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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87화 (87/241)

Chapter 87 - 87화 - 클랜(10)

87화 - 클랜(10)

허니카페의 여사장. 김선영은 요즘 고민이 많았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번듯한 카페 주인. 남들이 보면 배부른 고민이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카페가 망해가는 것이 문제였다.

김선영과 남편은 2년 전만 해도 평범한 대학교 커플이었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이 코인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오빠. 요즘 도대체 왜 그래?”

자꾸만 학교에 빠지는 남자 친구가 걱정되어 찾아갔다. 그런데 코인이라니. 처음엔 당연히 말렸다.

“선영아 지금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몇백이던 시드머니가 천이 되고 순식간에 억 단위로 변했다. 뒤에서 보기만 하던 그녀도 참을 수 없었다.

남자 친구를 따라 했다. 살 때 사고 팔면 팔았다. 그것만으로 그녀는 20대 나이에 몇억을 가진 자산가가 됐다.

그때부터 그녀도 학교는 뒷전이었다. 남자 친구를 따라 코인에 투자, 아니 투기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따라 했을 뿐이니까.

그런데도 돈이 늘어났다. 남자 친구는 재능이 있었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재능이 아니라 단순한 천운이었다.

“선영아 결혼하자.”

그때쯤 이어진 남편의 갑작스러운 청혼. 망설이다가 받아들였다. 그녀를 공주님처럼 받드는 것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행복한 신혼생활이 이어졌다.

신혼여행으로 1년 내내 세계의 유명한 관광지를 떠돌았다. 호화로운 호텔에서 머물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즐겼다.

“선영아 이번엔 어디 갈까? 날도 추워지는데 하와이는 어때?”

“오빠. 잠깐만···.”

1년 내내 흥청망청 돈을 쓰다가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언제..?’

그 많던 돈이 절반 이상 사라졌다. 통장의 자릿수가 달라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전 재산을 사치로 날려 먹은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얼마 안 가 거지가 된다는 기사를 보고 비웃었는데 언젠가부터 자신이 그런 꼴을 하고 있었다.

“오빠. 우리 그러지 말고 카페라도 차리자.”

“응..? 갑자기 왠 카페?”

“슬슬 돈도 떨어져가구.”

“돈이야 코인하면 되지. 뭘 걱정해?”

남편은 코인으로 돈 버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었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하아.. 노는 것도 지겹단 말이야. 왜 싫어?”

“아, 알았어. 돈 좀 보태줘?”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유약한 남편을 설득하는 것은 그녀가 잠시 째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녀가 가진 돈을 끌어모아 창업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생산적인 일을 하려니 가슴이 뛰는 기분이었다.

‘그때 마신 커피가 진짜 맛있었는데···.’

유명한 관광지에서 먹었던 최고급 커피가 떠올랐다. 확실히 비싼 것은 달랐다.

그런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이제 와서 남들 밑에서 일하기는 죽어도 싫었으니까. 부동산을 다닌 끝에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여기가 진짜 싸고 좋아. 아가씨 땡잡은 거야. 여기 들어오려는 사람 줄 섰어.”

“흐응.. 그래요?”

구원 클랜의 1층 상가.

그녀가 보기에도 위치가 좋았다. 균열 다발지역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최근에 급격하게 발달하는 곳이기도 했다. 유동 인구도 많은데 대부분 헌터였다.

헌터들이 돈 많은 건 상식. 괜찮은 계획이 떠올랐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감성카페.’

전문 바리스타를 고용하고 마케팅에 돈을 쏟아부을 작정이었다. 초반엔 적자가 나올지 몰라도 유명세를 타면 성공할 거라 믿었다.

카페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편을 찾아가니 오늘도 뚫어져라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레드문 코인 - 10,231]

“선영이 왔어?”

“오빠 코인사게?”

“어, 지금이 바닥이야. 확실해.”

