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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09화 (109/241)

Chapter 109 - 109화 - 아카데미(7)

109화 - 아카데미(7)

헬레나 공녀님은 소문대로 얼음공녀 그 자체였다.

마이클은 그녀가 가만히 쳐다보는 눈빛만으로 기가 죽었다.

왠지 모르게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지른 기분. 무언가 변명해야 할 것 같았다.

“제, 제가 마력이 별로 없어서···.”

“그 깃털이면 얼어 죽진 않을 텐데요.”

“아.. 그,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마이클은 불타는 깃털을 핫팩처럼 사용하며 오들오들 떨었다. 이런 곳에 끌려온 것도 억울한데 사방을 가득채운 눈은 너무나 추웠다.

‘이래도 추운데.. 아 그렇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어 헬레나 공녀님..?”

“···.”

대답이 없었다.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불알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내, 내가 뭘 잘못했나..?’

솔직히 깃털을 사이에 두고 세 명이 같이 껴안고 있으면 더 따뜻할 텐데.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 아닙니다.”

헬레나 공녀님이 자신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한대 맞을 것 같은 기분. 뒷덜미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깃털은 타오르고 있었음에도 느껴지는 온기가 약했다.

‘그냥 마력을 쓸까···.’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격이었지만 너무나 추웠다.

덜덜 떨면서 억지로 참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을 녹이는데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마이클이라했나?”

헬레나 공녀님과 붙어 있던 남자였다. 딱 봐도 무투파로 보였다. 균형 잡힌 체형은 무술에 대해 모르는 그가 봐도 날렵해 보였다.

아까 보니 헬레나 님도 저자에게 존댓말을 했다.

그도 눈치가 있었다. 곧바로 자세를 바로 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여기로 전송된 거. 네놈이 한 거냐?”

마이클은 기겁했다. 공녀님을 전송사고에 휘말리게 한 일. 그가 범인으로 몰렸다간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가문까지 끝장이었다.

“네?! 저, 절대 아닙니다!”

“아는 건 없고?”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유심히 그를 보던 남자가 작게 혀를 찼다. 그러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뭐, 뭐야···.’

그의 말을 이렇게 쉽게 믿어 주다니. 순진한 건지 어설픈 건지 모르겠지만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실 저자보다 헬레나 공녀님이 더 무서웠다.

아까부터 지그시 노려보는 게 무언가 화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아끼던 화분을 깨뜨렸을 때가 떠올랐다.

구궁 구궁

“어어..?”

작게 진동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그를 노려보던 둘이 동시에 서로를 보더니 말했다.

“···나가자. 뭔가 온다.”

“네.”

말없이 그를 노려보는 둘때문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활약할 기회가 왔다.

마이클은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서 긴장된 눈으로 한곳을 노려봤다.

‘서, 서리늑대! 기, 기회다!’

서리늑대는 개체간 강함의 격차가 엄청나게 큰 몬스터였다. 보통 강해질수록 덩치가 커진다.

가장 작은 늑대 한 마리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1미터. 이 정도라면 그도 상대할 수 있었다.

***

마이클은 상인 가문에서 태어난 장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어릴 적 되지 못한 각성자에 대해 한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들인 자신에게 온갖 교육을 시켰다. 물론 그도 마력을 다루는 초인이 되고 싶었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값비싼 영약을 물처럼 들이킨 결과 각성했다.

허나 각성과 재능은 별개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몸치로 판명난 몸. 기사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력을 다루는 재능이 있었나?

그것도 아니다.

이대로라면 강자가 되는 일은 불가능한 일.

초인이 되는 길은 크게 세 가지였다. 무공과 마법.

남은 것은 단 하나 정령이었다.

세상에 있는 숨겨진 힘. 돈을 이용해 엘프를 초빙했다.

- 죄송하지만 아드님은 정령친화력이 거의 없습니다.

- ···거의라면. 있긴 있다는 소리 아니요?

- 실언했군요. 의미 없을 수준···.

- 어허!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 제발 부탁하오.

- ···어디 가서 제가 해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자본주의에 굴복한 엘프가 정령 계약을 주선했다. 자신이 계약할 것처럼 정령을 불러놓고 대상자를 마이클로 바꿨다.

물론 그냥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온갖 마법진과 정령석을 이용한 편법이 동원됐다.

미약한 정령 친화력이라도 있어서 가능한 일. 하지만 정령입장에선 거의 사기에 당한 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정령은 말을 더럽게 안 들었다.

“샐러! 제바알!!”

- 꾸륵!

꼬리에 불붙은 도마뱀 하나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망할. 정령주제에 명령을 듣지 않다니!

서리늑대가 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으악! 샐러! 빠, 빨리 도와줘!!”

-푸륵..

한숨처럼 불꽃을 토해낸 도마뱀이 미간을 찡그렸다. 도마뱀주제에 표정이 선명했다.

정령은 하는 것도 없으면서 마력은 잘도 퍼먹었다.

‘주인이 위기에 처했는데 이 망할 놈이.’

하지만 오늘 자신에겐 비장의 수단이 있었다.

핫팩처럼 사용하던 화조의 깃털. 전송사고의 원인 같아 찜찜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럽게 추운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온기였으니까.

손난로처럼 들고 있던 깃털을 들이댔다.

“샐러! 말 잘 들으면 나중에 이거 줄 테니까. 어서..!”

-푸륵?

깃털을 관찰하던 도마뱀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볼을 부풀리고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서리늑대를 향해서.

‘크으.. 역시!’

이것을 위해 산 화조의 깃털. 불의 정령은 이런 소재들을 좋아한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거나 간식으로 먹는다.

화르르륵!

“끄워어어엉!!”

