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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21화 (121/241)

Chapter 121 - 121화 - 아카데미(19)

121화 - 아카데미(19)

며칠 전.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을 가진 메이드가 도시 밖으로 나갔다.

그녀를 은밀히 쫓던 남자가 발걸음을 멈췄다. 메이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검문소를 통과해 장벽 너머로 나갔다.

‘도시 밖이라고···.’

메이드가 사라진 곳을 보며 눈가를 좁혔다.

그가 북부방벽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은 비결 중 하나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이었다.

짧은 고민이 끝났다.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속행한다.

타겟, 메이드를 뒤쫓아 도시 밖으로 나갔다.

길도 제대로 없는 무성한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도시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짐승의 기척.

수하 중 한 명이 조용히 화살을 쐈다. 마력이 서린 화살은 소리 없이 날아가 어딘가에 꽂혀들었다.

퍽!

-컹..!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늑대형 몬스터 한 마리가 절명했다.

그녀를 뒤쫓는 동안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도시 밖은 인간이 포기한 몬스터의 영역이니까.

“후우..”

체력이 가장 약한 수하의 숨소리가 조금 커졌다.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여자의 뒤를 쫓는 것이라곤 믿기지 않게 힘들었다. 숨이 가빠질 무렵에서야 그녀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정지.

수신호로 부하들에게 지시한 그가 멈춰 섰다. 타겟의 이동 경로가 이상했다. 이쪽 방향에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타탓.

그는 원숭이라도 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나무 위로 올라갔다.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망원경을 통해 메이드복을 입은 예쁘장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숲을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깨끗했다. 다친 곳은커녕 전투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서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새옷을 입은 듯 깔끔했다.

검은색 바탕의 메이드복과 새하얀 얼굴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저긴···.’

그녀의 목적지를 보며 눈가를 좁혔다. 어설픈 목책이 세워져 있는 마을이었다.

그곳은 할렘가였다.

속칭 할렘가는 정부가 방치하듯 포기한 지역이었다. 도시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

몬스터가 들끓는 이런 장소에 사는 사람들이 정상적일리 없었다. 당연히 범죄자들 소굴이었다.

‘위험한데···.’

조금 걱정됐다. 가녀린 여인이 범죄자 소굴에 들어가다니.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잘못하면 질 나쁜 이들에게 걸려 끔찍한 일을 당할 것이다.

‘이런..!’

연초를 입에 물고 있던 양아치가 그녀를 발견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그녀를 구해주고 싶었다.

주먹을 꽉 쥐며 충동을 참았다. 다행히 양아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할렘가 속으로 사라졌다.

‘하아.. 다행이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안전해 보이니 다행이었다.

타탓.

나무 위에서 조용히 내려왔다. 긴장된 눈으로 대기하는 부하들이 보였다.

막 수신호로 지시하려던 그가 멈칫했다.

‘다행이라고..?’

곧바로 혀끝을 살짝 깨물었다. 아릿한 고통과 함께 위화감이 강렬해졌다.

방금 전까지 추적하던 대상에게 호감을 품고 걱정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리해서 접근할까 고민하던 그가 생각을 뒤집었다.

-대기한다.

***

수련장에 혼자 남은 시우가 가부좌를 틀었다.

“후우..”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설산에서 진홍빛 화염을 흘려냈던 그 때. 터져 나온 뜨거운 기운을 혼원기에 뒤섞어 하늘로 인도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이 처음으로 완벽하게 성공한 행운유수였다.

설산에서 탈출한 뒤 곧바로 그 감각을 떠올리려 했지만 실패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하던 그 기억이 오히려 선명해졌다. 가슴속에서 아른거렸다.

‘어떻게 했더라.’

분명 가슴속에 있는 느낌인데 막상 떠올리긴 힘들었다.

명상하듯 기억을 더듬었다. 간질간질한 감각이 피부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도 잊으며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무의식.’

갑자기 떠오른 단어였지만 고민해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행운유수를 펼치기 위해선 무의식을 이용해야 했다. 머리로 인지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야 했다.

하지만 무의식을 원하는 대로 다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으음···.’

가슴속에 남아 있는 행운유수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체득하고 싶었다.

갑자기 선명해진 느낌인 만큼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절정지경에 오르면서 유독 발달한 게 두 가지 있었다. 바로 감각과 직감이었다.

