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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81화 (81/241)

Chapter 81 - 81화 - 클랜(4)

81화 - 클랜(4)

얼마 전.

“꺄아악!!”

이연희는 합격 문자를 받고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눈물이 글썽였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이후로 하루하루가 악몽이었다. 급격히 기울어가는 집안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한 달에 오, 오백···?’

그녀는 병원비가 그렇게 비싼지 처음 알았다.

어느새 가장이 돼버린 그녀는 어깨에 올려진 짐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다니던 학교는 당장 휴학했다. 알바를 전전했지만 병원비의 절반도 감당할 수 없었다.

배웠던 전공으로 취직 할 수도 없었다. 이쪽 업계에서 졸업도 하지 않은 학부생을 채용할 회사는 없었으니까.

빚만 늘어나던 그때. 기적과 같이 각성했다.

정말 무너져 내리는 하늘에서 구멍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구멍이 너무 좁았다.

‘돌멩이 소환이라니.’

전투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렇다고 무술은 커녕 운동 한번 한적 없는 그녀가 맨몸으로 몬스터와 싸울 수도 없었다.

계속된 파티 거절에 절망하던 그녀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짐꾼도 괜찮다면 자기네 파티로 오라는 연락.

‘으.. 소, 소름 돋아.’

그런데 막상 가 보니 너무 수상했다. 파티원들의 눈빛이 이상했다.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연희는 고양이 앞의 쥐가 무슨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미친. 이제 와서 그만둔다고?”

“죄, 죄송해요.”

결국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뒤늦게 헌터 커뮤니티에서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모골이 송연했다.

그놈들과 함께 균열에 들어간 짐꾼 절반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말이 있었다.

그 뒤로 차마 짐꾼을 할 자신이 없었다.

‘어떡하지..’

인터넷에 자신과 비슷한 헌터들의 글이 많았다. 전투에 부적합한 헌터들.

특히 각성하자 마자 기존 일을 때려치우고 헌터업으로 뛰어든 자들은 제대로 쓴맛을 봤다.

그나마 희망적인 글도 있었다.

같은 짐꾼이라도 괜찮은 클랜에 들어가면 적어도 험한 꼴은 당하지 않는다고.

균열에 대해 알아가고 등급이 오르다 보면 먹고는 살 거라는 글이었다.

그것을 읽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가 발견한 구원클랜.

‘숙식 제공에 기본급만 500, 균열수익 별도? 와..’

조건이 너무 좋아서 수상할 정도였다. 망설이다가 클랜장이 뉴스까지 나온 것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SH스미스면··· 나도 아는 회사인데. 이런 곳에서 아무나 모델로 쓰진 않겠지.’

막상 지원하려니 자신이 너무 보잘것없이 느껴졌지만 눈을 꾹 감고 지원했다.

그녀에겐 뒤가 없었으니까.

*

이연희는 여고생 비서를 본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곳이 정상적인 클랜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또 도망갈 순 없었다.

‘미, 믿자.’

심호흡하고 주먹을 꼭 쥐었다. 다행히 혹시나 했던 공포스런 상황과는 점점 멀어졌다.

“여기가 식당이에요. 원할 때 내려와서 드시면 돼요.”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이 주르륵 이어져 있었다. 모든 음식 접시에 보존 마법진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법진에 대해 잘 모르는 동기들은 그저 좋아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연희는 경악했다.

그녀의 전공은 마도 공학이다. 마법진이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알았다.

‘이, 이게 도대체 얼마야..’

“다들 식사는 하셨나요?”

“아.. 저는 아직.”

“저는 먹었어요.”

이다솜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디저트도 있으니까 동기끼리 친해질겸 이야기할 시간 드릴게요. 1시간 후에 다시 올게요.”

동기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처음엔 어색했으나 금방 대화가 오고 갔다.

“생각보다 식당이 좋은데요?”

“그러게요. 어머! 이거 맛있다.”

이연희는 음식을 산처럼 쌓아 놓고 먹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최대한 맛있어 보이는 것들로 접시를 채웠다.

음식 하나하나가 황홀한 맛이었다. 다소 빈곤하게 자란 그녀가 처음 보는 음식도 많았다.

그녀는 고기의 육즙이란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입에서 녹잖아. 이게 공짜라니.’

식당에는 사무직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런 음식이 일상이란 것이다.

아까 닭장 숙소로 겁주던 동기가 헛기침 하며 말했다.

“으, 음식은 괜찮네요. 생각보다 숙소가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번 클랜은 어땠는데요?”

“애초에.. 이런 클랜하우스가 없었어요. 그냥 각자 균열돌고 근처에서 사 먹었죠.”

“아..”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냥 파티 알선업체 같은 느낌이었네요.”

고개를 끄덕인 이연희가 고개를 돌렸다.

서가윤이라는 힐러 아가씨는 도도하게 디저트를 품평하듯 집어먹고 있었다.

“음.. 나쁘지 않네요.”

새하얀 가루가 뿌려져 있는 경단을 먹은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마음에 들었나 보다.

호기심이 생긴 이연희도 똑같은 디저트를 먹어 봤다.

“흡..!”

천상의 맛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고생한 자신을 껴안아주는 느낌이었다. 달콤한 행복을 주는 맛.

‘하으.. 마, 맛있어..’

*

이연희는 연신 새어 나오는 감탄을 꾹 눌러 참았다. 이제는 이 클랜에 지원하길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숙소는 모두에게 각자 방이 지급되었다.

