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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12화 (112/241)

Chapter 112 - 112화 - 아카데미(10)

112화 - 아카데미(10)

알에서 태어난 것은 노란 병아리였다. 봉황의 새끼라는 것을 증명하듯 꼬리에는 촛불만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삐이이잇!

갓 부화한 새답지 않게 뽀송뽀송한 솜털이 보였다.

‘이게 뭐야.. 병아리잖아.’

절로 실망감이 들었다.

몇몇 뛰어난 영물들은 인간화도 가능하다고 들었다. 등에 날개 달린 아름다운 미녀를 상상했다.

그런데 이런 병아리라면 내심 기대했던 폴리모프는 힘들어 보였다.

***

번쩍.

알이 부화함과 동시에 세상이 무너질듯 흔들렸다. 그 후 정신을 차리니 다시 경매장이었다.

“공녀님..?!”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헬레나의 호위가 보였다. 기시감이 들었다. 설산에 전송되기 직전과 동일한 표정이었다.

“아..? 갑자기 제가 무슨···. 공녀님. 죄송합니다.”

조금 당황하던 호위는 다시 무표정으로 되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개를 내리니 입고 있던 털코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주변의 풍경도 설산에 전송되기 직전과 똑같았다.

‘뭐야..?’

-삐이잇?

품 안의 병아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꿈이나 환상은 아니었다.

음소거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정적이 흐르던 경매장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방금 정적 뭐야..? 조금 싸하지 않았어?”

“아..! 나 이거 알아. 귀신 지나간 거야.”

“뭐..? 장난치지 마.”

마법진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인상을 쓰면서 허겁지겁 마정석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뭐야! 마력이 왜 벌써 바닥나?”

헬레나는 미간을 좁히고 손목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팔찌에서 뽑아냈던 보석은 되돌아와 있었다.

몇 걸음 뒤에 따라오던 마이클을 살폈다.

녀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화조 깃털을 줍고 있었다.

빤히 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러십니까?”

“조금 전에··· 아니, 혹시 눈이 언제 왔는지 기억하십니까.”

“누, 눈이요..? 한 반년 전인가.. 잘 모르겠는데요.”

거짓간파 결과는 진실. 마이클은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헬레나가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시 그 깃털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왜, 왜요..?”

“어허. 마이클 뭐 하는 거냐. 어서 드려라.”

“아으.. 네.. 흐윽.”

아비의 명령에 마이클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깃털을 내밀었다. 사탕이라도 빼앗긴 아이처럼 울상으로 변했다.

그것을 본 시우가 눈가를 좁혔다. 설산과 미묘하게 태도가 달랐다.

‘뭔가 이상한데..?’

어떤 점이 거슬렸는지 고민하는데 헬레나의 전음이 들렸다.

-깃털에서 아무것도 안 느껴지네요.

-그래..?

받아서 살펴보니 마치 빈 껍데기같았다. 공간은커녕 화염도 증폭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래선 쓸모가 없다.

-조사 좀 해 봐야겠네요. 알아볼게 있으니 깃털은 일단 돌려주죠. 저한테 다시 주시겠어요?

깃털을 받아 든 헬레나에게서 미세한 마력이 꿈틀거렸다. 바로 옆에서 보는데도 느끼기 힘든 수준이었다.

‘오..?’

그것도 잠시. 깃털에 스며든 그녀의 마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떤 마법인지 모르겠지만 감각을 집중했는데도 느껴지지 않았다.

헬레나가 마이클에게 깃털을 돌려 줬다.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마이클은 헤벌쭉 웃으며 좋아했다. 그것을 보던 헬레나가 뒤에 있던 호위에게 무언가 속삭였다.

진지한 얼굴로 끄덕이던 호위는 마지막 지시를 듣고 무표정이 깨졌다.

경악한 눈으로 시우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네. 예약하겠습니다.”

작게 심호흡한 헬레나가 시우에게 말했다.

“시우님.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일단 쉬, 쉬러가요. 우리.”

***

이곳은 시우가 강현아와 몇 번 밥을 먹은 레스토랑. 이번엔 헬레나와 함께 왔다.

‘하긴. 여기가 맛있긴 하지.’

아무래도 소문난 맛집 같았다.

요리를 기다릴 동안 헬레나의 호위가 구해 온 CCTV 화면을 돌려봤다.

마이클 손에 있던 깃털이 살짝 흔들림과 동시에 화면이 나갔다.

몇 초간 지지직거리던 화면이 돌아왔을 때. 이전과 동일한 장면이 이어졌다.

“음··· 대단하긴 하네요.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해질 정도로.”

“그러게.”

봉황이란 존재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한 건지 호기심이 생겼지만 물어볼 데도 없었다.

헬레나가 호위인 타샤에게 노란 병아리를 건넸다.

-삐이잇!

노란 병아리가 조막만 한 날개를 파닥거렸다. 타샤의 품에 안겨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정밀 검사가 끝나고 키울지 말지 정하기로 했다.

“그럼··· 이 아이는 검사 후에 다시 데려오겠습니다.”

“고마워 타샤. 그리고 그건··· 했어?”

타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속삭였다.

“네.. 했습니다.”

“흠흠···! 고, 고마워.”

헬레나의 지시를 받은 타샤가 떠나고 둘만 남았다.

설산에 대한 남은 일 처리는 조금 쉬다가 하기로 했다. 급한 것은 헬레나가 이미 지시했으니까.

