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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98화 (98/241)

Chapter 98 - 98화 - 무협지구(9)

98화 - 무협지구(9)

과거.

배운 것 하나 없는 남자가 있었다. 내공심법은 커녕 검을 잡는 파지법도 몰랐다. 그저 휘둘렀다.

머리가 백발이 되고 온몸에 뼈만 남은 노인이 될 때까지.

우연히 지나가던 한 무림인이 그를 봤다.

곧 죽을 것 같은 노인이 내지른 단순한 찌르기. 그것을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순간 세상이 흐려졌다. 마치 태양이 사라진 것 같았다.

“무슨..?”

그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주변을 둘러봤다. 착각이었다는 듯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태양은 강렬한 빛을 뽐내며 멀쩡히 떠 있었다.

‘이게···.’

하지만 저 노인이 내지른 일검. 그 단순한 찌르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슴속에 화인처럼 박혀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저도 모르게 노인에게 다가갔다.

순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단순한 촌 무지렁이처럼 보였으나 함부로 대할 순 없었다.

조금 전 일검이 그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존장. 도대체 그 검법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름..? 그런 건 없소.”

목이 갈라진 듯 쉬어 버린 목소리가 들렸다. 허탈한 감정이 물씬 풍겼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으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노인은 지금 죽기 직전이었다.

다리가 힘없이 떨렸다. 노인에게는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방금 그 검이 생의 마지막 일검이었던 것 같았다.

털썩.

노인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것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기력을 소모한 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곧 죽을 것처럼.

무림인은 그를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었다.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 검법. 제가 이름을 지어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만 탁한 눈동자가 희미하게 떠졌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사일(射日). 마치 해를 찌르는 것 같더군요. 사일검법(射日劍法). 어떻습니까.”

노인은 대답 없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 표정 한구석엔 미묘한 만족감이 맺혀 있었다.

그를 묻어 준 무림인은 검을 허공에 찔렀다.

“이렇게 였던가..? 아니, 이렇게?”

그는 점창파의 초대 장문인이었다.

***

현재.

남궁세가의 남궁무진.

그는 후회했다. 이런 빌어먹을 동굴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사람보다 두꺼운 거대한 팔이 휘둘러질 때마다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저 괴물을 죽이려면 밖에 있는 정천대주라도 모셔와야 할 것 같았다.

후웅!

“끄윽-”

“미친..”

잠깐 집중을 잃은 사이에 옆에 있던 동료 한 명이 죽어 나자빠졌다. 저 팔이 조금만 옆에 떨어졌어도 그가 죽었다.

모골이 송연했다.

“여, 열렸다!! 놈이 죽었어!”

답도 없는 상황에 희망이 생겼다. 한 낭인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출구로 향했다.

모용철이 죽었다. 출구를 막고 있던 자가 죽으며 길이 열렸다.

쾅! 쾅!

게다가 이제 괴물의 팔은 그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마치 통제가 풀린 짐승 같았다. 그렇다면 이런 괴물을 굳이 상대할 필요 없었다.

콰앙!

“도, 도망쳐!!”

떨어지는 종유석과 괴물의 팔을 피하며 출구로 달렸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데 누군가 길을 막고 있었다.

“비, 비켜!!”

남궁무진이 검을 쥐었다. 모용철을 해치운 낭인이 허공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멍청히 서 있는 녀석에게 화가 치밀었다. 당장에라도 베어 버리고 밖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운 가르침이 그의 마음을 붙잡았다.

검을 옆으로 돌려 검 면으로 그를 후려치려 했다.

그것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

모용철을 해치운 남자가 검을 잡았다. 검기도 맺혀 있지 않은 평범한 철검.

그 검이 자신을 향해 쏘아졌다.

‘아..?’

마치 영혼이 꿰뚫린 것 같았다.

콰당.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무언가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단순히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무, 무슨..?’

후들거리는 다리로 가까스로 일어나 제몸을 더듬었다. 다행히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무언가 말하려던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내렸다. 손이 너무 가벼웠다.

만년한철이 섞인 명검. 검기에도 버티는 단단한 명검이 가루가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이, 이게..”

그러고 보니 동굴이 조용했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뒤를 돌아봤다.

검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괴물의 팔이 재로 변해 사라지고 있었다.

균열 너머. 그곳에 있는 거대한 눈동자에 검흔이 나 있었다.

그 눈동자를 바라본 것만으로 남궁무진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어이.”

“허억..!”

그를 부르는 소리와 동시에 균열이 닫혔다.

괴물 같은 눈동자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에게, 아니 괴물에게 검을 쏘아낸 남자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청년의 눈을 감히 직시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입을 억지로 뗐다.

“네, 네..?!”

“밖에는 누가 있지?”

“누, 누구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비고 밖에 누가 있느냔 말이다.”

“아..! 저, 정천대주랑.. 저, 적혈마도..가 있습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지자 절로 겁이 났다. 이곳에 있는 모두를 단칼에 죽여 버릴 수 있는 엄청난 고수.

그 증거로 시장판 같던 이곳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벌벌 떨며 서 있을 뿐이었다.

신분을 숨긴 고수. 이제는 보물이 없는 게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적어도 살인 멸구 당할 가능성은 줄어들었으니까.

