만 팔이 사라진 상실감은 끔찍할 터였다.

이러한 일이 인공균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생도들이 당할 만큼 몬스터가 강해지면··· 답도 없겠네.’

그때가 되면 그도 위험해질지 몰랐다. 수백명이 넘는 생도들의 마력이 모이면 몬스터가 어느 정도로 강해질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헬레나를 보며 머리를 굴렸다.

‘저번에 물었던 시계탑에 대한 일이 아무래도 이거 같은데.’

이 일에 대해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면 이 일에 관계된 범인이거나··· 아니면 관련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거였다.

‘공녀가 테러범은 아닐테니···.’

이런 비슷한 일이 전에도 있었다. 청봉산에서 예언을 듣고 찾아왔던 무림맹원이 떠올랐다.

생도답지 않은 완숙한 전투 능력. 그리고 우연히 찾았다기엔 너무 뛰어난 영약. 거기에 더불어 미래를 알고 있는 듯한 이상한 질문들.

‘최소 예지 능력자. 그것도 아니면···.’

헬레나가 좀비 머리를 터뜨리는 것을 보다가 가호를 사용해봤다.

‘관찰.’

- 대상의 메인 기질은 ‘기억소망 : 외로움’입니다.

헬레나가 외로움을 느끼는지 이제야 알았다. 그녀는 그를 제외하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냉정하게 대했다.

남들과 친해질 생각이라곤 일절 보이지 않았다. 외롭다면 그에게 대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친절하게 대하면 될 텐데. 의아했다.

‘그리고 기억소망이라···.’

의미를 추측해봤다. 어떤 것을 기억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거나. 두 가지 경우가 생각났다.

그것과 미래를 안다는 것을 연관시키니 하나의 결론이 튀어나왔다.

‘모두에게 잊혀진...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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