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속으로 들어간다-91화 (91/241)

Chapter 91 - 91화 - 무협지구(2)

91화 - 무협지구(2)

당화린이 폐관 수련할 동안 카르마를 모을 겸 광동에 다녀오기로 했다.

전전대 하오문주 목이도가 남긴 안배가 무엇인지 궁금했으니까.

수련을 미룬 당화린이 마을 입구까지 따라 나왔다.

“···헤어지면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잖아.”

그건 그도 걱정이었다. 이 세상은 통신 기술이랄게 거의없었다. 재수 없으면 다신 못만날지도 몰랐다.

멀리 있는 사람과 연락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니까.

“이거 받아.”

“이건..?”

균열에서 파티원끼리 떨어질 경우를 대비한 위치추적 아티팩트.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최상급이라 대륙단위 거리에서도 잘 작동한다.

혹시 몰라서 여러 개를 꺼냈다. 평소에 차고다닐 반지와 다양한 형태의 장신구들.

“반지..?”

얼굴이 발그레해진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왼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이 아닌 손등이 위로 가고 있었다. 끼워달라는 것이었다.

‘앙큼하긴.’

하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여자니까. 은근히 올라와 있는 약지에다가 반지를 끼워줬다.

“헤헤..”

화린이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좋아하는 것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새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에 반지가 잘 어울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신경 써서 준비했을 텐데.

졸지에 별거 없는 아티팩트를 끼워줘버렸다. 최상급이긴 해도 기능은 위치추적뿐이다.

“자주 찾아올게. 걱정하지 말고 수련해.”

“으응···.”

진한 키스로 화린이가 아쉬워하는 것을 달래며 길을 떠났다.

***

광동이 있는 남쪽으로 온종일 달렸다.

‘경(輕), 쾌(快).’

주변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으로 나뭇가지를 박찼다. 거의 허공을 날듯이 뛰고 있으니 고수가 된 기분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은 처음에만 좋았다.

‘내공 소모가 너무 큰데.’

몸을 가볍게 하고 발바닥으로 내공을 분출. 반갑자가 넘어가는 내공이 빠르게 소모됐다.

교통이 편한 곳에서 와서 그런지 걷고 뛰는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중에 텔레포트 마법진이라도 구해와야겠다.’

청봉밀사가 있는 청봉현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해서 그를 위한 섹스 촌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잡생각도 잠깐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산길을 달리다 보니 답답함이 커져갔다. 나뭇가지를 밟을 정도로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았다.

그냥 땅바닥에서 무식하게 달렸다.

‘빌어먹을. 어디서 신법하나 안 떨어지나.’

혼원기공으로 몸을 가볍게 하고 달리는 것도 충분히 빠르긴 했다.

자동차보다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달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달리기 하나만을 전문적으로 갈고 닦은 신법은 또 다를 게 분명했다.

*

청봉현에서 나온 지 벌써 삼 일째.

딱히 힘든 것은 없었다.

모든 편의물품이 인벤토리에 있었으니까. 어느새 밥 때가 됐다.

“후우···.”

달리는 것이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에서 먹는 밥은 운치가 있었다.

적당한 공터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모닥불을 피우기 좋은 간이 화로가 만들어져 있고 앉기 적당한 바위가 몇 개 있었다.

여러 무림인들이 거쳐간 휴게소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고기나 구워 먹을까.’

평소에는 간단하게 도시락을 먹지만 주변 풍경이 너무 좋았다. 딱 캠핑하기 좋은 느낌이었다.

후두둑

검은색 숯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귀찮게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모을 필요도 없었다.

참나무 숯을 사 왔다.

라이터도 필요 없었다. 손가락 끝에 피어오른 불꽃이 있었으니까.

‘크으.. 이거지.’

신선한 삼겹살을 통으로 나뭇가지에 꽂았다. 숯불 직화 꼬치구이. 상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였다.

치이익..!

향신료와 소금을 머금은 육즙이 숯에 떨어지면서 맛있는 소리가 났다.

‘쥑이는군.’

타닥!타닥!

화르륵!

혼원기로 화기를 투입해가며 화력을 키웠다. 화염을 조종해가며 고기를 익히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완벽하다.’

끝부분이 조금 탔지만 그것만 빼면 완벽한 바베큐 통삼겹구이가 완성됐다.

“음..?”

썰어서 먹을까 입으로 뜯어먹을까 고민하는데 누군가 빠르게 다가왔다. 속도만은 그가 전력으로 달리는 것에 필적할 정도로 빨랐다.

바베큐를 잠시 내려놓고 허리춤에 있는 검을 잡았다.

타앗!

인형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공터에 착지했다.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먼지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오.. 예쁜데.’

고생을 좀 한 것 같았다. 얼굴 여기저기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래도 미모를 숨길 순 없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새하얀 피부를 가진 미녀였다.

그녀가 꼬치구이로 익혀진 고깃덩이를 노려보며 군침을 꼴깍였다.

“소, 소협.. 꿀꺽..! 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합석해도 되겠는가?”

얼굴과 전혀 다른 걸걸한 목소리. 그녀의 왼손에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옛날에 남장했던 당화린이 떠올랐다.

예전부터 그에겐 환영의 힘이 통하지 않았다.

‘정신보호 때문인가?’

그녀가 변장한 얼굴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세히 쳐다봤다. 흐릿하게 어떤 환영이 겹쳐 보였다.

수염난 중년 아저씨. 아무래도 그녀는 저 얼굴로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시오.”

“고맙네! 그, 그런데.. 소협! 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꿀꺽.”

