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6 - 66화 - 아카데미(17)
66화 - 아카데미(17)
구구궁.
시계탑의 두꺼운 정문을 열고 들어갔다. 결계 안쪽으로 들어오자 거친 마력 흐름이 느껴졌다.
등대처럼 원기둥 형태의 건물이었는데 천장으로 향하는 계단이 벽을 타고 이어져 있었다.
중앙에 그려진 수상한 마법진과 결계석. 사방에서 모여든 마력이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딱 봐도 결계의 가장 중요한 구성품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저 돌멩이가 중심 같은데?”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계석이네요. 저걸 부셔야돼요. 그전에··· 저놈들부터 처리해야겠지만요.”
천장에서 흔들리는 결계를 보며 당황하던 세 명의 생도가 계단을 날듯이 내려왔다.
“뭐야! 어떻게 벌써..! 다른 놈들은 도대체 뭘 한 거야!”
녀석들은 생도답지 않게 마력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중 눈에 익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시우가 입학대련 때 두들겨 패줬던 일진이었다. 며칠 동안 아카데미에 안 나오더니 여기서 테러나 저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마력은 분명 형편없었는데 지금은 일류 고수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온몸에서 꺼림칙한 기운이 줄기줄기 새어 나오고 있었다.
헬레나가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결계의 힘이에요. 조심하세요.”
“음..”
일진 녀석이 그를 보더니 희번뜩한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 반가움과 쾌감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너!! 네놈에게 복수하려고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아카데미에 안 나오길래 자퇴했나 싶더니 마인과 어울리고 있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녀석들은 하나 같이 마기를 흘려대기 시작했다. 이 세상 인류의 주적 중 하나인 마족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것이다.
“멍청한 새끼. 조금 처맞았다고 마족 따위한테 영혼을 바치다니. 그동안 너한테 맞은 놈들은 억울해서 살겠냐? 쯧쯧.”
일진 녀석의 얼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네놈이 뭘 알아!! 크흐..! 그 건방진 낯짝을 찢어 줄 날을 기다렸다.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크하하!”
놈의 마력이 본격적으로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마기를 사용하면 당분간 몸에 흔적이 남는다.
만에 하나 저들의 계획이 성공한다고 해도 멀쩡히 아카데미를 빠져나가지 못할 텐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단순히 이용당하는 건가. 멍청한 새끼.’
수 킬로 반경에서 모여든 마력 일부가 녀석들에게 흘러들어갔다.
전신에 들끓는 마기를 느낀 녀석들이 고양된 표정으로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벌써 다 이긴 것처럼 굴었다.
“헬레나는 리스트에 오른년이잖아! 차라리 잘 됐다. 지금 처리하자.”
“잠깐만. 저년들 몸매좀 봐. 죽이기 전에 맛 좀 보자.”
“꿀꺽...! 그, 그럴까?”
헬레나와 아멜리아는 대꾸 없이 차가운 눈으로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시우는 이미 자기 여자라 생각하는 그녀들이 모욕당하자 기분이 더러워졌다.
“너희 둘은 곱게 못 죽을 줄 알아라.”
“하! 웃기고 있네. 이 강대한 마기가 느껴지지도 않는 거냐?!”
마인들이 헛소리하는 것을 듣다가 결심했다. 만약 생포한다면 배후를 캐기 위해 고문할 녀석들이지만 먼저 고자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한참 헬레나와 아멜리아를 보며 희롱하던 그들 중 한 명이 얼굴을 굳혔다.
“어어? 야 정신 차려! 벌써 그러면 어떡해!”
말이 없던 일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온몸의 핏줄이 튀어나오며 거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으으..”
자신의 경지 이상의 힘을 다루는데 대가가 없을 리 없었다. 다른 두 녀석과 다르게 벌써 이성을 잃어가는 것이 보였다.
결국 녀석이 침을 질질 흘리며 뛰쳐나왔다.
“으아아아!! 박진구!!! 네놈은 내가 죽여주마!”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다. 아무런 저항 없이 결계석에서 흘러들어오는 마력을 모두 흡수한 결과였다.
“크하아!!”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얻었는지 이성이 흐려진 짐승 같았다. 몬스터와 다를 바 없었다.
‘쯔쯔..’
시우가 녀석을 마중 나가면서 그녀들에게 말했다.
“저놈은 내가 처리할게.”
마력코어에 있는 마력을 끌어냈다.
진각을 밟았다.
-쾌진격 : 파강권(破强拳)
가장 익숙한 초식을 주먹으로 펼쳤다. 부수고 깨뜨리는데 특화된 두 기운을 담은 전진 붕권이었다.
뻐억!
“꺼어억..”
입학대련 때 몇 번이고 먹여줬던 주먹을 명치에 꽂아 넣었다. 역시나 녀석은 반응하지 못했다.
넘쳐나는 마력이 아까웠다. 신체 스펙이 올라도 정신이 따라주지 않으면 의미 없었다.
녀석의 심장이 가루가 됐다. 그런데도 눈빛에 살기가 가득 남아 있었다.
“끄으···!”
터억!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녀석의 턱을 후려치려는데 녀석이 손으로 막아섰다. 동시에 녀석의 반대쪽 팔이 채찍처럼 날아왔다.
쉬익!
