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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10화 (110/241)

Chapter 110 - 110화 - 아카데미(8)

110화 - 아카데미(8)

시우의 눈치를 살피던 헬레나가 팔찌에서 보석을 몇 개 뗐다.

그러곤 바닥에 흩뿌리더니 마력을 주입했다.

‘음..?’

화륵.

마치 숯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석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단순한 장식인 줄 알았는데 생존을 위한 아티팩트였다.

타닥타닥 하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꽃이 보였다.

훈훈한 온기가 쉘터를 가득 채웠다.

시우는 헬레나를 슬쩍 보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민망한지 작게 헛기침하고 있었다.

“흠흠.. 이, 이건 되네요..”

눈치보던 마이클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으.. 어, 엄청나군요. 준비가 정말 철저하십니다. 아공간도 안 되는 곳인데 대단합니다!”

*

적당히 피를 빼고 먹기좋게 손질한 늑대 고기들.

헬레나는 요리사라도 되는 것처럼 능숙하게 고기를 구웠다. 척박한 환경에서 그녀의 생존스킬이 빛을 발했다.

“오··· 맛있겠네.”

“조미료가 없는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아! 다 익었네요. 여기요.”

헬레나가 구워준 늑대고기 구이를 받아 들었다. 한입 깨무니 생각보다 먹을 만 했다.

아니, 상당히 맛있었다. 아무런 조미료가 없는데도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은은한 불향이 입맛을 돋우었다.

“맛있는데?”

“네..? 에이 전 괜찮으니까. 거짓말 안 하셔도 돼요.”

“아니 진짠데? 헬레나 너도 먹어봐. 자.”

“아..”

건네준 고기를 받아먹은 헬레나의 눈이 커졌다.

“신기하네요. 잡내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게. 육식동물 같지가 않아.”

뭘 먹고 자란 늑대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이제 슬슬 주변 좀 둘러보자.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잖아?”

“맞아요. 그런데 설산이라···. 너무 생소해서 어딘지 모르겠네요.”

도대체 어디까지 전이된 것인지 감이 안 잡혔다.

떠오른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정말 더럽게 먼 곳으로 끌려왔거나 이곳이 균열이든가.

“적어도 우리나란 아니지?”

“네. 그건 확실해요. 아무래도 균열 같긴 한데···.”

“갑자기 균열에 끌려올 수도 있는 거야?”

“글쎄요···.”

마이클은 조용히 눈치 보다가 뒷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낑낑거리며 직접 굽기 시작했다.

여기선 아무도 그를 챙겨 주지 않았다. 조금 서러웠다.

*

늑대고기를 해치운 시우가 마이클에게 말했다.

“넌 밖에서 잠깐 망 좀 보고 와.”

“네..?”

“헬레나한테 개인적으로 할 말있으니까 5분만 나갔다 와.”

“어어.. 아, 알겠습니다.”

눈치 보던 마이클이 나가고 헬레나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당황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무언가 기대하는 얼굴이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아쉽지만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놀고 있을 순 없었다.

“헬레나 이거 봐.”

“어..?”

위성전화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혹시나 해서 내 아공간도 확인해 봤는데 내 건 되더라고.”

“아..! 정말 다행이네요.”

“근데 통신이 안 잡혀.”

“네에..?”

이 위성전화라면 지구 어디에 있든 통신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송수신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여러 개의 위성전화는 하나 같이 먹통이었다.

“적어도 지구는 아닌 것 같아. 역시 균열인가?”

“균열···이 더 그럴듯하네요. 그것도 이상하지만요.”

“흐음···”

균열이라고 해도 이상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기감이 유난히 제한되어 있고 마력도 거의 없는 곳. 이런 곳은 정말 흔치 않았다.

균열은 보통 대기 중 마력 농도가 더 높다.

*

주변을 돌아다니며 둘러봤으나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특히 대기 중 마력 농도가 낮은 것이 문제였다. 한번 소모한 마력을 보충하는 게 쉽지 않았다.

쉘터로 돌아와 헬레나와 의논했다.

“결국 이건가?”

“으음..”

만약 이곳이 균열이라면 단순히 설산을 내려가는 것만으론 빠져나갈 수 없다.

이 넓은 설산을 무식하게 헤매는 건 자살행위다. 결국 남은 것은 수상한 붉은 깃털뿐.

깃털에 혼원기를 집어넣었다.

항마력을 담지 않으니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이리로 오라···.

이어서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유독 한쪽에서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치 그곳으로 오라는 듯.

“어떻게 생각해?”

“···딱히 방법이 없으니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깃털이 가리키는 곳은 산봉우리 방향이었다.

***

설산 중앙에 다가갈수록 저항이 거세졌다.

덤벼드는 몬스터 수준이 점점 높아졌다. 눈보라는 의지라도 가진 듯 그들을 몰아내려 했다.

반도 가지 못하고 퍼져 버린 마이클은 쉘터에 남았다. 그의 수준으론 단순히 따라오는 것도 불가능했다.

“으으.. 죄, 죄송합니다.”

“됐어. 이거나 잘 들고 있어.”

혹시 몰라서 균열용 위치추적 아티팩트를 하나 던져 줬다. 자신을 버리는 게 아닌지 걱정하던 놈은 화색이 돌았다.

“조심하십시오!”

녀석의 인사를 뒤로하고 설산으로 다가갔다. 깃털이 인도하는 곳을 향해서.

눈송이 하나하나가 암기라도 되는 것처럼 쏟아졌다. 헬레나와 딱붙어서 피부에 마력을 둘렀다.

단순히 걷는 것이라곤 믿기지 않게 힘들었다.

하지만 결국 도착했다.

