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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75화 (75/241)

Chapter 75 - 75화 - 아카데미(26)

75화 - 아카데미(26)

강수호는 검성께서 오신단 말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밤새 설레는 마음에 이리저리 뒤척였다. 해가 뜰 무렵에야 겨우 잠들었다가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며, 몇 시지?!’

오전 9시. 다행히 아직 검성께서 오실 시간은 아니었다.

‘휴..’

어제부터 온종일 고민했다. 수련은 뒷전이 된 지 오래였다. 훈련용 검을 집어 들고 몇 번 휘둘렀다.

어릴 때 배웠던 검술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음.. 난생처음 검을 잡는데 뛰어난 컨셉으로 할까?’

검을 잡자마자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본 검성께서 큰 관심을 보인다. 괜찮은 계획이었다.

너무 익숙해지면 티가나니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어설픔과 능숙함이 공존하는 상태.

‘이 정도가 딱 좋아.’

고개를 끄덕인 그는 식당으로 향했다. 가장 구석 자리에서 아멜리아가 음식을 산처럼 쌓아 놓고 먹고 있었다.

볼이 빵빵해져라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마저 귀여웠다.

‘아니 오늘따라 진짜 예쁜데?’

어제 뭘했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만에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평소 피곤해 보이던 것과 다르게 피부에서 빛이 났다.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다가 갔다. 그녀의 고개가 빠르게 이쪽을 향했다.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에 작은 실망감이 서렸다.

“으응?! 아.. 수호구나.”

“아멜리아 잘 잤어? ..오늘따라 예쁘다.”

큰마음먹고 칭찬했는데 반응이 영 싱거웠다.

“응. 고마워. 너도 밥 먹어.”

서둘러 식당에 놓인 접시를 집어 들었다. 보존마법 덕에 막 만들어진 상태 그대로 유지된 음식이 담겨 있었다.

요리사가 올 수 없는 환경 때문에 릴리네 교수가 완제품으로 가져온 음식들이었다.

그것들을 집어 들고 당장 아멜리아에게 향했다. 처음으로 그녀와 같이 밥 먹을 기회가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다.

‘자연스럽게 같이 앉아야지.’

음식 접시를 들고 그녀의 탁자에 도착한 그는 계획과 다른 모습에 멈춰 섰다.

그녀의 음식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놓을 자리가 없었다.

“웅..? 여긴 좁은데.. 그냥 저기서 먹어.”

“아··· 그, 그래.”

하필이면 가장 좁은 2인용 탁자에 앉다니. 좋은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가 버려 너무나 아쉬웠다.

*

‘드디어!’

검성께서 올 시간이 다가왔다. 그는 수련성지의 입구까지 달려갔다.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 기다렸다.

번쩍!

이동 마법진 특유의 빛. 하지만 그것보다 검성의 미모가 더 눈부셨다. 절로 지어지는 멍청한 표정을 서둘러 관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1학년인 강수호입니다! 검성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름이 강수호라고? 만나서 반갑네. 역시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란 말이지. 그런데 저번에는···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시간도 없는데 어서 가세.”

“예! 안내하겠습니다!”

강수호는 가슴이 다 떨렸다. 겉보기에 어여쁜 아가씨로 보이는 저분이 바로 북부방벽의 절반을 책임지는 검성 이사벨이었다.

그녀의 일 검에 평야를 가득 채운 몬스터가 모조리 반 토막난 영상을 보고 팬이 되어 버렸다.

‘후우..’

절로 거칠어지는 숨을 겨우 안정시켰다.

*

공터에 도착하니 헬레나와 최시우를 제외한 모든 생도가 나와 있었다.

아멜리아는 아직 열리지 않은 시우의 방문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흠.. 헬레나 녀석. 고모가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다니... 너무 놀렸나.”

“아, 안녕하십니까..!”

생도들의 반응도 강수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몸을 잘게 떨며 긴장하는 모습.

“그래. 모두 반갑다. 내가 시간이 별로 없으니 바로 시작하지. 먼저 자네부터.”

검성 이사벨은 후덕한 살을 떨며 서 있는 앤을 관찰하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의지박약이라는 기질이 있지 않나?”

“네, 넷?!”

“음..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네. 겉만 봐도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는 아가씨구만. 호숫가를 따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뛰어 보게. 고농도의 마력이 체질을 개선할 것이네.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연이지. 그리고···.”

앤 때문에 같은 조가 된 남자 생도 차례가 끝나고 드디어 강수호. 그의 차례가 왔다.

“자네는···”

어제부터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예! 검성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검에 재능이 있는지 확인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음..? 자네는 마법학부라고 들었네만.”

“어.. 사실 어릴 때부터 검성님을 존경했습니다.”

“하하! 그건 당연하겠지. 그런데?”

“그래서 항상 검의 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검사는 어지간한 재능으론 불가능한 만큼 확신을 가지고 싶습니다. 검성께서 제가 처음으로 검을 잡는 것을 보고 평가해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허어.. 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기특하긴 하나, 너무 과한듯하네. 흐음··· 그래. 뭐 안 될 거 있나 한번 휘둘러보게.”

강수호는 한 켠에 비치된 수련용 검을 집어 들었다.

“후우···”

사실 어릴 때 검에 대해 배웠으나 귀찮고 힘들어서 집어치웠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해 휘둘렀다.

“음··· 처음이라고?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네, 네..?”

