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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18화 (118/241)

Chapter 118 - 118화 - 아카데미(16)

118화 - 아카데미(16)

디아나는 집이자 일터인 라피스 공방을 꼼꼼하게 쓸고 닦았다.

약간은 낡았다고 할 공방. 바로 옆에 있는 최신식 건물에 비해 초라하다. 하지만 소중한 건물이었다.

“하아···”

원래 라피스 공방 주인은 남편이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고 그녀가 물려받았다.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연금술을 다룰 수 있을 리 만무.

최고급만 취급하던 라피스 공방이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녀의 피나는 노력으로 남편이 있던 시절과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었지만 늦었다.

손님들은 이미 떠났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겠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억지로 해맑게 웃으며 공방을 먼지하나 없이 쓸고 닦았다.

지이잉.

지금 연락올 사람은 뻔했다. 딸아이의 은인.

디아나가 붉은 입술을 매만지며 문자를 읽었다.

- 아호시정도에가갰습니다.

급하게 보낸 것인지 오타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바쁜 것 같았다.

‘아홉 시면.. 여섯 시간 정도 남았네.’

값비싼 무언가를 제공하긴 형편이 어려웠다. 최근 들어 남편 병원비도 간당간당 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작게 한숨 쉬며 장바구니를 들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저녁을 대접하는 게 전부여서 조금 미안했다.

‘아홉 시면 밥 먹긴 조금 그런가···?’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도시락이 떠올랐다. 보존마법이 각인된 도시락통이면 다음날 먹어도 충분하니까.

습관처럼 붉은 입술을 매만지던 그녀가 연금거리 바로 옆 시장에 도착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한 가게로 들어갔다. 평소엔 엄두도 못 낼 비싼 식재료가 있는 곳이었다.

“어머.. 세라엄마. 웬일로 랍스터를 사? 누구 해먹이려고? 세라?”

평소엔 말도 걸지 않던 상인의 물음에 약간 의문이 들었다.

“그건 아니구요.”

“어머..!? 설마 남자? 얼른 말해 봐. 나도 덕 좀 보자.”

별생각 없이 은인을 대접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려던 그녀가 멈칫했다. 덕이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으응..? 뭐, 뭐가? 내가 뭐라고 했던가?”

“방금 덕이라고..”

파마 머리의 중년 상인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에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어! 아무튼.. 누구 해먹이게? 남자 맞지?”

“···아주머니. 제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죄송한데 빨리 주시겠어요?”

작게 혀를 차며 랍스터를 포장하는 상인의 모습에 디아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왠지 모를 위화감도 랍스터의 비싼 가격에 사라져 버렸다.

“쯧.. 여기 두 마리 8만원.”

“8, 8만원.. 으으..”

덕분에 그녀는 한동안 라면만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의 병원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딸 생명의 은인을 대접하는데 아낄 순 없었다.

*

띵동.

흥흥거리며 요리하던 디아나가 밝게 웃었다.

“어머! 일찍오셨네?”

가게 밖에는 클로즈 팻말을 달아놨으니 올 사람이라곤 한 명뿐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식사를 대접하는 게 예의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도시락을 선택했다.

세라도 없는 이곳에서 둘이서 밥을 먹는 건 뭔가 아닌 것 같았다.

벌컥.

“어서 오세요!”

디아나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

연금거리에 도착한 시우가 시계를 살폈다. 아홉 시가 되기 5분 전이었다.

‘다행히 늦진 않았네.’

아멜리아가 인사불성이 되고서도 그를 붙잡았다.

-헤윽..♥ 아, 아직도 딱딱해..?

-이거면 충분해. 그만해도 돼. 아멜리아.

-아앙.. 시, 시러엇.. 이게 말랑해져야 만족한 거라면서!

-음..

-아앙♥ 아아아앙!

결국 그녀가 기절할 때까지 박아준 다음에 내공까지 동원해서 달려왔다.

다행히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음?’

디아나의 라피스 공방으로 가는 길에 사람이 적어졌다. 원래도 골목 구석이라 외진 곳이지만 오늘따라 더 조용했다.

-공사 중입니다.

‘갑자기 웬 공사?’

길을 막는 팻말까지 있었다. 약간 의문을 안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툭.

공사때문인지 결계까지 설치해놨다.

-디아나씨? 지금 거의 도착했는데 결계가 설치돼 있는데요?

문자를 보내봤지만 응답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냥 다음에 다시 올까.’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왠지 모르게 꺼려졌다.

이상하게 무언가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집중했다. 희미하게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가를 좁히다가 귀에 내공을 둘렀다.

- ···이거 열어! ···어차피 아무도 안 와!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손바닥에 항마력을 두르고 결계에 갖다 댔다. 그것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생겼다.

타탓.

빠르게 뛰어가니 펼쳐진 상황은 가관이었다.

쾅! 쾅!

배불뚝이 중년 남자. 디아나의 남편 친구라던 로튼이 희열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해머를 휘둘러대고 있었다. 푸른 마법진이 반짝이는 것이 아티팩트로 보였다.

쾅! 쾅! 쾅!