마력 절반이 증발하듯 사라졌으나 대가는 달콤했다. 거대한 늑대는 팔도 휘두르지 못하고 숯으로 변해 쓰러졌다.

“크으..! 이거지!”

쾌재를 부르며 절로 펴지는 어깨를 진정시켰다.

이런 멋진 모습을 보이다 보면 헬레나 공녀님도 조금은 친절해질 것이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뭐야..!’

공녀님은 그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녀의 눈길은 오로지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무식하게 주먹으로 늑대를 때려잡는 모습.

‘저, 저딴 걸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거야!’

아까 그 차가운 시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단순 무식한 주먹질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마치 아이돌을 보는 소녀팬같았다.

‘이이..’

열 받았지만 티낼순 없었다. 눈치가 있다면 공녀님이 계속 존댓말 하는 상대를 우숩게 볼순 없었다.

‘도대체 누구지. 처음 보는데.’

둘은 서로를 보더니 입을 벌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기만 빼놓고 둘이서 전음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휘이이잉!

갑자기 더럽게 추워지는 기분이었다. 몰아치는 눈보라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

시우는 은은하게 느껴지는 진동에 쉘터 밖으로 나왔다.

휘이이이잉!!

눈보라가 아까보다 더 심해진 기분이었다.

-으르릉..

아스라이 들려오는 짐승 소리.

탓탓!

새하얀 무언가가 빠르게 달려왔다. 10미터까지 접근해서야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총 세 마리의 거대한 늑대였다.

파악!

“크워엉!!”

순백의 털을 가진 서리늑대가 그를 덮쳐왔다. 우두머리인지 제법 컸다. 높이만 해도 3미터 가까이 됐다.

녀석은 내리찍듯 발톱을 휘둘러왔다.

후우웅!

걸친 바람 소리를 뚫고 파공성이 울렸다. 바위도 가루로 만들 힘이 담겨 있었다.

허리까지 쌓인 눈때문에 거슬렸지만 그는 절정의 고수.

최소한의 마력만 이용했다. 한줄기 내공이 전신을 달리며 육체를 강화시켰다. 진각을 밟으며 주먹을 뻗었다.

단순한 동작으로 공방일체가 이루어졌다.

툭.

“크워어···”

주먹이 살짝 닿았을 뿐인데 거대한 늑대가 비틀거렸다.

한줄기 내공이 늑대의 심장에 스며들었다. 침투경. 심장이 조각난 서리늑대의 눈빛이 꺼졌다.

쿠웅..!

허공을 허우적대던 늑대는 그대로 쓰러졌다.

마이클이란 놈이 한 마리를 불태운 탓에 남은 늑대는 한 마리였다.

“크르르..!”

꼬리를 말고 주춤거리는 늑대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뻗었다.

1분도 안 돼서 몰려든 서리늑대는 전멸했다.

그것을 보던 헬레나가 전음을 날렸다. 몰아치는 바람때문에 단순히 말하는 정도론 거의 들리지 않았다.

- 마침 필요한데 잘됐네요.

쓰러진 늑대를 살피고 있는 헬레나에게 말했다.

- 필요하다니?

- 아..! 이것 좀 보세요.

그녀가 거대한 늑대 한 마리를 끌고 오더니 내밀었다.

새하얀 털을 가진 거대한 늑대의 팔.

엉겁결에 건네받은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음..?’

복슬복슬한 털이 제법이었다.

*

잡은 늑대를 갈무리하고 쉘터로 들어왔다.

헬레나는 손재주가 대단했다. 경험의 영역인지 재능의 영역인지 모르겠지만 결과물이 훌륭하다는 것은 동일했다.

“여기요!”

“···고마워.”

10분도 안 돼서 완성된 고급스러운 늑대 털코트. 시우가 그것을 받았다.

복슬복슬한 하얀 털을 소재로 만들었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마감까지 완벽했다.

딱히 도구도 없었다. 마력만으로 한 것치곤 엄청난 결과물.

‘아쉽네.’

이게 있으면 더 이상 체온유지를 핑계댈 수 없다.

“흥흥..”

콧노래를 부르던 헬레나가 또 하나의 코트를 만들었다.

시우에게 건넸던 것과 디자인이 비슷했다. 어디 고급 매장에서 팔아도 될 정도로 깔끔한 디자인.

그녀의 새하얀 속살이 코트 속에 가려진 건 아쉬웠지만 두터운 털옷을 입은 헬레나도 보기 좋았다.

‘펭귄같네.’

복슬복슬한 털 사이에 빼꼼 나와 있는 하얀 얼굴이 귀여웠다.

같은 옷을 입고 서로를 보고 있으니 뭔가 뿌듯해지는 기분.

커플복이라도 맞춘 것 같았다.

눈치도 없는 마이클 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저어.. 헤, 헬레나 님..?”

“..왜요?”

헬레나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산뜻한 봄바람에서 서리바람으로 변해 버린 기분.

마이클은 억지로 웃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속담을 믿고서.

“저, 저도 하나 만들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너무 추운데요···.”

“하아..”

헬레나가 손을 휘적이자 늑대가죽 하나가 죽죽 잘려 나갔다.

“어어..?”

마이클 본인이 태워 버린 늑대가죽. 새까맣게 탄 그것이 옷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분도 안 돼서 완성된 그것.

“끝났어요.”

마이클이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고급 매장에 팔아도 될 것 같은 코트는 없었다. 유심히 바라본 다음에야 ‘의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원시인도 입을지 말지 고민할 정도의 거적때기였다.

“이, 이게···”

“왜 그러세요? 불만 있으세요?”

“아, 아닙니다. 가, 감사합니다.”

마이클은 헬레나의 차가운 시선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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