-여긴가..?

-그런 것 같네요.

깃털이 가리키는 곳은 설산의 정중앙이었다. 최후의 반항이라도 하듯 눈보라가 거칠게 몰아쳤다.

쌓여 있는 눈을 3분 정도 파고드니 동굴 입구가 튀어나왔다.

‘음..’

거칠면서도 반들반들한 벽이 보였다. 인공적인 느낌과 자연적인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언뜻 보면 무언가 빠져나간 통로 같아 보였다.

조금 고민하다가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동굴에 들어옴과 동시에 온도가 확 높아졌다. 헬레나가 털코트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여긴.. 엄청 따뜻하네요.”

이곳은 마치 딴 세상 같았다. 중심부에 다가갈수록 더워지는 기분.

‘아니 진짜로 더워지고 있다.’

피부에서 땀 한 방울이 또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리바람이 부는 한겨울에서 여름으로 순식간에 변한 느낌이었다.

‘혹시 화산인가?’

분위기가 이질적이었다. 너무나 고요해서 이상할 지경.

뭐가 이상한지 고민하다가 깨달았다. 이곳엔 조그마한 벌레 하나 없었다.

***

헬레나는 앞에서 걸어가는 시우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 봤다.

‘아..’

보고 있기만해도 심란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솟아오르는 몽글몽글한 느낌.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자신에겐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시한 폭탄.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라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그녀를 약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끝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버틸 수 있을까.’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분명히 저번 생에 비하면 나아지고 있다. 회귀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엔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기계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행한 사고, 혹은 단순히 힘이 부족해서. 또다시 실패해서 되돌아갔을 때. 그가 자신을 못 알아본다면.

처음 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자신은 버틸 수 있을까?

“···여기 같은데? 음.. 헬레나?”

“네..? 뭐라고 하셨죠?”

“깃털이 가리키는 곳 여기같아.”

“아.. 그런가요.”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거대한 문. 아무런 문양도 없는 밋밋한 철문이었다.

‘아다만티움..?’

신의 금속이라는 아다만티움. 그것이 통째로 사용된 철문. 도대체 안에 뭐가 있는지 의심스러워지는 광경이었다.

그들이 도착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무언가 시작됐다.

구구궁!

동굴. 아니, 설산이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이 들었다. 반복된 죽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달은 특별한 감각.

그것이 지금 발동됐다.

어느덧 죽음이 바로 앞에 있었다. 이 감각을 느낀 후에는 예외 없이 죽었다.

‘아..’

헬레나의 눈이 커졌다. 왜 하필 지금. 멍해진 정신과 다르게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순 없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곧 이곳에 죽음이 닥친다.

‘안 돼!’

지금 죽고 싶진 않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죽음이 갑자기 두려워졌다.

앞으로 나서면서 마력을 짜올렸다. 순식간에 생성된 세 개의 마법진이 공명했다.

우웅!

가진 마력을 모조리 쏟아부운 앱솔루트 쉴드. 그녀의 경지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마법.

7성급 강자의 전력도 막아 낼 수 있는 방벽이었다.

콰아앙!

아다만티움 문이 터지듯 열리고 무언가 쏟아져나왔다.

새빨간 무언가. 마치 꽉 압축돼 있던 폭탄이 터져 나온 것 같았다.

눈앞에 도달하기 직전에야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진홍빛 화염. 보통 화염이 아니었다. 주변 암석들이 지글거리며 한순간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못 막아.’

수많은 경험덕에 판단이 섰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앱솔루트 쉴드를 앞으로 뻗었다.

최대한 각도를 틀어 흘려내려 노력했다.

‘아..’

1초도 안 되는 짧은시간. 잠시 막아 내던 쉴드는 거품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자연재해가 덮쳐 오는 기분. 그녀가 쌓은 무력으론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어느새 발동된 육감덕에. 선명해진 세상이 느릿하게 흘러 갔다.

천천히 닥쳐오는 죽음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발···.’

지금 간절하게 비는 것은 삶이 아니었다. 회귀해서 되돌아갔을 때 그가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해볼걸.’

불길을 향해 앞으로 걸어갔다. 먼저 죽기 위해서. 그가 죽고 잠시나마 혼자 남아 있는 건 싫으니까.

그건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감각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던 몸이 오히려 뒤로 밀려났다. 무언가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당긴 탓이었다.

‘아···?’

어느새 반전된 그녀와 시우의 위치. 그가 문 쪽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섰다.

‘안 돼..!’

쏟아지던 새빨간 그것이 그를 덮쳤다.

그것을 차마 볼 수 없던 헬레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다행인 점은 그녀도 곧 죽으리라는 것.

구구궁!

기다렸던 고통은 없었다.

약간의 진동과 함께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눈을 떴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

‘어떻게···?’

주변에 느껴지는 뜨거운 온도가 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 앞에 멀쩡히 서 있었다.

양팔을 좌우로 편채 대각선으로 몸을 비튼 모습.

천천히 회전하는 양손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느릿한 손짓에 따라 붉은 기운이 땅과 하늘로 인도 되고 있었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새하얀 눈송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두터운 산을 관통한 것이다.

눈보라마저 멎은 듯 푸른 하늘이 보였다.

‘화룡..?’

화염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붉은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덮치던 새빨간 화염이 바로 저것이었다.

사방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잔열만으로 녹아버린 벽과 바닥에서 나는 소리였다. 피부가 화끈거렸다.

바닥으로 스며든 붉은 기운이 원을 그리고 있었다. 익숙하고도 기이한 문양.

태극이 그려져 있었다.

“아···”

죽음의 감각. 단 한 번도 빗나간적 없는 그것에서 처음으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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