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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07화 (107/241)

Chapter 107 - 107화 - 아카데미(5)

107화 - 아카데미(5)

경매장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개였다.

헬레나의 손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노점 구역 구석을 지나고 있었다.

길을 몇 번 잘못 들었더니 이상한 구역에 도착했다.

“음..?”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졌다. 아까까지 활발한 관광지였다면 이곳은 약간 뭐랄까···.

암시장같았다.

“거기 형씨. 이거 하나 안 살래? 옆에 아가씨도 좋아할걸?”

코에 피어싱을 세 개나 박은 남자. 그가 위잉- 위잉- 진동하는 막대기를 흔들었다.

아직까지 손을 붙잡고 있던 헬레나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시우님. 빠, 빨리 가요.”

성인샵이었다. 어떤 물건이 있는지 호기심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헬레나를 꼬시는 것.

그녀에게 반쯤 끌려가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가게를 최대한 자세히 훑어봤다.

수십 개의 진동기구가 진열되어 있었다. 사실 혼원기가 있으니 필요는 없지만 호기심은 있었다.

‘아니 저건···?’

심지어 유두 전용 진동기도 있었다. 접착제도 필요 없이 딱 달라붙는다는 설명.

서지유에게 붙여놓고 방치하면 어떻게 될지 절로 궁금해지는 기구. 당장에라도 사고 싶었다.

‘다음에 혼자 와야겠다.’

티 안 나게 눈동자를 굴렸다. 여기저기 쓸모 있는 게 너무나 많았다.

“어..?”

주변을 둘러보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시우님. 왜 그러세요?”

“저거 앤 아니야?”

“어디··· 아, 맞네요.”

풍만함을 넘어 후덕한 몸매. 배가 남산처럼 튀어나온 앤이었다.

그녀가 괴상한 미소를 지으며 물약 하나를 사고 있었다.

“제일 강한 거니까 조심하십쇼.”

“알고 있으니까. 빨리 주세요.”

투명한 액체가 가득 담긴 주먹만한 병. 주인장에게 그것을 받아 든 앤이 제 품에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후드를 푹 눌러썼다. 누가 볼새라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게 보였다.

‘마약이라도 산건가.’

뭘 산건지 궁금했다. 어차피 경매장으로 가는 길. 은근슬쩍 그 가게를 훑어봤다.

-누구나 한 방에! 사랑의 폭군!

-홍콩가는 가장 빠른 방법! 밤이 약해서 걱정이라구요? 걱정 마십시오! 누구나 폭군이 될 수 있습니다!

-연인을 위한 사랑의 묘약! 연인이 없다구요? 걱정 마세요. 이거 한 방이면 누구라도 당신 것이 될 겁니다!

-플레시아 꽃잎 농축액.

※주의 : 반드시 희석해서 사용하시오. 책임 안 짐.

전생체 박진구도 알만큼 유명한 미약이었다. 비싼만큼 효과가 좋기로 소문났다. 부작용이 거의 없고 효과도 빠른 약이다.

본능적으로 멈추려는 발걸음을 억지로 이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헬레나가 옆에 있었다.

‘저걸 어디다 쓰려고. 설마..?’

앤이 노리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뻔하다.

그에게 잠시 기도해준 뒤 헬레나와 자리를 떴다. 이제 경매가 얼마 남지 않았다.

***

확실히 부잣집 아가씨와 다니니 편한 게 많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옆에 있는 종을 울려주십시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정장 차림의 직원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더니 방에서 나갔다.

이곳은 경매장 2층에 있는 VIP룸. 1번방이었다.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댔다. 눈앞의 탁자엔 이름 모를 술들과 안줏거리가 세팅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쪽 벽을 가득채운 유리창이었다. 거기서 보이는 1층 무대가 오늘 경매가 이뤄질 곳이다.

“시우님. 이거예요. 화조의 깃털.”

오늘 경매에 올라오는 물품이 적힌 카탈로그. 빠르게 책자를 넘기던 헬레나가 밝게 웃었다.

“이 깃털에 공간의 힘이 서려 있어요.”

