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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86화 (86/241)

Chapter 86 - 86화 - 클랜(9)

86화 - 클랜(9)

시우는 균열에 들어오자마자 지형부터 파악했다.

‘바위산?’

사방에 집채만 한 바위가 널린 황야였다.

뒤따라 들어온 황보광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만족스럽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운이 좋군. 지형까지 따라주다니.”

가윤이와 자리를 뜨려는데 녀석이 지나가듯 말했다.

“흐음... 그나저나 거기 아가씨. 그런 작은 클랜에 있으면 오늘처럼 불편한 게 많지 않습니까? 차라리 저희 길드로 오시죠.”

저 말을 들으니 녀석의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갔다. 가윤이의 아버지 때문이던 외모때문이던 그녀를 탐내는 것이다.

“어이 늙은이. 뒤지기 싫으면 헛소리 그만하지.”

“느, 늙은이..?”

황보광의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녀석은 인상을 찌푸리는 것에서 끝났지만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 송충이 눈썹이 기다렸다는 듯이 급발진을 시작했다.

“이익..! 아버지!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 저 녀석은 몬스터 밥으로 줘버리고 서가윤 저년은 제가 범하겠습니다.”

돌발상황인지 녀석의 아비도 경악하고 있었다.

“뭐, 뭣?! 가,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

“아버지 계획은 엉망진창입니다. 저년이 클랜에서 나간다고 저희 길드에 오기나 하겠습니까?”

송충이 눈썹이 허리춤에서 녹색액체가 묻은 단검과 균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작정하고 온 것 같았다.

“저년을 범하고 영상만 찍으면 끝입니다.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죠.”

황보광이 뒷목을 부여잡았다.

“어억..! 정신 나간 놈!! 정말 돌아버린 것이냐!”

시우는 들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제자교육 제대로 하네.’

서가윤은 제 귀가 정상인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상상도 못 해 본 말에 넋이 나가 있었다.

그녀의 입이 조금씩 벌어지는데도 놈들의 쇼는 끝나지 않았다.

“하하!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습니다. 저년 표정 좀 보십시오. 이대로 돌아갔다간 저희를 그대로 놔두겠습니까?”

“미, 미친...”

“아버진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 말에 따르시죠.”

이제 보니 녀석은 자기 아버지를 이용하고 있었다.

허접한 계획이긴 해도 저돌적이고 독한녀석이었다. 아카데미의 앤이 생각날 정도였다.

“후우.. 망할 자식! 네놈은 집에 가서 보자.”

황보광도 이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전투자세를 취했다.

어이없는 광경을 보다가 가윤이에게 말했다.

“무법지대라지만 진짜 미친놈들이네.”

“세상에.. 정말.. 말도 안 되네요.”

자연스럽게 서로의 상대와 맞붙었다. 놈들이 소리치며 돌진해 왔다.

“저놈은 내가 죽일 테니 빨리 제압해라!”

“예. 아버지!”

쿠구궁!

황보광이 손을 뻗자 바닥에서 큼직한 바위가 솟아올랐다.

키보다 높은 돌벽이 생성됐다. 그와 서가윤을 나누는 것이 주목적인 것 같았다.

녀석은 마나를 제법 소모했는지 한순간에 핼쑥해졌다.

“후우.. 운이 없었다 생각해라. 지형까지 너를 도와주지 않는구나.”

사방에 널려 있는 바위들이 부르르 떨리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놈은 흙을 다루는 각성자였다.

그처럼 무공을 수련한 것이 아닌 능력에 모든 것을 집중한 각성자.

“죽어라!”

빠르게 끝낼 작정인지 그를 손으로 가리켰다.

허공에 떠오른 바위들이 그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바닥에서도 집채만 한 바위가 솟아오르더니 그에게 넘어지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질량을 이용한 공격.

정통적인 검사라면 황보광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깔려 죽을 것이다. 상성이 나빴다.

황보광의 위치를 파악했다. 녀석에게 가는 길에 장애물이 널려 있었다. 방심하지 않고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는 게 경험 많은 헌터다웠다.

하지만 놈의 모든 방비는 의미가 없었다.

점멸.

한순간에 시야가 바뀌었다. 주변을 가득채운 바위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경악한 얼굴의 황보광만 남았다.

녀석이 다급한 얼굴로 무언가 하려 했지만 느려도 너무 느렸다.

서걱.

놈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경악한 표정 그대로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머리잃은 시체가 뒤늦게 쓰러졌다.

고개를 내려 손가락에 끼워진 실프의 반지를 살폈다.

‘쓸 만하네.’

시험 삼아 사용해 본 건데 기습에서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점멸에 대해 모르는 상대면 단칼에 죽일 수도 있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담벼락 위로 올라갔다.

‘어디 보자.’

송충이 녀석은 제 아비 목이 날아간 것도 모르고 가윤이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사방에서 물이나 번개 등 다양한 원소들이 미사일처럼 그녀에게 날아갔다.

원소조작 능력자답게 화려하긴 했다.

가윤이는 제 몸에 버프를 걸면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날아오는 공격을 힘겹게 쳐 내거나 피했다.

도와줄까 고민하다가 기척을 죽이고 존재감을 감췄다.

이런 실전 경험은 돈주고도 못한다. 그녀의 성장에 큰 양분이 될 것이다.

*

파직!

서가윤이 날아오는 번개구슬을 피했다.

아까 본능적으로 쳐 냈다가 아직도 손이 저렸다.

‘하아.. 침착하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손에 힐을 사용했다. 재수 없는 송충이 눈썹 자식은 그것이 마음에 안 든 것 같았다.

“가윤씨 차라리 포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 항복하면 상냥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저년 저년 한 주제에 존댓말을 하는 게 더 역겨웠다.