새어 나오는 침을 느끼지도 못 하는지 통삼겹 바베큐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절실한 눈빛. 진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안 준다면 산적으로 돌변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진짜 털이 숭숭난 아저씨라면 모를까. 아름다운 미녀가 속에 든 것을 알고 있었다.

먹을 것 정도야 나눠줄 수 있었다.

“그럼 같이.. 아니, 많이 굶은 것 같은데 그쪽 드시오.”

“고, 고맙네!”

거지꼴을 보아하니 그녀 혼자서 먹기도 부족해 보였다.

과연 그녀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고기를 한움쿰 뜯어먹었다. 팔뚝만 한 고기 삼분의 일이 한입에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흐읍!!”

천상의 맛에 경악한 표정이었다. 대기업 석박사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담긴 문명의 맛. 화학 조미료가 뿌려진 꼬치구이였다.

“하하. 어떠시오? 내 비전 요리가.”

“마, 맛있소. 저, 정말 너무 맛있소.”

그녀는 말하면서도 쉬지 않고 뜯어먹었다. 성인 남자가 배부르게 먹을 정도의 양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미녀가 볼이 빵빵해지도록 잘 먹으니 보기는 좋았다.

‘저걸 어떻게 꼬시지.’

외모를 칭찬하려고 해도 그녀는 중년 아저씨로 변장한 상태. 은근히 추파라도 던졌다간 미친놈 취급을 받을지도 몰랐다.

일단 주머니에서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두 개 더 꺼냈다.

소금과 후추 따위의 향신료가 섞인 시즈닝을 뿌리면서 모닥불 위에 올렸다.

‘먹을 거로 어떻게 해볼까.’

치이익..!

팔뚝만 한 고기 덩어리는 어느새 그녀의 입으로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아쉬운지 입술에 묻은 고기기름을 핥았다. 숯불에 익어가는 고기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시우의 시선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었다.

“아.. 하하..! 미, 미안하오. 내가 며칠을 굶은터라··· 나는 배철문이오. 소협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내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갚겠소.”

“뭐.. 은혜랄것 까지야. 내 이름은 최시우요.”

가명일게 뻔한 이름은 대충 흘려 버렸다.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 한덩어리를 더 줬다.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든 그녀가 감동받은 얼굴로 고기를 뜯어먹었다.

현대에서 먹방을 해도 성공할 것 같았다. 엄청나게 복스럽게 먹었다. 그것을 보다 보니 입맛이 돌았다.

‘어디··· 음..! 쥑이네.’

한입 먹자마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산속 깊은 곳에서 먹는 바베큐라 그런지 더욱 맛있었다.

쩌적!

고기의 살결이 부드럽게 뜯어졌다. 육즙을 머금은 고기는 씹을수록 혀를 즐겁게 했다.

시즈닝의 짭짤한 맛과 불향의 시너지가 끝내줬다. 역시 대기업에서 나온 조미료는 무적이었다.

*

허겁지겁 고기를 먹던 그녀가 가슴을 두드렸다.

“쿨럭..! 쿨럭!”

목이 막히는지 답답해 하고 있었다. 절로 시선이 향했다.

주변에 마실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는데 그녀가 손을 저었다.

“아, 아니오. 괜찮소. 꿀꺽.. 하아.. 정말 맛있었소. 그럼 나는 갈 길이 급해서··· 정말 미안하오. 그럼 이만.”

머리를 숙이며 포권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바람처럼 왔다가 똑같이 사라졌다.

‘이런..’

밥 먹고 은근히 꼬셔보려 했는데 그럴 시간도 없었다.

경지가 그렇게 높아 보이진 않았는데 달리기는 그보다 빠른 것 같았다.

‘저게 제대로 된 신법인가.’

조금 아쉬웠다. 잘꼬시면 신법까지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기회가 날아간 기분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왠지 아까랑 느낌이 달랐다. 허전한 기분에 허리춤을 더듬었다. 없었다.

‘뭐야. 시발..?’

정말 오랜만에 욕이 튀어나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있던 주머니. 허리춤에 찼던 그것이 사라졌다.

‘이년이..? 설마, 마실 거 찾을 때?’

시우는 미간을 짚으며 그녀의 얼굴을 기억했다.

어쩐지 마지막에 미안하다며 떠나더니. 도둑년이었다.

*

방금까지 시우와 고기를 먹던 서지유.

그녀가 빠르게 달리면서 훔쳐 온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당대 무영신투로서 이런 자잘한 것을 훔치는 건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후우.. 분명히 여기서 음식을 꺼냈지.’

잠깐 멈춰서 사냥할 새도 없었다. 급하게 달려가느라 쫄쫄 굶었다. 그런 그녀에게 밥을 준 것은 정말 너무 고마웠지만 상황이 너무 급했다.

‘미안.’

듣지는 못할 테지만 속으로나마 다시 한번 사과했다.

너무 굶어서 그런지 아직도 배고팠다. 팔뚝만 한 고기 덩어리 두 개를 먹었는데도 배가 덜찼다.

지금은 훔친 것을 감정할 때. 그녀는 이 순간이 가장 좋았다. 입맛을 다시던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가볍잖아.. 육포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응?’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은 대부분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대부분 무게는 별로 없는데 부피만 차지하는 것들 이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가 뭉쳐진 것도 있었다.

‘이게 뭐야!’

그녀가 기대한 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신기해 보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왠 세모난 천이 가느다란 끈에 연결되어 있었다.

살짝 당겨보니 늘어나기까지 했다.

‘부드러운데···?’

보들보들하니 만지는 맛도 있었다. 정말 귀한 천인 것 같았다.

‘이게 뭐지? 두건인가?’

입에다 대봤지만 면적이 너무 부족했다. 코는 커녕 입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게 설마 속옷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너무나 작았으니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