카탈로그 사진에 불타고 있는 깃털이 보였다.

“신기하게 생겼네. 더 없어?”

“음···. 오늘은 아쉽게도 이거 하나뿐이네요.”

오늘 경매에 나오는 공간 소재는 딱 하나였다. 살수 있을지 걱정됐다. 하지만 헬레나의 설명에 따르면 꽤 흔하게 나온다고 한다.

적어도 하루 이틀에 하나씩은 나온다고 한다. 오늘 못사도 걱정할 것은 없었다.

***

총알은 15장. 세금을 떼고 나니 15억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경매에서 노려야 할 것은 화조의 깃털이었다.

화조는 6성, 절정급 몬스터다. 괜히 꽁지깃 하나에 10억이 넘는 게 아니다.

“화조면 불사조처럼 생긴 새 아니야? 여기에 공간 권능이 서려 있다고?”

“네. 확실해요.”

“신기하네.”

“음···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화조가 봉황의 후예라는 주장도 있어요.”

“봉황?”

봉황이라면 100년 전. 대규모 균열사태때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다. 하늘을 가득채울 정도로 거대한 불새.

세계를 떠돌던 봉황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한번 날갯짓에 만리를 난다는 새. 들어 보셨죠? 태생적으로 공간도약을 하는 몬스터예요. 신수라고 불리기도 하지만요.”

*

경매가 시작됐다.

- 다음 상품은··· 살아 있는 태양화리입니다!

유리창 아래로 일반석에 있는 사람들이 감탄하는 게 보였다.

태양화리면 양기를 가진 영물급 잉어였다. 특히 내단은 꽤 상위권에 있는 영약이었다.

- 아직 어린 새끼지만 100년 정도만 잘 키우면 내단이 생길겁니다. 그때는 말 그대로 6성급 영약이죠!

경매가는 1억부터 시작이었다.

“100년..?”

태양화리같은 영물은 키우기도 쉽지 않다. 그걸 100년이나 키우라니.

저걸 누가 사나 싶었는데 바로 옆에서 띠-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음..?”

헬레나가 붉은색 잉어와 그를 번갈아 보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 1번방! 일억!, 3번방에서 일억 이천···.

띠 띠 띠.

잉어 한 마리가 순식간에 이 억을 넘어섰다.

“헬레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저거 100년 키우려고?”

“네..? 설마 그럴 리가요.”

띠-

헬레나는 이제는 가격도 듣지 않고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잉어찜으로 만들면 맛있어요. 오늘 저녁에 같이 먹어요.”

“어··· 그래.”

총 4억. 새끼라 내단도 없는 잉어 한 마리의 가격이었다.

***

어느새 배달된 태양화리는 뒤에서 펄떡거리고 있었다.

곧 잉어 정식이 될 녀석에게 눈을 떼고 1층 무대를 내려다 봤다.

드디어.

그가 원하는 상품이 나왔다.

새하얀 천 위에 올려진 불타는 깃털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테이블보에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화조의 꽁지깃이었다.

- 네! 다음은 화조의 깃털입니다! 화염계 마력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특출납니다.

- 미약하지만 공간계 마법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그럼 5억부터 모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튼을 눌렀다. 이곳에 온 이유인 만큼 망설이지 않았다.

- 1번방 5억! 또 없으십.. 아! 3번방에서 6억!

‘음..’

그의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약 15억.

띠띠띠

알람 몇 번만에 가격이 껑충 뛰었다.

- 1번 방 15억!! 더 없으십니까?! 더 없다면···.

벌써 15억. 그가 가진 전 재산을 밀어 넣었는데도 경매가 끝나지 않았다.

- 아! 3번방에서 17억!

“이런..”

가진 현금을 넘어섰다. 조금 아쉬웠지만 마음을 접었다.

다음에 다시 오면 된다. 원래 시세가 10억정도라는데 두 배 가까이 주고 사고 싶진 않았다.

“제가 보태드릴까요?”

“됐어. 어차피 자주 나온다며?”

“그건 그렇지만···.”

