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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94화 (94/241)

Chapter 94 - 94화 - 무협지구(5)

94화 - 무협지구(5)

고룡협에 수많은 무인들이 모였다.

특히 이름 없는 낭인들은 셀 수도 없었다. 그들에겐 제대로 된 무공이랄 것이 없었다. 무영신투의 비고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운 좋게 신공 절학이라도 얻었다간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거대 세가의 무공을 함부로 사용했다간 그들에게 쫓길 것이 분명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는 괜찮을 거로 생각했으니까.

무영신투의 장보도.

그것이 가리키는 장소는 바로 이곳. 협곡의 시작 지점이었다. 떨어지는 폭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사방으로 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폭포보다 들끓는 것이 바로 사람의 욕망이었다.

한 낭인 무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요! 그대들이 독차지하려는 속셈아니요!”

낭인치고는 수준이 높았다. 일류, 내공을 담은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폭포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무사들이 있었다. 바닥에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조용히 하시오.”

고요한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작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귓속에 또렷이 들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낭인과 대비됐다.

정의를 표방하는 무림맹. 그곳의 칼이라 불리는 정천대의 대주다운 무공이었다.

정천대주가 친절히 웃으며 낭인에게 말했다.

“어차피 그대들은 진법에 대한 지식도 없지 않소.”

“그러니까 살펴보게라도 해 달란 소리 아니요!”

“맞다! 살피게 해 줘라! 어엇..?”

숫자를 믿고 소리높이던 그들이 모두 입을 꾹 닫았다.

정천대주의 친절한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은은한 내력이 모두를 압박했다.

낭인들은 누군가 자기 어깨를 짓누르는 감각을 느꼈다. 무력한 기분.

“하하하! 저희 정천대의 이름을 못 믿는 것입니까. 이곳이 비고라곤 하나 결국 도둑의 창고일 뿐. 만약 진짜 보물들이 있다면 우리 무림맹이 피해자들에게 잘 돌려줄 것입니다.”

“이이.. 그걸 어떻게..”

믿느냐 라고 소리치려던 낭인이 결국 입을 닫았다. 정천대주가 웃으며 바라보는 그 눈빛에 기가 죽어버린 것이다.

확실히 칼밥 먹는 이들답게 눈치가 빨랐다.

정파라지만 결국 칼잡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었다.

“나 모용세가의 모용철! 나는 못 믿겠다!!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그대는..?”

점차 조용해지는 가운데 눈치도 없이 소리치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군중들 사이에서 선동을 시작했다.

“정천대가 무림의 정의라지만 결국 사람! 사람을 어떻게 믿나! 거기에 세상의 모든 무공이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더군다나 우리 모용세가의 무공도 있을지 누가 아느냐!”

정천대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모용세가는 무림맹에 장로직도 하고 있는 명문세가. 어차피 어련히 알아서 챙겨줄텐데 눈치 없이 나서고 있었다.

‘소문이 더럽더니.. 한심하긴.’

망나니로 소문난 모용철뿐만 아니었다. 요즘 들어 모용세가 자체의 소문이 안 좋았다.

뒤에서 정파답지 못한 짓거리를 한다는 소문이 은은하게 돌았다.

“쯧.. 모용철. 자네가 모용세가라 하나 책임지지 못할 말은 안 하는 게 좋을 걸세. 게다가 건방지게 반말이라니···.”

정천대주가 기세를 피워올려 그를 압박했다.

주변에 있는 모용세가의 호위무사들이 긴장한 눈으로 검 손잡이를 잡았다. 투실투실한 살덩이가 부르르 떨렸음에도 기가 죽지 않았다.

“이이.. 나, 나도 들어갈 것이다! 무영신투가 훔친 황금을 모으면 하늘까지 닿는다던데! 저 안에 금은보화가 가득할지 누가 아느냐!”

그 노골적인 말에 낭인들의 눈빛이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황금과 무공!

“정녕..!”

“크하하하하!!!”

기세를 더 키우려던 정천대주가 표정을 굳혔다. 엄청나게 큰 고함 소리가 하늘을 진동시켰다.

“네놈 말 잘했다. 돼지 새끼치고 제법이구나! 어이 정천대주! 꼬맹이 그만 괴롭히고 나랑 놀지!”

콰앙!!

거대한 체구를 지닌 남자가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졌다. 착지와 동시에 주변에 있는 지형이 박살 났다. 돌조각들이 비산하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커억!”

재수 없게 돌에 맞은 이들이 피를 토했다. 하나하나에 내공이 담겨 있었다.

그를 본 낭인들이 주춤거렸다. 정파와 다르게 체면도 차리지 않는 사파 고수.

그들에게 밉보였다간 팔다리 날아가는 게 기본이었다. 운 나쁘면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을 당한다.

사도련의 이름난 강자. 적혈마도였다.

***

정천대주와 적혈마도가 맞붙었다. 검기가 사방에 비산하고 땅이 무너져 내렸다.

