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0 - 70화 - 아카데미(21)
70화 - 아카데미(21)
강수호.
스마트폰에서 단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나운서라고 해도 믿을 만큼 듣기 좋은 음색이었다.
-수호야 정말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하나도 안 다쳤어요.”
-그래도···.
“에이. 괜찮다니까요.”
-엄마가 그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테러라니! 걱정돼서 잠도 못 잤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강수호에요. 선천마력이 4성인 천재!
-엄마도 아들 잘난 건 알지만··· 후우···
“이번에 균열실습도 제가 일등일 걸요? 아마 수련성지는 제가 들어가게 될거에요.”
수련성지는 마력농도가 엄청나게 높아 마력을 늘리는데 적합한 곳이었다.
-어머! 잘 됐다. 역시 우리 아들···. 네? 잠시만요. 수호야 엄마 가봐야겠다. 사랑해~
“알았어요. 저도 사랑해요.”
뚝
“나 참···.”
강수호는 오랜만에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서 기분이 좋아졌지만 다시금 짜증이 치밀었다.
‘빌어먹을 어떤 놈들이야.’
균열 실습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려 했다. 때문에 쉴 새 없이 좀비를 죽여대며 점수를 쌓았다.
중간에 좀비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깨달았지만 실습 내용이려니 싶었다. 갑작스러운 긴급 방송이 아니었으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테러라니!’
어떤 놈의 짓인지. 테러 때문에 실습이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아오 짜증나.. 내가 얼마나 쩔었는데.’
앤이 안겨드는 것을 피하며 힘들게 좀비를 죽여댔다. 정말 더럽게 힘들었다.
‘그나저나 아멜리아는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물론 그녀 실력에 겨우 좀비따위한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부터 연락이 안 돼서 걱정되던 참이었다.
여기저기 소식을 알아본 끝에 전화가 왔다. 소식이 빠르기로 소문난 생도였다.
-아멜리아 입원했다는데?
“뭐?! 어디로?”
-아카데미 부속 병원. 마력탈진이라더라.
강수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도 모르는 아멜리아에 대해 알고 있는 상대에게 분노가 치밀었으나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
눈을 감고 작게 심호흡 한 뒤 겨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뭐, 나야 누나가 간호사니까. 아무튼 밥사라.
뚝.
“후우···”
서둘러 나가려던 그가 멈칫했다. 그녀 앞에서 오랜만에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 시간 내내 여러 옷을 걸쳐본 결과 가장 처음 옷으로 되돌아갔다.
“크.. 이게 얼굴이지.”
본인이 봐도 잘생긴 외모였다. 거울을 보며 고개를 까닥거린 그가 방을 나섰다.
현관문을 나서려다 그의 누나인 강현아가 눈에 밟혔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으..! 도대체 왜 연락을 안 하는 거야!”
“누나 뭐 해?”
“어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평소와 다른 모습에 누나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녀의 목덜미에 작은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목에 그건 뭐야? 어디 다쳤어?”
어지간한 상처라면 포션 섞인 연고를 바르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런데 밴드라니. 생소한 풍경이었다.
그녀는 피부에 작은 상처라도 나면 꼭 비싼 연고를 발랐었다.
“어..? 아, 아니야. 그냥··· 그으··· 어디 긁혔어.”
“연고라도 바르지? 웬 밴드야?”
“으음... 신경 쓰지마. 귀찮아서 그래.”
“내가 가져다줄까?”
“아냐! 됐어.”
단호한 모습에 더 이상 권할 수가 없었다. 그의 누나는 은근히 고집이 세니까.
오늘따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스마트폰을 노려보던 그녀가 드디어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너 어디가?”
“아.. 그게.”
강수호가 망설였다. 아멜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누나의 기분이 안 좋아진다.
지금도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기에 더욱 꺼려졌다. 하지만 거짓말은 하기 싫으니 결국 입을 열었다.
“어... 아멜리아 병문안 가려고.”
“병문안..? 아! 혹시 시우라는 애는 다쳤데..? 그.. 궁금한 건 아니고 그냥···.”
녀석이 다쳤다는 말은 못 들었다. 아멜리아에 대해 알아보다가 그가 멀쩡하단 소릴 듣고 아쉬웠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아니. 멀쩡하다던데 그런데 걔는 왜?”
그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니야. 저번에 같이 청소도 했잖아... 그냥 궁금했어. 그나저나 병문안 간다구?”
청소라고 하니 치욕스럽게 기절했던 기억이 떠올라 조금 창피했다.
“어어..”
“그래. 잘 갔다 와.”
분명 아멜리아 얘기를 꺼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를 보니 본능적으로 불안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빼앗기는 감각.