*

이 식당은 여러 번 왔다. 하지만 처음 온 것처럼 헬레나에게 물어가며 전채요리를 집어먹었다.

과연 그녀의 얼굴 한 켠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정말.. 긴 하루였네요.”

“맞아. 엄청나게 길었지. 좋기도 했지만.”

특히 등에서 느껴지던 그 짧은 포옹이 가장 좋았다. 알아들은 것인지 헬레나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똑똑.

“실례하겠습니다. 다음 음식 드리겠습니다.”

요리사가 손가락보다 작고 얇은 튀김을 조심스럽게 접시에 올렸다.

“이건 태양화리 수염 튀김입니다.”

“···네?”

먹을 것도 많은데 굳이 이런 걸 왜 먹나 싶어서 바라보니 요리사가 헛기침 했다.

헬레나와 그를 번갈아 보며 조금 부러운 듯이 말했다.

“태양화리의 수염은 몸에 많이 좋습니다. 내단이 생기기 전까지 양기를 보관하는 장소죠. 특히.. 그..”

요리사의 말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었다.

약간 얼굴이 붉어진 헬레나가 요리사의 말을 끊었다.

“흠흠..! 설명은 됐어요. 시우님. 드셔보세요. 오늘 고생도 많이 하셨잖아요. 그래서 보양식으로 주문했어요.”

그러면서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여주는 서비스까지.

“자, 아..”

밖으로 나가던 요리사가 눈을 부릅뜨며 부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드실만 하세요?”

“음.. 괜찮네. 약간 김 튀김같다.”

약간 짭짤하고 바삭거리는 맛. 특히 거기에도 좋다니까 더 맛있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다. 헬레나가 이것저것 집어서 먹여주기 시작했다.

“이것도 드세요. 몸에 좋아요.”

하나 같이 보양식으로 소문난 것들.

“헬레나 같이 먹자. 너도 힘들었잖아?”

“그럴까요..?”

기대하면서 쳐다보는 눈빛. 태양화리찜의 살을 발랐다. 큼지막한 살덩이를 집어서 작게 벌려진 헬레나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그녀가 몸을 살짝 떨며 미소 지었다.

“으음..! 맛있네요!”

몸과 정신에 쌓인 피로가 풀리는 기분. 게다가 맛도 좋았다.

요리를 잘한 건지 태양화리 자체가 맛있는 건지 구별가지 않았다. 아마도 둘 다가 아닐까.

행복한 식사가 이어졌다. 개고생에 대한 피로가 풀리는 식사였다.

“그런데 거긴 어디였을까?”

“아.. 그 설산이요?”

잠시 고민하던 헬레나가 말했다.

“솔직히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봉황의 심상과 봉인이 뒤섞인 것 같아요.”

“심상이라.”

심상이라면 몇 번 느껴본 적 있었다. 영약을 먹을 때 머릿속으로 격랑이 몰아치던 바다를 떠올렸었다.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그곳에서 죽거나 다쳤다면 어떻게 됐을지.

하지만 굳이 확인해 볼 필요는 없었다.

*

식사가 끝나갈 때쯤 헬레나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약간 붉어진 얼굴로 허둥거렸다.

“자, 잠시만요. 실례 좀 할게요.”

그러더니 1분가량 나갔다 들어왔다.

‘음..?’

아까부터 그녀를 자세히 관찰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헬레나의 옷에 묻어 있던 미세한 먼지. 그런 것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마치 클린 아티팩트를 사용한 것처럼.

‘각이다.’

곧바로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클린 아티팩트를 사용했다.

당장에라도 물고 빨고 해도 될 정도의 깨끗함.

누가 발명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아티팩트였다. 노벨섹스상이라도 줘야할 정도로 유용했다.

식당에서 나올 때까지 헬레나는 말이 없었다.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마치 불장난을 할지말지 망설이는 아이 같았다.

“그으··· 그···”

그녀의 눈동자에서 격렬한 갈등이 휘몰아치는 게 느껴졌다.

한참 망설이던 헬레나가 눈을 질끈감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시우님.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들어가서 일찍 주무세요.”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벽이 다시 두터워지려 했다. 그래선 곤란했다.

“헬레나. 오늘 힘들었는데 조금 쉬다 갈래?”

“네..?! 아, 안 되는데···.”

우물쭈물하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아카데미까지 가기도 피곤한데 여기서 좀 쉬자. 응?”

“그, 그럴까요..? 마, 마침 제가 방을 하나 잡았는데요···. 너, 넓어서 둘이서 쉬기··· 흐읍!”

츄릅.

그녀와의 첫 키스는 상큼한 민트맛이었다. 이 요망한 여인은 어느새 가글까지 한 것이다.

“하아···”

혀와 혀가 뒤섞이는 질척한 키스덕에 헬레나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몇 호야?”

“9, 902호요···.”

어느새 예약까지 해 놓고 도망가려 하다니.

그녀의 뒷목을 살며시 안으면서 천천히 입술을 덮쳤다. 이전과 다르게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속도.

츄릅 쮸압.

끈적이는 키스가 이어질 때까지 그녀는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것도 잠시. 움찔거리던 헬레나가 오히려 마주 끌어안았다. 마치 내일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아...”

몽롱한 얼굴이던 헬레나가 핫 하며 정신을 차렸다.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듯 고개를 팍 숙였다.

“아으.. 이, 이게..?”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가자.”

“어어···.”

헬레나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방으로 향했다.

옆구리 넘어 골반까지 쓰다듬자 그녀가 움찔거렸다. 이제서야 자신이 뭔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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