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5 - 95화 - 무협지구(6)
95화 - 무협지구(6)
무림인들이 한참 진을 파훼하고 있을 그때.
시우는 탁자 위에 올려진 구슬을 어찌할지 고민했다. 혼원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딱 봐도 이것이 목이도의 안배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인벤토리에 넣었다. 본능적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일단 챙기고 볼 작정이었다.
손에 닿는 순간 무언가 목소리가 들렸다. 언뜻 듣기로 목이도가 남긴 무공 구결로 보였다.
인벤토리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일단 넣어놓고 나중에 차분하게 살펴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배철문, 아니 도둑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팔찌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은 새하얀 피부가 어울리는 예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에 봤던 그녀의 진짜 얼굴이었다.
몸매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타이즈처럼 보이는 검은색 천으로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매력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상체에 비해 확연히 긴 다리 각선미가 특히 좋았다. 스타킹이라도 신겨서 박아주고 싶은 몸매였다.
터질 듯한 골반에서 이어지는 매끈한 곡선을 보고 있으니 아랫도리에 반응이 왔다. 절로 입맛이 돌았다.
“으아··· 어, 어쩌지..”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일류쯤인가?’
감각을 곤두세우고 관찰했다. 적어도 그가 질 것 같진 않았다.
대놓고 보고 있는데도 모르는 것을 보면 장막 밖에서는 이쪽을 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장막 밖을 보다가 조금 놀랐다.
‘뭐야..?’
경험 많은 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방을 가득채운 휘황찬란한 금은보화.
말 그대로 산처럼 쌓인 금붙이와 잡다한 물건들이 거대한 동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설마··· 여기가 무영신투의 비고?’
목이도의 쪽방과 비고가 연결되어 있었다. 조금 이상했지만 고민을 접었다. 둘이 인연이 있었던 단순한 우연이던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 여자가 무영신투인가? 조금 약해 보이는데···.’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몸매 좋은 미녀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녀의 몸매를 훑어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괜찮은 계획이 떠올랐다.
혼원기로 가로막힌 장막을 넘었다.
“뭐, 뭐야!!”
그녀가 얼굴을 굳히며 그를 노려보다가 멈칫했다. 그녀 입장에선 아는 얼굴일 테니까.
시우가 모른 척하면서 입을 열었다.
“소저 곤란해 보이는데 도움이라도 필요하십니까..?”
말하면서 과장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산처럼 쌓인 황금 무더기들은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그녀가 소리쳤다.
“뭘 보는 거야! 이건 전부 내꺼야!”
“흠··· 그러시오? 하여간 곤란해 보이는데 내가 도와줄 일은 없소?”
그녀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며 그를 노려봤다.
“···너야말로 이곳에 어떻게 들어온 거야! 방금 분명 벽에서 튀어나왔지!”
“협곡에 휩쓸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소.”
“헛소리···.”
구구궁!
동굴이 진동했다. 기의 흐름이 바뀐 것이 느껴졌다.
“이런..! 진이 뚫렸어..!”
얼굴이 창백해진 그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더니 결국 주저앉았다.
“아아··· 스승님. 죄송해요.”
“음..?”
“이제 몰라··· 강도 놈들이 모조리 가져갈 거야.. 망했어.”
도둑인 주제에 강도를 걱정하다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설마. 누가 이곳에 찾아오는 겁니까?”
“그래! 너야말로 어떻게 들어온··· 하. 이제 의미도 없네.”
허탈한 중얼거림에 예상했던 것이 맞음을 알수 있었다. 누군가 이곳에 들어왔고 곧 몰려올 것이다.
아마도 지도를 보고 몰려온 놈들로 예상됐다. 시우가 본 낭인만 수십 명. 그들이 모두 몰려오면 이곳이 털리는 것도 순식간이다.
‘하긴 이 많은 보물들을 단시간에 옮기는 건 불가능하지.’
인벤토리같은 이능이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했다.
“내가 도와드려도 되겠소?”
현대에서 새로 구해 온 천주머니를 커다란 동작으로 빼 들었다. 그녀가 훔쳐갔던 주머니와 생김새가 비슷했다.
이번엔 그녀를 위한 마법도 걸어 놨다.
“어어..? 그, 그건···?”
“왜? 아는 주머니라도 되시오?”
“그, 그럴 리가.. 아무것도 아니야.”
어설프게 거짓말하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도둑질에는 그대로 갚아줘야 했다.
“자, 잘 보시오.”
산처럼 쌓여 있는 금붙이들을 한움큼씩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천주머니에 넣는 척하며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시우의 키보다 높던 황금산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어···?!”
황금을 집어 들자 인상을 찡그리던 그녀의 표정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곳에 몰려오는 놈들이 문제인 거 같은데..? 이 황금들을 원하는 곳으로 옮겨 주면 되는 거 아니겠소?”
“마, 맞아! 도, 도와줘!!”
그녀가 밥도 굶어가며 이곳까지 허겁지겁 달려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어떤 망할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사부가 남긴 비고의 위치가 들통났다.
최대한 빠르게 달려왔지만 늦었다.
눈 뜨고 모든 보물을 빼앗길 위기였는데 희망이 생겼다.
