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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92화 (92/241)

Chapter 92 - 92화 - 무협지구(3)

92화 - 무협지구(3)

낙양루(落暘樓)는 광동성에서 제법 이름 높은 기루다.

최고의 기루는 아니었다. 열손가락으로 세면 그 안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해야 하는 정도.

그곳이 소란스러워졌다.

“지, 지배인님!! 그놈이 또 왔습니다!”

“뭐..?! 설마 모용철..?”

지배인이라 불린 중년 남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인들이 분주하게 바닥을 쓸고 닦았다.

“망할 놈..! 여기까지 뭐하러 기어와서는..!”

요녕에서 권장법으로 이름 높은 모용세가의 망나니. 그가 찾아왔다.

정상적인 손님이라면 당연히 환영이었다. 정상적인 손님이 아니니 문제였다.

낙양루는 청루다. 술과 웃음을 파는 여인들이 있는 곳이지만 몸은 팔지 않는다.

몸을 파는 여자가 있는 홍루로 가면 될 것을 굳이 이곳에서 여자를 취하려고 온갖 진상을 부려댄다.

콰앙!

투실투실한 살을 가진 모용철이 문을 걷어차며 등장했다. 멀쩡한 손을 놔두고 발로 찼다. 가뜩이나 무거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무인이라는 자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어어···”

후덕한 살덩어리가 푸들거리고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뒤에 있는 호위무사들은 배경처럼 서 있을 뿐 도와주지 않았다.

비웃음이 절로 나올 광경이었지만 아무도 웃지 못했다.

모용철이 광동성에 온 지 보름도 되지 않았다. 그사이 병신으로 만든 놈만 열 명이 넘었다.

모용세가의 독보적인 쓰레기로 이름 높은 모용철. 그는 소문이 사실임을 하루도 빠짐없이 증명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이익..! 바닥 청소를 누가 한 것이냐!!”

눈치 보던 하인이 앞으로 나섰다.

“죄, 죄송합니다! 저, 저입니다요. 나으리!!”

짜악!

“아악!!”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강렬한 따귀였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숙였지만 의미가 없었다.

누런 이빨 몇 개가 후두둑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큭큭..! 약해빠졌군. 지배인!!”

“예, 예.. 도련님! 오늘도 헌앙하십니다요. 오늘은 어느 방으로···.”

“뭐?! 아직도 그딴 걸 묻는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당장 최고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온갖 사치스럽고 화려한 음식이 탁자를 가득 채웠다. 약간 어색한 미소와 함께 들어온 기녀들을 보고 모용철이 소리쳤다.

“뭐야! 애화는 어디 가고 네년들이 온 것이냐!”

“고, 공자님. 애화는 오늘 몸져 누웠습니다. 오늘은 저희가 잘해드리겠습니다.”

“이익..! 개 같은··· 내 지배인 이놈을 그냥!”

“아, 아이잉··· 저 춘월이를 봐서라도 노여움을 푸시지요.”

기녀가 가슴팍을 열며 속살을 내보였다. 방방 뛰며 화를 내던 모용철의 발작이 곧바로 멈췄다.

“커험··· 좋다!”

술과 노래.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네년··· 안 마시고 뭐 하는 것이냐?”

잠시도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기녀들은 망나니 공자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술을 물처럼 마셨다.

반평생 술과 함께 살아온 그녀들도 버티지 못했다. 결국 하나둘씩 기절하듯 쓰러졌다.

“으으..”

털썩.

마지막 기녀마저 쓰러져 고요해진 그곳.

망나니 모용철이 무표정하게 술잔을 내려다봤다. 그의 눈빛은 마지막 기녀가 기절한 순간 돌변했다.

얼굴에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가면을 쓴것 같은 무표정으로 변했다.

그는 술에 취해 잠든 기생들의 수혈을 짚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일일이.

음식들이 한가득 올려져 있는 탁자에서 고깃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긋는 단순한 동작에 살점이 쩌억 갈라졌다. 그 속에 있던 뼈를 쪼개니 작은 천 조각이 튀어나왔다.