확실히 그녀도 오랫동안 본 가락이 있었다. 레드문 코인은 출시하고 하루가 지난 뒤부터 단 한 번도 1만원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토끼처럼 눈이 새빨개진 남편이 코인을 풀매수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카페를 운영하려고 남겨둔 재산까지 투자하려 했다.

“오빠 그만해. 나 카페차릴 거라니까.”

“구질구질하게 카페는.. 하···! 됐다. 후회나 하지 마.”

코인하는 순간엔 남편의 성격이 바뀐다. 평소 유약한 것과 다르게 그때만큼은 남편이 왕이었다. 조금 짜증 났지만 참았다.

“난 이제 코인 그만둘꺼야.”

“카페? 그딴 거 해서 얼마나 번다고. 잘 봐. 이 출렁거리는 그래프를 보고 느끼란 말이야. 이제 오른··· 어?”

[레드문 코인 - 9,925]

불안한 정적이 흘렀다. 다행히 잠깐 떨어지던 코인값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레드문 코인 - 10,925]

“하하! 거 봐. 1분 만에 얼마를 번 건지 알아···?”

[레드문 코인 - 10,001]

“어어?”

[레드문 코인 - 9,525]

[레드문 코인 - 8,930]

[레드문 코인 - 8,612]

말도 안 되는 수직 낙하.

“꺄아악!! 오, 오빠 빨리 팔아!”

“뭐..! 지금 팔면 손해가 얼만 줄 알고.. 이거 왜 이래!”

서둘러 뉴스를 살폈다.

[레드문 코인 대표 야반도주.]

[코인 대박? 그 실체에 대하여.]

언론에서 작정이라도 한 듯 코인을 물어뜯고 있었다. 특히 레드문 코인이 불판에 올랐다.

“이게 무슨..”

잠깐 뉴스를 살피고 온 사이에 코인값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레드문 코인 - 5,691]

이제 사는 사람은 없고 파는 사람만 넘쳐났다. 끝도 없이 쭉쭉 떨어졌다.

1시간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오빠. 지금이라도 팔아. 좀 싸게 올리면···”

“뭐?! 헛소리 하지마! 지금 팔면 호구등신이야!”

***

결국 망했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레드문 코인은 휴지 조각이 됐다. 문제는 그에 영향받은 코인판 전체가 얼어붙었다는 것.

남편이 가진 대부분의 재산은 하루아침에 단순한 데이터쪼가리로 변했다.

한 발 먼저 발을 뺀 그녀는 피해가 작았다. 하지만 남편이란 원수가 그녀의 재산을 야금야금 갉아 먹었다.

“선영아 딱 한 번만. 응? 제발!!”

“하아..! 진짜 마지막이야.”

결국 그녀의 계획이 흐트러졌다. SNS에 공격적인 마케팅은 커녕 전문 바리스타를 고용할 돈도 없어졌다.

당초 계획과 달라졌다. 바리스타 학원에서 한 달 동안 배운 그녀가 유일한 종업원이자 사장이 됐다.

‘정신 차리자.’

위기감이 발목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거의 폐인이 된 남편을 달래봤지만 쉽사리 일어나질 못했다.

“그럴 리가.. 떠, 떡상할 거야. 조금만 버티면···.”

카페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편을 신경 쓰기 힘들었다. 원래 보험삼아 운영하려 했던 카페는 그녀의 모든 것을 건 마지막 기회로 변했다.

“으.. 미치겠네.”

그녀가 배운 것이라곤 학원에서 한 달 동안 배운 게 전부. 당연히 어설프고 커피는 맛도 없었다.

‘윽···! 너무 쓰잖아..’

본인도 제 손으로 만든 커피를 마실수 없을 지경. 기성품 사용을 최소화하는 바람에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정말 끔찍하게 맛이 없었다.

그녀가 기대했던 최고급 커피의 풍미가 아니었다. 도저히 맛으로 승부할 순 없었다.

“아..”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픈날이 다가왔다.

‘커, 커피가 하루에 얼마나 팔리지?’