‘뭐지?’
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본인의 것이던 누나의 관심이 사라지자 정체불명의 감정이 가슴 속에서 피어났다.
그녀가 은은하게 웃으며 목덜미의 밴드를 쓰다듬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저 미소를 보니 얼마 전에 전송된 정체불명의 영상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다.
‘에이 말도 안 돼.’
영상을 하도 많이 봤더니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특성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전설]일로정진(一路精進) : 길이 정해지면 한계를 깨고 끝없이 나아간다.
20살이 되도록 잠잠하던 특성에 반응이 왔다.
‘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 감각에 집중했다. 하지만 착각인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에이 설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수호야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갔다 올게.”
“응. 조심히 다녀와.”
특성이 꿈틀거린 것이 착각인지 아닌지 조금 신경 쓰였다. 하지만 가는 길에 세 번이나 번호를 따이자 그 느낌은 흔적도 남지 않고 잊혀졌다.
그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병원에 들어섰다. 오늘따라 머리가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아멜리아.. 내가 간다!’
카운터로 걸어갔다.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들이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저절로 귀에 마력이 모였다. 청각을 증폭했다.
“어머! 정말?”
“그렇다니까. 어떻게 여기서 할 생각을 했지.”
“세상에···! 이번 기수는 정말 빠르네. 어디까지 한 거야?”
“내가 보기에 최소 키스는 했어. 병실을 열자마자 공기가 후끈거리는 게.. 어휴! 내가 다 민망하더라.”
그 말을 듣던 간호사가 침을 꼴깍 삼켰다.
“하으..! 부럽다. 나도 한 번 꼬셔볼까?”
“어머, 미쳤어. 너 그러다 큰일 나.”
“뭐 어때. 내 얼굴이면······.”
강수호는 그녀들의 수다를 훔쳐듣다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여기에 입원한 환자들은 대부분 아카데미 생도다. 어떤 녀석들인지 몰라도 아카데미 망신을 제대로 시키고 있었다.
“흠흠!”
“어! 강수호 생도님?!”
간호사가 웃으며 하는 말에 약간 당황했다.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데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어··· 누구시죠?”
그녀의 표정에 살짝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곧 웃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저번에 같이 사진찍어 주셨는데 기억 안 나세요?”
강수호는 이제야 기억이 났다. 저번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같이 사진찍었던 간호사였다.
“아..! 그때 그분이구나. 못 알아봐서 죄송해요.”
“어머, 아니에요. 그러실 수도 있죠. 어떤 일로 오셨어요?”
“친구 면회왔습니다.”
“그러시구나.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강수호는 그녀가 친절하게 웃는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자들은 그의 얼굴만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멜리아입니다.”
막 타자를 치려던 간호사의 손이 멈칫했다.
“잠깐.. 아멜리아님이요?”
“네.”
간호사 둘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강수호에게 물었다.
“혹시··· 여자 친구?”
“아, 하하! 아니에요. 음.. 썸이랄까?”
“그러시구나.. 흡!”
간호사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의아함도 잠시 그녀는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환자분께서 모든 면회를 거부해놔서 안 될 것 같은데요?”
“네? 이런..!”
“그.. 아멜리아님에게 직접 연락해서 허가를 받아야지 면회가 가능하세요.”
“해봤는데 안 받아서..”
“어머! 어머!!”
면회가 안 되는 게 뭐가 그리 좋은 일이라고 간호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러면서 그를 미묘한 눈으로 쳐다 봤다.
처음 받아보는 눈빛이라 거기에 담긴 감정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안타깝지만 안 되겠네요. 내일 퇴원이니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아까 봤는데··· 멀쩡하시더라구요.”
“하아.. 알겠습니다.”
‘쳇. 아까 그 여자들한테나 연락해볼까.’
멋지게 차려입고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기 아쉬웠다. 아까 번호를 따간 여자들도 외모가 나쁘진 않았다. 하루 재미 삼아 만날 정도는 됐다.
요즘 따라 아카데미 생활이 잘 안 풀려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하던 강수호는 우연히 간호사들을 봤다.
그녀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속닥거리며 얼굴이 붉어질 만큼 웃고 있었다.
“쯧.. 업무 태도가 저게 뭐야?”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방금 전에 만났던 여자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셋 다 외모가 비슷했으니 가장 먼저 반응한 여자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동시에 문자를 전송했다.
-저녁에 만날래요?
두 번째 여자에게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큭큭.. 역시.”
술 마시는 내내 그녀가 은근히 유혹해왔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한 심심풀이였다.
‘어딜.. 절대 안 되지.’
그의 동정을 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단호하게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