천에는 괴이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피처럼 붉은 글자로 쓰인 명령서. 요리의 양념에도 불구하고 짙은 혈향이 맡아졌다.

‘고룡협(古龍峽), 보도(寶圖), 혼란(混亂).’

차가운 눈으로 천 조각을 내려다보던 모용철이 잠시 눈을 감았다.

뚜둑!

천 조각을 주먹이 으스러질 정도로 움켜쥐었다. 손을 펴자 명령서는 모조리 가루가 됐다. 흩날리는 가루들이 회오리치며 술잔에 담겼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마신 그는 아까 전 망나니로 되돌아왔다.

온갖 음식들이 남아 있는 탁자를 발로 차버리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지배인!! 애화는 어디 가고 이딴년들만 온 것이냐!”

***

시우는 혀를 찼다.

거의 모든 물건을 인벤토리에 보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주머니가 사라졌다.

‘거기에 뭐가 들었더라.’

항상 손만 대충 넣었다가 빼서 뭐가 들어 있는지 햇갈렸다.

‘에이.. 됐다.’

어차피 쓰레기만 가득 담겨 있는 평범한 천주머니였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진짜 얼굴도 알고 있었다. 혹시나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혼내주기로 결심했다.

‘은혜를 갚는다고···. 그거 좋지.’

윗입으로 얻어먹은 만큼 아랫입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밤낮없이 달린 끝에 광동에 거의 도착했다. 이제 고룡협이란 곳만 찾으면 됐다.

‘적당한 마을이나 찾아볼까.’

주변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골랐다. 십 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나무.

탓! 탓!

손도 쓰지 않고 도약 몇 번 만에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었다.

‘오..!’

저 멀리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아궁이로 밥짓는 특유의 연기.

마을이었다.

***

마을에 도착하자 마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막상 카르마를 얻고자 하니 기준이 애매했다. 같은 행동을 해도 대상에 따라 얻는 카르마가 달랐다.

이름도 모를 산골짜기의 작은 마을. 그곳의 고아들을 불러 모았다.

“먹을 거 준다는 게 정말이에요?”

“그래. 말 잘 들으면 주마.”

모인 아이들에게 간단한 무공을 전수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큰 도시의 저잣거리에서 돈 몇 푼에 구할 수 있는 삼재심법(三才心法)을 전수했다.

대부분 글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말이나 글로 알려줄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몸에 일일이 기운을 주입해 흐름을 새겨넣었다.

몇몇 재능있는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지만 카르마 획득은 거의 없었다.

‘에이···’

모인 아이들에게 만두를 나눠 주고 떠나보냈다.

‘이 정도로는 안 되나?’

그들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메시지도 뜨지 않았다.

분명 몇몇 아이들은 눈빛이 달라졌다. 이것이 큰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린 눈빛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운명은 크게 변했을 텐데 카르마는 거의 얻지 못했다.

‘단순히 재능이 부족해서..? 흠··· 모르겠군.’

나중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다시 실험해 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

목이도가 남긴 안배를 찾으려면 고룡협의 위치를 알아야 했다.

작은 마을이라 물어볼 데가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가장 큰 객잔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허리춤에 검을 찬 무사들과 평범한 양민들이 뒤섞여 떠들어 대고 있었다.

적당한 곳에 앉은 뒤 고기와 채소가 뒤섞인 요리를 집어 먹었다.

‘먹을 만 하네.’

사람이 많을 만한 맛이었다.

대충 몇 점 집어먹다가 귀에 내공을 집중했다. 고룡협이란 곳을 찾아가야 하니. 정보에 밝아 보이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가장 목소리 큰 두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렸다.

“자네. 그 소문 들었나?”

“소문? 설마... 정신머리 없이 그 무영신투의 비고인가 뭔가 하는 그 헛소문을 믿는 건가?”

어디에 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항상 튀어나온다. 문제는 열에 아홉은 가짜라는 것. 상대의 비웃는 어투에 남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허어..! 자네야말로 귀가 너무 어둡군. 이번엔 진짜라니까?”