깊게 조사하고 시작한 가게가 아니라 감이 안 잡혔다.

하루에 100잔이 팔린다 치고 계산을 시작했다.

‘저번달에 산 백이랑··· 차도 아직 할부 안 끝났고..’

단순하게 계산해도 매출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다가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어차피 헌터들 돈 많잖아?’

결국 아메리카노 한잔에 14,9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 결정됐다.

‘솔직히 내 인건비만 해도 얼만데.’

다행히 손님이 아예 없진 않았다. 노출은 전혀 없지만 은근히 야릇한 복장이 효과가 있었다.

유부녀인 그녀는 남자 손님들이 무엇을 바라고 찾아온 것인지 모르진 않았다. 그들의 눈빛만 봐도 알았다.

‘흥! 감히 누굴 넘봐.’

애초에 그걸 노리고 유니폼을 세심하게 골랐다. 타이트하게 조여져 그녀의 자랑스러운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낸 옷.

풍만한 몸매를 미끼삼아 호구 같은 남자들을 낚을 생각이었다.

‘아.. 다행이다.’

한달 동안 알뜰살뜰하게 모은 끝에 해낼 수 있었다. 월세와 할부금을 내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돈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솔직히 그녀가 하루 종일 일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자도 이런 적자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가게가 성장세가 아니라 망해간다는 것.

‘손님도 점점 줄고.. 유니폼이라도 바꿔야 하나...’

*

김선영이 붙잡은 스마트폰이 파르르 떨렸다.

[잔액 - 23,421원]

통장이 텅 비어 있었다. 당연히 월세낼 돈도 사라졌다.

분명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설마..’

뚜르르- 뚜르르-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 자기♡ : 여보 딱 한 번만 믿어 줘. 이번엔 진짜 좋은 정보야.

“미, 미쳤어..”

돈이 넘쳐날 때는 몰랐는데 상황이 어려워지자 그녀의 남편은 의지라곤 전혀 안 되는 인간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아찔했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치밀었다.

‘비, 빌리면..’

막상 친구에게 연락하려고 하니 할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흥청망청 돈을 쓰는 동안 모조리 연락이 끊겼다.

대부분 그녀 쪽에서 끊은 것이다.

‘아.’

기적은 없었다. 결국 월세가 밀렸다.

스마트폰에서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페를 계약할 때 대리인으로 나왔던 여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굴 좀 보자고 하시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녀가 한 달 동안 카페 일하며 느낀 것은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것이다.

저도 모르게 화장대에 앉아 단장했다. 왜인지는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유를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에.

스윽.

스타킹을 신고 원피스를 입었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선물해준 옷이었다. 가슴이 깊게 파여 있어서 딱 한 번만 입었다.

남편이 아쉬워했지만 선뜻 손이가는 옷은 아니었다. 너무 야했으니까.

그런 원피스를 입고 있음에도 머릿속이 멍했다. 남편이 월세를 빼갔을 때부터 정신이 반쯤 나가 버렸다.

거울 속의 그녀가 천박하게 가슴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을 멍하니 보다가 코트로 가리며 집을 나섰다.

***

클랜장실.

시우는 눈앞에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유부녀가 보였다.

26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느껴지는 성숙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유부녀 특유의 야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월세가 없다는 겁니까?”

“죄, 죄송해요.”

“어디 빌릴데 없어요?”

“네... 죄송해요.”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뭐.. 한 달 기다려주면 다음달은 가능한 겁니까?”

“그, 그게···.”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시우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눈가에 난 눈물점이 매혹적인 여자였다.

솔직히 그녀의 카페가 회생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메뉴를 다시 만들고 약간의 자본만 투자한다면 적자는 면할 것이다.

애초에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니까.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노골적으로 그녀의 몸을 훑어 봤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붉어질 정도로.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이제 보니 예쁘게 화장도 하고 왔다. 단정한 코트 너머로 어떤 옷이 숨겨져 있을지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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