입술을 삐쭉이는 헬레나에게 말했다.

“다음에도 같이 올래?”

“그, 그럴까요..?”

어차피 중요한 건 데이트할 명분이었다. 그녀 정도라면 애초에 지시만해도 저런 재료는 쉽게 구한다.

“그때는 딴 데도 가 보자. 여기 먹을 것도 많다며?”

“맞아요! 엘프가 키운 과일 샐러드가 정말 맛있어요.”

지금은 오후 6시. 딱 저녁 먹기 좋은 시간.

자연스럽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태양화리찜까지 먹으면 완벽했다.

‘호텔까진 무리겠지.’

오늘은 그녀의 손을 붙잡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더 이상은 무리다. 경험을 통해 쌓은 감각이 그것을 말해줬다.

‘그래도 조금씩 꼬시다 보면 넘어올 거 같은데.’

어제 점쟁이의 말을 들으며 그녀를 꼬실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확신.’

이번 생에 끝낼 수 있다는 확신. 그녀가 무엇 때문에 회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신을 줘야 했다.

그래야만 그녀가 가진 마음의 벽이 허물어질 것 같았다.

***

경매가 끝났다.

헬레나와 방에서 나서는데 3번이라고 적힌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중년 남자가 나왔다. 뒤따라 나온 젊은 청년이 불타는 깃털을 펄럭이고 있었다.

서로 닮은 것이 딱 봐도 부자지간으로 보였다.

아비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화들짝 놀랐다.

“어엇..?! 헤, 헬레나공녀님 아니십니까!!”

그는 입을 쩍 벌리며 허겁지겁 다가왔다.

“이, 일번방..! 공녀님인 줄 알았다면 곧바로 양보 했을 텐데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아이참! 이거 죄송스러워서···. 깃털은 제가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화조의 깃털을 들고 있던 청년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아..! 이놈은 제 아들놈입니다. 어허 뭐 하느냐 어서 인사하거라.”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마이클이라고 합니다!”

헬레나는 이제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하아.. 괜찮으니까. 그냥 가시지요.”

“네..? 아, 제가 눈치도 없이 실례했습니다. 그럼..”

시우가 헬레나에게 말했다.

“잉어찜? 그건 어디서 먹을까? 직접 요리할 건 아니지?”

“그럼요. 아카데미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어요. 거기로 가요.”

그녀와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이동했다. VIP석이라 그런지 서울 전역으로 연결된 마법진을 이용할 수 있었다.

마법진 바로 앞에 도달한 그때.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이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목덜미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 한 방울이 느껴졌다.

원인은 초월적인 존재감.

누구도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압박감이었다.

뒤따라오던 마이클이란 녀석이 들고 있던 화조의 깃털.

그것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텔레포트 마법진에서 무언가 흡수했다.

웅웅..!

진동하던 깃털은 대상을 찾듯 허공을 빙빙 돌았다.

그때까지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마치 수백 배로 강해진 중력에 몸이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빙빙 돌던 깃털이 한 곳을 향했다. 헬레나. 그녀가 있는 곳으로.

헬레나 뒤에 있던 호위가 경악하는 표정이 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도 움직이지 못했다.

으득.

시우가 혀끝을 깨물었다. 아릿한 고통이 몸을 깨웠다.

‘육화(肉火).’

온몸의 피가 부글부글 끓는 고통이 느껴졌다.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 한걸음. 그 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헬레나에게 날아간 깃털은 그녀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전신을 휘도는 마력에 항마력을 담았다.

그제야 몸을 얽어매는 무언가를 뿌리칠 수 있었다.

항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리며 손을 뻗었다.

*

번쩍!

강렬한 빛.

시우가 눈을 떴을 때 이곳은 경매장이 아니었다. 주변 풍경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바로 옆에는 쓰러진 헬레나가 있었다.

“으응..”

자세히 살펴봤지만 이상은 없어 보였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게 곧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휘이이잉!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서늘한 기온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하얀 무언가가 뺨에 닿았다.

‘눈..?’

거대한 설산. 시야를 가득채운 모든 것이 새하얬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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