턱을 스쳐 지나가는 날카로운 손톱을 피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여서 조금만 늦었으면 맞았을지도 몰랐다.
쉬쉬쉭!
빠드득. 꾸뜨득.
녀석의 팔이 괴상한 각도로 휘둘러져 왔다. 쉴 새 없이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게 정상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군.’
눈빛에 이지가 사라지고 본능만 남아 있었다. 이성이 완전히 사라지자 오히려 강해졌다. 신체 스펙을 온전히 사용하기 시작했다.
쾅! 쾅!
채찍같은 공격을 피하며 파고들었다. 주먹을 내질렀으나 배리어에 가로막혔다. 결계에서 흘러들어오는 막대한 마력을 이용한 장막이었다.
주먹에 항마력을 담아 배리어를 깨부쉈다.
녀석은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데 고통도 느끼지 못 하는듯 팔을 휘둘러왔다. 마치 트롤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터졌는데 움직인다고.’
주먹으로 몸을 두들기며 약점을 파악했다. 녀석이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부위는 단 한곳. 머리였다.
‘쾌(快), 중(重).’
발로 밀어찼다. 타격보단 잠시 거리를 벌리기 위한 일격.
콰앙!!
일진 녀석이 벽에 처박히며 시계탑이 거칠게 흔들렸다. 잠시 시간이 생긴김에 일행을 살폈다.
아멜리아와 헬레나가 서로를 지켜가며 싸우고 있었다.
헬레나는 나름 여유가 있었는데 아멜리아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그녀의 마력이 벌써 절반 이상 날아갔다.
4성급 선천마력을 각성한 것 치고 터무니없이 적은양. 그녀는 마력이 늘어나는 것을 꺼려 했기 때문에 마력수련을 거의 하지 않았다.
‘빨리 끝내야겠네.’
“크아아아!”
벽에 처박혔던 일진의 몸을 한 괴물이 달려들었다. 이제는 사람이라기보단 인간 형상의 몬스터였다.
송곳니가 점점 길어지며 손톱도 자라나고 있었다. 전신에 털이 듬성듬성 자라나고 있었다.
다른 두놈과 다르게 아무런 필터 없이 시계탑에 모여든 마력을 온전히 받아들인 결과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질 것이 뻔했다 지금도 사방에서 마력이 흘러들어오고 있으니까.
‘육화(肉火).’
세상이 느려지고 감각이 선명해졌다. 얼마 전에 시험 삼아 써본 것과 다르게 제대로 사용했다.
온몸의 피가 불로 변하듯 들끓기 시작했다.
파앗!
“크악!”
쉴 새 없이 달려들던 괴물 녀석이 경계하듯 한 발 물러났다. 녀석의 표정에 언뜻 두려움이 보였다.
처음으로 제대로 사용한 육화(肉火).
몸을 불태워 힘을 얻는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마력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인공 균열 전역에서 모인 마력이 마인들의 심장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일진은 이미 검은 심장이 된 지 오래였고 다른 둘도 절반 넘게 물들어 있었다.
일진 형상의 몬스터가 근육을 꿈틀거리는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천천히 흐르는 세상을 보다가 땅을 박찼다.
쾅! 쾅!
마치 정지되듯 멈춰있는 녀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녀석의 재생된 배리어가 뭉텅뭉텅 사라져갔다.
항마력 특성을 담은 주먹은 배리어에 특효였다.
“크아아아!”
녀석이 괴성을 지르더니 마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심장에 마기가 모여 들었다. 본능적인 위기감에 자폭이라도 하려는 속셈 같았다.
‘강(强) 중(重) 파(破)’
혼원기로 세 가지 속성을 다루는 것은 처음이었다. 불안정한 파(破)의 기운은 특성의 힘을 빌려 완성했다.
부시고 깨뜨리는데 특화된 패도적인 세 속성이 하나로 모였다.
- 삼합일기권(三合一氣拳).
콰아앙!!
주먹 한 방에 녀석의 두터운 배리어와 머리가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재생력이 특출난 녀석이라도 머리가 날아가고도 살아날 순 없었다. 헬레나의 외침이 들렸다.
“중앙의 결계석! 저걸 부셔야해요!”
“알았어.”
중앙 결계석을 보호하는 최후의 장막이 있었지만 항마력이 서린 주먹 앞에 무력했다. 그것을 본 마인들이 발악하듯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막혀 불가능했다.
“안 돼!!”
콰앙!
결계석이 부서지며 사방에서 모여 들던 마력 흐름이 사그라졌다. 그와 동시에 녀석들이 급격하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기본적인 실력이 부족한 녀석들이었다.
“이런 제기랄!! 아악!!”
마력의 보조가 사라진 녀석들은 순식에 제압됐다. 헬레나는 녀석들의 단전까지 부셔버리며 자비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자로 만들어 줘야지.’
시우가 녀석들에게 걸어가다가 멈칫했다.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보던 헬레나가 마탄을 날렸다. 녀석들의 하물이 뭉개지며 터져 버렸다.
끔찍한 고통에 녀석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끄아아악!! 아파아!!”
“아아아악!!!”
헬레나는 통쾌한 듯 그것을 보다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힐끔거리며 그의 눈치를 살피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잘했어.”
얼굴이 붉어진 그녀가 전투로 흐트러진 옷을 단정히 했다. 요조숙녀가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