두 남자는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며 싸워대고 있었다.

‘무영신투? 신투면 도둑놈인가?’

도둑이라고 하니 얼마 전 그의 주머니를 털었던 도둑년이 생각났다.

‘에이 설마.’

“아이고.. 자네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 그게 진짜면 무림맹에서 가장 먼저 나설것일세.”

“허참.. 말 잘했네. 정천대가 소집됐다는 소식은 들었겠지?”

무림을 양분하는 두 거대세력이 무림맹과 사도련이다. 정천대는 무림맹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일선 전투부대다.

“그게 무슨 상관···. 설마?”

“그래. 이 일 때문일세.”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는 목이도의 안배가 더 궁금했다. 소식이 밝아 보이는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똑똑.

탁자를 두르리며 시선을 끌었다.

“이보게들. 내 궁금한 게 있는데 앉아도 되겠나? 물론 이것들은 내가 사지.”

탁자 위에 있는 음식들을 가리키며 말하니 녀석들이 헤벌쭉 웃었다.

“하하하. 소협, 아니 대협! 아주 호탕하시구만! 그래. 뭐가 궁금하신가? 내가 이 마을의 정보통이라네.”

“별건 아니고 근처에 고룡협이란 곳이 있나? 광동에 있다던데.”

자신만만하던 남자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고룡..협? 자네는 아나?”

“···설마 필가산에 있는 협곡을 말하는 건가?”

다행히 둘 중 한 명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걸어서 한 달쯤 가면 된다고 한다.

양민 걸음 기준으로 한 달. 그가 달리는 속도면 하루 이틀이면 될 것이다.

***

고룡협(古龍峽).

그것은 일종의 거대한 협곡이었다. 거친 물살이 깊게 파인 지형을 따라 끝도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절로 감탄이 나올 풍경이었지만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누군가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며칠 전부터 다급히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이 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보다 약하다는 것.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쉬익!

“거기 서라!!”

“제기라알! 허억..! 허억...!!”

총 네 명.

셋이서 한 명을 뒤쫓고 있었다.

쫓는자들의 눈빛은 탐욕에 젖어 있었고 쫓기는 자의 표정은 절박하기 그지없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지쳐 보였는데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멈췄다간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릴 테니까 당연했다.

하지만 한계는 빠르게 찾아왔다. 도망가던 자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던 녀석이 시우를 발견했다.

놈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로 무언가 휙 던졌다.

왠 고풍스러운 두루마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뭐야?’

손에 내공을 두르고 잡아챘다. 겉으로 봐선 무언가 적혀 있는 종이가 돌돌 말린 느낌이었다.

“멈춰 이 새끼야!!”

“시, 시바알!!”

자세히 보니 낡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종이 뭉치였다. 놈들은 두루마리가 던져진 것을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를 뒤쫓았다.

놈들이 빠르게 시우를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끄아아···! 저, 저놈한테 던졌으니까 그만쫓아와!!”

그 말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시우에게 향했다. 태평하게 들고 있는 두루마리가 보였다.

“저기 있다!!”

녀석들이 빠르게 다가와 포위하려 했다.

작게 혀를찬 시우가 두루마리를 던졌다. 당화린에게 배웠던 암기술의 묘리를 담았다.

콰직!

종이로 된 두루마리가 바위에 박혔다.

“헛..!”

죽일 듯이 달려오던 세 명의 남자가 동시에 멈췄다. 고함이라도 칠 것 같던 입도 조용히 닫혔다.

서로를 쳐다보며 어색하게 눈치만 살폈다.

“가지고 꺼져. 귀찮게 하지 말고.”

“크흠··· 예.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놈들이 낑낑거리며 바위에 박힌 종이를 뽑았다. 식은땀을 질질 흘리던 녀석들이 떠나고 이곳엔 그 혼자만 남아 있었다.

‘흐음···’

인벤토리에서 종이를 꺼내 펼쳤다. 그것엔 조금 전 바위에 던졌던 두루마리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놈들의 시선이 쏠리기 직전. 현대로 가져가서 복사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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