그녀가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왔던 집보다 넓었다. 몇억은 넘을 것 같은 오피스텔을 무료로 임대해 주다니.

“여, 여길 정말 혼자 써요?”

“네. 빈방은 많으니까요.”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최신식 건물이라 하나 같이 시설이 좋았다.

동기가 겁줬던 닭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머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여기가 훈련실이에요.”

“와..!”

“단체 훈련실이랑 개인 훈련실 따로 있어요.”

이연희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 유난히 시설 좋은 훈련실이 하나 있었다. 벽이나 바닥 곳곳에 최신식 마법진까지 설치돼 있었다.

그녀의 전공과 관련있는 것이라 알아볼 수 있었다.

‘조금 다르긴 한데.. 방음 마법진이랑··· 클린? 와 이거 비싸다고 들었는데.’

마법진은 그냥 설치한다고 끝이 아니다. 지속해서 마력을 공급해야 하므로 유지비도 든다.

지금까지 별 반응없던 서가윤의 눈도 반짝였다.

“와! 이방은 특히 좋네요. 어? 침대랑 샤워실까지 있네요?”

그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여고생 비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흠흠.. 여긴 특별 훈련실이에요. 클랜장님께 마력단련법 전수 받을 때 쓸 거에요.”

“마력 단련법이요?!”

거대 길드에서 핵심 인력들에게나 비밀리에 전수하는 마력단련법. 그것을 알려 준다니.

“나중에 정식 길드원 되면 클랜장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거에요.”

훈련실에 있는 분홍색 침대 시트가 유난히 푹신해 보였다.

*

*

*

아카데미 지구에서 나온 지 벌써 한 달이 흘렀다.

클랜의 규모가 커지며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각성한지 얼마 안 된 한소영이 부클랜장인 것에 불만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불만은 대련 몇 번으로 싹 사라졌다.

“꺄아악!”

대련 때 배리어를 두른 그녀의 주먹에 두들겨 맞았으니까.

헌터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었다. 서로의 목숨을 맡기고 균열에 들어가야 하는 만큼 당연했다.

건물주라 그런지 클랜원들에게 엄청나게 퍼줬는데도 돈이 남았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한 달에 수천만원씩 들어왔다.

‘크으.. 너무 좋네.’

지금은 한소영과 이다혜만 안아주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클랜에 소속감을 가지게 되면 한 명씩 안아 줄 생각이었다.

이제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몇 개 남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연희.

그녀의 육체적 재능은 절망적이었다.

체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균열은 운동과 담쌓고 지낸 그녀가 다닐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길도 없는 숲을 헤치는 것만으로 엄청난 중노동이니까. 괜히 헌터들이 아카데미에서 기초 교육을 받는 게 아니다.

‘다행이라 해야 되나.’

이렇게 된 이상 슬슬 연금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었다.

***

헌터 업계에서 상급자가 반말하는 것은 당연했다.

유사시 빠른 명령 때문이기도 했고 균열에서 명령권을 명확히 하기 위함도 있었다.

“연희씨 부클랜장한테 들으니까 체력이 많이 약하다던데?”

“아···! 그, 그게 죄송합니다!”

“아니야. 차라리 잘 됐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연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슨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더 놀라기 전에 말을 이었다.

“전공도 마도공학이던데 차라리 비전투직은 어때? 연금술사도 괜찮다면 지원해 줄 생각이 있는데.”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흑..”

그러더니 서러운 얼굴로 울기 시작했다.

“아니 왜 울어? 그렇게 연금술사 되기 싫어?”

“흐윽.. 네, 네..? 연금..술사요?”

훌쩍이던 이연희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정 싫으면 그냥 전투직 계속···.“

“할게요!!”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녀가 간절하게 말했다.

“제발 하게 해주세요. 제발요!”

“정말 하고 싶은 거 맞아?”

“네!! 꼭 하고 싶습니다. 시켜만주세요!”

혹시 몰라서 거짓간파까지 사용했다. 다른 세상의 지식을 알려줄 건데 원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줄 수는 없었다.

‘음··· 진실 맞군.’

먼저 카르마 상점에서 산 마나 계약서로 비밀유지에 대해 단단히 약속받았다.

“앞으로 내가 알려줄 것들이랑 지금 일어나는 일은 전부 비밀이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네! 명심할게요.”

「기초 연금학 개론」

아카데미 세상에서 쉬는 날에 사놨던 기초 연금술 책. 가장 잘 팔린 스테디 셀러였다.

같은 한국어라 이연희도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신기하게 쓰는 말이 같네.’

잠시 고민해봤지만 딱히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연금 펜으로 가장 첫장에 있는 마법진을 따라 그렸다. 연금 적성 판별 마법진. 마나의 유연성에 대해 검사하는 거라는데 자세히는 몰랐다.

그저 연금술에 대한 재능을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여기다가 피 한 방울만 떨어뜨려 봐.”

“아.. 네.”

이연희는 연금 펜만으로 눈동자가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간단하게 마법진을 그리는 이 펜만 해도 이쪽 세상에 없는 물건이니까.

‘오··· 최상급? 선천마력이 낮은 건 내가 도와주면 되고. 좋네.’

책을 한 장 넘기고 다음 내용을 살폈다. 여기까진 도와줄 생각이었다.

“여기 적혀 있는 기초 마력단련법 할 수 있겠어?”

“자, 잠시만요.”

이연희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끙끙댔지만 역시 변화가 없었다.

F급 헌터가 체내의 마력을 의지대로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내가 도와줄게.”

특별 훈련실을 사용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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