눈을 감아도 주변 풍경이 보이듯 느껴지고 가끔 튀어나오는 직감이 요즘 따라 잘 맞아떨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디아나를 구해줬을 때 되돌아가지 않은 것. 그때도 직감이 작동했다.

그러한 직감이 다음 경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실전이 필요했다.

***

시우가 아카데미 부지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섰다.

한 여인이 헬레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공녀님!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방벽으로 오실 거잖아요?”

“그럼요! 꼭 그쪽으로 지원할게요!”

여인의 품 안에는 영약 상자로 보이는 것이 들려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헬레나는 재능있고 믿을 만한 이들에게 영약따위를 주곤 했으니까.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연신 인사하던 여인이 떠나고 헬레나에게 다가갔다.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던 그녀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그녀의 입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시우님! 오셨어요?”

“헬레나 바쁜 것 같은데. 시간 괜찮아?”

“30분 정도는 괜찮아요!”

요즘 따라 헬레나가 바빴다. 얼핏 듣기로 로튼이 사라지고 불법담합으로 썩어가던 연금거리를 되돌리는 중이라고 들었다.

연금거리에서 생산되는 아티팩트는 몬스터와 싸우는데 중요했다. 하루빨리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다.

“혹시 내가 도와줄 만한 일은 없어?”

헬레나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 시우님은 수련에만 집중하셔도 돼요.”

“도와줄 만한 거 진짜 없어? 수련하다 막혀서 실전이 필요하거든.”

“실전이요..? 으음..”

잠시 미간을 찡그리며 고민하던 헬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긴 한데요···.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요. 회귀 전에는 신경 쓰지 못했던 곳이라서요.”

직감에 따르면 행운유수, 나아가 다음 경지를 위해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위험하면 오히려 좋아. 이상하게 실전이 끌리네.”

“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약간 어이없긴 한데. 직감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느껴져.”

“직감이요···.”

솔직히 그녀가 이상하게 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진지해졌다. 조금 고민하던 헬레나가 설명했다.

“직감이면··· 7성에 대한 단초를 잡으신 걸지도 몰라요.”

“응?”

이곳에서 7성이면 초절정의 경지였다.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지고의 경지.

“기사들이 마력을 모으는 장소는 크게 세 군데잖아요? 배꼽아래 하단전. 그리고 심장의 중단전. 마지막으로 뇌가 있는 상단전이요.”

“음.. 그건 알고 있는데. 그게 왜?”

“누구나 가능한 건 아니지만, 재능 있는 몇몇은 상단전이 발달하면서 기이한 능력을 가지게 돼요. 짧은 예지라던가.. 아니면 직감이 발달하기도 하죠.”

사실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직감을 따라도 되는 건지 의문이었는데 약간 안심됐다.

“오.. 그래? 약간 불안 했는데 다행이네. 아무튼 도와줄 일이 뭐야?”

“···저번에 봉황이 했던 말 기억하세요? 사도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봉인됐다고 했었잖아요?”

“그랬었지.”

“저도 사도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하지만 몇몇 이들이 죽어 가면서 저주를 퍼붓더군요. 사도가 너를 벌할 것이라고.”

잠시 망설이던 헬레나가 말을 이었다.

“그냥 넘어가긴 찜찜해서 화조의 깃털에 대해 계속 조사했어요. 그러다 수상한 자를 발견했어요. 원래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

도시밖 할렘가로 출발하려는데 헬레나가 옷깃을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입술을 살짝 깨물던 그녀가 아공간 팔찌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잠시만요. 이건 혹시 모를 정신저항 부적이구요. 이건 최상급 포션인데 외상에 특화된 거니까 상처나면 쓰세요.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자살하러 가는 건 아니니까. 조사 좀 하다가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튈게.”

살짝 안아주며 달래봤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으으.. 차라리 같이 가실래요? 며칠 뒤면 저도 시간이 좀 날 텐데.”

“아냐. 이것도 있잖아?”

워프 도장을 꺼내서 흔들었다. 약간의 틈만 있으면 마법진을 설치할 수 있다. 그럼 아카데미로 도망치는 것도 가능했다.

그제야 헬레나의 굳은 표정이 조금 풀렸다.

“하아··· 그래도 조금 불안하네요. 이거라도 드시고 가세요.”

헬레나가 도시락을 챙겨 주듯 무언가 내밀었다. 노랗고 잔뿌리가 가득한 식물.

산삼이었다. 몇 년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뿌리가 제법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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