한차례 공방을 교환한 그 둘의 표정이 비슷하게 변했다. 호각이었다. 제대로 싸웠다간 둘 중 하나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양측이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결국 대결은 한순간에 끝났다. 그리고 정천대와 사도련의 적혈대. 그 둘의 대치가 이어졌다.

두 부대는 무림맹과 사도련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가장 강한 부대는 아니지만 꺾였다간 자존심이 상한다.

이대로 싸웠다간 자존심 때문에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 그랬다간 정사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

평화로운 시기의 전쟁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적어도 양측의 기득권들은 그랬다.

무림맹와 사도련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나이 서른이 안 되는 젊은이들만 들여보낸다.

충돌이 확산될 것을 염려한 궁여지책이었다. 당장 내일 진이 개방되는 만큼 시간이 없었다.

일종의 소규모 경쟁이었다. 그렇다고 서로 죽고 죽이려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의 무력을 가늠하여 비슷하게 투입했다.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가 되도록. 재물은 나누고 각자의 무공이 있다면 회수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이것에 낭인들의 의견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약한 자는 강자에 따른다. 그것이 바로 무림의 유일한 법이었다.

*

수백 명의 낭인들이 크게 반으로 갈라졌다.

서로의 표정이 완전히 달랐다. 폭포와 가까운 쪽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와 반대쪽은 간절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쾅!

적혈마도가 거대한 박도를 땅에 박으며 소리쳤다.

“다음!”

무영신투의 비고를 가로막고 있는 절진. 그것이 열리기 얼마 남지 않았다. 진법가들의 말에 따르면 월식이 일어나는 내일.

달빛이 사라져 진이 가장 약해질 때 파훼할 것이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일 년이 넘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비고에 들어갈 자들의 선별이 이어졌다. 낭인 한 명이 억울해 미치겠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아니..! 나는 올해로 약관이란 말이요!”

“닥쳐! 그얼굴로 스물? 지랄하지 마라!”

적혈마도의 말에 정천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얼굴이 아무리 봐도 약관은 아니군. 안타깝지만 불가하네!”

“이런···!”

낭인들은 조금만 늙어보여도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어린티가 팍팍나는 애송이 녀석들.

어린 만큼 그들의 무공은 뻔했다. 여유 있는 가문에서 풍족한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다. 하나같이 삼류를 벗어나지 못했다.

명가의 후예들이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이들 뿐이었다.

이 애송이들의 역할은 혹시 모를 기관진식을 위한 고기 방패였다.

그것도 모르는 낭인들은 들어가고자 발버둥 쳤다.

선별이 끝났다.

입장을 허락받은 무인들이 긴장된 눈으로 폭포를 노려봤다. 그곳이 바로 비고의 입구였다.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완전히 가려지는 현상. 월식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월광(月光)의 힘을 이용한 진법 특유의 약점이었다.

“열린다..!”

대기하던 진법가들에 의해 절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시우는 혼원기를 따라 달렸다.

한 시간 내내 달린 끝에 도착했다. 유난히 물살이 잠잠하고 넓은 곳. 마치 강처럼 보이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보였다.

혼원기는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여기 같은데···?’

잠시 고민하다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기감에 집중하며 헤엄쳐서 나아갔다. 숨쉴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수틀리면 산소통까지 꺼내 들 생각이었다.

혼원기를 따라 물속 깊숙한 곳으로 잠수했다. 바닥으로 향할수록 혼원기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다.’

그 길을 따라가던 중 기막같은 것이 느껴졌다. 감각을 집중해서 살펴보니 혼원기로 이루어진 장막임을 알 수 있었다.

혼원기공 비급에서 봤던 목이도의 환영결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손끝의 내공을 집중해 조심스럽게 살폈다. 하지만 몸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목이도가 그를 위해 안배해 놓은 것인 만큼 위험할 것 같진 않았다.

아무런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통과했다. 고민한 것이 무색할 만큼 아무런 작용도 없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빛. 그곳을 향해 헤엄쳐 나아갔다.

“푸하!”

물에서 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작은 방이었다. 자연적인 동굴을 깎아 만든 것 같은 공간이 튀어나왔다.

‘하여간 동굴 엄청 좋아하는 양반이라니까.’

안쪽으로 나있는 길을 제외하곤 둘러볼 것도 없었다. 천장에 빛나는 돌이 박혀 있고 탁자가 놓인 작은 쪽방이었다.

탁자 위에는 구슬이 놓여 있었다.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불투명한 구슬. 마치 진주를 크게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혼원기는 이것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음···?’

이게 뭔지 고민하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으으.. 마, 망했어..!”

배철문이라고 이름을 밝혔던 도둑년.

그 여자가 동굴 안쪽. 혼원기 장막 밖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딱히 기척을 숨긴 것도 아닌데 이쪽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탐스러운 뒤통수가 맛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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