“딱 봐도 배운 티가 나. 아마도 어릴 때 배운 것 같은데, 기억에 없을 수도 있겠지.”

“어어.. 그, 그렇습니까?”

“그래도 재능은 나쁘지 않네. 본능적으로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어.”

“아..! 가, 감사합니다.”

그 뒤로도 여러 조언을 하던 이사벨의 시선이 아멜리아에게 향했다.

“자네는··· 손목 좀 잡아도 되겠나? 내가 생각한 것이 맞나 확인해 보고 싶군.”

“아... 네.”

이사벨은 그녀의 손목을 부여잡고 가까이 다가 갔다. 아멜리아를 유심히 보던 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역시 그렇군. 내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겠네. 성실히 수행하면 그것에서 벗어날지도 모르지.”

검성은 아멜리아에게 전음을 날렸다. 입이 조금씩 벌어졌으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수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것을 힐끔힐끔 쳐다 봤다.

검성께서 약속하신 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운 좋게 만난 우상과 이대로 헤어지긴 너무 아쉬웠다.

그때. 최시우 녀석이 방에서 뒤늦게 나왔다.

‘하핫..! 검성 정도 되는 분이 약속 시간에 얼마나 철저하겠어. 너는 첫인상부터 최악일 거다.’

그런데 펼쳐진 상황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

시우는 방을 나서자마자 검성이 아멜리아에게 무언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를 발견한 검성이 밝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오..! 최시우 생도. 반갑구나.”

“안녕하셨습니까. 저번엔 감사했습니다.”

“하핫! 그래. 호오··· 자네 제법 성취가 있었구만? 그새 한걸음 나아가다니. 기특하구나.”

“그걸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까?”

“내가 달리 검성이겠느냐. 어때..? 사인해 줄까?”

“그건 됐습니다.”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시우를 관찰하던 검성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거치대에 있던 목검 두 자루가 허공을 날아왔다.

그것을 시우에게 내밀었다.

“잡게나.”

“..네?”

“일단 한판 붙지.”

“음.. 알겠습니다.”

탁! 탁!

수련용 목검이지만 진검과 무게가 같았다. 묵직한 무게에 거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수십합을 겨뤘다. 전력을 다해도 다치지 않는 상대. 마음 편히 검을 휘두르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마력은 한톨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위험!'

급소를 노리고 날아오는 목검에 옷깃이 잘려나갔다. 단순한 목검임에도 진검보다 위험해 보였다.

목덜미를 스쳐 지나가는 목검에 세상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빙그레 웃은 검성이 심장을 향해 목검을 찔러왔다. 가까스로 상체를 비틀어 피할 수 있었다.

잔류사념이 남을 정도의 집중.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아..'

대련은 검성의 검이 그의 목에 드리워진 채 끝났다. 그와 동시에 느려진 세상이 되돌아왔다.

“후.. 대단하시네요. 이사벨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 잔류사념이란 게···”

이사벨이 손바닥을 내밀며 말을 막았다.

“흠··· 자네는 이제 막 마음속에 있는 그릇을 인지한 상태네. 하지만 그것을 키우는 것은 다른 문제지.”

“예?”

그의 고민을 다 안다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막 길을 알았을 테니 당장 달려가고 싶겠지만···. 집착하다 보면 더 멀어질 뿐이네.”

“으음..”

“차라리 마음 편히 먹고 여유를 가지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네.”

확실히 아무 생각 없이 대련에 몰두 했을 때 오히려 집중이 더 잘 됐다. 알듯 말 듯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다음 경지에 대한 집착을 조금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뭐, 말한다고 마음을 비우는 게 쉽진 않겠지. 좋은 방법이 있긴 하네.”

절로 호기심이 드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북부방벽 같은 곳에 와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거야. 생각에 잠길 틈도 없을걸? 어때, 방벽에 관심 있나?”

군대보다 더한 곳에 가서 고생하라는 소리였다.

***

검성이 떠났다.

강수호가 질투어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신경껐다. 검성의 충고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집착하지 말라고.’

고민하다가 마침 딱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머리를 비우는덴 그만한 것이 없었다.

“아멜리아 밥 먹고 같이 산책이나 갈래?”

“응..? 그럴까?”

시우는 식당으로 가면서 아멜리아의 얼굴을 살폈다. 보혈단을 먹어서 그런지 하룻밤 새에 얼굴색이 밝아졌다.

피부에 꿀이라도 바른 듯 탱글탱글해진 느낌이었다.

“영단 효과 좋은데? 확실히 얼굴이 밝아졌어. 더 예뻐졌네 아멜리아?”

“흐흥..! 그, 그래애? 예뻐졌어..?”

아멜리아는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게 남들의 시선만 아니었으면 이미 안겨들었을 얼굴이었다.

“어디서 먹을까?”

“요, 요기 앉을래..”

그녀가 가리킨 곳은 좁아터진 2인용 탁자.

“조금 좁지 않아? 몇접시 안 올라갈 거 같은데?”

“괜찮아. 나눠먹으면 돼. 그리고···”

“그리고?”

“여기는.. 소, 손잡고 먹을 수 있어. 히히..”

생각보다 앙큼한 이유였다.

이제 보니 가장 구석이라 서로 나란히 앉아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남들의 시선도 기둥 덕에 은근히 차단된 곳이었다.

그곳으로 아멜리아와 함께 향했다.

“아악..!! 조, 좁다면서!”

멀리서 은근슬쩍 뒤따라 오던 강수호가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경악한 눈과 함께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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