“미친놈.. 너한테 당할 바엔 차라리 혀 깨물고 죽을 거야.”

“하하하! 앙칼진게 딱 제 취향입니다. 진짜 그럴 수 있나 봅시다.“

서가윤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평생 다뤄온 검이 오늘따라 차갑게 느껴졌다.

목숨이 오가는 실전은 처음이었다.

‘스승님은.. 괜찮겠지?’

상대는 B급. 하지만 스승님의 실력도 C급은 아니었다. 호기심에 물었을 때도 글쎄? 라고만 대답했다.

‘아냐. 딱 봐도 스승님이 더 강해.’

지형이 바뀔정도로 솟아오른 바위들은 지형과 능력이 잘 맞아 떨어졌을 뿐이다.

스승님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상대에게 집중했다. 그녀보다 한 단계 높은 각성자.

근접전이 주력인 그녀가 접근하려 해도 번번이 실패했다.

한 발짝 다가가면 더 빠르게 물러나며 원소 덩어리들을 날려댔다.

콰앙!

가까스로 날아오는 화구를 피했다.

“읏..!”

불덩어리가 땅바닥에 부딪쳐 폭발했다. 확 풍겨 온 뜨거운 열기. 피부가 화끈거렸다.

확실히 C급과 D급은 차이가 컸다. 그런데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상대가 방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아.. 그만 반항하고 포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잘해드리겠습니다. 예쁜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들려오는 헛소리는 무시하고 호흡을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클랜장님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전투에서 이성을 유지하는 것은 필수였다.

전투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그것에 집중할 것.

‘버티자.’

마력을 아끼고 체력을 비축했다. 최대한 동작을 간결하게 했다. 다행히 그녀의 능력은 버티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경도 강화.’

버프로 인해 피부가 딱딱해졌다. 자잘한 공격은 무시했다. 기동력에 문제생길 상처만 힐로 회복했다.

그녀는 끈질겼다. 일부러인지 몰라도 치명적인 공격은 하지 않던 황명철이 점점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망할..”

황명철의 마나도 무한은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쏟아지던 원소덩어리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방어하며 기회를 엿보던 그녀가 눈을 빛냈다.

‘기회!’

남은 마력을 전부 소모했다. 근력 강화 버프를 허벅지에 몰아넣었다.

파앗!

“어어?”

황명철이 발바닥으로 마나를 뿜으면서 뒤로 물러났지만 예상했던 바였다.

지금까지 버티고 버티면서 몰아넣은 장소.

그의 뒤에는 제 아비가 만들어 놓은 담벼락이 있었다.

턱!

등에 닿은 벽.

상대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에 쾌감이 느껴졌다.

힘들게 버텨가며 만든 기회. 서가윤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촤악!

“커어억!!”

황명철은 본능적으로 즉사는 피했다. 하지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상체가 갈라져 있었다.

그대로 놔둬도 죽을 치명적인 상처였다.

‘이겼다!’

목숨을 걸고 자신보다 강한 자를 꺾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충만한 희열.

이 순간을 위해서 지금껏 검을 배웠다.

‘아..! 죽여야지.’

뒤늦게 검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상대는 다 죽어 가는 시체다. 마무리만 하면 된다.

“사, 살려주십시오. 쿨럭..! 커억..! 제바알..”

황명철이 피를 토하며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전투의 흥분이 식자 조금 망설여졌다.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베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죄, 죄송합니다. 쿨럭.. 사, 살려..!”

하물며 살려달라 빌어대면 더 그랬다.

검이 평소답지 않게 무거웠다. 녀석이 입을 열기 전에 벴어야 했는데.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마라. 이것은 그녀의 아버지와 스승님이 똑같이 한 말이다.

지금까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상황이 실제로 닥치자 망설여졌다.

‘죽여야 해.’

어차피 살려 준다고 원한을 잊을 리도 없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사이에 황명철이 단검을 내지르고 있었다. 언제 꺼내 든 것인지 녹색 빛이 번들거리는 단검이 슬로우 모션처럼 다가왔다.

“죽어..!”

순간의 방심. 뒤늦게 후회했다.

그녀의 복부에 단검이 찔리기 직전.

서걱.

“아..”

놈의 팔이 잘려 나갔다. 언제 오셨는지 모를 스승님이 바로 옆에 있었다.

“끄아아악!! 내, 내 팔!!”

시끄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실감과 고통이 뒤섞인 비명이 귓가에 웅웅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잘린 손만 보였다. 아직도 붙잡고 있는 단검이 섬뜩했다.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다.

“꺽..!”

스승님은 가차 없이 놈의 심장을 검으로 찔렀다.

그녀가 평생 힘들게 수련한 검술. 앞으로 있을 무한한 미래. 그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질뻔했다.

잠깐의 방심덕에.

말없이 지켜보는 스승님과 시선을 맞추기 두려웠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스, 스승님. 죄, 죄송해요.”

질책은 없었다. 그냥 따스한 손바닥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고생했다.”

“아···.”

***

균열을 클리어하고 나왔다. 협회 직원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다, 단성길드장님은..?”

“글쎄? 들어가자마자 헤어져서.”

“자, 잠깐만..”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클랜하우스로 돌아갔다. 머리를 잃은 단성길드는 공중분해되겠지만 그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사고 친 강아지처럼 풀이 죽은 서가윤이 수련하려는 걸 말렸다. 이럴 때는 그냥 쉬어야 한다.

그도 쉬려 했는데 일이 남아 있었다. 이다솜이 죄인처럼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죄송해요.”

“다솜이 네가 죄송할 건 없지. 월세가 밀렸다고? 첫달부터?”

“네···.”

1층 유부녀가 운영하는 카페 월세가 첫달부터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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