갑자기 생겨난 이 녀석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으니까.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황금들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아아··· 내, 내 금이..!’
시우가 주머니에 황금을 쓸어 담는 것을 말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봤다.
어느새 텅 비어 버린 거대한 동굴. 그녀는 침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어..”
“이게 다요? 무공 비급 같은 건 없소?”
“여긴 없.. 아니, 없어. 그런 건.”
그 많던 금은보화가 저 작은 주머니에 모조리 들어갔다. 그녀는 새빨개진 눈으로 주머니를 노려봤다.
“···그 주머니는 대체 뭐야..?”
“스승님께 물려받은 보물이지. 전설 속 신선들이 사용하던 법보요.”
“버, 법보..? 꺼, 꺼낼 수는 있는 거지?”
“당연하지 않소.”
시우는 감탄과 불안함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도둑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천주머니를 과장스레 흔들면 그녀의 눈동자가 그림자처럼 따라 흔들렸다. 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는 황금을 홀라당 먹어치웠다.
인벤토리가 가득 차면 현대의 창고에 비우길 반복해서 결국 모조리 챙겼다.
‘큭큭···.’
그녀를 보며 웃음을 참다가 텅 빈 동굴을 봤다. 웬만한 학교보다 넓은 공동이 텅 비었다.
이걸 곱게 돌려줄 거라 생각하다니 순진한 도둑이었다.
휑한 느낌이 가득한 동굴을 보다가 문득 장난기가 돌았다.
“흐음···.”
종이와 붓을 빼 들었다. 그리고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좋다.’
그것을 바닥에 던지고 도둑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군. 나는 최시우라고 하는데 소저는?”
“···배..지상이야.”
“거짓말이군.”
“뭐..?”
“나는 거짓을 감별하는 재주가 뛰어나오. 아직도 나를 못 믿으면 조금 섭섭한데. 우리 사이가 멀어지면 그대는 곤란하지 않겠소?”
천주머니를 흔들었다.
“···서지유.”
“좋소. 서지유. 소저는 이름도 예쁘군. 이제 빠져나가면 되는 거 아니요? 갑시다.”
“좋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어느새 존댓말로 바뀌었다. 확실히 그녀는 약한 척을 잘했다.
“문제?”
“이곳의 입구는 하나뿐이에요. 아니지. 당신은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말했잖소. 물을 헤치다 보니 이곳이었다고.”
“무슨..!”
“천지신명께 맹세하지. 사실이오.”
“읏..!”
천지신명께 맹세한다.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지만 효과는 있었다. 적어도 이 말을 하는 자에게 믿을 수 없다는 티를 내면 싸우자는 것밖에 안 됐다.
“아무튼.. 입구가 하나뿐인데 그곳으로 강도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빠져나가기 곤란해졌다. 이건가?”
“네.”
콰광..!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서지유가 입술을 깨물며 미간을 짚었다.
“얼마 안 남았어요.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따라오세요.”
높게 솟아오른 돌기둥 뒤에 숨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벽에 난 좁은 틈새였다.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이곳에 숨어 있다가··· 놈들이 텅 빈 동굴을 보면 혼란스러워질 거예요. 그때 눈치봐서 섞여 들던가 빠져나가죠.”
“음.. 어설프긴 한데··· 그럽시다.”
혼원기로 이루어진 장막. 거기로가면 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비밀을 모조리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벽에 나 있는 틈으로 들어가기 직전 팔찌를 꼈다. 환영의 힘이 서려 있는 환면조의 팔찌였다.
환영처럼 아른거리는 평범한 여무사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나만 맨얼굴로 나가라는 거요?”
“···그 주머니 안에 팔찌 몇 개 있을 거예요.”
“주머니?”
“여기 쌓여 있던 보물을 모조리 집어넣은 그 주머니 말이에요.”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집어넣었던 황금 무더기 중에 팔찌도 있었던 것 같았다.
현대에 쌓아둔 물건들을 뒤졌다. 모든 것이 황금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신기해 보이는 물건도 많았다.
‘찾았다.’
그녀의 설명대로 팔찌를 착용하고 내공을 집어넣었다.
당화린이 가진 팔찌와 다르게 외형이 정해져 있었다. 평범한 청년의 모습이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직접 손대지 않는 이상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느끼기 힘들 만큼 아주 미세한 기운이었다.
“변했소?”
“네. 어디선가 본 거 같은 외모네요.”
“좋소. 나도 들어가지.”
벽에 있는 좁은 틈으로 몸을 구겨넣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와 몸이 밀착됐다. 가슴팍에 매달린 말랑말랑한 살덩이가 느껴졌다.
“잠깐..! 어딜 만지는 거예요!”
“너무 좁아서 어쩔 수 없소. 조금만 참으시오.”
일부러 몸을 비비적거리면서 최대한 가까이 붙었다. 겉으로 말라보이던 그녀의 가슴은 생각 외로 컸다.
‘이 정도면··· F컵?, G컵?’
물방울 모양의 이상적인 형태였다. 탄력적이고 말랑거리는 감촉이 아주 끝내줬다.
“이..!”
“쉿! 조용히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