“허으.. 힘들어 죽겠네. 디아나! 그냥 나와! 늦으면 너만 괴로워진다고! 지금도 버티기 힘들잖아!”

생판 남이 뭘 하든 관심 없었다. 문제는 저놈이 두들기고 있는 것이 바로 라피스 공방이라는 거였다.

‘뭐야 이건.’

라피스 공방 전체에 불투명한 마력 장막이 웅웅거렸다. 해머로 두들길 때마다 거칠게 흔들렸다.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몸속에 양기를 한곳에 응집시켰다. 터질 것처럼 웅웅대는 그것을 손가락 끝에 인도했다.

손끝에 길을 터주듯 기운을 풀어줬다.

핏!

“끄악!?”

희끗한 무언가가 바람을 갈랐다. 뭉쳐진 기운이 총알처럼 날아갔다.

무림에서 지풍, 탄지공이라고 불리는 기술이었다.

60년 내공 중 아주 일부. 한 달 정도의 양만 사용했는데 제법 위력적이었다.

‘권총 정도..?’

지풍을 제대로 사용해 본 것은 처음이라 어찌될지 몰랐다. 사실 크게 다쳐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쏜 것이었다.

“끄으으..”

뻣뻣하게 굳은 로튼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깨 부근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스며든 기운으로 인해 점혈까지 된 것이다. 나무토막처럼 굳은 채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끄흐.. 너.. 내, 내가 누훈지 알아!”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어서 발음이 샜다. 얼핏 보이는 앞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점혈당해 넘어지면서 재수 없이 깨진 것이다.

놈이 눈알만 돌려서 이쪽을 죽일 듯 노려봤다. 남의 집을 망치로 두들겨 대던 녀석이 당당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당장 풀허어!!”

“시끄러워.”

“나는 연흠 협회장··· 꺼억!

대충 쏘아낸 지풍이 녀석의 목울대를 후려쳤다. 관통되진 않았다. 이번엔 정말 최소한의 내공만 담았다.

‘아차 실수.’

“쿠웨에엑!! 끄워억! 컥컥!”

지풍을 대충 쐈더니 상당히 많이 빗나갔다. 압축된 것을 터뜨리는 방식이라 약간의 오차도 꽤 컸다.

다시 집중해서 지풍을 쏘아 놈의 혈도를 짚었다.

녀석은 신음도 지르지 못하고 소리 없이 꺽꺽댔다. 침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이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까부터 살피고 있던 기감에 집중했다.

라피스 공방 안에는 한 명뿐이었다. 디아나의 기운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넌 나중에 보자.”

놈 보다 급한 건 그녀가 어떤 상태냐는 것.

아까와 동일한 방식으로 결계를 파훼했다. 라피스 공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디아나씨? 저 시우입니···.”

화륵!

전방에서 불꽃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건 눈 속임. 진짜는 발밑에서 은밀히 다가오고 있었다.

고압 전류.

발바닥에서부터 타고 들어오는 짜릿한 기운이 느껴졌다. 몸 안을 불태우려는 그것에 본능적으로 대응했다.

전신을 휘돌고 있는 혼원기에 뒤섞었다. 손끝을 살짝 털자 모든 위협이 허공으로 날아 사라졌다.

비상시를 대비해 설치된 함정 같았다.

“음..”

사람이라면 전기가 흐르는 속도를 인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도 인지한 것은 아니다.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일어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마치 저번에 설산에서 행운유수를 펼쳤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마음 한 켠에 이 감각을 기억하려 노력하면서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난장판이네.’

엉망으로 쏟아진 진열대가 보였다. 탁자와 의자도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강도라도 든 것 같았다.

그 난장판 사이에 디아나가 쓰러져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보아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 손에 날카로운 단검을 쥐고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오, 오지.. 마..!”

새하얗던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랐고 숨소리가 거칠었다. 게다가 눈도 뜨기 힘든지 바들바들 떨면서 한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단검이 그녀의 얼굴을 향했다. 마치 자해라도 하려는 것처럼.

“진정해요. 디아나씨 접니다. 시우.”

그 말에 그녀의 동작이 멈췄다.

“흐읏..? 시, 시우씨..?”

“밖에 그 남편친구라는 사람이 있던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의미 없이 반항할 바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망가뜨리겠다는 심정이었을까. 막 자해를 하려던 그녀가 단검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아으.. 빠, 빨리 신고..! 하악..!”

긴장이 풀린 것인지 그녀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붉어졌던 피부가 더 달아오르고 거친 숨결에 달콤한 무언가가 담기기 시작했다.

“아으읏.. 아, 안 돼애.. 하악..!”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응급처치라도 할 테니까.

‘독이라도 당한 건가.’

“하아악! 아앙!”

“응?”

그저 진맥하듯 손목을 잡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허리가 확 튕겨 오르며 거세게 떨렸다.

마치 절정한 것처럼.

‘아니, 진짜 가버렸잖아.’

“아아아아앙!!”

푸슈슛! 푸슈슈슛!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단정한 치마가 흥건하게 젖어 버렸다. 갑자기 쏟아진 보짓물로 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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