***

시우는 눈을 떴다.

한 노인의 일생이 머릿속에 떠돌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가뭄으로 인해 굶어 죽었고 하나 남은 여동생 마저 열사병으로 죽었다.

아무것도 배운 게 없어 무지했다. 그렇기에 태양을 증오했다. 자신의 가족을 데려간 그것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에 일생을 바쳤다.

무식하게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태양에 생채기를 낼 때까지.

‘닿았나?’

그것은 알 수 없었다.

- 영혼의 격이 부족합니다.

- 전생(全生)의 일부가 유실됩니다.

- 유지 시간 : 01:59

‘초절정..’

내공 한 줌 없이 검만 휘둘러서 초절정 어쩌면 그 이상. 저도 모르게 존경심이 들었다.

평생을 태양을 찌르고자 검을 휘둘렀다. 그의 정적인 삶은 빠르게 희미해졌다. 몇몇 기억만 남고 사라졌다.

언뜻 기억나는 것들로 미뤄볼 때 그는 무협지구 사람으로 보였다.

이름 모를 노인의 기억을 살피다 눈앞의 무림인에게 시선을 줬다.

“비고 밖에 누가 있느냔 말이다.”

“아..! 저, 정천대주랑.. 저, 적혈마도..가 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천대주라면 그도 들어봤다. 초절정의 고수. 지금 상태로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이 경지는 영원하지 못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두 시간 남았나.’

각성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야 했다. 하다못해 절정지경에 대한 힌트라도 얻을 수 있도록.

“모두 나가라.”

“네, 네..?”

“나가라 했다.”

출구를 보며 고갯짓했다. 이들을 모두 죽여 입막음할 필요는 없었다. 얼굴도 숨겼고 딱히 잘못한 것도 없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눈치를 보던 그들이 한 명씩 나갔다. 시우가 가만히 있자 곧 우르르 몰려나갔다.

그들을 보다가 아직도 쓰러져 있는 서지유에게 다가갔다.

“흐음.. “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가슴. 언뜻 보면 기절해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불완전하지만 초절정의 경지를 맛보고 있다. 동굴 구석을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까지 모조리 느껴졌다.

그녀의 기 흐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깨어 있네.’

기절한 척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모용철에게 발로 차인 배 부분의 기혈이 상해 있었다.

“쯧..”

눈을 감고 잠든 채 하던 그녀를 안아 들었다.

미세하게 근육이 경직된 게 느껴졌다. 초절정의 경지가 아니었다면 느끼기 힘든 수준. 신체에 대한 통제력이 대단했다.

그녀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혼원기 장막을 넘어 쪽방으로 돌아갔다.

두꺼운 천을 깔아준 다음 그위에 서지유를 눕혔다. 그리고 마력코어에 깃든 재생의 힘을 사용해 그녀를 치료해줬다.

“흐으..”

상처가 치유되는 감각에 그녀의 입에서 숨길 수 없는 신음이 튀어나왔다.

‘어쩌지?’

시간이 흐를수록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빠르게 떠나는 것과 이곳에서 경지를 갈무리 하는 것.

두 가지를 고민하다가 이곳에 남기로 했다.

시간만 넉넉했어도 빠져나간 다음에 기억을 갈무리 했겠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목이도가 남긴 혼원기 장막을 믿어보기로 했다.

검을 잡고 집중했다.

잔류사념이 손쉽게 일어났다. 집중의 질이 달라진 느낌. 검기가 쭉쭉 늘어났다. 심지어 날릴 수도 있었다.

‘검강은··· 안 되네.’

초절정의 경지면 검강을 다룰 수 있는 경지라 들었는데 감도 안 잡혔다. 안 되는 건 접어두고 다른 것에 집중했다.

‘사일검법.’

괴물의 팔을 일 검에 재로 만든 그 검법.

한 사람이 태양을 찌르고자 노력한 인생이 담겨 있었다.

노인의 삶에 심심한 경의를 표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었다.

혼원기를 온몸에 돌리며 스쳐 지나갈 경지를 최대한 갈무리했다.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지금의 감각이 너무나 아까웠다.

***

두 시간이 꿈처럼 지나갔다.

- 전생 ㅁㅁㅁ의 유지 시간이 끝났습니다.

- 영혼의 격 차이가 극심합니다. 불완전한 전승이 이루어집니다.

- 스킬 [사일(射日)]을 획득합니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어가는 작은 벌레까지 느껴지던 감각이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장님이 된 것 같았다.

사라진 것은 신경 끄고 얻은 것에 집중했다.

사일(射日)은 모든 전생체에서 사용 가능한 일종의 버프기였다.

찌르고 베는 행위의 위력을 극한으로 증폭시키는 스킬.

더 심오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것밖에 알 수 없었다. 그의 경지론 여기까지였다.

‘음?’

파지직!!

스킬에 신경 쓰다가 빈틈이 생겼다. 지금까지 기회만 노리던 서지유가 그의 천주머니에 손을 뻗은 상태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마비마법.

“끄읏..”

주머니에 걸어 놨던 도난방지 마법이 작동했다.

뻣뻣하게 마비된 서지유에게 다가갔다. 불안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마치 덫에 걸린 토끼같았다.

“하하. 잡았다. 이 도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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